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4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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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호모 쿵푸스의 연장선상이다.
거기에서 지혜롭게 사랑을 하려면 책을 읽고 공부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그 가지가 또 하나의 주제가 되어 책 한 권을 만들어 낸다.
또 이 뒤에 인연을 만나는 서로가 짝을 찾는 시간인 `시절인연`을 자주 언급하는데
또 거기에 있어서 사주팔자나 운명이 나온다.
그러면서 또 운명에 대한 가지가 하나의 책이 나올 것임을 은근히~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지금 하고 있는 `연애의 발견`이라는 드라마와 함께 비교해가며 읽으면 재미가 더해진다.

이 책에 따르면 그냥 강태하랑 잘 살아라 여름아.
억지로 나이 차서 만난 좋은 남자라고 억지로 사랑한다고 레드 썬 그만 좀 하고!!!-_-

아..나도 한여름이 되고 싶다.(뭐라니)

중요한 건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이 순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는 일이다. 함께 걸으려면 최소한 방향이나 시선이 같아야 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궁합을 보는 방법 가운데 용신을 따져 보는 게 있다. 용신이란 내 몸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치우침을 조화로운 상태로 이끌어 주는 오행의 기운을 뜻한다. 용신이 같거나 용신이 서로 상생관계에 있으면 지향점이 같아서 잘 어울린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절인연이 중요하다. 시절인연이란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어떤 강한 촉발에 의해 공통의 리듬을 구성하게 된 특정한 시간대를 뜻한다. 일종의 매트릭스 같은 것이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다. 어떤 대상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욕망이 솟아오르려면 시절을 타야 한다. 시절을 타게 되면 아주 작은 촉발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된다.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순식간에 땅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로 눈이 맞는다는 건 상대방 역시 같은 흐름을 탔다는 의미다. 만약 이 시절을 타지 못하면 한쪽에서 아무리 용을 써도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 법이다. 둘이 서로 다른 시공간적 좌표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은 우주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사랑의 소멸 또한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아무리 불같던 사랑이라도 순식간에 결별을 맞이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봄이 오면 대지는 뭇 생명을 키워 내지만 가을이 되면 `숙살지기`가 도래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서 땅에 묻혀야 다시 봄을 맞을 수 있다. 이 천지의 흐름을 누가 감히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인간이 천지의 자식인 한 인생 또한 이런 변화의 리듬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말하자면, 사랑에도 엄연히 준하추동, 사계절이 있는 법이다. 시절인연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60-61)

남녀 간의 사랑만 그런 게 아니다. 특히 요즘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심각한 수준이다. 아들을 스토킹하는 엄마, 하루종일 딸의 동선만 챙기는 엄마 등등. 어떤 점에선 이성애보다 더 심각한 블랙홀이 되기도 한다. 이성애는 헤어질 수나 있지 부모자식 간은 평생 이별로 불가능한 관계 아닌가. 이미 언급했듯이 넘치거나 모자라는 건 다 나쁘다. 특히 넘치는 건 더 좋지 않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사랑이 아니라 지배욕이다. 그런 점에서 부모들의 이런 과잉서비스도 일종의 변태다. 무엇보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의 삶을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체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삶이라는 배경을 망각한 채 오로지 서로한테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자식이 어느 정도 자라 이 관계에 틈이 생기게 되면 앞에서 말한 연인들과 동일한 수순을 밟는다.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지면서 무기력한 권태에 빠지거나 아니면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더더욱 그 관계에 집착하거나. 전자는 흔히 중년우울증으로, 후자는 주로 시어머니-며느리 아니면 장모-사위 간의 처절한 갈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결국 남녀 사이뿐 아니라 우리시대 모든 사랑의 여정에는 두 개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권태 아니면 변태라고 하는. 이것이 사랑이라는 활동의 장에서 삶을 지워 버린 데 대한 가혹한 대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88)

마찬가지로 결별로 인해 고통을 받을 때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고통은 휴식이 될 수 있다. 질병을 통해 인생의 전기가 마련되듯이, 결별 자체가 축복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위해서 그런 진통을 겪은 것이 아닐까. 질병이 오는 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 가운데 하나다. 결별 또한 그렇다 충격과 아픔을 수반하는 건 틀림없지만,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삶을 유지하는 최선책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 해서 나를 `버리고` 떠난 이들에게 진정 감사하는 순간이 도래할 것이다.
요컨대, 차거나 차이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만든 인연의 장이 시간적 어긋남 속에서 그런 식의 비틀거림을 낳은 것일 뿐이다. 분노와 원망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랑은 권력게임이 되어 버린다. 또 권력게임 혹은 자존심 경쟁이 되는 순간, 둘 다 패배자가 된다. 그런 점에서 결국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건을 해석하는 `나의 망상체계`다. 그러므로 정말 복수하고 싶다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그런 인연의 장을 만든 자기 자신을, 자신을 얽어매는 온갖 망상들을,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리고 성큼! 길을 나서라.(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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