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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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을 하는 이유

관찰대상은 나다. 그 이외엔 없다. 진짜다. 난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벅차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이해할 시간까지 없다. 그 시간에는 아이 등 하원하고 집 청소기 밀고 걸래 질하며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한다. 가끔 비이성적으로 부정적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가득 찰 때가 있다.
 그런 내가 요즘 댓글을 통해 유난히 험담하는 대상이 있었다. 고백한다. 아직도 그 분노가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지. 요즘 나온 사건 영향을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유독 심하게 험담을 했던 인간은 바로 이 소설 속 '스트릭랜드'다. 끊임없이 '여자'를 일반화하고 정의 내리며 끝까지 비아냥댔다. 더 웃긴 건 끝까지 여자 도움을 받아 생계를 이어나간다. 지금 그림이 몇 만 프랑이고 지금 영원한 걸작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 정말 책 읽는 내내 분노로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작가는 도대체 자유로운 인생을 선택했다면서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인물을 그렸을까? 사회에서 자유로워져도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를 약한 여자를 통해 풀어버리는 나약한 인간 속성을 알리고 싶었나? 아니면 작가가 가진 여자에 대한 생각은 고작 이 정도였을까? 뒤이어 나온 평론에서 작가를 변호하는 듯 '그 당시 상황'이 여성을 그렇게 만들었음을 이야기한다. 200년 전 여성이 가진 지위는 고작 집 안에 키우는 강아지 정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술이라는 특성이 과연 그가 가진 비윤리적 사상까지 용서할 수 있을까?

여자란 알 수 없는 동물이오. 개처럼 취급하고, 팔이 아프도록 두들겨 패도 여전히 사내를 사랑한단 말이오. 그러니 여자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건 기독교의 망상 가운데서도 제일 터무니없는 망상이죠.(287)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거리

스트릭랜드는 지혜롭고 완벽한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 멀쩡한 주식 중개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던 40세 중년이었다. 갑자기 아내에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하고 가출한다.그는 결국 가난하게 그림을 그리며 살다 열병에 걸린다. 이때 어느 정도 상업적 그림을 그려 여유 있던 스트로브라는 사내가 간호를 해 그를 살린다. 스트릭랜드는 감사할 줄 모르고 스트로브 작업실을 자신 작업실로 사용한다.결국 스트로브는 참다 못해 화를 내며 스트릭랜드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결국 스트로브는 집뿐 아니라 아내까지 스트릭랜드에게 뺏긴다. 스트릭랜드를 부양하던 브란치는 결국 자살을 한다. 다시 자유가 된 스트릭랜드.그는 부둣가에서 일하다 선장과 싸움에 휘말리고 목숨을 위협받자 반강제로 타히티에 도망간다. 그곳에서 17세 원주민 아타와 살림을 차리고 살다 문둥병에 걸려 죽는다.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이 책은 스트릭랜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를 잠시 만난 작가가 직접 그를 만나거나 다른 지인에 의해 들은 것을 기초로 글을 쓰는 형식을 취했다. 완벽하게 그를 관찰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화자는 그와 주위 사람을 평가하고 정의하면서 잘난 척을 한다. 나는 이제까지 멋진 소설은 그저 상황을 보여주고 독자에게 평가를 맡기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완전히 반대다. 끊임없이 주위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처음에는 그 상황이 불편했다. 신기하게도 독자는 결국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가 버린다. 의심하고 비판하다가 '스트릭랜드'가 갖고 있는 광기 어린 예술성을 인정해 버리고 만다.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그게 그를 신령한 향수에 사로잡힌 영원한 순례자로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그의 마음속에 들어선 마귀는 무자비했어요.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276)
선을 가장한 폭력: 스트로브
           

남에게 한없이 선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저 '착한' 사람일까? 아주 옛날 '속사정쌀롱'이란 프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을 이 책, 스트로브를 통해 느꼈다. 겉에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스트로브는 불쌍하다. 죽다가 살아난 여자를 살려 아내로 맞이했다. 그 아내 브란치는 결국 남편 스트로브가 살린 남자인 스트릭랜드와 바람이 나 스트로브를 버린다. 브란치는 정말 못된 여자일까? 아니다. 죽을 뻔한 자신을 살려 준 스트로브에게 감사했고 잘 살아보고 싶었다. 그녀는 스트릭랜드 안에 깃든 야성을 깨닫고 이상한 성적 욕망에 휩싸인다. 결국 브란치는 올바른 삶을 살고자 "그 남자 싫다."라는 말을 하며 일부러 멀리한다. 결국 죽어가는 스트릭랜드를 데려온다고 할 때도 정말 진심을 다 해 거부한다. 그때 스트로브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내가 너를 도와줬는데 이러면 안 되지."
그때 브란치는 냉랭해지며 쉽게 스트릭랜드를 집에 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한 마디는 브란치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
한마디 안에 스트로브가 한 선행은 '댓가성'이 있다는 걸 내포한다.상대가 원하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비굴하게 굴며 온갖 선물 공세를 한다. 상대방에 그걸 받아줄 여유와 같은 애정이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그게 부담일 때는 거절할 수도 없고 말 그대로 '폭력'으로 다가온다. 이후 억지로 받고 이후에 상대방이 별 반응이 없다고 생각하면 온갖 호의를 베푼 상대방은 화를 낸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 했는데.. 넌 왜 이따위야?" 그러면 상대방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누가 그 호의를 진심으로 원했나? 사람들은 나 이외 사람이 한 노력을 알아채기 정말 힘들다. 남에게 허허 호호 웃으며 내 주기 좋아하는 '호구'는 그저 원래 '호구'인 줄 안다. 뒤늦게 자신 선의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권력을 행사하려는 마음은 진정한 '폭력'이다.
 이와 다른 대가 없는 사랑'에 대한 대표적 인물이 있다. 타히티 섬에서 스트릭랜드 죽음까지 간호한 17세 소녀인 아타다. 스트릭랜드가 모든 사람이 피하는 문둥병에 걸렸음에도 자신이 선택한 인연을 함부로 끊지 않는다. 끝까지 스트릭랜드 유언을 미련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지킨다.
 스트로브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한 선행은 순수한 호의여야 한다. 뒤늦게 왜 내가 한 호의를 알아주지 않냐며 화를 낼 거라면, 뒤늦게 생색을 낼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자. 상대방이 선물을 받고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괜찮다고 생각할 때 선물하자. 신중하게 호의를 베풀어야겠다. 희생에 있어서도 '대가가 없는'순수한 마음으로 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재는 좋은 것인가?

과연 '예술가란 좋은 것인가?'란 근원적 물음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그림에 열정을 품은, 분명 내면에 천재성이 있는 스트릭랜드라면 어떨까? 결국 그냥 평생을 지혜로운 아내 밑에서 소소하게 그림만을 그리며 인생을 마칠 것인가? 물론 그렇게 하면 그림은 그릴 수 있겠지만 책 안에서처럼 폭발적인 예술성을 품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근래 천재라고 입 모아 얘기한 한 아티스트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참 생각이 많아졌다. 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

이 책에 대한 토론을 마치며 언니가 충고했다.
"꿀꿀아..이제 좀 그만 달 보고, 6펜스 좀 생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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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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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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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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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7 1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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