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문학 소녀'라고 말하고 다닌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공책으로만 4권 빼곡히 적은 독서일기에 끝없이 읽어댔던 문학 소설. 지금 있다면 반백년 된 전집을 읽었다. 그 안에 있는 흰색 책벌레를 지긋이 눌러가며 한 페이지에 2단으로 나눠졌던 작은 글자를 따라 읽었다. 이런 내 정성을 생각하면 자칭 '문학 소녀'는 과언이 아니었다. 제인 오스틴에 빠져 모조리 그녀 책을 다 읽고, 샬롯 브론테와 그 자매 책을 모조리 다 읽고, 다음엔 토마스만에 빠져 허우적댔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빨간 책방'에서 그 시대를 '헤르만 헷세' 이름을 빗대어 '허름한 허세'라고 칭했는데 정말 와 닿았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 시대 책을 읽고 있다는 뭔가 모를 자랑스러움이 활자를 읽는 힘에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런 내가 20년이 지나 다시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었을 소녀인 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에 빙의 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잠이 들곤 했다. 지금 아줌마인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