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다.
정약용이 과거에 합격해 정조 대왕 밑에서 일을 할 때 잠깐.
그리고 내내 주위 시기와 배반으로 귀양살이 가서 집필활동을 했던 일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정약용 형제인 약전과 약종 일이 더 자세히 그려졌다고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이란 인물과 그 주변 상황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이 책 제목이 `소설 목민심서`로 정했던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목민심서를 읽기 전에 어떤 마음을 갖고 정약용이 목민심서란 책을 썼는지 소설 형식으로 쓴 책에 더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점은 세 가지다.

첫째, 왜 조선(현대 대한민국까지) 정치는 바뀌지 않나? 언제나 기득권은 치사하고 비열하다.
둘째, 정약용은 왜 이렇게 곧은 인생을 살아서 20년간 귀양살이를 해야 했나?
셋째, 정약용이 갖게 된 이 방대한 지식 근원은 천주학이 뿌리가 된 것은 아닐까?
답답한 조선 정치
조선 장수했던 왕 영조.
강력한 왕권과 조화로운 신하 책봉을 위해 `탕평책`을 편다.
이를 이어받은 정조 또한 실력에 의해 신하를 등용하려 하지만 주위 이른바 `정치질`을 하는 사람이 득실거린다. 약한 세력인 `남인` 들이 천주학에 빠지자 이를 핑계로 그들을 박해한다.
이 안에는 정약용 가족이 포함됐다. 이로 인해 벼슬 길이 막힌 사람들은 세상을 원망하며 술판을 벌인다.
이런 어려운 와중에도 정약용은 오로지 실력을 기준으로 옳은 길을 위해 서인, 남인 같은 패와 상관없이 공부를 하는데 차별하지 않았다.
이들을 보면서 시종 답답했다. 결국 천주학을 믿었던 약종은 순교한다. 약용과 약전은 20년 가까운 시간을 귀향과 제대로 된 실력을 펼칠 길을 막힌다. 이에 실망하고 주저앉지 않고 약용은 연구를 계속하여 저술활동을 한다.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을 시기하고 앞길을 막는 일은 그때도 지금도 그렇다. 심지어 어릴 때 매우 친했던 이기경이란 자는 앞서서 정약용 앞길을 막는다. 그나마 고마운 일은 죽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인가? 결국 해배까지 막는다. 이미 자신은 배신자이니 다시 돌아오면 약용이 자신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속이 답답했다. 그럼에도 대인배 정약용은 그런 그를 이해한다.
마음의 수양도 실천이 따라야 그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무릇 인의예지란 행한 뒤에 붙은 것이니, 사람을 사랑한 뒤에야 인이라 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는 인이란 이름이 성립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깨달음 하나를 그들이 내게 주었으니 족하다 할 수밖에. p.(중) 417
귀양살이
그래도 정약용은 죽음을 자신 집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 약전은 그렇지 못했다.그는 물고기에 대한 사전 `자산어보`를 흑산도에서 집필한다. 그 후 외지인 그곳에서 죽었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 다행이었던 것일까? 정말 세태가 답답했다. 차라리 정조에게 사랑받지 않았다면 이런 혹독한 일을 당해 18년이란 세월을 보내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쉼없이 자신 재능을 썩히지 않고 집필을 했다는 사실은 정말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죄인`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타향에서 멸시를 받고 가실이라은 여인 때문에 사또에게 매까지 맞는 수모를 당한다. 이런 삶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짧은 벼슬살이 안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상황에 대해 책을 썼다는 사실. 그는 진정한 천재였다. 어이없는 사실은 이런 천재를 우습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시정잡배들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다는 게 정말 어이없었다. 역사를 보면 최소한 나는 이런 추한 행동은 하지 말자 싶었다. 잘 하는 사람은 잘 한다고 생각하고 손뼉 쳐주자.
내가 귀양이 풀려 돌아가느냐, 돌아가지 못하느냐는 참으로 큰일은 큰일이나, 죽고 사는 일에 비하면 극히 잗다란 일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물고기를 버리고 웅장을 위하는 경우도 있다만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가느냐 돌아가지 못하느냐는 잗다란 일에 잽싸게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애걸하고 산다면, 만약 나라에 외침이 있어 난리가 터졌을 때 임금을 배반하고 적군에 투항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하)(279)
천주학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은 정약용과 형제들은 분명히 `천주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약용은 `실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그 안에도 `천주학` 이론이 들어있다. 약종과 그 정약용 주위 사람이 `천주학` 때문에 무차별적으로 죽음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믿었던 종교 힘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꼈다.

검은 사제들
감독 장재현
출연 김윤석, 강동원
개봉 2015 대한민국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영화를 봤다. 이 영화 또한 아무도 믿지 않는 `악령`을 쫓는 구마 의식을 하는 신부 모습. 역사를 통해 보는 기독교와 현실에서 섞여있는 일들을 함께 보며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와 함께 `지대넓얕`에서는
파티마의 예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파티마의 예언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마이뉴스 김준희 기자] ▲ <세 번째 비밀> ⓒ2007 밝은세상 가톨릭의 역사 또는 불가사의 현상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파티마`라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파티마라는 곳은 포르투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이었다. 1917년...
출처오마이뉴스
파티마 예언에 대한 방송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종교`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종교유전학`이란 책을 선택해 읽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을 통해 나오는 정약용 사상은 왕권에 반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정약용의 18년 귀양살이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60평생을 뜻한 바대로 살아왔건만 그것도 어찌 보면 외압에 대한 차선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 탓이었다. 오래전, 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 제도 속에 뛰어들었건만 돌아보면 자신은 철저하게 그 제도에 의해 희생만 당해온 터였다.(하)(533)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 이런 대학자가 있다는 것은 영광이다. 다만 이 영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를 답보해 온 조선 현실이 답답했다. 마치 고구마를 실컷 먹은 느낌이었다. 조선 실록을 보면 항상 우수한 능력을 가진 자가 있으나 주위 질투와 시기를 일삼는 자들이 모여 상소를 올려 큰 일이 좌절되는 형상을 많이 보게 된다. 그나마 정약용은 목숨을 유지해 이런 책을 남겨 아직도 우리에게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수원성을 쌓는데 많은 도움을 준 기중기를 만들고 불시에 부패한 고을 원수들에게 찾아가 벌주는 암행어사를 하며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제 제대로 원문으로 된 목민심서를 읽으며 그가 생각하는 백성을 위한 목민으로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 더 이상 졸리고 따분한 고전이 아닌 실제로 정약용 마음을 헤아리고 현실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다산과 만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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