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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ㅣ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시집 간 딸에게 한글을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면 백성 중 누군가에게도 시험해 보고 한글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됐어요.(212)
굉장한 동화다.
너무 당연하지만 결코 잡아낼 수 없었던 주제.
바로 한글.
우리에게 한글은 당연한 문자다.
숨을 쉬듯 한글을 읽고 사는 나인데 정작 한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 했다.
전에 소설 '뿌리 깊은 나무'라는 한글을 만드는 일을 살짝 비껴간 이야기가 있었다.
이 책은 완벽히 한글을 위한 동화다.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한글을 만들기까지 왕 세종의 고뇌까지 들어가는 수작이다.
부모 복 없는 장운과 토끼 눈 할아버지와 만남으로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장운에게 먹거리뿐 아니라 신기한 글자를 알려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병으로 나날이 가세가 기울자 장운이 누나는 부잣집에 일을 해주러 떠난다.
살다 보면 참말로 힘든 고비가 한 번은 있다고 했어. 그것만 잘 견디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어머니가 그러셨다. 그 힘든 고비가 지금인가 봐. 장운아, 우리 잘 견디자.
장운은 멀리 떠난 누이와 할아버지가 알려준 문자를 통해 소식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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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은 형 오복과 약재상 손녀 난 이에게 글자를 알려준다.
난이는 글자를 익혀 자신이 익힌 약재를 기억하기 위해 쓴다.
장운은 아버지가 헸던 돌을 깎는 일을 배워 경성에 가 대웅전을 만드는 일을 돕는다.
그 사이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작품이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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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는지 찾으려 하지 마라. 너를 해코지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네 책임이다. 미움을 못 풀어 준 건 너일 테니까.(181-182)
장운은 이런 좌절에도 잘 극복한다. 자신에게 문자를 알려준 사람이 세종대왕이시란 걸 알게 된다.
밋밋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구성
이 책에 나온 인물들은 한결같이 착하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돌을 다루는 데 재능 있는 장운을 시기한 성수뿐이다.
심지어 처음 등장하는 토끼 눈 할아버지가 글자를 창제한 세종이란 사실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루하지 않다.
이는 사이사이 아주 사소하지만 겪을 수 있는 시련을 넣었기 때문이다.
아픈 아버지를 부양하는 세 남매, 할아버지의 각박한 모습에 대신 미안해하는 약재상 손녀 난이.
한글을 통해 누나의 소식을 알게 된 장운에 대한 내용은 소소하지만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이끈다.
처음 착하기만 한 평면적 인물을 배치한 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만약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이 이야기의 주된 테마인 '한글'은 쉽게 눈에 띌 수 없다.
착한 아이들이 갖고 놀았던 문자를 중심에 두기 위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를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 만들었을 때 대신들이 새 글자 쓰는 걸 반대하여 조정이 꽤 시끄러웠다고 하는구나.
그렇지만 임금님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결국 반포하셨단다.(133)
이 책 속 주인공은 한글을 알려준 세종도, 그걸 배운 장운도 아니다.
바로 내가 쓰면서 타인에게 내 감정을 알리는 바로 이 '한글'이 주인공이다.
한글을 중심으로 잔잔한 이야기를 전개한 세련된 전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세종 시대 '한글 창제'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아마도 꽤나 긴 시간 동안 이 동화책이 아이들에게 한글 기원을 알게 하기 위한 교과서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