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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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열풍이 거세다. 3년째 ‘응답하라’ 시리즈가 계속 인기다. 사실 이번 1988년 이야기는 과연 먹힐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래도 예전 시리즈에 비해 그 시절을 추억할 거리가 과연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기도 했다. 내 생각과 달리 예전보다 더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왜일까? 이에 대한 의문은 이 책 ‘스토너’와 연결되어 있다. 시간이 달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은 같다.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시간 어떤 환경에 갖다 놓아도 연결되는 고리가 있고 공감대가 있다. ‘응답하라.’를 만드는 사람들은 점점 삶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솜씨가 일취월장한다. 이 책 ‘스토너’는 그 당시 인기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 평범한 ‘스토너’란 사람의 일대기가 매우 강력한 울림으로 돌아온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시각으로 이 책을 바라보았을 때 두 가지 큰 맥락이 보였다. 이 책은 잘 쓴 책이다. 그 이유는 독자를 위한 적당한 여백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처음 소설을 쓸 때 쉽게 실수를 한다. 내가 말하려는 의도와 의견을 무식할 정도로 글 안에 다 퍼부어 넣는다. 그러면 독자는 피곤해진다. 읽으면서 자신이 생각할 틈이 없는 소설은 바탕색 모두 칠해버린 수묵화와 같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주인공 ‘스토너’라는 작명에 있다. 보통 성은 조상의 직업을 뜻한다고 한다. 에를 들어 ‘가드너’라는 성은 정원사인 조상을 뒀다는 것. 우리나라 말로 ‘스토너’를 해석하면 ‘돌쇠’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돌 같은 사람이라는 얘기. 바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잘 변하지 않는 꿋꿋한 성품이 이 성씨 안에 녹여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바위처럼’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보자. 소름 돋게 주인공과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그렇다. 제목이 주인공의 성품을 다 설명해 준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그의 성격을 이름으로 얘기해줬음에도 친절하게 여러 군데 그의 성품에 대한 힌트를 넣어준다. 주인공 아버지 또한 꿋꿋하게 어려운 농사를 지었고 농사를 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 그리고 비트겐슈타인과 많이 닮아있는 친구 매스터스의 입을 통해서다.

자네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여기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네가 세상과 싸울 거라는 얘기가 아냐. 세상이 자네를 잘근잘근 씹어서 뱉어내도 자네는 아무것도 못할 걸세. 그냥 멍하니 누워 무엇이 잘못된 건지 생각하겠지. 자네는 항상 세상에게서 실제로는 있지 않은 것, 세상이 원한 적 없는 것을 기대하니까.(46)

이 책의 줄거리는 아주 단순하다. 단조로운 성향을 가진 스토너라는 농촌에서 온 청년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다. 농업을 배우러 왔지만 슬론 교수가 가르치는 영문학 수업에 매력을 느껴 평생 영문학을 공부하고 교수로 그 대학에 헌신하다 죽는다. 좀 더 살을 얹어 보면 평생 친구인 핀치가 학장으로 있었고 자신을 괴롭히려고 반려자가 된 것 같은 부인 이디스, 알콜중독자가 된 딸 그레이스, 평생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 헌신한 학과장 로맥스, 로맥스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워커라는 학생, 평생에 유일한 소울메이트 캐서린이 그의 인생에 함께했다.

아내 이디스와 딸 그레이스

 주인공은 세 번, 인생에 큰 도전을 한다. 처음에는 농업이 아닌 영문학에 인생을 바치기로 한 것. 두 번째는 부인 이디스를 만나 결혼한 것. 세 번째는 말년에 로맥스의 계속된 불이익에 항거해 반항을 한 것이다. 이 세 개의 행동 중 그의 가장 큰 실패작은 단연코 이디스와 결혼이다.
 그녀는 정신적으로 이상했다. 그래서인지 어색한 만남 후 스토너가 급하게 청혼을 했음에도 수락을 해버린다. 이디스의 부모는 사위가 될 사람의 이름도 묻지 않은 채 서둘러 결혼 날짜를 잡는다. 결혼 후 이디스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한다. 병적으로 청소를 하는가 하면 언젠가 아이를 낳겠다며 무턱대고 임신 시도한 후 애를 낳고 책임을지지 않는다. 이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무리하게 스타일을 바꿔보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그녀의 시도는 다 헛된 것이다. 계속 행동과 말들로 스토너를 자극하지만 스토너는 그 성격 그대로 그냥 그녀를 관조할 뿐이다. 그녀의 시도를 보면서 우연히 다른 책을 보다가 이 문구가 그녀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 하는 일마다 금방 싫증을 느끼거나 지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도전이 아니라 도피이다.(어른은 겁이 많다-손씨)

어쩌면 이디스 그녀의 인생은 도피 그 자체였다. 집이 아닌 이모 집으로 도피,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유럽에 간다고 하는 계획도 도피, 그레이스를 낳은 것도 어쩌면 스토너만 마주해야하는 공간에서의 도피가 아닐까? 결국 이디스의 그런 마음은 딸 그레이스에까지 전이되어 버린다. 각자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서로의 집에 가지 않을 정도로 매정했다. 스토너의 마지막 만찬에 아내의 좌석을 빼버릴 정도였다. 마지막에 다다라 이디스도 변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하루도 혼자 힘으로 자기 몸을 돌본 적이 없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돌보는 책임을 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또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79)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384)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인정’이었다. 깨끗한 집에 대한 감사, 그레이스라는 딸을 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사소한 대화들. 그러나 스토너는 첫날 결혼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이후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절정이었다. 아내와 슬픔을 같이 나눌 시간조차 주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다. 로맥스와 화기애애한 저녁식사 후에 이디스는 유혹하듯 나체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무시하고 이불을 덮어주는 스토너. 아내가 아버지를 여의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스토너는 더욱 행복한 모습이었다. 필요 없는 존재라는 증명이라도 받은 것 같은 이디스는 다시 절망에 빠진다. 스토너가 죽기 직전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이디스는 그제야 자신의 위치를 찾고 악담과 비아냥이 아닌 순수한 감정을 표현한다.

의사 말이 온몸에 퍼졌대요. 아, 윌리, 가엾어서 어떡해.(378)

이 책에서 처음으로 이디스가 따뜻하게 스토너에게 건넨 한마디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스토너의 대답이 황당하다.

뭐. 당신은 걱정할 필요 없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니까.

 ‘네 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랑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차라리 ‘걱정해 줘서 고맙소. 이디스.’라고 얘기했다면 이 대화는 이렇게 끊어지지 않았을 거다.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스토너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까지 술에 의지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는 그녀에게 적어도 그런 생활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레이스가 술을 마식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351)
캐서린

스토너의 두 번째 사랑인 캐서린. 사실 그녀 또한 이디스와 많이 닮아있다. 내 사랑은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고 불안해하는 캐서린에게서 이디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럼에도 그녀와 좋은 관계를 꽤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 공유하는 학문이 있었고 언젠가 이 관계가 끝날 것이라는 둘 사이의 암묵적 예감이 있었다. 만약 스토너가 이디스를 버리고 캐서린을 아내로 맞이했다면 그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캐서린은 분명히 또 다른 이디스가 되어 스토너를 괴롭혔을 거다. 이디스를 히스테릭하게 한 대부분의 문제는 스토너에게 기인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캐서린을 통해 스토너는 이디스가 아닌 다른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272)
로맥스

 로맥스는 등장부터 까칠했다. 다른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갖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스토너에게는 예외였다. 스토너가 초대한 만찬에서 로맥스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얘기한다. 물론 그 다음날 자신이 그런 얘기를 꺼냈다는 생각에 자존심 상해하지만 말이다. 그는 스토너의 부인을 깍듯하게 대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그 주위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호의를 베푸는 방식이 아마도 로맥스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추측되는 부분이다. 로맥스는 자신이 아끼는 제자인 워커에게 스토너 강의를 들을 것을 추천한다. 그만큼 로맥스는 스토너를 신뢰했다. 로맥스가 워커를 아끼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책에서 로맥스가 주장했듯이 상상력이 뛰어난 제자일수도 있고 스토너와 캐서린 관계처럼 그렇고 그런 관계인지도 모르겠다. 교수인 입장에서 로맥스가 비굴하게 스토너에게 워커에 대해 관대히 생각해달라고 요청함에도 스토너는 자신의 기준으로 칼같이 워커를 잘라버리려고 한다. 결국 워커는 대학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종적은 알 수 없다. 로맥스의 연줄로 들어온 교수가 워커가 아닌 것으로 보아 결국 워커 자신의 실력의 한계가 발각되어 대학에서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굳이 스토너가 아니라도 워커는 언젠가 나갈 형편없는 실력의 사람이었다. 유연하고 사교적인 친구인 고든 핀치였다면 분명 워커에 대해 눈감아줬을 것이다.

저 친구와(로맥스) 워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궁금하군.(242)

 하지만 융통성 없는 사람인 스토너는 그렇지 못했다. 로맥스가 가졌던 스토너에 대한 애정은 증오와 분노로 바뀌어 20년 동안 스토너를 괴롭힌다. 스토너는 원칙에 의해 움직였을 뿐인데 로맥스에겐 평생 증오의 대상이 된 것이다. 로맥스는 절음발이임에도 교수일 때는 그 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상아탑이 장애인에게 주는 특혜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불구자인 워커도 이런 특혜를 누리길 바란 것은 아닌가 한다. 스토너는 학문을 기준으로 워커를 거부했지만 로맥스에겐 불구자를 모욕하는 행동으로, 곧 자신의 치부를 모욕하는 행동으로 해석했다.

아처 슬론

이 책의 시작은 아처 슬론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처 슬론이 1학년 과목을 맡지 않았다면 스토너는 아버지와 같은 농부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스토너는 기준이 확고했다. 그렇기에 그 기준에 맞지 않은 것을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학문의 불변성을 대변해 주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파도치는 사람들의 감정 앞에서는 무례해보였다. 이런 특성을 아처 슬론도 갖고 있었다. 둘은 매우 닮아있다. 그리고 스토너가 아처 슬론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들의 사상은 완전 합체되어 둘은 동일 인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아처 슬론과 마찬가지로 그도 세상을 미지의 종말로 몰고 가는 비합리적이고 어두운 힘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무익한 낭비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처 슬론과 달리 스토너는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향해 조금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눈앞의 급박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다.(311)

스토너가 아처 슬론과 달랐던 점은 ‘연민과 사랑’이다. 이 연민과 사랑을 갖게 된 근원은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자신을 괴롭혔다고 생각했던 이디스와 딸 그레이스다. 아처 슬론은 학문 안에서 홀로 연구에만 매진한 사람이었다. 스토너는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는 전쟁의 참혹함과 무익성, 두려움 등을 겪으며 아처 슬론을 이해한다. 이 부분을 통해 기성세대가 지독하게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이유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었던 평범한 영문학 교수 스토너의 인생에 대한 책이다. 좋게 말하면 학자적 기개가 넘치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게 융통성이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던 사람이었다. 태어나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스토너는 자신의 성품대로 평생을 살아나간 사람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매우 의지하는 아내 이디스를 광기로 몰고 갔고 학과장과 평생 적으로 살아야 했으며 학장인 친구 핀치를 항상 힘들게 만들었다. 그나마 이들은 돌과 같이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스토너를 조금씩 깎으며 다듬어주었다. 이디스는 미술 작품을 만들겠다고 여러 일을 펼치다가 결국 석고 만들기를 가장 오래 했다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사례일 것이다.
  이 책을 보통 ‘위대한 개츠비’와 비교한다고 한다. 순수했던 자신의 사랑을 위해 불나방처럼 불인줄 알면서 위험 속에 뛰어든 개츠비와 자신의 기준으로 꿋꿋하게 학자의 길을 걸었던 스토너는 ‘사랑’과 ‘열정’이라는 측면에서 많이 맞닿아 있다. 이 책에서 큰 사건은 없다. 그럼에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 이유는 이런 밋밋한 삶 속에서 ‘내 순수한 자아’를 유지하면서 세상에 맞서려고 하는 독자의 욕망이 스토너와 만나기 때문이다. 스토너의 삶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소신껏 의견을 말하려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평생의 짐이 되기도 한다. 무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딸에게도 어떤 도움을 줄 수 없는 무능한 부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 이게 바로 작가가 말하려던 인생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아처 슬론과 마찬가지로 그도 세상을 미지의 종말로 몰고 가는 비합리적이고 어두운 힘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무익한 낭비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처 슬론과 달리 스토너는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향해 조금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눈앞의 급박한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다.(311)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272)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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