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교과서’ 때문에 시끄럽고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국사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습득되어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이런 문제가 제기됨으로 인해 다시금 우리 역사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못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정신 승리법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일단 지금의 통치권자가 그런 안을 내놨다고 하더라도 통치자의 시계도 똑딱똑딱 가고 있으니 시간이 다시 역사를 제대로 돌려놓아 줄 것이라 예상해본다. 요즘 읽고 있었던 황인찬 시인의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도 요즘 아이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음에 대해 시를 쓰고 있다.
역사 수업

아무도 없는 교실에 수업을 하러 왔다 애들이 아직 오지 않아 큰일이다

나는 수업을 한다
잘 아시겠지요? 물어보면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아무도 하지 않은 대답이 있다 아무도 앉지 않는 책걸상도 있다

나는 출석부를 읽는다
하얗게 비어 있는 출석부다

아무도 나쁘지 않은 이름들이고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 교실이다 내가 교실을 나가면

수업이 끝나겠지 나는 교실에 있다
교실은 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종이 울리고 아무도 학교를 떠나지 않고 요새는 정말 애들이 큰일이다
역사책 읽기 시작은 가볍게 동화책인 이 책 ‘어린 임금의 눈물’로 정했다. 작은 아버지인 세조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맞이했던 불쌍한 왕 단종의 이야기다. 구름이와 시내라는 가상의 남매를 출연시켜 궁궐 상황과 단종이 유배 갔던 영월 이야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철저히 단종 시점에서 전개된다. 작은 아버지 세조는 악인으로 단종은 비극적 피해자로 전개된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입장에 완전히 도취되어 읽을 수 없었다.
‘수양숙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리다. 수양 숙부가 얼마나 선정을 베풀고 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지 똑똑히 볼 것이외다.’(114)
수양이 한 나쁜 일들을 시내를 통해 알게 된 단종은 이렇게 악담하듯 숙부를 저주한다. 참, 저 외치는 단종의 울음에 보답을 하려면 세조가 무너졌어야 하는데, 정치를 잘했단 말이다. 게다가 방원 태종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자신을 도와줬던 공신인 민비 외척들을 다 몰살시킴에 반해 세조는 공신 관리에 가정 관리까지 완벽했다. 현대 신랑감 중에는 가히 최고의 ‘벤츠남’이었다. 수양대군이었던 세조는 형식적인 후궁 한 명 외에는 ‘정희왕후’ 한 명만 처로 두고 자식도 정희왕후에게서만 나왔다. 결국 정희왕후는 후대에 ‘성종’을 세우는 혁혁한 공도 세우는 영국으로 치면 ‘엘리자베스 여왕’급 여인이었다.
이 책만으로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를 끝낼 수 없었다. 단종에게 혹독한 행동을 했던 세조만 비추는 이 책 한 권만으로 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국정화 교과서’처럼 단 한 권의 역사서만 만든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다. 단종이 세조인 수양숙부에게 옥쇄를 넘겨주고 부인과 이별할 때 감정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부인, 미안하오. 참으로 미안하오. 그대는 어찌하여 평범한 남자의 아낙이 되지 못하였소. 나는 이제 이 무거운 곤룡포를 벗어 놓으려 하오. 이 옷은 처음부터 내 옷이 아니었나 보오. 내겐 너무 무거웠소. 하지만 부인, 나는 할아버지 같은 성군이 되어 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싶었소. 저 만주 벌판까지 영토를 넓히고,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며 태평성대를 열고 싶었소이다.(100)
이쯤 되면 세조는 정말 극악무도한 사람이 된다. 나중에 단종을 위하는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목숨을 잃을 때도 그렇다.

세조는 왜 그랬을까? 이 책에서 계속 비친 ‘나쁜’ 수양대군을 제거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극악무도한 권력 투쟁 앞에서 만약 세조가 정권을 잡지 않는다면 단종 편에 있는 누군가가 세조를 무너뜨리려는 걸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닐까? 이른바 ‘밟히기 전에 밟기’작전이 아니었을까? 왜 굳이 무고한 단종을 죽였을까? 아버지 세종은 형 양녕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치국을 했던 분이다. 왜 굳이 이런 과오를 저질렀을까? 오히려 단종의 올바른 자세가 단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차라리 양녕 대군처럼 천둥벌거숭이 같았다면 이런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금성의 섣부른 반역 모의가 단종의 명을 재촉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존재 자체가 수양 자신에게 위협이 되니 결국 ‘숨 쉰다’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된 것이었을까? 수많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서 이해가 가능한 범위로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끊임없는 물음 중에도 명명백백한 사실이 있다. 단종은 결백했다. 자신이 적장자이고 조금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넋은 정말 처연하고 안쓰럽다. 이런 것이 권력이라면 너무 잔인하고도 무상하다. 단종을 위하는 일은 아마도 역사 속에서 계속 그 소년의 존재를 기억하고 생각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요, 수양숙부, 숙부는 그깟 몇 십 년 동안 임금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이 세상을 떠나겠지요. 하지만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임금으로 이 땅을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천년만년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임금이 될 것입니다.(199)
실권을 행사하는 신하들이 단종에게 노란표를 칠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모습이 흡사 현재와 닮아있다는 망상이 든다. 또 극악무도했던 수양은 지금 단종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인물이 떠오른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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