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유럽
노현지 지음 / 있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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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에 엄마 아빠를 모시는 딸 시점에서의 고군분투 여행기인 이 책 <당신들의 유럽>. 독서 토론 쓰다가 얼결에 썼던 짧은 리뷰를 제외하고 오랜만에 쓰는 리뷰다.

차분하고 정돈된 이 책은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유명한 작가분도 아니고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팁이 나와 있는 정보가 든 여행기도 아니다. 마치 동양화 같이 여백이 가득한 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이 여백을 내 삶으로 채워보기로 했다. 먼저 작가는 세 딸 중 막내에 공부를 꽤나 잘 했다고 한다. 그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셋째를 낳기로 결정한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셋째들은 모두 다 똑똑했다. 이 집안에 막내를 낳지 않으면 도대체 어쩔 뻔 했는지 집에 대들보 역할을 하는 셋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마음으로 내 셋째 딸이 내가 일흔 가까이 되었을 때 미지의 세계를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보통의 여행기처럼 유럽의 아름다운 풍광들은 없다. 지은이가 그린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가족들이 보고 감동으로 남겨 둔 그 유럽의 풍광들을 그림에 의지해 내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야 했다. 처음 읽을 때는 이런 책 형식이 낯설어 한참 당황했더랬다. 다 읽고 나니 조금 알 것 같다. 모든 마음을 다 내놓기에 부끄러워하는 모습, 그렇지만 용기 내어 조금씩 상황과 마음과 공감을 독자에게 구하는 창장자의 의도.

이 책은 평양냉면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너무나 극에서 극을 오가는 단짠 같은 과격한 이야기에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끝내고 맛(미각)이 없다며 툴툴댔던 평양냉면을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하듯, 빈 칸이 가득하고, 지극히 평화로운 평범할 수도 있는 이 여행기가 다시금 생각이 나서 이따금 펼쳐보게 된다.

세상 소음에 머리가 답답할 때, 부모님이 그리워질 때 가끔 이 책을 펴 보는 건 어떨지 싶다.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 대한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뇌리에 남는다. 지금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대다. 그래서 MZ는 그 완벽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어필할지 궁리하고 고심한다. 반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야말로 여백 가득한 세상에 떨어진 세대다. 전쟁과 빈곤으로 폐허 같던 우리나라를 맨 손으로 채워 넣었다. 그만큼 할 일이 많았고 그만큼 보상도 컸다. 그래서 남은 건? 역시 마음 속 큰 공허가 남는다.

부모님들의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해 막내딸 가족이 계획한 유럽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아마도 그들의 유럽은 이렇게 사진만큼 명확하지 않고 많은 내용들이 조심스럽게 덥여 있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그렇기에 너무도 아름다웠던 여행의 책 한권을 만났다. 잘 읽었고 잘 넣어놓고 또 내 셋째딸이 이 책을 읽을 그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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