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중에도 식민지 사람들이 사용하는 엉터리 영어에 신사적으로 귀를 기울인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나 싱가포르나 이집트 사람들 가운데 자신을 영국인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똑같이 ‘제국 이라고 불리지만, 이것이 로마와 영국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 P41

다만 전에는 이혼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배다른 자식이 많았고, 사촌끼리 결혼하는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이혼과 재혼은 역사가 타키투스가 신랄하게 비난한 통치계급의 타락한 윤리를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얄궂게도 그것이 근친 결혼을 방지한 셈이다. 그런데 2세기에는 우선 이혼이 줄어든다. 줄어든다기보다 없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오현제 가운데 이혼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부일처가 보통이 되었다. 타키투스가 알았다면 눈물을흘리면서 윤리가 향상된 것을 기뻐했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근친 결혼을 증가시키게 된다.  - P57

다. 사냥을 하고 돌아오면 달리 할 일이 없다. 가난한데다 문명도도 낮으니까, 집에 방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단칸방에서 뭐든지다 한다. 섹스까지 한다. 할 일도 별로 없고 어릴 적부터 그런 광경을늘상 보아서 익숙해져 있다면, 다산은 당연한 귀결이다. 자식을낳아서 키울 수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이미 야만인이 아니다.  - P171

카이사르가 기원전 1세기가 아니라 서기 2세기에 살았다면 게르마니아 전쟁의 양상과 결과도 달라졌을까. 나중에 몽테스키외는 카이사르를 가리켜, 어떤 군대를 이끌고도 승자가 되었을 테고, 어떤 나라에태어났어도 지도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다. 카이사르가 지휘했다면저기 2세기 후반의 로마군도 게르만인을 압도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아무리 카이사르라 해도 도나우 전선의 정황은 바꿀 수 없었을까?
- P205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르쿠스가 심취해 있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대답해줄지 모르지만, 인간이란 생물은숭고한 동기로 행동할 수도 있고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인간 사회의 현실까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 P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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