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독자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으면 나도 없다. 마치 내 가족이 없으면 나도 없는 것처럼.” 가기 전에 쓰는 글(난다, 허수경 지음)

  책은 읽기 위해 존재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없다면 책 또한 존재 이유가 없다. 그래서일까. 독자 한 마디에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건 그냥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 움직이는 화면을 보기 좋아한다. 그럼에도 내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주는 느림에 있다. 책이 나와 관련 없는 다른 사례를, 다른 내용에 대한 느낌을 얘기해도 나는 작가와 다른 세상을 만날 자유가 있고 그 시간이 있다.


올 한 해, 유난히 이 세상에 없는 작가가 남긴 이야기에 손이 갔다. 아마 살아있다면 어머, 이 원고는 출판하기 그래.’라고 말 할 수도 있는 짧은 글들. 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고 이야기가 이어져 나가는 책은 아닌. 그래도 나는 그 책이 좋았다. 이 죽은 이들이 남긴 폼 잡고 쓰지 않은, 편안한 소파나 침대에서 남겼을만한 이야기가 내 숨어있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결국엔 에취하며 튀어나온 그 과거 이야기

 

오늘을 만든 내 가족. 안타깝게도 나는 가족에게 암적인 존재였다. 항상 집에서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건 내 몫이었다. 나라는 암이 떨어지니 엄마 몸에서는 진짜 암이 자라기 시작했다. 탯줄을 끊었어도 그렇게 서로는 연결되어있었나 보다. 나는 정작 그리 착한 자녀가 아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와 떨어지려 노력하고 엄마는 항상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사명인 듯 여기는 듯 하다.

딱 한 번 만난 사내 한 명이 있었다. 20016월 내 청춘이 한창일 때였다. 새내기로 처음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때 조금만 더 신촌에 머물라는 아는 언니 전화가 있었다. 가기 싫었지만 가야 했나보다. 30분 있었다. 그 남자와 마지막은 이랬다. 마지막으로 버스에 타며 신경질적으로 밀을 내뱉었다. 말투는 침 뱉듯 불손했다.

어머니랑 화해해요. 누가 그렇게 부모랑 1년 넘게 연을 끊고 살아!”

술과 땀 냄새로 범벅된 버스 좌석을 지나 제일 뒤에 앉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정작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아직 안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네가 이 별을 떠날 때(문학동네, 한창훈 지음)

 

나는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사실 관심이 없으려 노력했다는 게 맞다. 78-1번 버스를 타러 연대 앞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 그는 자신 에 대해 얘기했다. 자신은 멋진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자신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고. 안 그러면 죽을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자신이 죽어버릴 거라고 했단다. 뭔가 너무 무겁고 거창해서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당시 일주일에 몇 명의 오빠를 만나는지, 남자인 친구를 만나는지 가늠도 안 되는 시기였다. 성과 이름, 학교를 내 마음대로 머릿속에 집어넣고 살았다. 그러니 대학 공부도 잘 할 리 없었다. 이게 청춘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은 호주머니에 살짝 집어넣고 있을 때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버스 정류장에 뛰듯 걸었다. 나름 높은 굽을 신었던가. 그 마음 때문인지 아스팔트에 굽이 껴 엉거주춤 넘어질 뻔 했다. 진 틈 없이 예의바른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스쳤다. 창공에 산화하는 빨간 불덩이였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나도 반대다. 어머니 말을 들어라. 나는 다시는 당신을 볼 일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쾌할 말을 하고 그렇게 78-1 버스를 탔다. 그가 나에 대해 욕해도 그만이었다. 자리를 만든 언니에게도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언니가 그랬다. 자리만 채워달라고. 근데 이게 뭐람. 그 남자는 정중했고 친절했지만 제발 나를 싫어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짧은 시간 그를 만났다. 그는 지나치게 반듯했다. 주변 동기들은 그를 섬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더욱 더 싫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걸리면 걸린다는 걸리버 폰 속 딸각거리는 공중전화 속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는 밝은 소리로 엄마와 화해했노라 전해왔다. 나는 그 상황이 나와 상관이 없노라 말했다. 갑자기 차갑게 변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주 무례했고 못됐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고 인연이 아닌 사람은 그렇게 끊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곧 나는 내 남편 될 남자를 만날 터였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아니 다시 인식하게 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그의 이름은 박인철이었다. 싸이월드를 일기장을 다시 훑어보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2003년인가, 박인철이라는 사람이 문자 이모티콘을 가득 사용한 보고 싶다는 글을 올렸었다. 연결된 그 곳으로 가니 역시나 그는 더 이상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늘을 날아야 할 그가 바다 속으로 돌진했다. 그는 그렇게 이 별을 떠났다.


시간 속에 깊이 숨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낸 건 한 소설을 통해서다. 어린왕자만으로 그가 소환되지 않았다. 아주 강렬하게 단 한 번 만난 그 사람을 불러온 건 이 책이다. 아무래도 다른 별에서 온 어린왕자와 바다와 인연이 깊은 작가가 같이 만든 시너지가 아닐까. 그는 하늘을 향해 날았지만 그가 잠든 곳은 바다니까. ‘마농 레스꼬춘희라는 명작을 만들어 준 것처럼 어린 왕자네가 이 별을 떠날 때라는 내 인생 책을 만들어주었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대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여행의 이유(문학동네, 김영하 지음)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 내가 읊조렸던 그는 이 별을 떠났다. 기나긴 여행을 떠났다. 마치 어린왕자를 썼던 그 작가처럼. 그러고는 오랜 기간 간헐적으로 그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주 잠깐 그와 닿았던 순간 스쳤던 강한 별똥별 같은 섬광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가 간 곳이 원래 있어야 할 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말 지구라는 별에 여행을 온 게 아닐까.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이 나를 통과한다. 아무리 한 자리에 그대로 있는 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만든 여행을 피할 사람은 지구상에 어느 누구도 없다. 나는 아직도 이 고단한 여행을 하고 있지만 단 한 번 만났던 그 사내는 내 뇌리에서 그대로 고정되어 있다. 나는 과연 그가 겪을 현실을 그대로 재현했던 것일까? 만약 내가 그에게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줬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인연을 만들었다면 그는 지금 다른 현실을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창작을 하는 입장에서 아픔은 이상한 기제다. 심하면 심할수록 뭘 낳아도 낳는다. 그래서 창작의 고통을 흔히 산고에 비유하는 걸까.참 괜찮은 눈이 온다.(교유서가, 한지혜 지음)

 

에이, 괜히 읽었다. 내 뇌 깊은 곳에 곱게 들어가 나오지 말아야 할 기억이 빼꼼 나와 버렸다. 정말 책 읽기는 내 뇌를 날카롭게 깎아내는 과정이다. 어쩌면 일부러 아프기 위해 나를 괴롭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 없는 영상을 보면 마취한 것 같이 현실을 피할 수 있건만 책은 그 반대다. 책은 날카롭게 현실을 알려주고 자각시키고 과거를 소환시킨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아픔을 꺼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에도 나는 왜 계속 책을 읽을까? 그건 바로 아픔 후에 오는 희망 때문이다. 문제를 알게 되면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상으로 마비된 정신은 계속 고통을 연장시킬 뿐이다. 고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때 우리는 답을 찾고 내놓고 풀 수 있는 힘도 생긴다. 그래서 영화, 유튜브, 방송, 팟캐스트 등 시간을 보낼 선택지가 많은 오늘과 같은 날에도 악착같이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지금 영국에 있다. 길고 긴 여행 끝에 서 있다. 이방인에서 현실을 살아 나가야 하는 주인으로 돌아갈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섬에서 짧은 삶이 끝나가서 일까, 끝나는 것들에 마음이 간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여행이 끝나면 다시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됨을.

 

영국에서 1년을 지난 만 그것은 바로 희망을 위한 한 단계임을. 2019년이 간다. 2019년 이방인 생활을 버티는 데 온 힘을 다 쓰느라 내 글쓰기를 멈췄다. 책과 생활로 아픔을 가득 삼켰으니 이제는 뱉을 시간 2020. 그 날을 조용히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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