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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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겪는 분 고통에 어디 비할 수 있을까. 공감만으로도 힘들어 새어나오듯 실언을 하고 말았다. 되돌릴 수 없기에 한 힘든 결정인 걸 다 알면서도 그렇게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건 어린 나로서는 감당하기 너무 버거워서다.

 

 

이 책,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또한 헤어질 수밖에 없던 연인이 남은 잔여감, 그 애증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남성은 자기표현이 서툰 사람이다. 옛 연인을 구타한다. 그것이 그들이 헤어진 가장 중요한 이유일거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다. 왜 결국은 구타로 아름다운 사랑을 파괴시키는가.

 

 

작가는 남성이다. 그렇지만 책 속에서 중립적 입장으로 남녀 사이를 잘 설명했다고 본다. 보통 강한 자는 약한 자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약한 자는 알아서 권력이 있는 자에 눈치를 보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눈치채지 못했던 연인 간에 삐걱거림을 독자 입장에서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남성인 화자는 여성인 옛 연인을 그저 애정이 식은 관계로만 이해했지만 약자인 유디트는 달랐다. 이 둘 간 관계에 대해 남성인 화자 시점으로 이야기하지만 독자는 연인 감정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남성이기에, 경제적으로 우월하기에 쉽게 얻은 새 연인 클레어에 대해서도 오로지 화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나 굳이 객관적 눈빛을 주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는 능청스러운 작가 역량이 돋보인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감수성이 둘 다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자신이 잘 설명할 수 있는 남성 입장에서 무심히 설명해 나가는 방식은 정말 똑똑하다라고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가히 노벨상감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비단 연인 사이에 있었던 단편적인 감상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어떤 상황에 대해 서사를 진행하며 짧은 설명을 길게 늘어서 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거나 어떤 이가 정치적 견해를 얘기할 때 굳이 딱 집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에 빗대어 비유로 상황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굳이집어넣는다. 끊임없이 나오는 주인공이 떠나온 나라와 그에 대한 그림움을 표현하는 상징인 노란 리본. 전 연인인 유디트와 쿨하고 포용력 있지만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뭔가 부족한 지금 연인인 클레어는 마치 나치 사상에 물든 버린 조국 오스트리아와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지금 살고 있는 미국과 많이 닮아있다. 미국을 여행하고 있으나 마음은 항상 오스트리아에 가 있다. 클레어와 함께 자고 마시고 아이를 양육하며 지내지만 주인공 마음은 항상 옛 연인 유디트에 가 있다. 그녀가 보낸 편지가 클레어와 함께 하는 연인네 집보다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이 책도 현실도 이별을 직시해야만 한다. 끝난 인연은 다시 이을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잊었지만 그 당시 우리는 최선을 다했었다. 그 당시 부족한 인성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그 시절 우리가 그런 선택을 한 건 그 때 내가 살기 위해 네가 살기 위해 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걸 인정하자. 짧지만 간결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임을. 작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썼을지도 모를 이 책 한 권이 내가 했던 말이 실 없는 한 마디였음을 조근 조근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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