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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6월 맨체스터 한 달 내내 비가 내렸다. 작년에는 날씨가 좋았다고 한다. 나는 계속 찌푸린 날씨에 내 기분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여기 사는 영국인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That is usual.”

알고 보니 작년 영국은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이었다고 한다. 나는 힘들었지만 영국인들이 이 날씨를 싫어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7월이 다가오니 날씨가 좋아졌다. 광합성을 하러 근처 공원에 나들이 나갔다.

 

2.

 

 

영국에서 1년을 살아도 나는 영국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담하게도 24시간을 통해 그 옛날 로마인을 이해하겠다는 책을 그 즈음 읽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풀잎관 파트를 끝내고 좀 더 가벼운 로마를 만나기 위한 살짝의 외도라고나 할까. 스물네 시간 스물네가지 직업을 가진 로마인 생활을 엿보며 로마와 친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내용의 책이었다. 내가 놀러 간 곳은 tatoon park. 옛날 테이턴이란 영주가 지냈던 아주 큰 영지였다. 이곳 안에서만 살아도 평생을 살 수 있다. 정원 앞에서는 각종 채소가 나고 농장에서는 각종 고기와 우유, 그리고 계란이 제공된다. 이 안에서 먹고 사는 게 가능한 삶. 이제 그렇게 살기엔 세상이 너무 좁아졌다. 목장도, 농장도 아주 크고 멀리 많이 생산해 한꺼번에 우리에게 제공된다.

 

3.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첨예한 이야기도 같이 읽었다. 책 이름은 <제르미날>. 작가는 에밀 졸라. 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에서 살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그래서 에밀 졸라는 이탈리아계 프랑스인이고 프랑스 문학에 거장이 되었다. 피보다 진한 건 어쩌면 언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제르미날은 그 당시 에너지원이었던 탄광 회사들이 행한 착취와 그에 대한 항쟁에 대한 이야기다.

 

4.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김훈 작가님이 쓴 수필 한 편과 신문에 기고한 글 한 편을 읽고 난 후였다. 배달이라는 서비스를 행하며 겪는 위험과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용주 이야기. 그리고 노동자,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숭고함과 보호를 글로 설파하는 그가 가진 열정이 이 책과 같이 연결된 것 같다. 마치 가스 사고로 억울하게 죽었던 에밀졸라가 두 번째 삶을 한국에서 시작한 느낌이었다. 장점만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지. 두 작가 두 분 다 안타깝게도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에밀 졸라의 글과 행동을 존경하고 김훈 작가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는 듯한 그 문체가 좋다.

 

5.

 

<제르미날> 주인공 에티엔은 외지인이다. 나처럼. 그는 탄광에 취직해 일하면서 경영진이 주식으로 자신 배를 불리고 정작 깊은 굴속에 들어가 검은 돈을 캐는 노동자 임금을 깎으려는 걸 알게 된다. 에티엔은 동료들 지지를 기반으로 정당한 임금을 받기 위한 파업을 시작한다. 결국 결말은 정말..참혹해서 책 속에 있다가 현실을 보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지. 우리가 정당한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 건 언젠가 그들이 목숨을 걸로 항의했던 그 용기 때문이란 걸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세상 속에 파묻히면 내가 어디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쉽게 잊어버린다. 그냥 익숙한 대로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노예처럼 그렇게 산다.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고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그냥 숨 쉬고 살아간다면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냥 말 하는 짐승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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