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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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는 내게 가히 충격이었다. 사소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진자와 떨림은 현실에서도 그 책 속 문구 잔상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책 이후 나온 이 책 <내게 무해한 사람>. 바쁜 와중에 이 책이 출간됐다. 그 바쁜 와중에도 구입은 했으나 쉽게 펼칠 수 없었다. 예전 최은영 작가가 준 오랜 기간 간질거림이 내 삶을 지배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번에 단편을 읽자는 대회가 아니었다면 난 한참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읽는 힘에 휩쓸려 이 책을 읽었다. 용기를 냈다.


<모래로 지은 집>은 내 20대를 돌아보게 하는 단편이다. 작가와 나는 두 살 차이가 난다. 그러니 내 대학 1학년 생활이 그녀의 고등학교 생활 때와 같다. 작가와 과거 추억을 같이 겹치는 건 재밌는 일이다. 모래, 화자(선미), 공무는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이다. 이들은 20대 초반을 함께 공유한다. 여자 둘에 남자 한 명. 이들은 서로 우정과 사랑 사이를 줄타기 하며 서로 상처를 주고 때로는 위로하고 이해해주며 그렇게 지낸다. 딱히 큰일도, 그렇다고 딱 이야기할만한 서로에 대한 섭섭한 점도 없건만 이들은 서로 연락이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엔 끊긴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고 10년이란 세월을 지내온다.


결국 그들은 관계는 모래와 같이 부질없는 것이었을까? 추억이란 것은 다 쓸모없는 것일까? 이야기를 과거를 향하지만 이 이야기를 글로 새기로 있는 건 현재의 나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됐을 이야기들. 이들은 사진을 찍지만 같이 찍지 않는다. 누군가가 혼자 있고 혹은 같이 있으나 바쁜 그런 무의식 순간들만을 찍는다.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이들은 같이 였다. 결국 다시 혼자가 됐지만 말이다.


모래는 딱히 모자랄게 없는 아이다. 부유한 집에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그런 여자 아이. 참으로 신기한 건 이 셋 중에 가장 힘들고 방황하는 아이는 모래였다. 항상 어느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외롭지 않기 위해 굳이 자신이 가진 마음을 숨기고 외부 상황을 꾸몄다. 마음 속 진실과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달랐기에 모래는 항상 불행했다. 이 모습을 이해하고 동정하기까지 화자는 참으로 긴 세월을 지내야 했다. 그런 모래를 이해할 수 있을 때쯤 그게 모래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항상 우린 누군가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그 사람이 내 진심을 알아챘을 때, 무서울 정도로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이 들기도 한다. 참 어쩌라고.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몰랐으면 하는 마음. 이게 작가가 갖고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 이렇게 살면 얼마나 사는 게 힘들까 라는 생각도 해 봤다.


그런 아이에게 소설은 안식처일 것 같다. 나를 보여주면서 굳이 ‘나’라는 걸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공간. 숨 쉬고 살 수 있는 ‘물’같은 공간이 이 소설 속이 아니었을까. ‘물고기자리’ 운명을 타고난 작가에게 글은 자신을 살리는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나는 그 시절 인터넷을 통해 멋도 모르고 많은 ‘오빠’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나랑 계속 잘 살고 있다. 모래가 굳어져 시멘트 바닥이 되었는지 그 위에 집 짓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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