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의 함정 - 자극적일수록 더 공허해진다
따웨이 지음, 이지연 옮김 / 지니의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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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의 함정 - 따웨이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는 독서량이 조금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 들어 고민이 생겼다.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고 숏폼 콘텐츠를 끊임없이 넘겨보는 나 자신을 알고 있기에 그렇다. 숏폼이 아니면 유튜브 콘텐츠를 의미없이 돌아다니며 빅데이터가 내게 떠먹여 주는 알고리즘대로 부유하며 다녔다. 40대에 접어들며 현저히 떨어진 집중력에 자괴감이 들던 차에 <도파민의 함정>을 접하게 되었다. 특히나 회사로 인한 피로감이 더 할 때마다 손에서 유튜브를 놓지 않았다. 책에서는 그 점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라고 말한다.

책은 우리의 집중력 저하가 단순한 의지력 부족이 아닌, 뇌의 보상 체계가 마비된 도파민 감쇄와 심리적 편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해진 뇌는 금세 <헤도닉 적응>을 일으켜 더 강한 자극만 찾게 만든다.

특히 주식 시장에서 이익보다 손실의 고통을 크게 느껴 이성적 판단을 그르치는 손익본능(손실 회피 심리)이나, 내 기억이 무조건 맞다고 믿었지만 알고 보면 왜곡된 집단적 기억 오류인 <만델라 효과>처럼, 우리는 늘 이성적으로 행동 한다고 착각할 뿐 무의식과 심리적 오작동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40대가 되어 겪는 건망증과 판단력 저하 역시 이처럼 편향된 마음의 습관이 누적된 결과일지 모른다.

화면 속으로 도망치는 악순환을 끊고 현실의 소소한 감각에 집중할 때 뇌의 회복탄력성을 기대할 수 있다. 거대한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는 작은 선택이지만 물론 쉽지는 않다. 이제 스마트폰은 나의 재미이며 일터이며 도파민의 보고이니까 말이다. 조금 더 습관적으로 보는 컨텐츠의 삶을 화초를 돌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는 제3의 자극으로 서서히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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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읽는 관전의 기술
김양희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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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읽는 관전의 기술 - 김양희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야구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의문이 하나 있다. 야구팬들은 왜 경기에 져도 화가 나고 이겨도 화가 나는가가 그렇다. 나는 특별히 연고의 팬은 아니지만 최근 치어리딩을 통해 야구장의 분위기를 읽다 보니 반대로 직관을 해보고 싶어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평생 직관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고, 지금처럼 자리가 굉장히 계급으로 나뉘기 전에 다녀와봤다. 가본 곳은 잠실구장이 유일하기도 하고 말이다.

나처럼 야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대체 왜 경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작가는 야구를 데이터의 스포츠라고도 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스포츠라고도 했다. 나의 경우에는 굉장히 많은 숫자가 표기되는 스포츠라고 느껴진다. 타자는 타율(AVG)과 출루율(OBP) 장타율(SLG)을 기본값으로 한다. OPS (OBP+SLG): 출루율 + 장타율을 더한 값으로 800 이상이면 중심 타자급, 900 이상이면 리그 최정상급 타자라고 할 수 있다. 투수는 평균자책점 (ERA / 3.50): 투수가 9이닝(한 경기) 동안 내주는 평균 자책점(실점)이 있다. 숫자가 낮을수록 뛰어난 투수이며, 3.00 이하(3점대 이하)면 훌륭한 선발 투수라고 본다. 그리고 초구라는 것은 투수가 던지는 처음 15개의 공을 말한다. 이를 통해 투수와 타자의 살벌한 기싸움이 벌어진다. 초구를 즐겨 치는 타자들을 흔히 ‘배드 볼 히터(Bad Ball Hitter)’ 혹은 ‘공격적인 타자’라고 한다.

이외에도 선수들끼리 몸싸움을 하는 <벤치클리어링>에 대해 다뤄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몸싸움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것도 고도의 심리전이며, 구장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상대팀에는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우리 팀에게는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약속이란다. 그리고 도발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은 더 많은 사람들이 말리는 역할을 한다고 하니 야구는 또 이런 보는 재미가 있는 스포츠란 생각이 든다.

또한 야외에서 하는 스포츠다 보니 비 때문에 취소되는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비가 와서 심판진이 최소 30분 이상 대기 후 더 이상 경기 진행이 안된다고 하면 노게임이 적용된다. 이때에도 5회 미만 진행될 경우에 한해서다. 하지만 노게임이 아니라 홈팀이 5회 초 끝난 상태에서 앞서고 있으면 5회 말까지 다 하지 않아도 정식 경기로 <강우 콜드게임>승리가 되기도 한다. 형편에 따라 경기를 폭우를 바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또 매력으로 다가온 야구였다. 야구에 대해 꽤 궁금증이 많았는데, 자세한 설명으로 호기심을 많이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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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 사회적 기업가에서 버스기사로 다시 삶을 운전하기까지
강희정 지음 / 브로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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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 - 강희정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최근 장사를 하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택시기사로 전향한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여성 기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번에 만난 <안녕하세요, 제법 버스기사 같나요?>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다가 시내버스 기사로 전향한 여성 기사의 이야기였다. 같은 운전직이라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작가가 사랑을 모토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된 계기와 운전 중의 에피소드가 교차로 나온다. 내가 종종 타고 서울 나가는 버스에 굉장히 인사를 철저하게 해주는 기사님이 계신다. 거의 타고 다니는 버스는 그거 하난데, 손님인 내가 인사를 같이해야지 마음만 먹어지고 입밖으로 잘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겨우 각성하고 내릴 때 <감사합니다>를 외치곤 한다. 인사를 해야 힘이난다는 강기사님. 우리 동네에도 그런 마인드의 기사님이 계셔서 다행이다 싶다. 나도 같이 힘이 나도록 열심히 인사해드려야지.

그리고 그분도 꼭 주의 시키시는 게 <손잡이 잡으세요>인데, 그만큼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승객도 조심해야겠다고 느꼈다. 일단 다치면 누구손해입니까 다친 사람의 손해입니다. 아직도 새벽 첫탕(첫차 운행)이 힘들 때가 있는데, 늘 같은 시간 같은 정류장에서 만나는 손님이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시간으로 쌓이는 정이 있는 것 같다.

지인들과 사랑을 모토로 사회적 기업과 카페까지 함께 했지만 서로 노동부 공방까지 가버리게 되어서 굉장히 인간에 대한 불신까지 생겨버린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게 사귄 친구는 또 몸이 아니라 다른 곳이 아파지는 경우도 생기고. 아득한 마음을 기댈곳이 없는데, 가족들이 더 등을 떠미는 것 같은 느낌에서 버스 운전직을 만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인연들이 강기사를 일으켜 세워주는 느낌이다. 나 역시 최근 심적으로 무너지고 있어서 마음이 닫히려는 찰나 그래도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든다. 난 물론 적시에 도와줄 사람을 위해 동전지갑에 500원을 챙겨다니는 이타적인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아직 따뜻한 사람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녹아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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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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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조영훈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일주일 째 속이 시끄러웠다. 사람에게 버림을 당했고, 관계도 무너졌다. 몸도 좋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병원을 찾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라는 의견으로 긴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 읽은 <지랄 맞을 용기>를 읽고 그래 이렇게 위인들도 억까를 당하는데 나도 좀 힘을 내서 버텨보자 하고 생각하고 단숨에 읽었다.

먼저 고등학교에서 기온학파라고 배웠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로 시작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앞에서도 “내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 주시오”라고 초연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서슬퍼런 권력자 앞에 조아리지 않아서 직접 찾아온 사람에게 말이다. 그러나 그가 들어준다는 사탕발림보다 난 나대로 키온(그리스어로 개)처럼 살겠다는 게 호쾌했다. 물론 사상과 생활까지 그렇게 하긴 힘들겠지만.

위대한 물리학자이자 천재로 다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도 독일의 고등학교에서 낙인찍인 학생인 줄은 몰랐다. 부모님의 기대처럼 독일의 명문을 다닐 것이냐, 아닐 것이냐를 택한 그의 배짱도 두둑했다. 새장에 가둬놓은 아인슈타인으로 인해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하면 아찔하다.

과학자로서의 본인의 업적과 사생활을 동일시 하지 말라고 선을 그은 <마리 퀴리>에 대한 내용은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개인적 사생활도 굉장히 공적으로 퍼지는 시대라 도적적결함에 대한 잣대가 그 어떤 시대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피에르 퀴리가 주고 나서 유부남 물리학자인 폴 랑주뱅과의 관계가 스캔들로 퍼졌다. 폴란드 태생인 그녀에게 프랑스에서 외국인 혐오까지 일어나 여러 언론에서 그녀를 물어뜯었다고 한다. 그래서 1911년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로 초청되고도 분위기가 이러니 오지 말라는 언질 까지 들었다고 했다. 내가 그녀였다면 나의 일과 사생활을 분리하라고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렇게 하기까지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것과 아닌 것은 무엇일까.

책에는 이외에도 굉장한 위인들이 많이 나온다. 역사상 가장 큰 로열티 계약을 포기한 대가로 교류를 쓰게 해준 테슬라. 반전에 대한 소신으로 징집거부한 알리.

자신이 생각한 소신이 있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한다고 해도 뜻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지랄 맞은 용기를 나도 좀 더 가지고 싶어졌다. 지금은 시련이 있어도 내가 하고 싶은 뜻을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선 좀 더 단단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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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배우는 인문학 수업 - 동화로 풀어내는 하브루타 질문법
김금선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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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로 배우는 인문학 수업 - 김금선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스토리로 배우는 인문학 수업>은 철저하게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을 통해 하브루타 질문법으로 생각의 깊이를 달성한다.

나 역시 최근까지도 동화책 그림책 등을 다양하게 찾아서 읽고 있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더라도 이건 왜그랬을까 싶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선녀와 나무꾼이 이 방법에 딱 맞는 대상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먼저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나무꾼의 선의로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주는 것이다. 당장 선의를 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한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그 사슴은 보답으로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하는 곳과 선녀를 데려가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일단 자신의 선의로 굉장한 행운을 받아서 좋았을 나무꾼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냥 옆 마을 처녀와 이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심성을 곱게 써서 무려 천사와 이어진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꽤나 치사하다.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녀도 개인적으로 위기를 헤쳐나가지 않고 나무꾼을 따라나서는 것도 좀 소극적 태도긴 하다. 여기에 생각치 못했던 것이 시어머니 (나무꾼의 어머니) 부분인데, 나무를 하러 간애가 어떤 여자를 데려왔으면 인과관계를 듣고 제대로 조언했었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냥 자기를 봉양하면 되는 새로운 노동력으로 생각한 것인가. 아들이 그저 맺어진 것이 좋은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집도 절도 없는 선녀를 가엾게 여긴다면 아들을 타일러 돌려보내게 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억지로 같이 살게 된 인연이었으니까 애들 둘을 낳던 말던 날개옷을 주었을 때 바로 날아가 버린 것이 아니냔 말이다. 이미 처음부터 거짓된 모래성에 쌓여진 인신매매나 다름 없는 관계니까 말이다. 다시 두 번째 찬스로 하늘에 올라가 재회했을 때, 다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징징댔을 때도 선녀는 보살같이 천마를 내려준다. 그것조차 날려버린 것은 나무꾼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보고 싶긴 해도 천마 위에서 팥죽을 먹은건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던 방증이라고 느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뒤집어진다. 나는 이 결말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다시 곰곰히 읽으며 자신의 업보를 그대로 받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는 선녀도 두 아이도 만나지 못한 채 그저 그리움에 떨게 되는 것이 억지로 한 사람을 붙잡은 필연적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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