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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없는 삶 - 나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스티안 베르브너 지음, 이승희 옮김 / 판미동 / 2021년 5월
평점 :

사소한 만남에서 출발하는 : 혐오없는 삶 - 바스티안 베르브너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저자는 독일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주간지의 편집장이며 독일 전국에서 8,000명 이상이 모여 함께 대화하며 각자의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독일이 말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이다. 책의 표지를 접하면서, 아마도 유럽에서 대두된 난민문제와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루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오래전 EU국가에 거주하면서 인종차별이라면 지긋지긋하게 당했던 기억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인도주의적 잦은 만남과 경험의 리뉴얼이라는 태도에서는 조금 냉소적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시아에서 온 젊은 여자) 느꼈던 유럽에서의 삶은 지긋지긋한 캣콜링과 폭력의 피해를 입지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잘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가끔씩 개구리를 장난삼아 돌로 맞추는 사람들로 인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있으면 더 다른 인종들에게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국내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다시 외국인들에 대한 분리적 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고백하겠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곳이다 보니,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또 자라보고 놀란가슴처럼 조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다문화 가정에 치우친 역차별 정책들 때문에 예민해 한 것도 사실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혐오없는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일반인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보라고 한다. 첫 장에서 피랍된 자국민들 사이에서도 생기는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는 벽, 그리고 앞서 말했던 난민들을 직접 만났을 때와 만나기 전에 가졌던 편견을 허무는 것 등을 읽으며, 단지 접촉을 하는 것만이 경험에 대한 편견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고 나자신에게 되물었다. 나의 경우는 이미 선행 경험 때문에 쉽지는 않을 듯 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경험했던 개별 경험이 <나쁜 경험>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너무 염세적인가? 하지만 사람사이에 이어지는 경험이라는 것은 한번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것을 바로잡을 만큼의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작가의 요지는 더 많이 접촉하고 더 가까이 있을수록 편견은 줄어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대명제의 베이스는 성선설이 아닐까 싶다. 올바름의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고집스럽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접촉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속하고자 하는 시도는 좋게 본다. 하지만 결과는 예측과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민주주의의 일환으로 제비뽑기가 진행되는 내용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한 꺼리가 많이 있었다. 아마 나에게 ‘국가를 대표할 시민의회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할 생각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정치를 국민에게 맡기고, 중요한 주제를 사람들이 함께 결정하도록 한다 라는 시도가 신선하면서도 반면에 표본 집단의 오류는 없을지 걱정이 되었다. 임의로 시민 100명을 뽑아서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것. 100명은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 고소득자와 저소득자, 도시거주자와 시골거주자에서 골고루 뽑는다. 이들이 토론하면서 협의주제가 제련되어 나라의 대표의견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예견하고 만든 제도가 되겠다. 너무나도 신선한 표본 통계적 직접 민주주의라 깜짝 놀랐다. 책의 사례에서는 소아성애자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게이인 의회구성원을 이해하고, 동성애와 소아성애를 구분하고, 동성애자를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다양한 사회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신뢰를 갖고 만나게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 앞선 정치스타일이라고 할까. 이런 방법이 시사하는 바는 다른 계층을 서로 이해하고, 이 경험을 통해 공감을 하고, 전체 사회의 증오에 대항하는 백신을 맞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보주의의 성향을 띄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진보라는 색깔 한두 방울만 탄 사람이 아닐까 정도로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있고, 젠더리스에도, 환경에도 다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이다지도 보수적인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혐오없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마인드와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하는데 순백의 도화지가 아니다보니 이미 너무 많은 경험의 필터가 생겨버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교정할 시력처럼 조금 더 생각의 굴절을 바꿀 필터를 끼우면 혐오없는 삶을 살아가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 더 일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