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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 (반양장) ㅣ 신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말로 이름을 쓰면 ‘베’자가 3번, ‘르’자가 3번 반복되는 재미난 이름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첫 소설 「개미」를 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외갓집 제사에 갔다가 친척 오빠의 책장에 꽂혀 있는 「개미」를 꺼내서 보다 결국 그 날 1권을 다 읽었다. 그만큼 재미있었고 신선했다. 그 당시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내게 「개미」는 뭔가 풀어나가는 추리소설의 즐거움, ‘개미’란 곤충에 대한 놀라움과 베르베르라는 작가에 대한 충격을 동시에 주었던 작품이었다. 책 뒤에 나온 번역자 이세욱씨와 베르베르의 인터뷰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성실하고 꼼꼼한 번역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 뒤로 나온 개미의 연장선에 있는 「개미혁명」때까지도 베르베르에 대한 나의 기대는 굳건했다.
그의 작품에 흥미를 조금씩 잃어갔던 것은 「타나토노트」때 였던 것 같다. 그 시기는 내가 책 자체에 대한 흥미와 독서량 자체가 많이 떨어졌던 때였기 때문에 꼭 베르베르의 책이 별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도 같지만. 한국에서 베르베르의 인기는 오히려 더 치솟고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행진을 계속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는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만에 우연한 계기로 베르베르의 6권짜리 시리즈 「신」을 읽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신」이라는 소설 자체보다도 여전히 등장하는 에드몽 웰즈와 그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며 「개미」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베르베르의 책은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소설이라기보다는 백과사전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책 안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아예 한 권 더 들어있기도 하지만 워낙 박학다식한 정보의 바탕 위에 작가가 상상력을 그야말로 엄청나게 풀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이나 사건의 전개보다도 ‘상대적이며... 백과사전’부분이 내겐 더 재미있었다. 성경,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까지 서양의 ‘신’관련 내용은 전부 섭렵을 한 듯하다. 사실 1권을 읽는데 그리 책장이 잘 넘어가진 않았다. 신 후보생들이 18호 지구에서 식물-동물-인간 순서로 각자 진화의 과정을 전개해 가는 과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2권에서야 속도가 조금 붙기 시작했다. 인류의 진화, 형성 과정과 토템 선택과 그에 따른 다양한 부족, 씨족의 형성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인간 부족의 발전 모습에서 등장하는 백과사전의 ‘심리학’ 이야기도 재미있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인류학책을 보는 것 같았달까.
독자가 책 속에서 읽어내는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 부분이 독자의 현재 관심거리나 자주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에서 누가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다고 할 때, 그 부분을 봄으로써 그 독자가 현재 관심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인지 대강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읽으면서 한 번 크게 웃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다: <이론이 있으면 일은 잘 돌아가지 않아도 그 이유는 알게 된다. 실천을 하면 일은 돌아가는데 그 이유는 모른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되면 일도 돌아가지 않고 그 이유도 모르게 된다.> from 78. 백과사전 머피의 법칙(2권 p. 353)
책 중간에 ‘은비’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에 대한 소개와 종군 위안부 문제도 몇 페이지를 할애해 보여주는 것은 그의 한국 사랑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그는 왜 한국을 좋아할까?)
책을 빌려준 친구는 끝은 좀 어이없게 끝난다고 했다. 결말이 어떻게 되건, 등장 인물들이 어떻게 되건 그건 그다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18호 지구에서 벌어지는 각 부족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그들은 현재 우리 ‘1호 지구’에서 누구를 닮아 있는지, 베르베르는 어떤 역사를 쓰고 싶어하는 것인지가 지금은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