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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지음, 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니체가 눈물을 흘린다? 오만하리만큼 자존심 강했던 철학자 니체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니체를 소설 속에 등장시켜서 결국 울게 만든다고? 도대체 어떻게?! 처음 소설 제목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다. (어쨌든 이 소설 끝에서 니체는 정말로 눈물을 흘린다.)
작가 어빈 얄롬은 정신의학과 교수이니 인간 정신과 심리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속 실존 인물을 소설이라는 틀 안에 담는 것은 그 인물에 대한 철저한 이해 후에 가능할 것인데 그 시도 자체가 대범하다. 더구나 작가 후기에도 나와 있듯이, 소설 속 니체와 브로이어의 만남이 실제로도 정말 ‘있을 뻔’ 했었다니.
이 소설에는 빈의 저명한 의학자 브로이어, 니체, 프로이트, 루 살로메 등 그 시대의 지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난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브로이어가 누군지 몰랐다.) 휴가를 떠났던 브로이어에게 루 살로메가 니체의 치료를 부탁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아마도 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니체의 절망을 치료해 줄 것을 루는 브로이어에게 부탁한다. 이 당시는 아직 정신의학이 정식으로 인정되기 전이지만 브로이어는 이미 환자 ‘안나 O'의 사례를 통해 ’대화요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대를 훨씬 앞서간 생각을 했지만 사람과의 관계가 거의 없어서 관계에 있어 무척 서툴렀고 그래서 루와의 결별에 그만큼 더 치명적인 영혼의 상처를 입은 니체도, 겉으로는 성공한 의사의 삶을 살고 있는 브로이어도 ’안나 O'에 대한 연정, 아내와의 관계, 의사를 선택함으로써 포기한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 등으로 마음 속은 이미 환자다. 우여곡절 끝에 니체는 브로이어와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치료’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브로이어가 여러 계획을 통해 니체를 ‘치료’하려 들지만, 그런 브로이어의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그 뒤 브로이어는 방법을 바꿔서 자기를 니체에게 먼저 드러내고 그의 도움을 구함으로써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그렇게 자기의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니체의 '의지'와 '선택'에 관한 가차없고 냉혹한 지적 앞에 브로이어는 자기 마음속의 괴로운 진실과 대면하게 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브로이어 자신이 ‘치유’를 받는다. 이 소설의 반전이자 클라이막스는 결국 자기가 정말 원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을 깨달은 브로이어가 만약의 시나리오를 프로이트의 최면 도움으로 실현시켜 본 장면이다. 그것이 최면이었음을 알았을 때 그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니. 어쨌든 최면에서 깨어난 후, 브로이어는 현재의 선택에 더 겸허하게 충실할 수 있게 되었고, 치료라는 명목 아래 숨기고 가렸던 모든 부분을 니체에게 말한다. 니체 역시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고독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고독의 냉증을 치유받는다. 여기서 니체의 눈물은 그 고독의 얼음이 녹아내린 흔적이다. 다소 갑자기 극적인 변화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브로이어의 최면 과정에서는 나 자신도 그 장면에 깊이 몰입하여 함께하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내가 걸어온 길을 간접적으로 잠깐이나마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내 선택들에 대해서.
실제로 니체가 이렇게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있었더라면, 그는 생의 마지막을 길거리에서 행려병자로 마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옮긴이의 말대로, 루 살로메와 안나 O에게도 좀 더 많은 부분 목소리가 부여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놀랄만큼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