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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7월
평점 :
최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착각이길 바라고 있지만 무언가 이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꾸준히 책을 읽는 건 매력적인 책이 많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다. 후자가 더 크다. 오늘 소개할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속 주인공도 나처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는 인물로 보였다. 결말까지 봤을 때 그건 아니었다.
왜 제목이 비너스인가, 그 의문을 시작으로 읽었지만 차례차례 책 내용으로 빠져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특징이라고 할 만큼 그가 내는 책마다 400-500 장을 넘는다.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양이 많은데 552쪽이다. 소설 외 내용을 제외해도 500 페이지로 꽤 부담스러운 숫자다. 겉으로 봐도 두께가 있어서 한 손으로 잡기 불편하고, 막상 읽으려고 하면 이걸 언제 다 읽지? 마음이 든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읽으면 가장 빠르게 읽겠지만 이런 내 우려와 달리 이번에도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는 한 번 읽으면 몰입해서 읽을 만큼 가독성도 좋다.
지금 내가 쓴 문단처럼 세 줄 이상은 신경 써서 쓰지 않으면 가독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는 양이 많지만 적절하게 구분되어 있어서 한 장을 넘기려던 손이 두 장을 넘기게 된다. 마치 눈으로 봤을 때 족히 5인분은 나올 법한 케이크가 잘게 자르면 10 조각으로 나오는 느낌. 한 덩어리로 보면 먹기 힘들지만 조각으로 나눠서 먹으면 금세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음을 알게 된다. 이때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앞으로 더 남았어? 하는 복잡 미묘함도 있다.
제목처럼 비너스가 전면으로 나올까, 기대도 했지만 책 소개 글에서 밝혔듯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은 미술관이나 비너스가 나오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수의사이고 천재 IT 사업가 동생이 있다. 어느 날 낯선 여성이 찾아와 그 동생이 실종됐다고 알린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믿을 수도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설상가상 친족 갈등에 휘말리게 된다. 덧붙여 뇌 질환을 앓던 화가 아버지가 남긴 작품이 사라졌다는 것, 사고로 돌아가신 줄 알았던 어머니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사실까지 있다고 하니 주인공이 얼마나 당혹스러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소개 글을 나열했을 뿐인데도 길다. 수의사인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 그곳을 방문하는 손님들, 주인공의 가족들, 낯선 여성까지. 일본 소설이라서 이름도 낯설고 헷갈려서 곤란했지만 각 인물마다 개성이 남달라서 기억하기는 좋았다. 특히 초반, 도중에 나오는 유마라는 인물은 읽는 내내 여러 오해를 품어서 살짝 미안했다. 한편으론 주인공에게 정감이 가지 않아서 읽기 어렵기도 했다.
수의사인 주인공, 의사 집안 친가 덕분에 SF와 의료 사이를 넘나드는 내용이 즐비해서 보는 입장에서 즐거웠다. 모든 수의사가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사진을 보면서 대동물 수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방문하는 손님들도 가지각색이라 그 동물들이 어디가 아픈지, 보호자마다 다른 대처도 유의 깊게 봤다. 물론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의 주 골자는 실종된 동생을 찾는 것. 이 간결하면서도 위험한 문장에 친족 갈등, 부친의 유작, 모친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얽힌 탓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섣불리 동생이 사라진 사실을 밝힐 수도 없지만 주변을 탐문하지 않으면 실마리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과학 X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만약 납치됐다면 누가 납치했는지, 혹은 자작극이라면 어떤 이유로 그런 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이고 가설이 빗나갔다. 개 중에는 맞춘 것도 있지만 약간의 반전도 있었다.
과학과 미스터리가 만났지만 무겁지 않았다. 그렇다고 각 인물이 가진 감정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냐고 하면 그건 아닌 거 같다. 어느새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던 사건이 현시점에서 폭발하고 그 한가운데에 주인공이 봉착한 느낌이 들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