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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24년 7월
평점 :
⟪살인자의 건강법⟫ 을 읽으면서 무슨 책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한 늙은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 작가가 유명해서(노벨 문학상 수상자) 기자들이 앞다투어 인터뷰하러 왔는데 그 작가가 기자에게 외설적이고 기괴한 말을 해서 기자들이 괴로워하는 책이라고 말했다. 돌아온 건 무슨 그런 책이 다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 당시 읽던 내 생각은 위와 같았다. 내가 이걸 왜 읽었더라? 잘 읽히는 것과 별개로 고민하면서 여러 번 멈췄다. 그리고 결말을 읽고 나서 이 일화를 먼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알고 싶지 않은 정보겠지만, 이만큼 내가 무지몽매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매번 책 소개 글을 읽고 '아 읽고 싶다!' 생각하는 편인데도 읽다 보면 어느새 줄거리는 잊고 질질 끌려다닐 때가 있다. 딱 잘라 말하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마주하거나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로 나눌 수 있을 거 같다. 이렇게 말하니 아무 생각 없이 글만 주먹구구 읽고 글을 쓰는 사람 같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살인자의 건강법⟫ 을 읽으면서 더욱 지금 내가 쓰는 서평이 맞는 건지, 내가 읽고 해석하는 방식을 잠시 생각했다.
⟪살인자의 건강법⟫ 은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작가가 두 달 뒤에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파만파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겠다고 모이면서 시작한다. 많은 기자가 몰린 까닭은 그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이유가 크다. 물론, 그가 앓고 있는 병(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이 워낙 희귀하고 알려진 정보가 없다는 점도 한몫했을 거다.
줄거리에선 '신화적인 존재 타슈,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든다. 인간 혐오자로 자처하는 문학의 거장 타슈는 그들 중 극소수에게만 자신과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리게 해주는데'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늙고 쇠한 데다 까칠한 성격을 가진 작가가 화를 내면서 인터뷰를 거절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살인자의 건강법⟫ 속 핵심인 기자 니나와 타슈의 인터뷰가 가장 기대된 이유이기도 했다.
솔직히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처음 느꼈을 때는 무슨 이런 인물이 다 있지? 생각했다. 사진 모두 타슈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 주고 있다. 오랜 세월 활동한 작가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표현력이 좋은 인물인 건지 읽다 보면 처음 보는 어휘와 표현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살인자의 건강법⟫ 속 타슈 작가와 인터뷰하는 기자는 총 다섯, 앞선 네 명은 각자 여러 이유로 고함을 듣거나 내쫓기며 인터뷰를 중단해야 했다. ⟪살인자의 건강법⟫ 은 묘사보다는 대사 지문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왜 인터뷰가 중단되는지 그걸 추측해야 했다.
각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다른 기자와 하소연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에 막연하게 혼자 추리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다지 내용 자체는 추리소설도 아니고. 오히려 이 장면에서 기자들이 먼저 인터뷰한 기자를 옹호하거나 네가 잘못한 게 맞는다고 하는 걸 보면서 다음 기자는 얼마나 고생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니나가 곧바로 인터뷰하는 걸로 시작하지 않아서 지루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 읽은 뒤 생각했을 때 작가가 독자를 위해 배려하려 했거나 복선을 깔기 위해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전개였던 거 같다. 단지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이나 자신을 방어하는 듯한 발언을 언뜻 보면서 이걸 읽는 게 맞는 걸까? 생각했다. 타슈 작가가 하는 말을 보면 과하게 냉소적인 면도 있고 반대로 자기를 미화하거나 차별이 느껴지는 표현도 있었다. 집중해서 읽어도 그 길고 긴 말을 받아들이면 정신이 없다.
⟪살인자의 건강법⟫ 은 결말을 제외하고 말하면 결국 니나라는 기자가 타슈 작가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가진 비밀을 밝히는 과정이다. 네 명의 기자 중 한 명은 최소 한 권이라도 타슈 작가의 책을 읽었지만 다른 기자는 그러지 않았다. 다른 일로 바쁘다는 말도 하지만 타슈 작가는 그걸 냉소적으로 볼 뿐이다. 사실 나라도 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인터뷰한다고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거 같다. 반면 니나는 그의 책 전권을 다 읽었을 뿐만 아니라 세세하게 제목부터 인물 구성,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다. 다른 기자와 대화하며 타슈 작가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는 없다,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는 독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 기자는 그 말을 반박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쫓겨났다. 그러다 보니 타슈는 니나에게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모욕하는 데, 소개 글처럼 니나는 타슈를 압도하며 기게 만들었다. 그다지 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계속된 언행을 생각하면 그게 맞는 처사 같기도 했다.
줄거리만 하염없이 따라가면 타슈 작가는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괴이하다. 표현만 고급 지고 있어 보일 뿐이지 타슈 자체가 허위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히 이 생각이 떠오른 건 아니다. ⟪살인자의 건강법⟫ 은 누차 작가와 독자, 문학 다음으로 '허위'가 계속 언급된다. 단순히 타슈의 웅대한 자기상일 수 있지만 내 얄팍한 이해보다 깊은 의미가 있는 거 같다. 이 생각들은 옮긴이의 말을 읽고서야 떠올렸으니 내가 깨달은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글을 쓰면서 지금 내 상황이 계획된 우연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내가 독자가 아니라는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허울좋게 감상을 쓰고 있지만 책을 세 번 펼치고 덮은 다음 고민한 뒤에 썼다. 아직도 나는 내가 ⟪살인자의 건강법⟫ 을 제대로 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증거는 마지막 장에서 니나가 소파에 앉은 뒤 내뱉은 말이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앞서 저자가 왜 이런 전개를 했을까, 타슈의 행동, 언행이 가리키는 의미를 생각하는 노력은 했고 의외로 결실을 얻었지만 아직도 니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해서 실망했다. ⟪살인자의 건강법⟫ 속 주인공은 문학이라고 하여 문학으로 대입해 생각하려고 해도 그 그림자도 쫓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내가 실망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읽고 또 이해했다고 여기면서 실망이라는 말로 함축하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까?
위 내용과 다른 거 같지만, ⟪살인자의 건강법⟫ 을 읽으면서 원문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봐도 감탄했다. 타슈가 선택한 단어나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지만 청심환이나 여러 사자성어를 발견하면서 원문도 이럴까? 원문은 무슨 표현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또 자기반성하느라 언급하지 못했지만 초반에 잠깐 언급된 '엘젠바이베르플라츠 증후군' 은 말장난이라고 한다. 독일어라서 더 눈이 갔다. 이밖에도 '프레텍스타 타슈'라는 이름도 언어유희라고 하는데 그걸 모르고 지나치면 조금 아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의식하든 못하든 누구나 책을 읽고 나면 시선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천만에! 그건 최고의 독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오. 그 외에는 다들 계속해서 타고난 진부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게다가 독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독자란 것 자체가 희귀한 부류에 속한다오. 대다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 명언을 남겼지. 웬 지식인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구먼,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이토록 실상을 명쾌하게 요약하는 말이 어디 있겠소. 안 그러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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