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쯤, 스페인 - 스페인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을 가다
박성진 지음 / 시드페이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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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간 검색을 하다 이 책을 발견하고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 도서관 이용자 중 가장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마음이 착잡하다.

 

콘텐츠만 놓고 보자면, ‘나무랄 데 없다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인 일반이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는 스페인의 구석말이 구석이지 인구 몇 십만 도시 따위 부러워할 일 없는 옹골찬 지방들을 보여 주며 함께 감흥을 나누려는 지은이의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꽤 훌륭한 책이다. 가끔은 놀랄 만한 비유를 들어 설명할 줄도 아는 저자의 작문 센스도 엿보인다(그렇다고 그가 아주 좋은 문장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건축학도인 저자가 챙기지 못한(/챙길 수 없는) 부분을 편집부가 전혀 채워 주지 못한 데서 발생한다. 제법 꼼꼼한 교정을 보는 것으로 이름 높은 몇몇 출판사 책들에서도 간혹 보게 되는, 문법적 회색지대가 많은 한국어에서나 발견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교정의 기본이 안 돼 있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을 때면 으레 손 닿는 데 두는 인덱스용 포스트잇이 이때처럼 바빴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였다. 혹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어, 내내 체크하느라 어쩌면 나무만 보는 독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같은 결과물을 낸 출판사도 안쓰럽지만, 이런 책을 접할 때 내가 걱정하는 건 인쇄물을 곧 글쓰기의 모범 내지는 교본으로 여길지 모를 십대와 이십대 독자다. 교정 문제만 발목을 안 잡았으면 만듦새도 평균 이상인, 저자로선 흐뭇한 작품 같은 책이 되었을 테니, 그도 안됐다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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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
마르기트 쇤베르거.카를 하인츠 비텔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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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꽤 설득력 있는 레퍼런스가 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을 떠올렸다(출간 시점을 고려할 때 제법 많은 서평이 달린 걸 보니, 이런 종류의 책을 찾는 독자가 꽤 되는 모양. 서평을 올린 모든 분들에게 더다의 책 역시 읽어 보길 권한다). 책을 덮자마자 참을 수 없을 만큼 읽고 싶어진 책은, 조르주 심농의떠나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였다. 이유인 즉, 작가가 쓴 대로 늘 메그레여만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 충실하고도 능동적인 독서를 끝낸 뒤 곧바로 착수한 작업은, 원제의 ‘100 Romane’에 대한 내 합리적(?) 의혹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프랑스어 전공자라 같은 로망스어는 어느 정도 의미 파악이 되는 편이지만, 독일어는 사정이 다른데, 그래도 100 Romane 너무 뻔했다. 딱 봐도 100편의 소설이 아닌가. 그렇다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100편의 소설 묶음에서 떨어져 나간 25편은 무엇일까? 이 출판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오해 마시기를. 출판사가 원서를 헤집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번역 계약을 할 때 편집권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줄로 안다. 해당 언어권 사정에 맞게 변형이 가능하도록 원출판사에 사전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도 버려진(!) 소설 25편의 행방을 알고픈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원제를 어설프게나마 해석하면, ‘즐거운(/행복한) 여성독자 :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읽는 100편의 소설쯤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독일에서 이 책을 찾으니 다행히 e북 첫머리가 실려 있는데, 차례를 보니 아주 담백하다. 표제어는 사랑과 성’, ‘직장(/커리어)’ 죄 이런 식이다. 소설은 가장 앞에 놓인 두 편만 확인할 수 있었다. 헤밍웨이와 아룬다티 로이의 그것. 로이도 한국에 어느 정도 알려졌다 보는데, 빠진 걸 알게 되니 아쉽다. , 출판사 나름의 기준이 있었겠지 한숨지을 뿐이다.

 

위의 100자평은 예쁜 표지, 그럴듯한 제목, 절실한 목차에 낚이지 말것을 경고(!)하고 있는데, 나는 감히 단언한다. 행여 이 책을 그렇게 낚여서읽었다 해도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고 던져 버리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나도 좋은 문장쯤은 볼 줄 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문장이 좋다는 건 아니다. 책이 목표하는 바를 추구하는 데 장애 요인은 되지 않는 정도로 무난한 편이다).

 

기억이 맞는다면, 언급한 마이클 더다의 책과 이 책75편으로 편집된 한국판 기준에 공통적으로 실린 소설은 단 한 편으로, 대프니 듀모리에의레베카. 더다와 쇤베르거&비텔 콤비가 에 포커스를 맞춘 부분은 다르지만, 이쯤 되면레베카를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최근에 읽었는데, 작중 화자인 여성이 미래의 남편을 요상한 상황에서 처음 만나는 몬테카를로 (영화라면) 시퀀스에서 확 빨려 들어가 버렸다(이 말인즉 도입부는 요즘 독자에겐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그 고비만 넘기면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독서는 결국 물고 물리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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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홍콩 - 맛있는 홍콩, 즐거운 홍콩, 홀리는 홍콩
원정아 지음 / 재승출판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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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적고 있는 글쓴이의 고민이 어느 정도는 답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감상에 치우치지 않는 문체로, 준홍콩인답게 틈새를 잘 공략했다는 생각이다. 장소가 품은 이야기까지(그러니까 역사) 버무려 넣은 여행기를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빌 브라이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나, 나름 충실한 독자로서 나는, 여행기(내지는 특정 장소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쓰겠노라 칼을 빼 든 작가들이 빌 브라이슨의 가방끈비유적 의미의 가방끈이 아닌 진짜 가방끈!정도는 베겠다는 각오로 글을 만들어 주기를 늘 바라기 때문이다. 적당히 멋들어진 사진으로 골격을 만든 다음 빈약한 팩트와 감상만을 나열한 여행기가 한숨 나올 만큼 많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인 터라.

 

그러나 구조적인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프롤로그에서 감사의 말을 모두 전한 뒤이기에 에필로그까지는 필요 없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나, 어째 이야기가 ~’로 끝난 것 같은 계속되는 느낌이 남는다(, 여행에 어디 완결이 있겠느냐마는). 책이 마카오에서 덩그러니 끝나 버리니, 앞서 적은 글쓴이의 고민은 뭐였나 싶은, 허무까지는 아니고 다소 개운치 못한 기분이랄까. 하여간 그런 찜찜함이 남는다.

 

귀에 선 이름의 이 출판사에게도 숙제는 남았다. 사전 한 번만 찾았으면 그 자리에서 해결됐을 아주 초보적인 교정 실수가 제법 있고, 지금껏 어느 출판사 책에서도 본 적 없는, 나로선 아주 깜짝 놀란 실수가 판권 페이지에서 나왔으니, 이를 어서 빨리 알아차리기―지금이면 알아챘을 수도!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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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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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해, ‘섹시한소설이다. 여기서 섹시하다는 게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밝히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될 테지만, 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것이, 이 소설이 주는 섹시함이 과연 범용 가능한 성질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섹시함에 대한 대략적 이미지, 일정량의 관능미나 초성적 매혹 따위를 떠올리며,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그리도 눈을 사로잡느냐고 묻고 싶을 사람도 있을 터. 하지만헤드헌터의 섹시함은 아쉽게도(?) 인물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애정 문제도 들어 있긴 하다. 나름 과감한 묘사도 있고. 허나 딱히 섹시하지는 않다).

 

모든 섹시함은 화자(이자 죽기 살기로 고생하는) 로게르 브론이 인물을 관찰하는 방식, 그가 상대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글자 그대로 피어난다’. 언젠가 엘모어 레너드 작가소개 글에서 모든장르니 정통이니 가릴 것 없이소설가들이 레너드 식 대화체를 (어쩌면 은밀히) 흠모했을 것이라는 둥의 설명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읽은 소설이 그중 가장 섹시한부류에 들어간다는 것이었음에도 나는 별반 공감할 수 없었다(결국 끝까지 읽지도 못했다). 그 점을 고려한다면 네스뵈 식 대화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나(레너드 팬들이 반론을 제기한다면, 예를 들어 부족한 번역이나 미끈하지 못한 교정을 탓한다면,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진 않다. 아무렴!).

 

허나 이제껏 박수를 보낸 섹시함은 소설을 이루는 한 축인 레토릭에 대한 것일 뿐, 결국 이는 범죄소설이므로 일차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건 플롯이 되겠는데, ‘발단에서 전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작가가 감질나게 뿌려 주는 단서들종종 참고하는 프랑스 모 인터넷서점 독자평에 따르면 다소 지루한 초반부를 만드는 요소로 근래 들어 드물게 능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으니, 쫀쫀하게 잘 짜인 소설이란 점 역시 강조해 두고 싶다.

 

소설가가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다는 내용의 글을 언젠가 읽은 적 있는데, 네스뵈는 현역 음악가(이자 경제학자)이기도 하므로 음악적(/개념) 수사를 써먹는 정도야 재량껏 얼마든 가능한 일이겠지만, 엘리트 군사조직에 헤드헌팅, 미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지식의 범위며 조합 능력이 상당하다. 어디에 뭘 끼워 넣고 뭘 이어 붙일지 귀신처럼 아는 건 기타노 다케시의 편집 방식과 닮았다 할 수 있으려나(박지성 입단 전 시점의 QPR에 대한 촌평 또한 그러하다. 물론 현 QPR의 운명과는 별개로).

 

영화제작자들이 이 정도 소설을 그냥 뒀을 리 만무하단 생각에 검색해 봤더니,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다(2011년 개봉). 다행히(!) 노르웨이에서. 한국인 대부분이 모를 자국 배우 캐스팅이라 대단한클라스 그레베를 연기한 대니쉬 본 액터 니콜라이 코스터 발다우만 언급하고 넘어가련다. 지금으로선 나는 재미없지만 상당한 흥작이라는왕좌의 게임시리즈에서 금발 라니스터 일족의 문제적 멘탈의 소유자 제이미를 연기한 배우로 설명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일 텐데, 기실 나는 영화윔블던에서 그를 보고 쟤는 누구?”(영화 완성도와 상관없이)하고 그 미모에 눈이 번쩍 뜨였던 터,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이후 희대의 망작도 못 되는 안타까운 시리즈뉴 암스테르담으로 원톱의 길로 들어서나 했는데, 그에게 너그러운 나조차 1회부터 드러나는 망작의 조짐에 눈을 돌렸으니, 운명은 뻔했다. 그리고 가늘고 긴 생명력으로왕좌의 게임제이미 라니스터에 이른 것이다.

 

그가 그레베가 된 배경에는 덴마크인이 노르웨이어를 익히는 데는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덴마크의 노르웨이 점령 역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자국어로 말해도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는 이유도 있으리란 억측을 해 보는데, 그래도 소설 속 그레베의 분위기를 그럴싸하게 구현한 캐스팅이란 생각은 든다. 다만 코스터 발다우의 키가 그레베가 되기엔 너무 크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소설을 읽은 자만이 를 언급한 이유를 안다).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유럽에선 이미 개봉한 영화라 희망을 안고 프랑스어 자막 버전 영상을 찾았고, 지금 한창 내려 받는 중이다(이럴 때는 영어 말고 프랑스어를 하나 더 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앵글로색슨과 유럽대륙 성향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소설만 읽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라 그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아직 손대지 못하고 있는데, #1부터 출간되는 게 아닌 점은 다소 아쉽다. 그런데 어쩌다 책 뒷날개에 소개된 카밀라 레크베리 소설 두 편은 다 읽었다. 감상이라면, 역시 인생을 십 년은 더 산 네스뵈 씨만 하진 못하다는 것? 그래도 표지는헤드헌터보다 낫다. 까놓고 말해 이게 뭔가?” 싶은 표지가 아닌가?

 

책날개에 실은 사진이 두 번은 나오기 힘든 인생 최고의 사진이다 싶은 네스뵈는 유명세만큼이나 인터뷰 영상이 많은데, 제임스 엘로이와의 만남은 실로 놀랍다(부끄럽지만 나는 가끔 엘로이와 엘모어 레너드를 헷갈리곤 한다). 이제 그는 크라임 노블의 전설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나저나 엘로이 소설들은 왜 좀 더 번역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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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1 : 재능있는 리플리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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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라는 괜찮은 건수(?)를 이렇게밖에 요리할 수 없었다는 게 안타깝다. 한국어화 작업, 특히 대화 처리 방식이 거슬린다. 좀 더 대화답게, 캐릭터에 맞게 다듬어야(특히 종결어미를!) 했다. 하이픈(-)에 대한 이상 집착도 이상하다. 원서에 충실하기 위해 살렸다고 적고 있는데, 한국어 문장기호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쓰임이었다면 모를까, 큰따옴표 속 대사가 잠시 끊겼다가 다소 장문의 설명이 끼어든 뒤 대사가 다시 이어질 때, 앞 대사 끝에 붙은 하이픈을 굳이 살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 식 말줄임표()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읽은 분들만이 알 텐데, 문장 끝에 붙은 그 하이픈의 어정쩡함이란…… 정말이지 어정쩡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게 있어 대어리플리의 가독성은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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