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함부로 만지고 훔쳐볼까? - 성추행범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법
사이토 아키요시 지음, 서라미 옮김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해하기 쉽게 명쾌하게 쓰인 책이다. 한 분야에 10년 이상 몸담아 왔다 하더라도 업무 과정에서 관찰하고 얻은 결과물을 짜임새 있게 정돈하는 일, 무엇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전무한 사람에게도 무난히 읽히는 책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을 터다. 물론 이 책의 일본인 편집자와 함께 노력한 결실이겠지만,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드는 힘이 실린 책이다. 이 책은 ‘가해’를 다룬다. 저자는 성추행은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 범죄이므로 법적 제재는 당연하다고 하며, (가해자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포함해) 성추행 가해에 이르는 과정과 범행 이후, 교정 당국과 저자가 일하는 클리닉에서 이루어지는 재범 방지 프로그램(물론 일본의 경우), 가해자 가족에 대한 심리적 지지 및 치료, 잠재적 가해자와 잠재적 피해자, 즉 생애 한 번도 성추행을 당하거나 성추행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본 일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야 할지를 설명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 (보다 수위가 높은 성폭력을 포함해) 성추행 근절을 이루려면 사회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어야 함을 역설한다. 다소간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한국 사회에 거의 마침맞게 적용할 수 있는 주장이라 크게 공감했다.


한국어로 다듬은 부분도 이 정도면 거의 완벽(‘천정이 무너진’이 가리키는 바가 살짝 애매하긴 해도)하다 싶을 만큼 매끄러웠으나,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표지 분위기가 좀 가볍지 않나 하는 것(표지 그림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설명이 없어 일본 원서의 디자인인가 했으나 경찰 유니폼을 보면 한국 출판사의 안인 듯). 표제를 바꾼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내용을 고려할 때 삽화가 일견 코믹하게마저 읽히는 게 위험할 수 있겠다 싶었다. 표지에 쓰인 문구 ‘성추행범의 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보는 법’도 어째 핀트가 어긋난 느낌이다. 이 책은 그보다 ‘누가, 왜 성추행을 저지르는가’를 다룬다고 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무르고 늘리고 그림책 마을 23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유문조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시타케식 접근법을 무척이나 좋아라 하는 사람으로서 제목이 맘에 걸려 간만에 들어왔습니다. 이 아이의 활동(!)은 반죽을 ‘늘리‘는 게 아닌 ‘늘이‘는 게 아닌지요? 아동 도서인 만큼 교정에 특히 주의가 필요할 텐데요...늘리다/늘이다는 성인들도 그 용례를 구분 못 하는 예가 많은지라, 걱정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봄봄 2018-09-0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먼저 저희 도서에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늘리다‘와 ‘늘이다‘는 많이들 혼동하시는 단어인데, 사전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늘리다‘: 물체의 넓이, 부피 따위를 본디보다 커지게 하다.
‘늘이다‘ 「1」본디보다 더 길어지게 하다.
「2」((주로 ‘선’과 관련된 말을 목적어로 하여)) 선 따위를 연장하여 계속 긋다.

그리고 일본어 ‘のばす‘는 한자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のばす[伸ばす] 1.펴다. 2.팽팽하게 하다. 3.곧바르게 하다; 뻗다.
のばす[延ばす] 1.(시일을) 연장시키다.(↔반의어ちぢめる) 2.연기하다. 3.길게 늘이다.

본문 속 아이가 반죽을 가지고 놀며, 공처럼 부피가 마구 커지기도 하고, 망토나 이불처럼 면적이 넓혀지기도 하는 등 ‘늘이다‘보다는 부피와 면적이 확장되는‘늘리다‘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늘리다‘로 표기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저희 도서에 관심 보여주시고, 많은 고민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 - 아흔 살 넘은 부모 곁에서 살기, 싸우기, 떠나보내기
라즈 채스트 지음, 김민수 옮김 / 클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더스틴 호프만이 가장 예뻤을(?) , 시쳇말로 리즈 시절에 찍은 영화 <리틀 빅 맨>(1970)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줄거리는 거의 잊었지만유독 한 장면만큼은 지금껏 기억에 남아 있는데, 호프만이 분한 백인 청년이 무슨 연유에선지 그 무리 안에 끼어 자란아무래도 이게 핵심 플롯이지 싶은데샤이엔 부족의 늙은 족장(아니면 그냥 부족 원로)이 어느 날 홀로 조용히 무리를 벗어나 길을 떠난다. 도착한 곳은 부족 거주지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 웬 언덕바지였는데, 노인은 장소를 한차례 훑어보고는 이내 적당하다 여긴 듯 평평한 곳을 골라 눕는다. 때 아닌 일광욕이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가 된 것(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부락과 떨어진 곳에서 죽음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하늘은 적당히 청명하고, 북미 인디언 거주지가 그렇듯 곧 비가 내릴 조짐 따위는 없다. 노인은 완벽한 날을 고른 것이다. 토착민의 지혜가 줄곧 그래 왔듯 이는 부족의 어른에게서 아이에게로 자연스레 흐르는 살아가는 방식이 경우는 죽는 법이지만이며, 딱히 애통해할 일물론 부족 원로 한 명을 잃는 것은 백과사전 한 질을 통째 잃는 물리적 손실일 테지만, 이미 웬만한 지식 내지 지혜의 전수는 완수된 뒤였으리라, 더구나 밤낮으로 곡을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저런 담백한 죽음이라니! 나는 무릎을 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저것이야말로 원 앤 온리한 죽음에 이르는 법이라 여겼고,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저렇게 죽겠노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놀랄 것도 없이 현대인의 죽음은 결코 이런 형태가 될 수 없다. 가능하면 병원에서 죽어 주는게 그 죽음을 처리(?), 감당할 사람을 배려하는 일이며, 죽는 당사자의 편의를 위해서도 그편이 여러모로 낫다. 딱히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터.

 

이 위트 넘치는 책은, 그 풍성한 위트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끝내는 맞닥뜨려야 할 노화와 죽음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외동딸인 작가가 선택의 여지없이 모든 부수적인 작업의 최종 담당자이자 결정권자가 돼야 했던 부모님의 죽음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뒷날개에 적힌 자기계발서운운하는 언론의 평가는 지극히 적절하다(자기계발서 꼬리표를 달고 나오는 모든 책들에 회의를 품는 내 취향 따위는 차치하고).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부모님의 죽음을 두 번 겪을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충격 완충제(만화이지 않나!)를 포함한 이런 유의 책을 읽어 두고 준비하는 게 온당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작가가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묘사한 부분에 크게 공감했다. 내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이 딱 그러했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잠과 틈틈이 공급되는 영양제.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해당 시기의 인간에게서 풍겨 나오는 특유의 냄새다(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냄새). 그 냄새는 처음 겪는 사람에게는 분명 충격을 안기지만, 그렇다고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의 인생을 좀먹지는 않는다. 언젠가 나 또한 그러하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호미로든 가래로든 뭔가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죽음에 대한 선행학습은 병원에서 태어나 결국 병원에서 죽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특히나 더 요구되는 부분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선행학습 차원이건, 단순한 재미를 위해서건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엿듣는 벽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 전개, 장면 전환 방식 등 세련된 장치에 감탄하며 읽었다. 대화 처리도 훌륭한데, 한국어로 다듬은 방식 또한 드물게 말끔해서 해당 대사를 내뱉는 인물의 표정을 그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결말부는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완전판) - 헤라클레스의 모험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타깝게도 황금가지 크리스티 전집의 교정 상태는 전체적으로 고르지 못한데, 그중에서도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축에 든다. 독서를 방해할 수준(독서 방식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니)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어쨌거나 굴지(!)의 민음사 계열사 책에 대한 상식 수준(이 역시 저마다 차이가 있을 터)의 기대치에는 턱없이 부족한 만듦새다. 이 책이 재판을 찍었다는 사실에서 안타까움은 배가된다. 2쇄도 아니도 2판을 찍을 정도가 되었음에도 누구도 교정 상태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은, 뭐랄까, 인간사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왜 그랬어야 했나 하는 커다란 의문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며, 작가 크리스티의 상상력을 넘어선 인간 크리스티의 만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느끼게 한다. 이번에도, 역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