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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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시, 천경자 그림

(한국의 대표 시인과 화가의 아트컬래버!)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먼후일, 못잊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개여울, 초혼,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등등. 시를 잘 몰라도 웬만하면, 김소월 시 한두 편 정도는 거뜬히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김소월 시 150, 천경자 그림 34. 어울릴 듯? 혹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한국의 대표 시인 김소월의 시와 한국의 대표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 만났다. 거기에 진달래꽃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낱낱히 분석한 정재찬 교수의 해제까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슬픈 화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자기 탓이 아닌데, 자기 뜻과 다르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해야하는 존재들, 상황을 극복할 방법론도 보이지 않은 채 속수무책 주저주저 하는 사이, 상황은 운명처럼 굳어져, 어느 순간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내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 속 주체들은 그저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설워한다. 개여울의 당신을 보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는 약조만 믿고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는다. 그런가하면 예전엔 미처몰랐어요는 깨달음이 늘 뒤늦게 찾아오는 인생의 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워할 줄이야,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줄이야, 예전에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아쉬움과 설움, 그것이 한이 아니겠는가.(14)

 

이제 진달래꽃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이 시의 주제를 이별의 정한이라 했지만, 그 이별 앞에서 이 시의 화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는 자세로 아픔을 받아들임은 물론, 나아가 꽃을 뿌려 임의 앞길을 송축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를 일컬어 전통적 인고의 여인상 운운하며 가르쳐왔지만, 나는 그것에는 끝이 없는 법이며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사랑이 끝난 자리에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만 남을 뿐이다. 반어니 역설이니 하는 것도 걱정과는 거리가 먼 지적인 수사인 것을. 그렇다면 이는 어른스러움이라 함이 맞지 않겠는가.(15~16)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상상 속 관념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외국의 어느 아름다운 도서관을 구경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바닥을 가만 들여다보니 보도블록 하나하나마다 그 도서관 건립에 기부한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는 게다. 그걸 의식하자, 이방인인 내가 차마 밟기 미안해졌다. 그래서 애써 사뿐히 밟으려 했다. 성공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다음 블록도 사뿐히 밟으려 발을 떼는 순간, 좀 전에 사뿐히 밟은 그 블록을 나도 모르게 그만 짓밟게 된 것이었다. , 소월은 지금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을 찍고 있구나 실감한 순간이었다. 정성을 다 바쳐 뿌린 영변 약산 진달래꽃을 그저 휘휘 스치듯 밟으며 지나가지 말아달라고, 지난날 우리의 추억을 곱씹듯 하나하나 또박또박 밟으며 가달라는 거구나 싶었다. (19)

 

이제 편견을 버리고 자신만의 감정으로 그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기로 한다.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33)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두 편씩, 시를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고 오며가며 외고 또 외웠다. 그게 그 때의 멋 혹은 낭만이었다고나 할까? 먼 후일도 내겐 그런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대로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119~121)

 

 

다른 구절은 다 잊어도,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구절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이별을 겪고 힘들 때 누구나 한 번쯤 읊으며 자신의 아픔을 견디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166)

 

부부

 

오오 아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삶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난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어긋나게 나가는 것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이라도 반백 년

못 사는 이 인생에!

연분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러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233)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257)

 

 

그렇게 우리들은 소월의 시를, 시 자체로 혹은 노래로 들으며, 또 따라하며 고달픈 인생을 위로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니 어찌 황혼에 다시 만난 그의 시를, 기쁨으로 반가이 맞이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1,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2,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3,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4,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5,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까지. 책을 펼쳐 시를 읽다보면, 1장에서 5장까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시인의 시가 지난날의 추억까지 함께 불러온다. 또한 시인의 150편의 시를 읽으며, 알고 있던 시는 그리움으로 다가와 애틋하고, 그동안 비교적 많이 접하지 못했던 시는 새로움으로 겹쳐진다.

 

 

올해따라 유난히 빨리 져버린 진달래꽃을 아쉬움으로 보내며, 왜 다시 진달래꽃인지 시를 읽으며 스스로 터득하게 되겠다. 김소월 시인과 천경자 화가의 시와 그림의 만남 또한 절묘하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이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36)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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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 - 노인 조현증 엄마를 응시하고 마주보고 살아가는 용기
유혜진 지음 / 알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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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 / 유혜진

(엄마를 돌보며 나이 듦과 노년의 의미를 묻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이상하다. 마치 혼자 딴 세상을 사는 것처럼,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저만치 다른 세상에 가 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얼마 전부터 이명으로 인해 먹은 약에 신경 안정제도 들어 있었는데 그게 문제인가? 아니면 ??

 

가족들은 이것저것 유추해 보지만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결국 장녀인 저자는 워킹맘인 동생에게 엄마를 맡길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모시고 병원을 다녀 보지만,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면서도, 엄마이기에 외면할 수 없어 나름대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애를 쓴다.

 

이 책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엄마의 조현증이 발병하고 2년이 흐른 후의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처음보다 더 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겪어 온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지나온 길을 더듬어간다.

 

엄마는 방금 전 다 들은 내용을 다시 묻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해 누군가의 이해할 만한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일종의 독백과도 같았다. (161)

 

누구나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하다. 평범하려 애를 많이 쓰거나, 특별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그 평범함과 특별함에 맞는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둘 중 한쪽으로 치우친 존재가 되지 않는다. (241)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환자이기를 멈춘다고 진술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더라도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환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259)

 

고통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공연히 상처를 들춰서 덧대는 일인지, 아니면 환부의 원인을 진단하고 올바로 처치해서 근본적인 치료를 완성하는 일인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20)

 

점점 나이 들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 저항해서 조금이라도 노화를 지연하려는 데 지나치게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30)

 

어쩌다 나이 듦이라는 자연스러운 만고불변의 섭리가 늦추고 가리고 고쳐야 할 대상이 되었을까. 같은 인데도 어째서 주름 하나 없이 활력 넘치는 젊은 날의 나는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세월의 파도를 맞으면서 꿋꿋하게 시절들을 겪어 낸 나는 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추하게 여길까.(30~01)

 

2년 전에 엄마한테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 동분저주하며 병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한 행동들과 자신의 심리를 솔직담백하게 기록해 나가면서 노년의 삶과 나이 듦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도 함께 찬찬히 기록해 나간다.

 

저자는 엄마의 상처를 깊숙이 묻어 버리지 않고, 오히려 끄집어 내어 재발하지 않고 제대로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의 치료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당장은 괴롭더라도 직면하여 내면의 상처를 꺼내어 치유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어쩌면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 가면을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쁜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기 위해서 저절로 그렇게 사회화되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어느 덧, 지금까지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시점에 이르렀다. 가슴 아픈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엄마의 조현증을 따라가다보면, 비록 엄마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조차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된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도 좀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나무는 나이테로 말하고, 조개는 껍데기를 보면 살아온 내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주름으로 말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싶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늘어나는 주름 조차도 자연스럽게 사랑이나 연민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 책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저자의 엄마가 겪은 노인 조현병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저자 또한 그런 엄마를 따라가면서 그로 인해 나이듦과 우리의 삶, 또 죽음에 관하여 성찰해 나감으로서 독자들에게도 같은 고민을 해보게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자연스레 삶과 죽음· 노화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성숙의 과정을 살펴보고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조현병 환자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환자이기를 멈춘다는 융의 말이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모순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공감받으며 살아야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건 나이와 상관 없으리라 생각된다.



 

*조현병: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으로, 일부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최근 약물 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조현병 [schizophren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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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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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강진이

(평범한 삶속의 비범한 행복)

 

 


고개 들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동네 풍경. 옥상 한가운데 삼촌이 돗자리를 깔고 벌러덩 누웠다. 골목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고 까만 하늘에 점점이 뜬 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더 많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쏟아지는 무수한 별 중 보석 같은 내 별 하나 찾아내어 온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순간. 그 영롱한 신비로움은 내 안에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별이 빛나던 여름밤_017)

 


딸아이 방을 노란색 벽지로 도배해 주었다. 이사 갈 빈집을 구경하러 왔던 날, 처음 갖게 된 자기 방이라고 뛸 듯이 좋아하며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입을 맞추던 딸. 앞으로 방 정리는 자기가 다할 거라는 성급한 다짐도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편안하기만 할 이 방 안에서 딸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행복이 이렇게 사고해도 되는가_023)

 


일찌감치 찾아오는 날벌레들이 반갑지는 않지만, 잠자리채 들고 성큼성큼 개천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어느 때 보다도 좋고, 요즘 좀 지친 듯 보였던 남편의 뒷모습도 오랜만에 편안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것저것 제일 많이 먹고 오월 훈풍 나무 아래 달콤한 낮잠까지 즐긴 내가 오늘 이 소풍의 최대 수혜자다.(그 어느 때보다 함께 있다_043)

 


얘들아, 물놀이 하자!” 여름 날 한낮 무더위를 몰아낼 수 있는 커다란 물 대야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였었지. 수도를 틀고 엄마가 긴 호스 끝을 눌러 잡으면 투명하고 맑은 물줄기가 소낙비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어.(보석 같은 물줄기_056)

 


어릴 때 살던 곳은 붉은 기와지붕, 철 대문, 마당, 장독대 위로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며 햇빛과 바람에 빨래가 마르는 단층집이었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연탄을 때고 물을 데워 씻어야했지만, 그만큼 더 살피고 관심 기울여 가꾸며 돌보아야 했다. 그래서 더 그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다.(엄마와 함께_089)

 


집집마다, 온 동네가 숨소리까지도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 한 방에 모여 앉아 채널 다툼 없이 기뻐하고 같이 아쉬워하는 한마음이 되는 시간.(월드컵_239)

 

정겨운 그림과 소박한 글로 삶을 그리는 화가 강진이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임을 느낀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것을 접하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별이 빛나던 여름밤을 읽으며,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마냥 행복해 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르고, 아이가 자신의 방이 생겨서 좋아하는 대목에서는 처음 집 장만하던 날, 학교가 멀어져도 괜찮다며 좋아하던 내 아이들이 생각나 행복했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엄마의 외출에서는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만 보다가, 지쳐 잠들어 버린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다. 지난 시절 찜찜함을 참다못해 세 아이를 맡겨 놓고 사우나에 다녀왔더니. 아이들은 두 손 들고 벌을 서고 있고, 그 옆에서 남편은 TV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기억이 서글프다. 그 후 아이들이 클 때까지 사우나를 포기 했던 아픔도 이제는 아스라이 그리움 속으로 묻혀 버렸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일구어 나가면서 기록해 놓은 소소한 일들이, 그림과 자수와 어우러져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 결코 거창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다.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읽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지난한 그리움이 되고 아련한 추억이 된다. 2002년에 우리 모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이 책과 독자가 만나 결국 하나가 된다. 이렇듯 한 개인의 기록도 꾸준히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화재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어린이 날이라서 편안히 책을 읽으며 쉬고 있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좀 더 많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이들은 이 비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면 모든 아이들이 대우 받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현대사회는 행복한 사람은 더 많이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더 많이 불행하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은 가능하면 천천히 읽기를 권장한다. 먼저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글을 읽으며, 자신이 놓치고 지나쳐 온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자연스레 오래된 사진첩을 열었다.

 

반백년 이상을 살아보니 이젠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 그려진 글과 그림에 더욱 애착이 간다.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나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나 역시 너희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142)

 

내 아이들에게 내가 꼭 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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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채정호 지음 / 생각속의집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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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채정호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그녀는 눈이 참 예뻤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쁜 눈을 가졌다는 것은 진료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증상이 너무 심해 거의 매주 진료를 할 정도로 자주 봤지만, 그녀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보고 있었습니다.(프롤로그_7)

 

누구나 자기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트라우마와 관련된 책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온다. 내 안에도 미처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일까?

 

개인도 아프고 사회도 아프고, 국가마저 병들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스트레스를 넘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이하게 나가 아닌 우리로 살아온 민족인 만큼, 우리로 살아야하는데, 때로는 그 가까운 우리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확진자는 모든 동선이 공개되면서 기필코 물리쳐야 할 바이러스가 되었다. 전염병에 걸리는 것도 두렵지만, 다른 이에게 전염병을 옮기게 될까봐 두려워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백신 접종이 가능해지자 백신부작용이 두려우면서도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겪지만 혼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점차 사람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온라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은 트라우마가 생기는 이유에서부터 치유 방법까지 세세하게 잘 나와 있다. 저자 자신이 직접 겪었던 트라우마는 물론이고, 그동안 만난 크고 작은 사례들을 예로 들며 트라우마는 세월이 흐른다고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게 결코 아님을 강조한다.

 

이제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슬픔은 견딜 수 있어도 원통함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생기는 외상후 울분장애(PTED)에 대해서도 자세히 풀어 놓았다.

 

삼풍백화점은 원래 아파트 종합상가로 허가받았으나 건축주는 백화점으로 변경했습니다. 이에 더해 원래 4층으로 설계됐던 건물을 증축하자고 최초 시공사에 요구했습니다. 시공사가 붕괴 위험성이 있다고 거부하자 건축주는 계약을 파기하고 계열사인 삼풍 건설을 통해 시공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외에도 설계상 기둥보다 얇은 기둥을 썼고, 에스컬레이터를 넣고자 기둥의 4분의 1을 잘라냈습니다.(189~190)

 

도저히 쓸 수 없는 배를 가져와 오히려 증축하여 사용한 세월호와 유사하다. 안전을 돈과 맞바꾼 참혹한 결과를 우리는 너무 빨리 기억 속에서 흘러 보냈고 또 다른 참사를 겪게 되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아픔과 아픔이 만나면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재난 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비슷한 사건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종종 피해 당사자들끼리 연대합니다. 이를 통하여 자신을 치유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인 치유에 나섭니다. 또 다른 참사와 아픔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강화와 피해 구제 등을 위한 활동에도 함께 발을 맞춥니다.(264).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우리는 다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장 내 주변을 돌아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타인의 노동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 회사, 카페, 레스토랑, 등 어디를 가도 다른 사람들이 행한 노동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284)

 

아픔과 고통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가 삶을 지배하지 않고, 트라우마에 영혼이 잠식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지 않도록 작은 빛을 건네어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지금은 혼자가 아닌 우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300)

 

저자는 공존이 곧 생존이며,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면 고통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고통의 의미가 부정당할 때, 인간은 무너진다고 하며, ‘우리연결이 답이라며 을 내어주기를 강조하고, 그렇게 빛이 어둠을 이기게 되기를 소망한다.

 

누구도 재난에서 안전한 이는 없다. 트라우마의 당사자가 누가 되든, 서로의 곁을 내어주고 지지하여 심리적 자본을 쌓아가노라면, 외상후 스트레스가 외상 후 성장으로 이어지게 되리라 믿는다.

 

트라우마는 누군가 곁에 있을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어렵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고통의 곁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고통스런 순간에는 누구나 극심한 아픔을 느낍니다. 이 아픔을 더 크게 하는 것은 혼자만이 겪고 있다는 단절감과 외로움입니다. 트라우마 경험자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회복과 치유로 향해 갑니다.(프롤로그_10~11)

 

함께의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연결될 때, 삶은 더 단단해진다.



 

*많은 이들이 이 책과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하여 먼저 읽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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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고양이
박경리 지음, 원혜영 그림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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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고양이/ 박경리 글· 원혜영 그림

(“토지작가 박경리 선생이 쓴 감동 동화)



 

 

 

호수처럼 맑고 슬픈 눈을 가진 선주는 또래아이보다 작아 꼬마로 불렸지만, 동무들 앞에서는 명랑하고 상냥스럽고 그림까지 잘 그려서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주의 그림에는 늘 슬픔이 가득 차 있었어요.

 

왜일까요?

 

선주는 전쟁 통에 아빠를 멀리 떠나보내고, 엄마는 서울로 돈 벌러 가셔서 동생 민이·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민이마저 사고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어요. 그 바람에 엄마는 병이 나서 앓아누웠지요. 어른들은 선주에게 비밀로 했지만, 선주는 다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 외롭고 슬픈 선주에게 할머니가 예쁜 아기 고양이를 선물했어요. 선주는 아기 고양이가 자기처럼 엄마가 무척 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하며 비비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불쌍한 마음에 극진히 보살폈어요.

 

비비야, 비비야. 우리 엄마 곁에 날 가게 해 주렴.”

 

선주는 고양이의 귓가에다 입술을 가져가서 속삭이듯이 나직이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그러면 고양이는 귀를 탈탈 털면서 선주의 뺨을 핥아 주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고양이 비비가 없어져 버렸어요. 아빠도 돌아가시고, 엄마도 서울에서 돌아오시지 않고, 민이도 없는데, ‘비비까지 사라져 버렸으니 선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민이처럼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봐 슬퍼하며 애타게 찾는 선주의 마음이 고양이에게 전달되었는지(?) 어느 날 비비가 기적처럼 돌아와 주었어요. 민이도 이렇게 고양이처럼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는데 돌아오지 않네요. 엄마는 언제 돌아올까요? 아픈 엄마도 선주의 기도가 통해서 과연 돌아와 주실까요?

 

박경리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동화를 쓰신 건 몰랐으니까요. 오래 전에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워낙 감동을 많이 받아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다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지가 않네요. 워낙 방대한 양이라 읽기도 쉽지 않은 것을, 어쩌면 그리도 실감나게 쓸 수가 있었을까요?

 

어른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선사할 박경리 작가의 동화 돌아온 고양이를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고 감동을 서로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원혜영 그림 작가의 그림이, 한층 더 선주의 마음에 가까이 가게 해주어서 더욱더 감동을 받게 된답니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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