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강진이

(평범한 삶속의 비범한 행복)

 

 


고개 들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동네 풍경. 옥상 한가운데 삼촌이 돗자리를 깔고 벌러덩 누웠다. 골목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고 까만 하늘에 점점이 뜬 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더 많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쏟아지는 무수한 별 중 보석 같은 내 별 하나 찾아내어 온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순간. 그 영롱한 신비로움은 내 안에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별이 빛나던 여름밤_017)

 


딸아이 방을 노란색 벽지로 도배해 주었다. 이사 갈 빈집을 구경하러 왔던 날, 처음 갖게 된 자기 방이라고 뛸 듯이 좋아하며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입을 맞추던 딸. 앞으로 방 정리는 자기가 다할 거라는 성급한 다짐도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편안하기만 할 이 방 안에서 딸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행복이 이렇게 사고해도 되는가_023)

 


일찌감치 찾아오는 날벌레들이 반갑지는 않지만, 잠자리채 들고 성큼성큼 개천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어느 때 보다도 좋고, 요즘 좀 지친 듯 보였던 남편의 뒷모습도 오랜만에 편안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것저것 제일 많이 먹고 오월 훈풍 나무 아래 달콤한 낮잠까지 즐긴 내가 오늘 이 소풍의 최대 수혜자다.(그 어느 때보다 함께 있다_043)

 


얘들아, 물놀이 하자!” 여름 날 한낮 무더위를 몰아낼 수 있는 커다란 물 대야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였었지. 수도를 틀고 엄마가 긴 호스 끝을 눌러 잡으면 투명하고 맑은 물줄기가 소낙비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어.(보석 같은 물줄기_056)

 


어릴 때 살던 곳은 붉은 기와지붕, 철 대문, 마당, 장독대 위로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며 햇빛과 바람에 빨래가 마르는 단층집이었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연탄을 때고 물을 데워 씻어야했지만, 그만큼 더 살피고 관심 기울여 가꾸며 돌보아야 했다. 그래서 더 그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다.(엄마와 함께_089)

 


집집마다, 온 동네가 숨소리까지도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 한 방에 모여 앉아 채널 다툼 없이 기뻐하고 같이 아쉬워하는 한마음이 되는 시간.(월드컵_239)

 

정겨운 그림과 소박한 글로 삶을 그리는 화가 강진이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임을 느낀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것을 접하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별이 빛나던 여름밤을 읽으며,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마냥 행복해 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르고, 아이가 자신의 방이 생겨서 좋아하는 대목에서는 처음 집 장만하던 날, 학교가 멀어져도 괜찮다며 좋아하던 내 아이들이 생각나 행복했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엄마의 외출에서는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만 보다가, 지쳐 잠들어 버린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다. 지난 시절 찜찜함을 참다못해 세 아이를 맡겨 놓고 사우나에 다녀왔더니. 아이들은 두 손 들고 벌을 서고 있고, 그 옆에서 남편은 TV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기억이 서글프다. 그 후 아이들이 클 때까지 사우나를 포기 했던 아픔도 이제는 아스라이 그리움 속으로 묻혀 버렸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일구어 나가면서 기록해 놓은 소소한 일들이, 그림과 자수와 어우러져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 결코 거창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다.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읽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지난한 그리움이 되고 아련한 추억이 된다. 2002년에 우리 모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이 책과 독자가 만나 결국 하나가 된다. 이렇듯 한 개인의 기록도 꾸준히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화재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어린이 날이라서 편안히 책을 읽으며 쉬고 있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좀 더 많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이들은 이 비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면 모든 아이들이 대우 받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현대사회는 행복한 사람은 더 많이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더 많이 불행하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은 가능하면 천천히 읽기를 권장한다. 먼저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글을 읽으며, 자신이 놓치고 지나쳐 온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자연스레 오래된 사진첩을 열었다.

 

반백년 이상을 살아보니 이젠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 그려진 글과 그림에 더욱 애착이 간다.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나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나 역시 너희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142)

 

내 아이들에게 내가 꼭 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