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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녘에, 손을 잡는다
기타가와 에리코 지음, 이정민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해 질 녘에, 손을 잡는다/ 기타가와 에리코
(톡톡 튀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

운명의 상대인 줄 알았다. (16쪽)
모든 것이 다 멋스럽게 느껴지는 도쿄에서 아사기 소라마메는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둘이서 하나라고 여겼던 운명의 상대인 약혼자 쇼타로부터 파혼을 통보받는다.

책의 첫 문장, 그해 나는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7쪽)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약혼자로부터 파혼당하고 절망에 빠진 소라마메와 오토에게 또다른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린다.
"마음이 담겨 있지가 않아. 네 곡에는 아픔이 없어.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거야." (23쪽) 음악에 진심인 오토는 ‘디카페인’이라는 곡이 있지만, 아직은 혹독한 평가 속에 힘들기만 하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나는 이대로 도망쳐야지, 내일도 네 뒤치닥거리를 할 수는 없잖아, 하고 마음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아마도. (37쪽) 당연히 아직 자신의 앞날도 불투명한 오토에게, 우연히 알게 된 소라마메의 사정이 딱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버겁기만 하다.
그런데 의외로, 소라마메가 파혼당하고 우연이 겹치면서 오토와 만나게 되고…… 그렇게 둘은 같은 하숙집에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서로 사랑인 줄도 모른채…….
그런데 모든 게 너무 쉽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약혼자에게 파혼당한 이력이 있지만 세상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은데, 소라마메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쩐지 모두 착하고 순수하기만 해 다행스럽기 그지없다.
읽으면서 조금 불편한 문장도 있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한 장치겠지만 소라마메를 향해 여자아이를 주웠다거나, 팔아넘긴다거나, 시골 멧돼지라고 비유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멀리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을 슬프게 하거든요.” (79쪽)
그런 반면에, 드라마를 소설화해서인지 툭 내 던져지듯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대사?)들이 날아와 가슴에 콕 박히기도 한다. 그렇게 읽기를 멈추지 못하고 깊이 빠져들어갔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골소녀 소라마메가 살짝 방황하기도 했으나, 마침내 꿈을 찾아가며 고군분투한다. 거기에 오토의 꿈도 한몫을 하는 청춘은 눈부시다.
패스트 시대에 일본 소설은 가끔 추억을 자아낸다. 21세기 같지 않고, 약간 진부한 듯 하면서도 더없이 순수하다.
책을 받는 순간, 이미 감성이 묻어나는 표지와 제목에 벌써 마음은 무장해제 된다. 그러면서 어느 새, 순수한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청춘들은 꿈과 사랑을 어떤 식으로 헤쳐나갈지 궁금해, 살짝 조급해지기도 한다. 소라마메와 오토는 과연 그들이 잡은 손을 놓치지 않고도,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읽다보면 이미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른다. 그렇게 우리는 일본 소설의 감성을 마주하며, ‘해 질 녘 그들이 잡은 손’을 놓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어제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내일을 꿈꾸게 될 것 같다.

그때 직감적으로……. 나는 생각했다. 소라마메의 이 한없는 다정함이 세이라를 상처 입히지 않을까, 하고. 그냥 직감일 뿐. 하지만 적중할 뿐이다. (270~271쪽)
우리는 해 질 녘에 손을 잡았다. 여름의 불꽃놀이를 꿈꾸면서. 그러나 우리에게 여름은 오지 않았다. 우리 둘의 여름은 없었다…….(290쪽)
“지나치게 성실해. 사람은 좀 흔들거리면서 살아야 하거든. 때로는 자신을 잘 속이면서.”(335)
그즈음에는 어떤 이야기든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안타깝고 외로운 일이지만 우리는 점점 변해갔다. (344쪽)
우리의 메시지 전송은 취소되었다. 영원히……. 아름다운 밤에 빨려 들어간 메시지. 영원히 사라졌다. (349쪽)
때로 인생은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빠르게 전개된다. 그동안 이토록 정체되어 있었건만. 그리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잘못 짚었을 수도 있고 터무니없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청춘은 끝나간다……고. (355쪽)
축하해. 하고 읊조렸더니 왠지 먼 사람으로 느껴졌다. TV에 나온다. 연락도 끊어졌다……. 라인 메시지도 오지 않는다. (359쪽)
“심술궂게 말하기는. 여름에는 같이 못 있겠네요. 불꽃놀이 하기로 했는데, 아직 봄인데 벌써 하고 있다니.” (364쪽)
그때 캄캄한 여름 속에서 손을 잡은 것처럼. 우리만의 여름 속에서 손을 잡은 것처럼. 그때 해 질 녘에 손을 잡은 것처럼. (3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