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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작별 인사 -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4년 10월
평점 :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긴 작별 인사/오수영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모두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슬픔을 헤아릴 수 없다. (긴 작별 인사)
≪긴 작별 인사≫는 엄마를 영영 보내고 적은 저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죽음과 상실에 관한 기록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오래도록 아프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평생을 가기도 한다.
나는 엄마의 슬픔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어릴 때 국민(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언니와 오빠를 하나씩 보내면서 상실의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게다가 더 오래 지울 수 없는 것은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상황에서, 남들이 당연히 누리는 평범한 삶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사고로 혹은 스스로 생을 달리한 아픈 경험 때문이다. 슬픔의 깊이는 저마다 서로 달라 가늠하긴 어렵겠지만, 아마 저자도 엄마가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연령임에도 병으로 인해 빨리 떠나보내야 했고, 전염병으로 인해 엄마 곁에 머물 수 없었던 아쉬움으로 인해 상실의 아픔이 더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잠깐씩 잊기도 한다. 그러다 그 일상 속에서 다시 생각이 난다.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먹을 때나 그와 함께 갔던 장소에 가거나……. 옅어져 슬픔의 부피가 조금 줄어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상실의 아픔은 진행 중이다.
특히 겨울을 지나고 봄이 오면 낯익은 어르신들이 모습을 들어낸다. 한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그 중에는 서로 인사를 건내는 이도 있고, 서로 모르지만 낯익은 얼굴도 있다. 그들은 모두 저렇게 봄과 함께 다시 활기차게 일어서 살아가고 있는데, 더 젊은 내 형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감은 절망이 된다.
지금까지 그 절망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며 살았다. 아픔이 다른 이들이 나를 이해하리라는 생각을 나는 감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표출하지 못하고 내면에 쌓여 있는 슬픔은 고통이 된다. 그 슬픔이라는 고통을 저자는 기록으로 견디며 애도한다.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죄책감이었다. 조금만 더 정성을 들였더라면 죽음을 늦출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마음을 떨칠 수 없어서였다.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애도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커다란 위로가 된다. 비록 지금까지 가까운 이들을 떠나 보내지 않았을지라도, 누구나 살아가면서 영원히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수영 작가의 개인적인 글이, 내 마음이 되어 나를 위로해 주는 까닭이다. 그렇게 함께 울며 각자 그리워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일상을 살아 갈 힘을 다시 얻는다.
엄마의 죽음과 상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감당하는 지난한 세월 동안 묵묵히 기록을 남긴 이유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 엄마의 부재와는 아랑곳없이 흘러가는 세상을 한없이 원망할 듯했고, 그 기록을 물성을 띤 사물로 남겨두지 않으면 기억도 무력하게 지워질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내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슬픔을 희석하고, 기억을 봉인하려 애쓰던 모든 일이 결국 애도의 일환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7쪽)
어째서 고인의 물건은 모두 버려야 하는 걸까. 그럼 그 사람을 간직할게 아무것도 없는데.(22쪽)
엄마의 생활 속 메모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30쪽)
내 품에 꼭 안긴 너무 작고 가벼운 엄마의(41쪽)
우리는 이미 우리가 살아온 세상을 벗어나 있었다. 우리는 환자 가족이라는 우리만의 비좁고 어두운 세상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83쪽)
그날이 오면, 나는 비로소 엄마에게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을까. 고통을 몰라주던 그 못난 마음을.(89쪽)
엄마의 웃는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97쪽)
다시 서울로, 일터로 돌아갈 시간이다.(108쪽)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늘 엄마에게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았던 그가 미웠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웅이었지만, 결단이 필요한 시기에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대책 없이 중대한 일들을 선택했던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의 죽음에서 비롯된 허탈과 분노의 화살이 곁에 있던 그를 향해 날아갔다.(138쪽)
당신이 오랜 시간 누워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침대보다는 바닥을 고집하던 마음이 실은 형편을 생각하는 마음이었단 걸 모르지 않았다. 알면서도 바닥이 편하다는 말을 억지로 믿었다.(144쪽)
당신은 나무처럼 이곳에서만 살았다. 스스로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세월의 얼룩이 고스란히 묻어난 장판 무늬가 당신의 나이테처럼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당신의 방은 당신의 유일한 반경이었다.(145쪽)
그날 울지 못한 슬픔이 보잘 것 없는 문장이 되어 흘러 내린다.(1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