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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설은아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평점 :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 설은아 엮음
(우리 삶과 닮아 있는 우리 삶과 닿아 있는 10만 통의 부재중 통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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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가 하지 못한 말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흐르지 못하고 어딘가 묻혀 있는 말들은, 신호가 왔지만 받지 않은 우리의 ‘부재중 통화’일 것이다. 막혀 있는 것들은 잠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잘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처럼 계속 에너지를 세어나가게 만든다. 그래서 그 목소리들이 있는 먼지 낀 창고의 문을 똑똑 두드린 후, 바람 한 줌을 불어 넣어 세상 위로 띄어 올리고 싶었다. 소외된 말들의 소통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이야기는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 소외된 말일수록 더욱 그렇다. 어쩌면 ‘하지 못한 말’ 그 속에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미고 치장한 이야기가 아닌, 거울 앞에 선 맨 얼굴의 이야기들. 머리가 아닌 가슴이 하는 말들. 혼자 끌어안고 있는 이야기들에게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이제는 자유로워지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다.(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122~123쪽)
우리들은 늘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직접적으로 얼굴을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점차 만나지 않고 소통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그 이야기들이 모두 진심이겠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백미’가 아닌 ‘현미’는 얼마나 될까? 하고 문득 궁금해진다.
가끔은 너무 우울해서 물속에 잠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 근데 그게 왜 나쁜 건지 사실 잘 모르겠어. 나는 우울했다가도 괜찮아질 거고 물속에 잠겼다가도 햇빛에 마를 텐데.(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29쪽/28,002번째 통화)
열심히 살았는데 이루어진 건 없었어요. 생각보다. 내일부터는 열심히 살아보지 않으려고 해요.(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33쪽/28,707번째 통화)
있잖아, 아프지 마. 다른 거는 내가 다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아프지만 마.(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41/43,101번째 통화)
저 사람이랑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남들 다 하는 결혼인데 왜 난 이러고 있는 걸까.(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51쪽/59,223번째 통화)
사랑받고 싶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데,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그 애가 너무 부러워요. 그걸 질투하는 제가 너무 미워요.(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62쪽/71,611번째 통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한 마디는 ‘내가 거기로 갈께’라는 말이야. 그 한 마디를 어쩌면 매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86쪽/48,741번째 통화)
그렇게 아파하는 거 보느니 그냥 아프지 말고 가시라고 한 거 죄송해요.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우리 아버지.(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130쪽/6,168번째 통화)
오빠가 잘 지냈으면 좋겠고, 잘 지내지 못했으면 좋겠어. 오빠가 나를 잊지 않기를 바라고 나를 잊기를 바라.(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196쪽/54,527번째 통화)
나는 엄마가 많이 슬펐으면 좋겠어. 나한테 아픔을 준만큼 엄마도 아팠으면 좋겠고. 그래서 내가 너무 미안해.(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202쪽/48,502번째 통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 바라봐 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야속해, 때론 잘못되기를 바라다가 또 한 편으로는 축복하며 미안해하기도 하고…. 고통스런 부모님 모습이 안타까워 차라리 빨리 가시라고 한 게 너무 죄송해 어쩔 줄을 몰라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이룬 게 너무 미미한 것 같아 좌절하고, 사람이기에 누구나 맑았다가 흐렸다가 하는 게 뭐 어떠냐고 반박도 한다.
‘사실 진정 내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 뿐이구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 또 하나는 스스로를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나머진 모두 장식일 뿐이구나.’(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213쪽)
예전에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들이 쓴 편지에는 ‘사랑’, ‘어머니’, ‘용서’ 등의 단어 들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또 그래서 미안하다. 결국 우리들은 날마다 사랑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에 남겨진 이야기들은 그다지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더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된다. 흔히 SNS에서 접하는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심이 와 닿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 중에는 내가 하고 싶은데, 못다 한 말들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하고, 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다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1522-2290을 눌러 보았다. 신호음만 듣다가 마음속에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아 차마 쏟아내지 못하고, 그냥 살포시 끊어 버리고 나서야 혼자서 중얼거렸다. 내 속에 있는 ‘도정’하지 않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1522-2290 은 현재 진행 중인, 언제나 접속할 수 있는 전화번호입니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