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의 삶 -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고 홀로 서기 위한 치유가이드
사브리나 폭스 지음, 김지유 옮김 / 율리시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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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의 삶 / 사브리나 폭스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고 홀로 서기 위한 치유 가이드)

 

 



이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작별, 슬픔, 실패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별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죠. 어렸을 때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면서 성장했듯, 이별 없이는 성장도 없어요. 꼭 익숙하고 오래 된 것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삶은 아니니까요.(서문_8)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라도 이별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모두가 크고작은 이별을 겪으며 아파하고, 때로는 오히려 그로 인해 성장하기도 한다. 심리상담가로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 조차도 이별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이별할 때마다 치른 대가만큼 배워가며 마침내 영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간다. 그렇게 자신이 겪은 그 어려운 과정들을 이야기하며, 어디에서 잘못되었고 무엇으로 인해 성장해 나갔는지 진솔하게 풀어 놓는다. 많은 이들에게 이별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이별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요. 슬프고, 걱정하고, 상처입고, 화를 내고, 외로워하고, 겁먹고, 망가지고, 복수심에 불타고, 상실감을 느끼고, 충격받고, 항거불능에, 무력해졌다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그것에서 벗어나고, 안도하고, 자유를 느끼다, 결국 다시 행복해지곤 하니까요. 이별할 때의 이런 기분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이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이기도 합니다.(17)

 

이렇게 이별에 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또한 워크숍과 감정코칭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의 실제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이별 전· 이별하는 도중· 이별 후의 시간을 자연스레 이야기하며, 관계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풀어 나간다.

 

저자인 사브리나가 만나고, 헤어지고, 고민하며 터득한 경험들을 따라가다보면, 너무도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별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에 다양한 실제 사례들이 생생하게 나와 있어 우리들이 현재 처한 현실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서 자신에게 적용이 가능하다. 저자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진솔하게 답하다보면 어느 덧 나를 찾는 시간과 맞닦뜨리게 될 수밖에 없다.

 

이별이 실패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요? 그 답은 선택입니다. 상대를 내 짝으로 선택했던 것처럼, 이제는 다시 혼자가 되기로 선택한 거예요. 비록 지금은 헤어지지만 한때는 친밀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 노력이 어느 정도 통했다면 성공이죠. 사람들은 결혼이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울메이트와 사랑하고 그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상적인이미지는 사실 종교적인 규범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거든요.(182)

 

30년이 넘는 세월을 남편과 살아오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피해 버린다. 지금도 가족들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동문서답을 하거나 말문을 닫아버린다.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할 일들은 아예 대화를 하지 않고, 남의 소소한 이야기는 잘도 한다. 지금당장 부딪힌 일을 해결하려면, 대화와 의논이 절실한데,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혼자 해결하고 만다. 그러니결국은 거기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이다.

 

지난번에 둘째가 한 이야기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엄마는 혼자 사는 것 같아. 혼자 살면 편하기나 할텐데 혼자 사는 것 같으면서, 혼자사는것만큼이 아니라 할 일은 또 다해야 하니까 참 대단한 것 같아

 

무슨 큰 의미가 있어서 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니 궂은 일은 예나 지금이나 내 차지다. 자신은 일을 해서 우리를 벌어먹여 살린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뭐 노는 사람인가? 전업주부로 아이 셋을 키우긴 했어도, 아이들이 점차 자라면서 쪼들리는 살림에 보태려고 집안일 하면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금도 정작 집안일은 혼자 다 하면서, 정규직은 아니지만 전일제로 일하고 있는데…….

 

물론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혼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들이 없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면, 아니라는 대답이 즉석에서 나온다소소한 것은 모두 그만두고라도, 남편은 나를 발전시켜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 유효 기간은 익히 알다시피 그다지 길지 않다. 그러니 둘이 만나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고, 발전할 수 있게 서로서로 디딤돌이 되는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이별을 치르지 않고 순탄하게 살면 좋겠지만, 삶을 살아가노라면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혹시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면, 계속 가기보다는 되돌릴 수 있을 때 되돌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너무 멀리 가 버리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별에는 항상 선택이 동반됩니다. 저희 부부가 이혼할 때도 그랬어요. 중재인이 있긴 했지만 그분이 할 일은 별로 없었어요. 분명히 짚고 넘어갈 부분들에 대해 우린 이미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거든요.(296)

 

이별 앞에서 분노가 먼저 앞서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라, 헤어지면서 차분하게 대처 하기는 그리 말처럼 쉽지 않다. 나라마다 정서도 다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는 없는 울분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아직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렇게 오래 슬퍼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구나, 싶으면 힘들어집니다. “너도 네 인생 살아야지!”, “너무 깊게 파고 들지마”, “다시 힘을 내야 해라는 말들이 지금 슬퍼하는 사람 귀에는 어떻게 들릴까요?(324)

 

저자는 슬픔에도 단계가 있는데 아무리 좋은 뜻이 있다해도 무조건 슬픔을 딛고 일어나라고 하는 것은, 준비가 되지 않은 이에게는 절대 위로가 되지 않으니 슬픔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를 당부한다. 섣부른 조언은 오히려 당사자에게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대로 이별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마침내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면 나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이별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이별에도 의식이 필요하다고 슬그머니 제안한다.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당연히 우리 몫입니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사회적으로 기대되거나 허용되는 것이냐가 아니라, 건강한 관계인지 아니면 해로운 관계인지, 혹은 비밀스러운 관계인지, 공개적인 관계인지에 대한 것이죠. 비밀이 생기면 상대를 속일 수 있는 여지가 더 늘어나거든요.(306)

 

그 사람과 헤어져야 마땅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헤어졌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지요. 그럼 그 관계가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겁니다.(308)

 

새로운 관계에 집착하게 되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기 쉽습니다. 지난번 관계에서 분명히 배운 부분이지만, 아직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갈 길이 멀어 보일 때도 있어요. ‘지금도 그렇게 나쁜 건 아냐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도 있고, 호르몬이 작용하기도 하죠. 반면에 영적으로 더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 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좀 더 쉬워질 거예요.(342)

 

관계라는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우선 매듭을 관찰해야 합니다. “, 여기 고리가 있네. 여기는 꼭 풀어야겠다. 이 부분은 돌아가야겠구나……,” 이런 식으로 꽁꽁 묶인 매듭을 살펴보는 것이죠. 그 과정이 쉽지 않아 좌절할 때도 있을 거예요. “못 푸는 거 아냐? 왜 이렇게 묶어 놓은 거지? 누가 이렇게 해 놓은거야?”라며 단단히 묶인 매듭을 그냥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겠죠. 그럴 때면 잠시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풀다보면 어느 새 매듭은 풀려 있을 거예요.(19)

 

우리 모두가 이별하지 않고 처음에 약속한 대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하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그렇게 참고 살 수는 없다. 삶의 일부인 이별도 필요하다면 강행하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외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별도 선택인 만큼, 이 책의 지침대로 따라하다 보면 조금 더 적게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혹시 지금 아픈 이별을 눈 앞에 두고 있거나 미래에 이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독일 최고의 심리상담가가 30년간 상담 현장에서 체험한 보통 사람들의 아프고 치열한 이별 이야기를 지침서 삼아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태그#이별후의삶#사브리나폭스#율리시즈#심리학#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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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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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시를 외우고 또 외우던 시절이 생각난다. 역시 소월이다. 그 시가 천경자 화가의 그림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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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천경자 시그림집
김소월 지음, 천경자 그림, 정재찬 해제 / 문예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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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김소월시, 천경자 그림

(한국의 대표 시인과 화가의 아트컬래버!)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먼후일, 못잊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개여울, 초혼,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등등. 시를 잘 몰라도 웬만하면, 김소월 시 한두 편 정도는 거뜬히 외우던 시절이 있었다.

 

김소월 시 150, 천경자 그림 34. 어울릴 듯? 혹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한국의 대표 시인 김소월의 시와 한국의 대표 천경자 화가의 그림이 만났다. 거기에 진달래꽃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낱낱히 분석한 정재찬 교수의 해제까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슬픈 화자들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자기 탓이 아닌데, 자기 뜻과 다르게, 이미 벌어진 상황을 수습해야하는 존재들, 상황을 극복할 방법론도 보이지 않은 채 속수무책 주저주저 하는 사이, 상황은 운명처럼 굳어져, 어느 순간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인내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의 시 속 주체들은 그저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설워한다. 개여울의 당신을 보라.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는 약조만 믿고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는다. 그런가하면 예전엔 미처몰랐어요는 깨달음이 늘 뒤늦게 찾아오는 인생의 설움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워할 줄이야,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줄이야, 예전에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아쉬움과 설움, 그것이 한이 아니겠는가.(14)

 

이제 진달래꽃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이 시의 주제를 이별의 정한이라 했지만, 그 이별 앞에서 이 시의 화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는 자세로 아픔을 받아들임은 물론, 나아가 꽃을 뿌려 임의 앞길을 송축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를 일컬어 전통적 인고의 여인상 운운하며 가르쳐왔지만, 나는 그것에는 끝이 없는 법이며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사랑이 끝난 자리에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만 남을 뿐이다. 반어니 역설이니 하는 것도 걱정과는 거리가 먼 지적인 수사인 것을. 그렇다면 이는 어른스러움이라 함이 맞지 않겠는가.(15~16)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상상 속 관념이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외국의 어느 아름다운 도서관을 구경하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바닥을 가만 들여다보니 보도블록 하나하나마다 그 도서관 건립에 기부한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는 게다. 그걸 의식하자, 이방인인 내가 차마 밟기 미안해졌다. 그래서 애써 사뿐히 밟으려 했다. 성공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다음 블록도 사뿐히 밟으려 발을 떼는 순간, 좀 전에 사뿐히 밟은 그 블록을 나도 모르게 그만 짓밟게 된 것이었다. , 소월은 지금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을 찍고 있구나 실감한 순간이었다. 정성을 다 바쳐 뿌린 영변 약산 진달래꽃을 그저 휘휘 스치듯 밟으며 지나가지 말아달라고, 지난날 우리의 추억을 곱씹듯 하나하나 또박또박 밟으며 가달라는 거구나 싶었다. (19)

 

이제 편견을 버리고 자신만의 감정으로 그의 세계로 잠시 떠나보기로 한다.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33)

 

예전에는 집집마다 한두 편씩, 시를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어두고 오며가며 외고 또 외웠다. 그게 그 때의 멋 혹은 낭만이었다고나 할까? 먼 후일도 내겐 그런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대로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119~121)

 

 

다른 구절은 다 잊어도,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이 구절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만큼 이별을 겪고 힘들 때 누구나 한 번쯤 읊으며 자신의 아픔을 견디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랴?(166)

 

부부

 

오오 아내여, 나의 사랑!

하늘이 묶어준 짝이라고

믿고 삶이 마땅치 아니한가.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 이상하고 별난 사람의 맘.

저 몰라라, 참인지 거짓인지?

정분으로 얽은 딴 두 몸이라면

서로 어그점인들(어긋나게 나가는 것인들) 또 있으랴.

한평생이라도 반백 년

못 사는 이 인생에!

연분의 긴 실이 그 무엇이랴?

나는 말하려노라, 아무러나,

죽어서도 한 곳에 묻히더라.(233)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257)

 

 

그렇게 우리들은 소월의 시를, 시 자체로 혹은 노래로 들으며, 또 따라하며 고달픈 인생을 위로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니 어찌 황혼에 다시 만난 그의 시를, 기쁨으로 반가이 맞이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1,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2,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3,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4,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5,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까지. 책을 펼쳐 시를 읽다보면, 1장에서 5장까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시인의 시가 지난날의 추억까지 함께 불러온다. 또한 시인의 150편의 시를 읽으며, 알고 있던 시는 그리움으로 다가와 애틋하고, 그동안 비교적 많이 접하지 못했던 시는 새로움으로 겹쳐진다.

 

 

올해따라 유난히 빨리 져버린 진달래꽃을 아쉬움으로 보내며, 왜 다시 진달래꽃인지 시를 읽으며 스스로 터득하게 되겠다. 김소월 시인과 천경자 화가의 시와 그림의 만남 또한 절묘하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이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36)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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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 - 노인 조현증 엄마를 응시하고 마주보고 살아가는 용기
유혜진 지음 / 알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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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 / 유혜진

(엄마를 돌보며 나이 듦과 노년의 의미를 묻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이상하다. 마치 혼자 딴 세상을 사는 것처럼,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저만치 다른 세상에 가 있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얼마 전부터 이명으로 인해 먹은 약에 신경 안정제도 들어 있었는데 그게 문제인가? 아니면 ??

 

가족들은 이것저것 유추해 보지만 역시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결국 장녀인 저자는 워킹맘인 동생에게 엄마를 맡길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모시고 병원을 다녀 보지만,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면서도, 엄마이기에 외면할 수 없어 나름대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애를 쓴다.

 

이 책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엄마의 조현증이 발병하고 2년이 흐른 후의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언제 또 재발할지 모르고, 재발하면 처음보다 더 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겪어 온 일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지나온 길을 더듬어간다.

 

엄마는 방금 전 다 들은 내용을 다시 묻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자신의 궁금증에 대해 누군가의 이해할 만한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의 일종의 독백과도 같았다. (161)

 

누구나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하다. 평범하려 애를 많이 쓰거나, 특별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그 평범함과 특별함에 맞는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둘 중 한쪽으로 치우친 존재가 되지 않는다. (241)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조현병 환자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환자이기를 멈춘다고 진술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더라도 아무런 조건을 붙이지 않고 환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면서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이다.(259)

 

고통의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공연히 상처를 들춰서 덧대는 일인지, 아니면 환부의 원인을 진단하고 올바로 처치해서 근본적인 치료를 완성하는 일인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20)

 

점점 나이 들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그에 저항해서 조금이라도 노화를 지연하려는 데 지나치게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30)

 

어쩌다 나이 듦이라는 자연스러운 만고불변의 섭리가 늦추고 가리고 고쳐야 할 대상이 되었을까. 같은 인데도 어째서 주름 하나 없이 활력 넘치는 젊은 날의 나는 사랑하고 그리워하면서, 세월의 파도를 맞으면서 꿋꿋하게 시절들을 겪어 낸 나는 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추하게 여길까.(30~01)

 

2년 전에 엄마한테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 동분저주하며 병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한 행동들과 자신의 심리를 솔직담백하게 기록해 나가면서 노년의 삶과 나이 듦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도 함께 찬찬히 기록해 나간다.

 

저자는 엄마의 상처를 깊숙이 묻어 버리지 않고, 오히려 끄집어 내어 재발하지 않고 제대로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대부분의 정신과 질환의 치료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당장은 괴롭더라도 직면하여 내면의 상처를 꺼내어 치유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어쩌면 살아가면서 많은 부분, 가면을 쓰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쁜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기 위해서 저절로 그렇게 사회화되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어느 덧, 지금까지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시점에 이르렀다. 가슴 아픈 소식도 자주 들려온다. 엄마의 조현증을 따라가다보면, 비록 엄마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조차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된다.

 

이제 우리는 내면의 소리에도 좀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나무는 나이테로 말하고, 조개는 껍데기를 보면 살아온 내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도 주름으로 말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싶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늘어나는 주름 조차도 자연스럽게 사랑이나 연민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이 책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저자의 엄마가 겪은 노인 조현병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저자 또한 그런 엄마를 따라가면서 그로 인해 나이듦과 우리의 삶, 또 죽음에 관하여 성찰해 나감으로서 독자들에게도 같은 고민을 해보게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자연스레 삶과 죽음· 노화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인간에 대한 성숙의 과정을 살펴보고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조현병 환자는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환자이기를 멈춘다는 융의 말이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모순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인간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공감받으며 살아야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건 나이와 상관 없으리라 생각된다.



 

*조현병: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와해된 행동, 정서적 둔마 등의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질환으로, 일부 환자의 경우 예후가 좋지 않고 만성적인 경과를 보여 환자나 가족들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최근 약물 요법을 포함한 치료법에 뚜렷한 발전이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에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조현병 [schizophren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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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나를 수놓은 삶의 작은 장면들
강진이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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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강진이

(평범한 삶속의 비범한 행복)

 

 


고개 들면 눈에 가득 들어오는 동네 풍경. 옥상 한가운데 삼촌이 돗자리를 깔고 벌러덩 누웠다. 골목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고 까만 하늘에 점점이 뜬 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더 많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쏟아지는 무수한 별 중 보석 같은 내 별 하나 찾아내어 온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순간. 그 영롱한 신비로움은 내 안에 또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냈다.(별이 빛나던 여름밤_017)

 


딸아이 방을 노란색 벽지로 도배해 주었다. 이사 갈 빈집을 구경하러 왔던 날, 처음 갖게 된 자기 방이라고 뛸 듯이 좋아하며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입을 맞추던 딸. 앞으로 방 정리는 자기가 다할 거라는 성급한 다짐도 했다. 이제는 익숙해져 편안하기만 할 이 방 안에서 딸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행복이 이렇게 사고해도 되는가_023)

 


일찌감치 찾아오는 날벌레들이 반갑지는 않지만, 잠자리채 들고 성큼성큼 개천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어느 때 보다도 좋고, 요즘 좀 지친 듯 보였던 남편의 뒷모습도 오랜만에 편안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것저것 제일 많이 먹고 오월 훈풍 나무 아래 달콤한 낮잠까지 즐긴 내가 오늘 이 소풍의 최대 수혜자다.(그 어느 때보다 함께 있다_043)

 


얘들아, 물놀이 하자!” 여름 날 한낮 무더위를 몰아낼 수 있는 커다란 물 대야에 온 가족이 마당에 모였었지. 수도를 틀고 엄마가 긴 호스 끝을 눌러 잡으면 투명하고 맑은 물줄기가 소낙비처럼 머리 위로 쏟아졌어.(보석 같은 물줄기_056)

 


어릴 때 살던 곳은 붉은 기와지붕, 철 대문, 마당, 장독대 위로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며 햇빛과 바람에 빨래가 마르는 단층집이었다. 화장실도 불편하고 연탄을 때고 물을 데워 씻어야했지만, 그만큼 더 살피고 관심 기울여 가꾸며 돌보아야 했다. 그래서 더 그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다.(엄마와 함께_089)

 


집집마다, 온 동네가 숨소리까지도 하나로 모아지는 순간. 한 방에 모여 앉아 채널 다툼 없이 기뻐하고 같이 아쉬워하는 한마음이 되는 시간.(월드컵_239)

 

정겨운 그림과 소박한 글로 삶을 그리는 화가 강진이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그림을 보고 지금이 제일 행복한 때임을 느낀다는 말을 적어 놓은 것을 접하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별이 빛나던 여름밤을 읽으며, 밤하늘에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마냥 행복해 했던 어린 시절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르고, 아이가 자신의 방이 생겨서 좋아하는 대목에서는 처음 집 장만하던 날, 학교가 멀어져도 괜찮다며 좋아하던 내 아이들이 생각나 행복했다.

 


아이 둘을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하는 엄마의 외출에서는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지켜만 보다가, 지쳐 잠들어 버린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정겹기까지 하다. 지난 시절 찜찜함을 참다못해 세 아이를 맡겨 놓고 사우나에 다녀왔더니. 아이들은 두 손 들고 벌을 서고 있고, 그 옆에서 남편은 TV삼매경에 빠져 있었던 기억이 서글프다. 그 후 아이들이 클 때까지 사우나를 포기 했던 아픔도 이제는 아스라이 그리움 속으로 묻혀 버렸다.

 

작가의 어린 시절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을 일구어 나가면서 기록해 놓은 소소한 일들이, 그림과 자수와 어우러져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빛을 발한다. 그렇다고 이 책에 결코 거창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다.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읽는 이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지난한 그리움이 되고 아련한 추억이 된다. 2002년에 우리 모두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이 책과 독자가 만나 결국 하나가 된다. 이렇듯 한 개인의 기록도 꾸준히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여기저기 화재 소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어린이 날이라서 편안히 책을 읽으며 쉬고 있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좀 더 많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아이들은 이 비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면 모든 아이들이 대우 받고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또한 지금의 현실이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현대사회는 행복한 사람은 더 많이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은 더 많이 불행하다는 구절이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은 가능하면 천천히 읽기를 권장한다. 먼저 그림을 감상하고 나서 글을 읽으며, 자신이 놓치고 지나쳐 온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자연스레 오래된 사진첩을 열었다.

 

반백년 이상을 살아보니 이젠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에 그려진 글과 그림에 더욱 애착이 간다.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나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나 역시 너희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142)

 

내 아이들에게 내가 꼭 해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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