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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하우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빅토리아 벨림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9월
평점 :
루스터 하우스 / 빅토리아 벨림
2014년은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진 해였다. 그해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 덕분에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내 뿌리가 고향과 얼마나 깊게 이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은 세계 질서가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 국가 간의 합의가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경계 지역”에 위치한 탓에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복잡하게 흘러왔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쪽 아니면 저쪽의 영향을 받고 마는 것이다. 다양한 생각을 활발히 주고 받을 수도 있지만, 2014년 같은 비극을 겪게 되기도 한다.(프롤로그_13~14쪽)
내가 보는 소비에트 연방이 1980년대 경제 몰락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재앙이라면, 큰아버지의 소비에트 연방은 1950년대 경제 호황과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었다. 그러니 내 눈에 경악스러운 소비에트 연방의 면면이 큰아버지에게는 그저 감사하게 비췄을 것이다.(20쪽)
우리 가족은 집에서 주로 러시아어를 썼고, 아샤 외증조할머니와 세르히 외증조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했다. 두 분은 작은 마을에 살고 나머지 가족들은 키이우에서 살았으니 민족이 달라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련 내에서 도시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작은 마을 사람들은 공화국 토착 언어를 쓰는 경향이 있었다. 러시아인인 아버지와 블라디미르 큰아버지는 우크라이나어를 알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민족시인 타라스 셰우첸코의 시를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보다 더 잘 암송했다.(26쪽)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충돌은 누가 어디를 지배하느냐에 관한 것이지 민족이나 언어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친러시아, 친우크라이나, 러시아어 사용자, 친유럽 같은 꼬리표는 정치적인 입장을 충분히 나타낼 수 없었다. 난 생전 처음 어느 편에 서서 나를 규정해야만 했는데, 내 정체성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요소를 끄집어 내 말할 수가 없었다. 정치적 입장도 확실히 세울 수 없었지만, 소련 쪽으로는 절대 기울어지지 않았다.(30쪽)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학살 뉴스를 배경으로 과거의 선명한 기억들이 밀려들자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을 되살려 보려 애썼다. 어디까지 고통을 참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욱신거리는 타박상 부위를 계속 눌러대는 사람처럼, 마이단 광장의 총격은 우크라이나를 멀게만 느꼈던 내 착각을 박살냈다. 2014년 3월 1일 러시아 의회의 허가를 받은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군사력 사용을 결정하자 전쟁에 관한 내 착각마저도 무너졌다. 전쟁이 내 삶으로 다가오고 있었다.(31쪽)
다닐 아저씨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2014년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전쟁 소식을 신문으로 읽으면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몸이 떨렸다. 마샤 아주머니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었다. 전쟁이 현실로 다가올수록 내 목구멍 안에서 울음덩어리가 느껴졌다. 총격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전쟁은 이미 현실이 됐다. 곧 총격이 시작됐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러시아가 크름 반도를 병합한 후 우크라이나 동부의 몇몇 도시들은 키이우 정부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했다. 밤사이 새로운 공화국이 등장했고 여기저기서 새로운 전투가 벌어졌다.(33~34쪽)
우한에서 시작된 코비드-19가 사그라질 줄 모르고 있어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을 무렵,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운이 감돌더니 결국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일어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체에서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러시아 국적의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에는 소련의 제도권 교육체제에서 학교를 다녔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뒤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거기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벨기에 브뤼셀에 정착해 프리랜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보다는 러시아를 더 잘 알기에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으면 아버지 국적을 따라 러시아라고 대답하게 된다. 그러던 그가 2014년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자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저자가 찾아나선 뿌리 찾기는 작은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증조 할머니와 할아버지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 조상들을 더듬어 가는데, 개인사이지만 지리적으로 분쟁 지역에 속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 속에서 지금 왜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는 분명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버랩되는 부분도 꽤 있다. 러시아 국적이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더 오래 살았고, 현재는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큰아버지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미국을 경유해 현재는 브뤼셀에 정착해 살고 있는 저자는, 사상적으로 아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지금 두 토막으로 갈라져 있고, 일본의 식민지 시절을 겪고도 부족해 같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서로 반분되어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개인의 발자취도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처음엔 제목인 ‘루스터 하우스’가 가족들이 지내온 집의 상징적인 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예전 KGB와 관련된 건물로 현재에도 존속하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개인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그 안에 역사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루스터 하우스≫는 자신의 뿌리찾기를 하면서, 몰랐던 가족들의 인생사를 접하게 되고……. 가족들에 관해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부분들도 이해하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다. 개인사이지만 그들의 아픔을 따라가다보면 많은 부분이 역사와 겹쳐져 있다.
어떤 부모한테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기도 하는 것처럼, 어느 지역· 어느민족·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절로 운명지어지는 것 또한 거부할 수 없음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때로는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저자가 우크라이나로 달려가는 모습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제대로 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이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을지도 모른다. 망설이지 말고 각자의 뿌리를 찾아 떠나보자. 그 안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신 뿐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족· 잃어버린 역사등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누굴 고발하려는 것도, 면죄를 받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진실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274쪽)
1923년 소비에트의 우크라이나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관공서에서는 우크라이나어 사용이 의무화됐고, 농부들에게도 공부할 기회가 열렸다. 레닌의 비전 중 혁명을 다른 나라로 수출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었고 공산주의 우크라이나를 본보기로 삼기로 한 것이다.(279쪽)
서류의 앞부분을 읽을 때 나는 빠르게 내용을 확인하느라 선을 그어 지우고 다시 쓴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예를 들어, 원래는 니코딤이 가담했다고 하는 반혁명 조직이 공산당과 소비에트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트로츠키주의자의 음모의 결정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트로츠키주의자 음모’부분을 줄로 긋고 다른 필체로 ‘우크라이나 독립 국가를 만들려는 부르주아-민족주의자 조직’이라고 적어 놓았다.(293쪽)
‘제 남편 니코딤 베레즈코는 1900년에 마이아치카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전 중에 적위대에 들어간 경력이 있고, 최근까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의 로주바크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했습니다. 1937년 8월 24일에 폴타바 지역 경찰들이 와서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그이를 데려갔습니다. 저는 남편을 만나려고 폴타바에 갔는데 그쪽에서는 남편을 키이우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 후로 남편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남편을 왜 데려갔는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제발 알려주세요.(296쪽)
소비에트 시스템의 가장 유해한 점은 위선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다들 말과 생각이 따로 놀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살아남고 싶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었다.(297쪽)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은 드러내지 않으면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먹는 블랙홀이 되고 만다. 정신적 충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충격을 둘러싼 중력은 너무나 강해서 근처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305쪽)
큰아버지와 얘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내가 두려워하는 것과 맞서야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화해해야 한다.(316쪽)
☞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 |
러시아가 2014년 3월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러시아가 2014년 3월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을 말한다. 당시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반도는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정하는 주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찬성이 나오자 러시아에의 합병을 결정했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반도의 러시아 연방 병합안에 최종 서명하면서 합병 절차가 완료되었다. 이에 국제적 비난이 일어난 가운데, 유럽연합(EU)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이르기까지 |
2013년 1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2014년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과 야권 주도의 임시정부 설립으로 이어지자, 친러시아 지역인 크림반도에서는 임시정부를 반대하는 집회가 계속됐다. 이에 러시아군이 2014년 2월 27일부터 무장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의 주요 시설들을 점령한 데 이어, 3월 1일 러시아 상원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크림공화국에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면서 사실상 이 지역은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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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크림 의회가 3월 6일 러시아와의 합병을 결의하고, 합병에 대한 찬반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3월 11일에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하여 크림 공화국을 결성하고, 16일 러시아와의 합병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 96.6%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러시아 합병을 추진하게 되었다. 크림 의회는 3월 16일 독립국가를 선포하면서 유엔과 각국에 이를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그리고 3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림공화국의 독립국 지위를 승인하고, 3월 18일에는 크림반도 총리와 시장과 함께 크림공화국 합병조약에 서명했다. 이후 3월 20일과 21일 러시아 상하원에서 합병조약 비준안이 차례로 통과되고, 푸틴 대통령이 3월 21일 크림자치공화국의 합병 문서에 최종 서명하면서 합병에 따른 모든 법률 절차가 마무리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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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러시아 합병을 결정한 크림반도의 투표는 크림자치공화국 의회 결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은 "영토 변경은 (주민투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우크라이나 헌법 조항에 따라 이는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국민의 기본 권리와 자결 원칙의 존중"을 규정한 유엔 헌장을 내세워 해당 투표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다. |
크림반도 | 출처: 시사상식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2014)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