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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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역 토건사업은 지역개발과 공공편의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개발이 언제나 정당하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도 사용하는 이가 없으면 지역 흉물이나 다름없고, 의도와 다르게 나쁜 결과만 나온다면 쓸때없이 돈을 들여 지역파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역개발이 진행될 때 찬성과 반대가 대립하고 만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닌, 그 개발을 주도하거나 연관 있는 외부인들에게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다.

 창백한 잠은 지역개발 문제 속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통해 이권이라는 게 얼마나 지역 공동체를 쉽게 망가뜨리고, 또 지역 소도시에서 생각보다 엄청난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해안마을 다카하마의 폐허를 촬영하러 온 카메라맨 다쓰미 쇼이치. 그는 다카하마 호텔의 폐허 내부를 촬영하던 중, 다카하마의 저널리스트 아이자와 다에코의 시체를 발견한다. 다에코의 전 남편이자, 지역신문기자인 안비루를 통해 다에코의 죽음이 다카하마의 공항건설 문제와 관련있어 보인다는 말을 듣게된 다쓰미는 과거 탐정 일을 한 경력 때문인지 사건조사에 흥미를 보이게 된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던 중, 다쓰미의 동료가 다카하마 호텔 폐허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하는데...

 탐정 역할인 다쓰미를 보면 심각한 괴짜이거나,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달지 않은 꽤 현실에 있을 법한 탐정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조사를 하면서도 개인적인 내적갈등이 상당하다는 걸 볼 수 있다. 중요 질문이지만,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 사진 찍으러 와서 갑자기 탐정 일을 해도 되는가. 이런 걸 몰래 알아봐도 되는 가. 등등. 이러한 모습을 보며 탐정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사실, 탐정이기 이전에 다쓰미는 많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도시 사람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쫓지만 현실의 벽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먼저 느끼며 고민하는 모습. 여기에 그의 과거와 폐허를 쫓아다니며 촬영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과거의 흔적 속에서 형체가 불분명한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처럼 보였다.

 지방 출신이라 지역 소도시에서 사람관계가 경우에 따라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대부분 겉으로 봐서는 직업적으로나 생활하는 모습으로나 아무런 관계가 없어보여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든지, 옆집 아는 사람, 친구의 선배 같은 경우로 연결된 경우가 많다. 해안마을 다카하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도시에서 큰 사건이 벌어지면 난감한 게 한 둘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 간에 발생한 일 만큼 껄끄러운 건 없을 테니까.

 개발 문제와 이권 다툼 속에서 돈이라는 게 얼마나 인간 관계를 망가뜨리는지 나타나 있었다. 가까운 사이라도 돈 문제 때문에 쉽게 파탄나는 일이 많은데 지역사회라면 얼마나 심각할까. 사건의 반전을 생각해 보면 돈이 단순한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옛 추억까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릴 정도니. 이런 사건의 형태를 보며 지역에 널린 폐허가 단순히 버려진 공간이 아닌, 돈이 쓰이고 남겨진 찌거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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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주영아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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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집트하면 다들 떠올리는 게 많다. 대표적인 게 피라미드, 미라, 스핑크스, 파라오 정도일 것이다. 서양에서 로제타석을 발견한 이후로 쭉 이어진 관심이니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집트에서는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하면 닌자, 사무라이만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오리엔탈에 입각한 편견적인 시선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서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이집트학적인 것이 주 내용이 아니다, 피라미드나 미라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퀸은 이러한 시선을 가지고 자극적이라 평가했다. 생각해보면, 서양 입장에서 미라나 피라미드의 신비로움이 단순히 호기심 보다는, 이질적인 문화에서 온 자극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엘러리 퀸은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라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집트학을 띄우기 보다, 단순히 자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라 했다. 이건 확실히 자극적인 내용을 미려하게 포장하는데 성공적이라 하고 싶다. 이집트라는 자극적인 학문으로 상당히 잔인한 사건에 쉽게 독자를 이끌었으니.
 퀸 경감과 함께 시카고에 있던 엘러리 퀸은 웨스트버지니아의 아로요 마을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십자가 살인사건 소식을 접한다. 곧장 혼자 아로요 마을에 가지만, 뚜렷하지 않은 유력 용의자의 흔적만 발견하기에 그친다. 이후, 은사인 야들리 교수의 연락을 받고 뉴욕 외곽에 도착한 엘러리 퀸은 또 다시 십자가 살인현장을 발견하는데...
 그리스 관까지 나왔던 국명 시리즈 사건 중, 가장 잔인한 사건이다. 거기에 각종 주변요소에서 자극적으로 보일 것들까지(어디까지나 그렇게 보인다는 정도다. 작가가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있어서 왜 자극성을 띄우기 위해 제목이 이집트 십자가인지 알 수 있다.
 서문에서도 이집트학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사전에 방지한 것에 이어 작중 곳곳에서도 이집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집트광에, 사건현장에 남겨진 이집트 상징으로 보이는 흔적 등등.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이집트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는 커녕, 오히려 사건과 관련없고 지나친 과대해석이라며 비판한다. 실제로 가면 갈 수록 이집트적인 요소로 보인 것들은 그냥 무대장식 수준이고, 사건의 양상은 이집트랑 전혀 관련없이 진행된다.

 이민 사회라는 미국의 환경에서 벌어지는 유럽인들 간 범죄라는 점에서 묘하게 국제범죄 성향을 띈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닌 게 사건 관계자들에 관한 정보가 미국 내에 전무해서 유럽에 문의할 정도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 원인도 유럽에서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의 이민사회가 가진 이면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작중에서는 이러한 점이 크게 부각되어 있지는 않지만, 엘러리 퀸이 살던 당시에도 이민자들이 벌이는 범죄 문제가 있어서 소재로 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배경도 뉴욕에만 한정되어 있던 전작과 달리 웨스트버지니아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일종의 활극 느낌도 있었다. 분량에서 큰 부분도 아니고, 크게 부각되지도 않지만 나름 올드한 분위기를 풍기는 스릴이 있었다고 본다. 1930년대 유행하던 지붕없는 듀센버그를 몰고 폭우 속의 도로를 질주하는 엘러리 퀸의 모습이란. 멋질 것 같기도 하지만 작중 서술로는 기괴하다니, 기괴하다고 해주어야 되나.
 피투성이 살인현장과 곳곳에서 흔적이 발견되지만 정작 모습은 전혀 들어나지 않는 범인으로 인해 도무지 사건의 형태를 알아보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대단원의 종장까지 도달한다면 자극적인 분위기 속에 숨겨진 사건의 진실이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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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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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된 것은 손때가 많이 묻는다고 들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걸 사용하던 사람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일종의 살아있는 추억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이렇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낡아서 우중충하다, 더럽다, 망가졌다 등등. 그냥 물건이라면 버리든 계속 사용하던 선택할 수 있지만 집이라면 말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웬만하면 고처서라도 오래 쓰려고 하지만, 단순히 집 상태나 구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문제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얼핏보면 흔히 볼 법한 흉가 괴담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미티빌 호러>나 <폴터가이스트>처럼 끔찍하거나 크게 무서운 느낌은 아니다. 보통 흉가를 소재를 하면 악령과의 대결이나 결국 집이 완전 박살나는 경우가 많은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싸우는 것보다는 오히려 타협하고 해결하려는 구성이다. 게다가 귀신을 비롯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주체가 아니라 집이 주체가 되서 소소한 일상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집이고, 오래될 수록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기에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거주민 모두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솔직히 그 동안 집에서 귀신이 나오면 쫓아내려고만 하지, 누가 귀신이 소란피우지 않고 편히 있으라고 집을 고치려 하겠는가.



 뒤뜰에서


 돌아가신 고모의 유산을 상속받고 낡은 집으로 들어온 쇼코. 어린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없던 그 집에는 서랍장으로 막아놓은 방이 있다. 문제는 창문도 없는 그 방의 미닫이 문이 혼자서 자꾸만 열려서 신경이 쓰이는데...

 영선 가루카야가 어떤 작품인지 보여주는 첫 장인 만큼, 기이한 현상과의 타협부터 흔한 흉가 괴담 클리셰 파괴까지 보여줘서 기이현상을 고치는 목수라는 분위기를 잘 나타내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많이 느껴졌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대세라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나이드신 분들이나 아픈 사람에게는 이런 부분이 크게 다가온다. 그것도 다른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방치되어 있다면. 그런 만큼 혼자사는 집에는 살던 사람의 흔적이나 습관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장에서


 옛 무사집안의 고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천장에서 이상한 것을 보면서 이 참에 집을 리모델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천장에서 무언가를 보는 건 계속되고, 심지어는 이상한 소리까지 나기 시작하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무사집안, 우리나라로 치면 종갓집 수준의 고택이라 그런지 괴이 현상의 사유가 남다르게 보였다. 거기에 요즘은 보기드문 다락이라는 특수한 구조까지 있어서 오래된 집에서만 느낄 법한 미지의 공포가 나타나 있기도 했다.

 이런 옛 고택에 가면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물건들이 종종 있고는 한다. 대부분 건들이지 못하게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고는 하지만, 한 번 발견되면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물건이라면 모를까, 오래된 물건이라면 집 안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방울소리


 비오는 날 방울소리와 함깨 검은 상복의 여자를 보게 된 요코.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아 요코는 그저 피하지만, 비오는 날마다 여자는 계속 나타나고 점점 요코의 집 가까이 오기 시작하는데...

 특이하게도 집 안의 문제가 아니라 집 외부에서 문제점이 다가온다는 경우다. 그래서 집 내부라던가 추억, 사연에 관련되기 보다 약간 풍수지리와 터에 대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괴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 더 공포스럽기도 하다.

 대문에 대해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여기서 대문이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보며 사람만 다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집 안에 흉이 든다는 것도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형의 사람


 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온 것때문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여고생 마사카. 무엇보다 신경쓰이는 건 계속 집에 몰래들어오는 기분 나쁜 할아버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도저히 숨을 수 없는 비좁은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작중 화자가 여고생이라 그런지 도시 아이들이 시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노인들에 대한 적대와 불쾌감, 서스럼 없는 정겨운 분위기가 어색하다 못해 기분 나쁜 것을 보며 정이 없어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감정이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이 어렸을 적에는 소규모 아파트였음에도 시골처럼 이웃 간 잘 지냈던 걸 생각하면 가면 갈수록 삭막함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차이의 문제라 할 수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집도 영향이 클 수 밖에 없고, 또한 충돌이 일어나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다고 전부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연배에 관련된 부분은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만조의 우물


 남편과 함께 조모가 살던 옛집에 들어온 마리코. 어느 날, 남편이 정원을 꾸미면서 우물 근처에 있던 오래된 사당을 부숴버리고 만다. 그 동안 관리가 안 되던 것이라 마리코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지만, 마당은 황폐해져가고 무언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정원과 관련된 내용이라 주로 집 내부보다는 정원 위주로 보여주는 게 많다. 상수도가 되어 있는 도시에서는 우물을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공용우물이나 개인우물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을 쓰는 곳이라는 특성상 중요하면서도, 물이 많이 고여있는 곳이라 음기가 돈다고 조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면 우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만조의 우물도 얼핏보면 흔한 우물 귀신 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연현상을 넣으면서, 단순히 음기가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우물에 사람이 빠져 죽어서 귀신이 나온다고는 들어봤지만, 우물로 들어온다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밖


 이혼하고 딸과 고향으로 돌아온 마미. 친정과도 멀어져 생활을 위해 중고차까지 샀지만, 매번 차고에서 시동을 걸때마다 말썽이다. 결국에는 차 구매를 주선해준 친구에게도 따지지만, 차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차고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고 느끼는데...

 차고나 자동차가 나와서 그냥 시골의 오래된 집 분위기와 약간은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에 그냥 시골에 사는 가정이 아닌, 이혼가정이라는 구성까지 있어서 앞서나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위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단란한 시골 분위기 보다는 홀대받는 분위기가 강하고, 새로운 출발보다는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진 과거와 재회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작중나오는 괴이나 인물들이 느끼는 문제가 전부 과거에 있어 보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고 아픈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까울수록 막대한다고, 특히 가족에게서 상처받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픈 게, 그나마 가깝게 의지할 대상이 상처를 주면 의지와 상처가 충돌해서 심리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상황이 이상해져 버린다. 이게 특히 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점이다. 거기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도 결국은 의지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운 상대보다 오히려 낯선 이에게 의존할 수도 있다. 입으로는 가족을 말하지만 이미 그 가족이 가지는 의지할 곳은 텅 빈지 오래. 다른 누군가가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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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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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에 들어 사제관계라는 건 이미 교육이라는 것과 동떨어져 난장판이 되어 보인다. 교사가 학생을 때려 상해를 입히거나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막말을하고, 반대로 학생이 교사를 공격하고 정당한 교육을 범법행위 취급하는 상황. 음의 방정식은 이러한 아수라장인 현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도쿄의 세이카 중학교에서 체험캠프를 진행하던 중, 한 교사의 폭언이 문제삼아지면서 파문이 일어난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의견차이 속에서 결국 해당 교사는 퇴직처리까지 되고만다. 결국 교사는 변호사 후지노 료코를 고용하고, 한 학생의 부모는 진상을 알기 위해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의뢰를 하게 되는데... 
 스기무라 사부로와 후지노 료코. 둘 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꽤 남다른 위치로 보였다. 스기무라는 탐정이면서 한편으로는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학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보고, 후지노 료코는 변호사이면서 솔로몬의 위증처럼 학생이 연관된 사건이라 그런지 학생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후지노 료코에게는 솔로몬의 위증에서 시간이 흐른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탐정으로서의 스기무라 사부로가 많이 부각되는데, 추리소설 속 명탐정이 아닌 일본에서 직업으로서 받아들여지는 탐정이기 때문에 그닥 좋은 대접은 못받는 듯하다. 하지만 원래 이 분이 워낙 순한 이미지라 그런지 그럭저럭 난관없이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보여서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현실에서도 흔한 학생과 교사 간의 대립이라 여러모로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다. 요즘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이 폭력이나 교육자로서 하면 안 되는 행위를 하는 일도 많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무조건 학생들이 버릇없어서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생겼나 하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교사가 학생 위에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학생 입장에서 부당하다 생각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게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되물림되다 보니 일종의 혐오증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음의 방정식과 비슷한 상황, 또는 더 심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내용과 별개로 이번 음의 방정식이 나오고서 약간씩 놀란으로 언급되는 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저서처럼 얼마 되지도 않은 분량을 장편소설이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본인도 처음 본 얇은 책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는데, 미야베 미유키를 많이 접하신 분들도 엄청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분은 성급하게 출간했다, 이익을 위해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등, 작가의 잘못으로 보는 시선이 보이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일본 본토 사이트에서는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일본 사이트를 보니 음의 방정식은 단독으로 출간된 적이 없었다. 그저 이전에 나온 솔로몬의 위증 문고판 3부 법정편 하권 끝 부분에 특별 중편으로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장편이 아닌 중편으로다. 장편치고는 아쉬운 느낌이나, 빨리 끝났다고 느꼈던 것, 그리고 시시한 느낌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음의 방정식은 장편이 아니었고, 거의 솔로몬의 위증 후기이면서 동시에 스기무라 사부로의 근황을 알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일본에서도 그러니 작가가 대충써서 출판시장에 내놨다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처음 단행본이 출간되고, 판매가 많이 된 이후에 단행본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문고본이 나오는 형식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내용을 약간 손 보거나, 그 시기에 썼던 중단편을 문고본에 끼워서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문고본 시장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솔로몬의 위증 문고본에 딸려나온 음의 방정식을 내려면 단독으로 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위증에 음의 방정식을 넣어 개정판 형식으로 낼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중편으로 나온 소설을 장편이라 내는 건 바람직한 일일까? 그렇다면 성급한 행동을 한 것은 누구였을까? 여러분이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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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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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제사건하면 어떤 이미지인가. 보통 미스터리함을 많이 언급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잡히지 않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 세상에 들어난 미제 사건이 아닌, 존재자체가 들어나지 않은 미제 사건을.

 보통 많은 이들이 아는 미제 사건은 그저 잡히지 않은 범인에 대한 미스터리와 과거시점의 공포가 있다면, 아예 들어나지 않은 미제 사건은 현재에 돌아다니는 공포의 실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도시전설도 이런 미제 사건의 흔적에서 발단이 되어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정말 무서울텐데, 중국에 이런 게 있다면 어떤가? 규모와 인구수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의문의 사망으로 중국 경찰계의 신화로 알려진 탐정 모삼. 그런 그가 기억을 잃은채 한 클럽의 살인사건 현장에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 이후 파트너였던 법의관 무즈선과 합류해 기억을 되찾으면서, 이전에 쫓던 연쇄살인마. 일명 L이라 불리는 범인과 대결을 하게 되는데...

 주인공인 탐정 모삼과 법의관 무즈선을 보면 얼핏 셜록 홈즈와 왓슨 구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삼과 무즈선을 보다보면 탐정 셜록과 법의관 셜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둘 다 보통 사람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그나마 무즈선은 좀 잘 사는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체 부검만 들어가면 모삼과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에 정말 비슷한 사람끼리 잘 붙어다닌다고 볼 수도 있다. 오죽하면 이들과 함께 하는 경찰 관계자 오팀장은 범죄수사만 안 했으면 둘 다 미친 놈들이라 할 정도다.

 중국 본토에서의 경찰 수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현대적인 수사기법 속에서 간간히 나타나는 중국 전통의 동양적 사고론에 입각한 편견과, 대도시와 소도시 사이의 격차, 그리고 명예를 중요시하는 풍조 때문에 겪는 수사상 어려움 같은 부분이 그렇다.

 거기에 중국 본토의 스케일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사건까지 있어서 그 동안 보아온 추리소설의 사건과는 뭔가 격이 다를 정도라 하고 싶을 정도다. 사건부터 격이 다를 정도인데, 이런 걸 모삼과 무즈선은 놀라운 실력으로 해결해서 이들도 탐정과 법의관으로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중 등장하는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 실태와 이런 환경에서 나타나는 범죄가 왜 그렇게 상식을 초월할 정도인지 해석까지 있어서, 범죄자가 미친 놈이기 때문에 이렇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살아온 환경이 나쁘게 영향을 주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한테는 상식 밖의 잔인한 행동이 그 살인범한테는 자기만 아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의 기억 속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느끼게 됐다.

 앞서 말한 들어나지 않은 미제사건에 대한 공포와 독특한 범인과 탐정의 구도로 꽤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웠다. 추리물에서 범인이 비중이 높아보이는 경우를 보면 셜록 홈즈의 모리아티 교수나 소년 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인형술사" 타카토 요이치 같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통칭 L은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르다.

 앞서 언급된 이들은 흔히 범죄 코디네이터라고, 다른 사람에게 범죄 계획을 세워주고 본인은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 정도인데, L 같은 경우는 정말 특이하다. L은 앞서 말한 들어나지 않은 미제사건의 범인과 관련된 증거를 던저놓고 탐정보고 잡아보라 한다. 그리고 탐정이 제한시간 안에 잡지 못하면 자신과 함께 있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식이다. 참고로 L이 제시한 미제사건은 L과 무관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이며, L이 사주해서 저지른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자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사건일 뿐이다. 이런 탐정과 범인의 대결 방식이 정말 독특하고 참신하게 보였다. 그 동안 다른 작품에서 탐정과 범인의 대결이라하면 범죄가 계속 일어나야 실마리를 잡고, 그렇다보니 도리어 탐정이 사신취급(대표적인 예로 김전일과 코난)을 받게 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모삼과 L의 대결을 보면 누군가 분명 죽을 게 뻔하고 거기서 또 증거가 나오겠지, 하는 느낌보다는 빨리 주어진 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누가 곧 죽을 거라는 긴박감이 느껴졌다. 거기에 탐정이 괜히 나서서 사람이 더 죽어나갔다는 인상도 주지 않아서, 이런 게 바로 범인과 탐정 간 대결의 진정한 묘미라 생각한다.

 참신하고 흥미로운데다 범인과 탐정 간의 긴박감 넘치는 대결까지해서 놀라운데, 아직 소설 전체의 초반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모삼과 무즈선, 그리고 L이 벌이는 대결이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느낌의 신선한 작품을 접한 만큼 다음 대결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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