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된 것은 손때가 많이 묻는다고 들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걸 사용하던 사람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일종의 살아있는 추억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이렇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낡아서 우중충하다, 더럽다, 망가졌다 등등. 그냥 물건이라면 버리든 계속 사용하던 선택할 수 있지만 집이라면 말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웬만하면 고처서라도 오래 쓰려고 하지만, 단순히 집 상태나 구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문제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얼핏보면 흔히 볼 법한 흉가 괴담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미티빌 호러>나 <폴터가이스트>처럼 끔찍하거나 크게 무서운 느낌은 아니다. 보통 흉가를 소재를 하면 악령과의 대결이나 결국 집이 완전 박살나는 경우가 많은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싸우는 것보다는 오히려 타협하고 해결하려는 구성이다. 게다가 귀신을 비롯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주체가 아니라 집이 주체가 되서 소소한 일상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집이고, 오래될 수록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기에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거주민 모두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솔직히 그 동안 집에서 귀신이 나오면 쫓아내려고만 하지, 누가 귀신이 소란피우지 않고 편히 있으라고 집을 고치려 하겠는가.



 뒤뜰에서


 돌아가신 고모의 유산을 상속받고 낡은 집으로 들어온 쇼코. 어린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없던 그 집에는 서랍장으로 막아놓은 방이 있다. 문제는 창문도 없는 그 방의 미닫이 문이 혼자서 자꾸만 열려서 신경이 쓰이는데...

 영선 가루카야가 어떤 작품인지 보여주는 첫 장인 만큼, 기이한 현상과의 타협부터 흔한 흉가 괴담 클리셰 파괴까지 보여줘서 기이현상을 고치는 목수라는 분위기를 잘 나타내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많이 느껴졌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대세라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나이드신 분들이나 아픈 사람에게는 이런 부분이 크게 다가온다. 그것도 다른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방치되어 있다면. 그런 만큼 혼자사는 집에는 살던 사람의 흔적이나 습관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장에서


 옛 무사집안의 고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천장에서 이상한 것을 보면서 이 참에 집을 리모델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천장에서 무언가를 보는 건 계속되고, 심지어는 이상한 소리까지 나기 시작하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무사집안, 우리나라로 치면 종갓집 수준의 고택이라 그런지 괴이 현상의 사유가 남다르게 보였다. 거기에 요즘은 보기드문 다락이라는 특수한 구조까지 있어서 오래된 집에서만 느낄 법한 미지의 공포가 나타나 있기도 했다.

 이런 옛 고택에 가면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물건들이 종종 있고는 한다. 대부분 건들이지 못하게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고는 하지만, 한 번 발견되면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물건이라면 모를까, 오래된 물건이라면 집 안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방울소리


 비오는 날 방울소리와 함깨 검은 상복의 여자를 보게 된 요코.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아 요코는 그저 피하지만, 비오는 날마다 여자는 계속 나타나고 점점 요코의 집 가까이 오기 시작하는데...

 특이하게도 집 안의 문제가 아니라 집 외부에서 문제점이 다가온다는 경우다. 그래서 집 내부라던가 추억, 사연에 관련되기 보다 약간 풍수지리와 터에 대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괴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 더 공포스럽기도 하다.

 대문에 대해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여기서 대문이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보며 사람만 다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집 안에 흉이 든다는 것도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형의 사람


 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온 것때문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여고생 마사카. 무엇보다 신경쓰이는 건 계속 집에 몰래들어오는 기분 나쁜 할아버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도저히 숨을 수 없는 비좁은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작중 화자가 여고생이라 그런지 도시 아이들이 시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노인들에 대한 적대와 불쾌감, 서스럼 없는 정겨운 분위기가 어색하다 못해 기분 나쁜 것을 보며 정이 없어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감정이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이 어렸을 적에는 소규모 아파트였음에도 시골처럼 이웃 간 잘 지냈던 걸 생각하면 가면 갈수록 삭막함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차이의 문제라 할 수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집도 영향이 클 수 밖에 없고, 또한 충돌이 일어나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다고 전부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연배에 관련된 부분은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만조의 우물


 남편과 함께 조모가 살던 옛집에 들어온 마리코. 어느 날, 남편이 정원을 꾸미면서 우물 근처에 있던 오래된 사당을 부숴버리고 만다. 그 동안 관리가 안 되던 것이라 마리코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지만, 마당은 황폐해져가고 무언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정원과 관련된 내용이라 주로 집 내부보다는 정원 위주로 보여주는 게 많다. 상수도가 되어 있는 도시에서는 우물을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공용우물이나 개인우물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을 쓰는 곳이라는 특성상 중요하면서도, 물이 많이 고여있는 곳이라 음기가 돈다고 조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면 우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만조의 우물도 얼핏보면 흔한 우물 귀신 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연현상을 넣으면서, 단순히 음기가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우물에 사람이 빠져 죽어서 귀신이 나온다고는 들어봤지만, 우물로 들어온다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밖


 이혼하고 딸과 고향으로 돌아온 마미. 친정과도 멀어져 생활을 위해 중고차까지 샀지만, 매번 차고에서 시동을 걸때마다 말썽이다. 결국에는 차 구매를 주선해준 친구에게도 따지지만, 차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차고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고 느끼는데...

 차고나 자동차가 나와서 그냥 시골의 오래된 집 분위기와 약간은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에 그냥 시골에 사는 가정이 아닌, 이혼가정이라는 구성까지 있어서 앞서나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위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단란한 시골 분위기 보다는 홀대받는 분위기가 강하고, 새로운 출발보다는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진 과거와 재회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작중나오는 괴이나 인물들이 느끼는 문제가 전부 과거에 있어 보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고 아픈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까울수록 막대한다고, 특히 가족에게서 상처받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픈 게, 그나마 가깝게 의지할 대상이 상처를 주면 의지와 상처가 충돌해서 심리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상황이 이상해져 버린다. 이게 특히 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점이다. 거기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도 결국은 의지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운 상대보다 오히려 낯선 이에게 의존할 수도 있다. 입으로는 가족을 말하지만 이미 그 가족이 가지는 의지할 곳은 텅 빈지 오래. 다른 누군가가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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