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 살인 아르테 누아르
카밀라 그레베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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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많이 다루고 쉽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어렵다고 느껴지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널린 감동스토리, 인생역전 스토리를 보면 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현실을 보면 전혀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저 대리 만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드라마보다 더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례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보면 사랑으로 사소하게 싸우는 것부터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까지 있는 걸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도 하다. 그저 성격차이, 가치관 차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결국은 사랑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지금의 사랑 이전의 사랑에서 받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정말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약혼 살인은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사랑의 비중이 많은 편이지만, 따뜻한 인과관계라던가 감동적인 장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온갖 문제점들만 있을 뿐이다. 출판사에서 이 책의 시리즈를 아르테 느와르로 정해 놓았는데, 정말 어울리는 명칭이다. 보통 느와르하면 정치나 도덕처럼 깊게 고민할 거리가 많이 나오는데, 생각해보면 사랑도 정말 깊게 고민할 거리에 해당된다고 본다.

 스웨덴의 유명 의류 회사의 CEO 예스페르 오페의 자택에서 머리가 잘린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페테르와 만프레드는 사라진 예스페르를 용의자로 지목한 상태에서 10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과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당시 자문역할로 초청된 심리학자 한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한편 사건 발생 2개월 전, 의류 회사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엠마는 예스페르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비밀연애를 계속하던 와중에 이상한 일을 계속 겪게 되는데...

 재벌과 보통 사람 간의 사랑이 사건의 중심이라 국내 드라마에서 자주나오는 구성처럼 뻔한 게 나오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했었지만, 전혀 상관 없이 내용은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분위기였다. 불안한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살인사건 수사관인 페테르. 자문역할인 한네, 그리고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인 엠마. 이 셋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각각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페테르는 유일한 남성의 시점인데, 독선적이고 과시욕 있는 스타일과 정반대의 느낌을 가졌다. 회피적인 분위기가 많은 편이라 다소 줏대 없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변덕이 심하고 가정사에 무관심하다 할 수도 있지만, 묵혀둔 개인적인 고민과 과거를 보면 책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한 심리 충돌로 볼 수도 있었다.

 한네는 중년 여성들이 느끼는 현재 사랑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게 많이 보였다. 더불어 페테르에게서 보이지 않은 독선적이고 과시욕 있는 남자의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권리를 잃고 통제당하는 모습이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고민이 더해진다.

 엠마의 경우, 젊은 여성의 이상적인 러브스토리와 냉혹한 현실에 상처받는 모습이 많았다. 주로 예스페르와의 관계에서 오는 상실감이 크게 나타났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 속에서 다소 애정결핍이 있어 보인다고 느꼈다. 유독 엠마가 어린 시절의 과거 회상이 많은 편인데, 어린시절 부모가 주는 사랑의 정도가 성인이된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셋을 보다보면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뭔가 자극을 준 사건이 하나씩 있었다. 그래서 개개인이 가지는 사랑의 이미지라던가, 만족도가 제각각인 것이 이러한 원인이 있던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어린 시절에 겪은 게 더 기억에 오래남고, 그 사람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고 하지 않은가.

 사랑 관련 내용이 많다보니 사건 수사 관련된 부분이 지지부진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약혼 살인은 인과 관계와 그 사람이 생전 겪은 일을 알아야 이해할 법한 사건이다. 그냥 싸이코스러운 사건이라 넘기다보면 그냥 자극성이 짙은 치정싸움에만 그칠 뿐, 그 사람의 심리상태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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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의 박물관
아라리오뮤지엄 엮음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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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픈 순간이라 하면 실연이 많을 것이다. 실연이라 하면 연인과의 이별을 생각하겠지만 다양한 이별을 포함한다. 때로는 가족, 소중한 인연, 오래전에 살던 곳, 만남 등등. 이렇게 보면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올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시각각 다양한 실연을 경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연의 박물관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실제로 존재하는 박물관이다. 처음에는 설립자이자, 아티스트인 연인의 사연 있는 물건들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세계의 실연을 모아놓은 곳이 되었다. 올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이 실연의 박물관에 들어갈 기증품을 모집했고, 82가지의 실연이 여기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실연은 어떤 모습일까?

 대체적으로 연인과의 실연이 많았다. 하지만 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라 하기에 깊이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아쉬운 이별, 구체적이지 않고 짧게 담담한 이별, 그리고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을 듯한 이별. 그리고 이 실연 뒤에 남은 그때의 흔적들. 그냥 물건만 보면 그냥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물건에 담긴 사연까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왜 사연 있는 물건을 못버리게 되는지 이해할지도 모른다.

 사연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안 쓰고 불편한 물건이 그 당시에는 인연을 만들어준 증거가 되고,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물건이 먼 옛날에 있었던 사연의 증인이 되기도 해서 사연이 담긴 물건은 그 당시 시대와 공간을 공유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실연 사이에서 독특해 보이던 실연도 종종 있었다. 사소한 만남이지만, 그걸 짧은 인연과 실연이라 생각하는 경우. 타인의 미래와 기회를 위해 자신의 기회를 양보해 경험한 실연. 자신의 재능과 실연했던 일. 추억의 장소와의 실연. 자신의 과거와의 실연. 이런 사연을 보면 우리는 수 많은 인연과 실연을 겪고 살면서도 특별한 몇몇 순간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당연히 있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물건이라도 결국은 사연과 함께 남을지도 모른다. 손이 타서 잘 잡히는 도구, 오랫동안 함께해서 익숙한 물건, 기쁘고 슬플 때나 같이 했던 물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물건. 이들은 실연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나온 역사를 상징하면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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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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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은 또 다른 세계를 염원하게 되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공상이나 허황된 생각이라는 말이 많지만, 다양한 이세계가 만들어지고 즐기는 이들이 있다는 건 그 만큼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이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단순히 눈요기 거리라던가,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는 건 현실이 가진 실질적인 문제점을 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왕국의 성은 전반적으로 현실과 다른 세계로 떠나는 이세계물의 성격을 띄지만, 일본에서 많이 나오는 이세계물처럼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이세계물이 현실도피 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사라진 왕국의 성에서는 그게 더욱 부각되어 보였다.

 오가키 신은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은행에 들렀다가 어린이들의 그림이 전시된 곳에 붙어 있는 한 오래된 성 그림을 발견한다. 너무나 사실적인 성 그림에 빠져들던 신은 그림 속에서 소리를 듣게 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야만 움직일 수 있던 탓에 신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찾는데...

 


 

 그림 속 세계라는 이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다소 판타지스러운 느낌이지만, 주연인 오가키 신의 성격이라던가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많이 나오다보니 크게 부각되는 편은 아니다. 이세계가 있으면서 현실의 비중이 높은 형태라 다른 이세계물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세계에 대한 각종 설정, 환상적인 모습과 경이로움이 있어도 어딘가 제한적인 모습이라 결국은 모든 게 현실과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주연인물이 학생이고 나이 어린 인물들의 비중이 많게 진행되는 구성을 보면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연령대에 맞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에 오가키 신을 상반된 역할로 설정한 것 같기도 하다. 성인들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나 환경적인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학생이나 어린 연령대의 입장에서는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학교에서의 문제를 비롯한 가족문제로 인해 고립되는 학생들, 거기에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들까지. 이들을 현실이 도와주지 못하면 결국 이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지옥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다른 세계가 더 나을 것이다.

 이세계가 그림 속에 있다보니 그림에 대한 비중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림과 이세계가 은근히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하다. 사실적인 그림이 있으면 공상의 세계를 그린 그림도 있다. 그림은 창작자가 보고 느끼는 세계나 마찬가지니 있는 그래로의 현실을 그리더라도,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이세계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현실에 가까운 이세계라 한다면 바로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약간 아쉬운게 있었다면 너무 그림 속 세계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을 한 점이다. 아무리 이세계라도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짓고 싶었다고는 하지만, 판타지를 지나치게 현실로 만들려 하다보니 SF까지 섞여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해석을 만들어낸게 아닌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세계는 이세계로 두고, 그 안에서 현실의 대한 문제를 논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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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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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IT 산업은 생활의 편리를 넘어 세계 곳곳을 연결해 주고 있다. 어린 시절 윈도우 98 당시의 인터넷을 시작으로 현재의 초고속 인터넷까지 접해본 나로서는 하루가 다르게 인터넷의 역할이 점점 커져가는 걸 새삼 느끼고는 한다. 그러다가 한 번 쯤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인터넷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면?

 지금도 가끔 식 기지국이나 통신망이 망가져서 인터넷이 안 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저 늘상 하던 SNS나 인터넷 통신망만 안 될 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이보다 더한 일이 부수적으로 일어난 기록이 있다. 2006년 이란의 핵시설 시스템을 박살낸 미국의 컴퓨터 바이러스 무기 스턱스넷.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당시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몇 차례 일어난 한일 간의 사이버 전쟁, 각종 디도스 공격 및 정보유출 사건 등. 사이버 스톰은 현실에서도 몇 차례 일어난 사이버 대란이 심각하게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마이클 미첼은 아내 로렌과 아들 루크와 함께 뉴욕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웃의 척과 수지 부부, 경비원 토니, 러시아인 노부부 등. 다양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던 중,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전세계적인 사이버 테러가 발생한다. 미국의 물류유통이 마비되고, 인터넷으로 작동되던 모든 시스템이 멈춘데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가 돌면서 뉴욕은 아수라장이 된다. 마이클과 아파트 주민들은 척이 남모르게 창고에 비축해둔 각종 장비들로 인해 어느정도 버티며 살아가지만, 강력한 눈폭풍이 뉴욕을 덮치고 설상가상으로 침입자까지 나타나면서 위기가 찾아오는데...

 종말소설이라 소개가 됐는데, 보통 종말하면 생각나는 범주와 차원이 달랐다. 영화나 소설에서 종말하면 핵전쟁, 자연재해, 치명적인 바이러스 같은 현실적인 것부터 외계침공이나 좀비 바이러스 같은 상상이상의 종말을 보여주면서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한다. 그에 비해 사이버 스톰은 인터넷만 전부 망가지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가 순식간에 무너지기 때문에 평소 우리 생활에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큰지 느낄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기 보다는 종말의 초기 상태에 가까워서 대부분이 생각하는 극단적인 분위기가 곧바로 나오지 않고 점차 나타나는 구성이다. 다소 침착한 모습이 많다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문명이 멈춘 시점부터 사람의 이성이 얼마나 버티는지 나타낸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다보니, 현대의 진보된 기술이 과연 발전에 해당되는지 의문스러워 지기도 했다. 인터넷 하나로 인해 모든 게 안 되고 이에 대처할 방법이 전무한데, 이럴 바에는 아날로그나 구식으로 분류된 기술들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터넷이 없어지면서 나타나는 종말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곳곳에 현실의 사이버 보안 문제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오는 편이다.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문제점이나 인터넷 통제, 중요 정보망 보안 허술 같은 문제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인 건 누가 인터넷을 책임지냐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고치는 인력은 많아도 실질적으로 인터넷의 상태를 관리하는 인력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점이다. 그 만큼 현실의 인터넷이 너무 무방비한 상태로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수 많은 인터넷 보안 관련 문제 속에서 과연 안전한 인터넷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안전을 위해 포기할 것에 대한 논의할 점이 많았다. 앞으로도 인터넷이 더욱 발전하고 다양한 시스템과 보안 기술이 나오겠지만, 발전하는 만큼 인터넷의 부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의 끝이 있는 만큼, 인터넷도 언젠가는 끝이 존재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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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증
마리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박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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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한다. 굳이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더라도, 특정된 하나가 많아지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생물학적으로 발생하는 질병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독물질을 언급하는 것 외에도, 뭐든 이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수 많은 예가 많음에도 고충증은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걸로 가장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대기업 사원인 남편과 입시 준비에 들어간 중학생 딸과 함께 고급 맨션에서 사는 주부 마미. 부족할 것 없는 삶이지만, 무료함을 느낀 나머지 마미는 남편 몰래 세 명의 남자와 정사를 즐긴다. 비밀스러운 생활과 주부로서의 생활의 경계를 지키며 지내던 중, 정사를 즐기는 남자 중 한 명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불륜 드라마 느낌인데, 그냥 치정 싸움이 전부였다면 충격적인 작품이란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성적인 부분을 상당히 수위 높게 표현한 것만으로도 보기 힘들게 하는데, 거기에 작가가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기생충이 소름 돋는 역할을 해서 고충증은 암흑 그 자체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 음침하고 징글징글한 내용의 끝이 한없이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이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아니면 도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고 싶어서?

 온갖 불쾌한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이 가지는 일종의 경멸 속에서 오는 모순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이 남아있다는 걸 낙후된 것으로 여기거나, 기생충이 생길 수도 있는 걸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한다던가, 알고는 있어야 할 성적인 걸 지나치게 숨기는 경향. 전부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데, 사람도 원래부터 자연에서 진화했다는 걸 생각하면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릴 적 나쁜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사람이 특별하다는 인식이라면 외계인이라 불리고 싶다는 건가.

 소재도 소재였지만, 고충증에 나타난 미스터리 구성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분명히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범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인사건이라면 모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사건이라는 미스터리로 진행된다. 그래서 사건의 주범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독자가 알아가는 게 관점이다. 여기에 인물들 간의 인상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까지 겹쳐서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엄청 수상해 보이는 등, 그 누구도 평범해 보이지 않게 된다.

 에로틱하다느니 징그럽다느니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섭게 보인 것은 태연한 척하면서 온갖 악의를 품은 사람이었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좋은 약품이나 건강요법에 매달리는 일이 흔한데, 정작 눈 앞 가까이 있는 것의 직접적인 위협에는 너무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보였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그저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진짜 보이지 않는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몸 안에 불청객이 들어오는 게 징그러운 일이지만, 우리 가족에 타인이 끼어드는 것만큼 징그러운 일이 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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