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박물관
아라리오뮤지엄 엮음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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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픈 순간이라 하면 실연이 많을 것이다. 실연이라 하면 연인과의 이별을 생각하겠지만 다양한 이별을 포함한다. 때로는 가족, 소중한 인연, 오래전에 살던 곳, 만남 등등. 이렇게 보면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올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시시각각 다양한 실연을 경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연의 박물관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실제로 존재하는 박물관이다. 처음에는 설립자이자, 아티스트인 연인의 사연 있는 물건들을 시작으로 이제는 전세계의 실연을 모아놓은 곳이 되었다. 올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이 실연의 박물관에 들어갈 기증품을 모집했고, 82가지의 실연이 여기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실연은 어떤 모습일까?

 대체적으로 연인과의 실연이 많았다. 하지만 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라 하기에 깊이가 전부 제각각이었다. 아쉬운 이별, 구체적이지 않고 짧게 담담한 이별, 그리고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을 듯한 이별. 그리고 이 실연 뒤에 남은 그때의 흔적들. 그냥 물건만 보면 그냥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물건에 담긴 사연까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면 왜 사연 있는 물건을 못버리게 되는지 이해할지도 모른다.

 사연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안 쓰고 불편한 물건이 그 당시에는 인연을 만들어준 증거가 되고,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물건이 먼 옛날에 있었던 사연의 증인이 되기도 해서 사연이 담긴 물건은 그 당시 시대와 공간을 공유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실연 사이에서 독특해 보이던 실연도 종종 있었다. 사소한 만남이지만, 그걸 짧은 인연과 실연이라 생각하는 경우. 타인의 미래와 기회를 위해 자신의 기회를 양보해 경험한 실연. 자신의 재능과 실연했던 일. 추억의 장소와의 실연. 자신의 과거와의 실연. 이런 사연을 보면 우리는 수 많은 인연과 실연을 겪고 살면서도 특별한 몇몇 순간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당연히 있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물건이라도 결국은 사연과 함께 남을지도 모른다. 손이 타서 잘 잡히는 도구, 오랫동안 함께해서 익숙한 물건, 기쁘고 슬플 때나 같이 했던 물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물건. 이들은 실연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지나온 역사를 상징하면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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