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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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지 못하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어딘가에 수원이 연결되어 있거나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지 않는 이상 새로운 물이 공급되지 않기에 그대로 부패하는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면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인위적인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굉장히 복잡해지고 만다. 여러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로 인한 대립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싸움만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잊어버린 채로 모든 것이 썩은 물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 썩은 물 아래에 쌓이고 쌓인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 눈에 보이는 실체로 구현되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키게 될 것이다. 온건하건, 극단적이건 가리지 않고 말이다.


구로 선배로부터 나라의 하미 지방에서 행해지는 기이한 기우제에 대해 듣게 된 도조 겐야. 13년 전 기우제에서 발생한 신남 사망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열린다는 점과 미즈치라는 물의 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부분에서 관심을 끈다. 그렇게 하미 지방에 도착한 도조 겐야는 기우제와 관련된 신사 네 곳의 관계를 통해 뭔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있다는 걸 느끼던 중에, 예정대로 진행된 기우제에서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신남이 사망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동안 시대적 배경이 종전 이후라고는 했지만 간접적으로 묘사되는 정도였다.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느니, 전쟁으로 누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꽤 직접적으로 다루는 느낌이 강하다. 만주국에 거주하던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겪은 일을 다루고, 자살 특공대 출신의 인물이 나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중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까지는 아니고 배경을 설명하는 요소로 나오는 것이 전부이긴 하다. 그럼에도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비정상적인 집단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에서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배경 설명이 중요하다보니 본 사건에 들어가기까지 꽤 장황하게 보일만하다. 대체로 초반이 그런 편이고 후반으로 갈수록 메인 사건에 집중하는 편인데, 사건 파트에서도 민속학 관련 내용이 많아서 역시 쉽지만은 않다.

상당히 폐쇄적인 하미 지방의 분위기는 여러 방면으로 압박감을 준다. 다소 상식 밖의 상황에서 진행되는 사건 수사는 기초적인 조사 이상으로 진전이 불가능하게 제한을 만들어 버리고. 여기에 정체불명의 괴이까지 느껴지니 현실과 비현실 양쪽에서 공격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은 현실에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며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과거의 망령. 다른 한쪽은 실체와 존재가 불분명하면서 간접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관념적인 존재. 마치 다른 세상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이런 경우가 존재할 수도 있다. 영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존재감의 무게가 다르겠지만.

미즈치라는 존재는 단순한 괴이가 아니라 신성하게 모셔지는 것이라 그런지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이미지나 대략적인 인상이 나타나지 않는 편이다. 그냥 불가사의한 존재 같은 것이 아니라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다. 꽤 소름끼치는 괴이 여럿이 묘사되긴 하지만 물이라는 연관성을 가지는 정도지 미즈치 그 자체로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잔잔한 수면마냥 미즈치는 그 어떤 움직임도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냥 신성한 존재라면 그 만큼 보기 힘든 것이라고 이해되겠지만 점차 밝혀지는 하미 지방의 기우제에 숨겨진 진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든다. 마치 수면 아래에 숨어서 엿보는 악어처럼 덮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조용하던 물속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기우제를 더럽힌 진짜 원흉과 이유가 뭐가 됐든 결론적으로 방관한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애초에 물의 신이라고 불리는 점에서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즈치는 조용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쳐버린 것일 테다.

추리 요소에 대해서는 자연 환경에서 발생하는 꽤 그럴싸한 밀실 트릭을 사용해서 흥미롭다. 다소 우연이 많고 정황 증거에 의존하다보니 보기에 따라 별로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앞서 언급된 상식 밖의 상황이라는 점을 기억해둬야 한다. 보통 외부와 고립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를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는 환경적 고립이 아닌 문화적 고립에 가깝다. 즉 외부와의 왕래는 자유롭지만, 내부적으로만 통하는 규칙과 이해관계로 인한 제한과 불이익이 발생하기에 문화적 클로즈드 서클이라 해도 되겠다. 이런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해나가며 정황 증거로만 추리한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다른 작품 같으면 지적받을 증거 부족으로 인한 비판에 대해서는 나름 자유로운 편이라 할 수 있다. 그 부족한 증거에 대한 부분도 다른 방식으로 보충해주거나 해석이 뒤따르는 편이라 아예 방치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사실상 사건의 배경부터 발생 원인까지 따져보면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왜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는 예시나 다름없다. 단순히 오랜 인습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폐해를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다. 이미 사라진 악습이 되살아나 무고한 희생자들을 발생시키고, 그 업보가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엄청난 참극으로 이어진다. 제 아무리 희생을 요구하는 형식으로 당장 큰 효과를 보더라도 결국에는 책임이 돌아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개인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는데도 미리 막지 못하고 방치해버린 모두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통감하고 기억하는 자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풍요와 발전을 기원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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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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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전신에 깁스를 하고 얼굴마저 붕대에 감긴 채로 입원 중인 음습. 그의 병실에 원래 오던 간병인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 오게 된다. 말 수가 적다는 점이 살짝 불만으로 여겨지던 새로운 간병인은 음습에 대해 알고 싶다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마침 그 날은 별다른 일정이 없었기에 음습은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다름 아니라 자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비참하게 추락한 과정인데...


처음에는 주가라는 말이 자주 언급돼서 경제와 금융과 관련된 내용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 주가라는 것이 하나의 비유이자, 소설 속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특수한 개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꽤 무겁게 느껴졌다. 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경제적 논리로 통용해버린 현실. 사소한 일이나 아는 사람의 평판 같은 것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가치가 수시로 요동친다. 하루아침에 좋은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살아 있는 것마저 사회에 폐를 끼친다고 손가락질 당하는 수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부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공포 그 자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즉 자산으로 본다는 뜻이니까.


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과정 속에서 가치에 따른 인간의 잔혹함을 볼 수 있다. 자신보다 못한 사람으로 판단되면 아무렇지 않게 얕잡아 보고, 친절을 가장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한다. 최소한의 사람 취급이라는 것도 그저 헐값에 써먹기 좋은 호구를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그 쯤 되면 사람 취급마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사람 취급을 해주는 최후의 한계점인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의 주인공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건 아니라서 그에 따른 업보가 돌아온 것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확실히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 불러온 결과라면 그건 이미 예정된 추락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운이 안 좋았다, 불행의 연속이었다, 다른 사람의 훈수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려 해도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누구인가. 분수에 맞지 않게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건 결국 누구인가. 이유 없는 하락은 없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수난

철문으로 막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공간에 한 쪽 손이 쇠파이프와 연결된 수갑으로 묶인 채 고립된 상태인 나. 누군가 금방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도 잠깐뿐. 주말이 지나고 평일이 되도 이 곳에 오는 사람은 전혀 없다. 굶주림과 탈수로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회사원으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철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마침내 누군가에게 발견된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의 도움요청을 듣고도 경찰에 연락해주지 않고 편의점에서 음식과 물을 사서 가져다주기만 하는데...


시작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 세계관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설정이나, 대놓고 비현실적인 괴물이나 판타지 요소 같은 건 없다. 그냥 현실과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럼에도 실내도 아닌 실외에 해당되는 도시 한복판에서 감금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그것도 현실적이라 해도 될 정도로.


억수로 운이 나쁜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하필이면 도움을 청한 사람들이 하나 같이 그 모양이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건물과 건물 사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그런 사람들 밖에 없겠다고 본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외지고 어둑어둑한 잊혀진 공간. 알게 모르게 사회에서 버려진 것들이 굴러 들어와 박히기 적당한 곳이다. 이런 곳에 감금된 주인공에게 나타난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잘못된 것에 의지해서 기본적인 상식조차 망각해버린 눈 먼 자.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그저 더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 전부인 겁쟁이. 삶의 목적을 잃고 절망하다 못해 절망에 먹힌 것이나 다름 없는 실패자. 애초에 멀쩡한 사람이 올만한 곳이 절대 아니었기에 이런 사람들 밖에 만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주인공에게 닥친 수난만 봐도 공포인데, 더 소름 돋게 만드는 건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만난 인물들이 확실한 동기를 가지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 암울한 사회의 징그러운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해가 가능한 현실적인 범주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비현실적인 범주로 구분되는 정도다.


코가 높은 텐구와 코가 낮은 돼지라는 종족으로 나누어진 세상. 대대적인 차별 정책 속에서 텐구들은 점차 사회의 구석으로 몰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인 나는 죽은 아내와 딸을 닮은 텐구 모녀를 보고 도움을 주려 한다. 코 수술을 부탁받지만 국가에서 단속하는 불법시술이라 거절하고 대신 최소한의 사람다운 삶을 위한 돈을 쥐어 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벌어지는 텐구 단속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큰 결심을 하게 되는데...


특수한 세계관을 통해 차별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흡사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가 떠오르는 그런 잔혹한 면을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상당한 반전을 숨기고 있다. 단순히 일부 요소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뒤집어질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 그 자체다. 사실 이 작품에서 쓰인 반전은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긴 하다. 그럼에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거나 서로 관련 없어 보이던 요소들이 결말에 가서 명확한 연결고리를 가지며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단순한 반전하고는 궤가 다르다.


코로 시작해서 코로 끝나는 내용이라 너무나 적절한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비극은 코에서 시작됐다. 코만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상황이고, 겨우 코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기에 너무나 끔찍하다. 코가 엄청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요소 같지만 결국은 그냥 코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질이 나쁜 쓰레기고.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괴물이 되어버린 상황이라 그렇다. 인과응보도 뭐도 아니다. 그저 코 때문에 미쳐버린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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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괴 1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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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늦은 밤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가 가끔씩 떠오르고는 한다. 짤막하고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는 언제나 산이었다. 늦은 밤, 산길을 걷다가 무언가와 마주쳤다. 산에 올랐다가 무언가를 봤다. 산에 무언가를 하러 갔다가 이상한 걸 보았다. 이야기 속에서의 산은 언제나 괴이한 것들이 넘쳐나는 미지의 장소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단순히 개발이 많이 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명맥이 끊겼다고 해도 될 정도로 들을 곳이 없거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추억의 한 장면으로 잊혀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감성과 생활환경 분위기 같은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는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창작물 쪽에 해당되는 책이 아니다. 일본 산간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민속자료, 또는 각색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산속 괴이 체험담을 모아 놓은 실화 괴담집에 가깝다. 일종의 현대에 기록된 설화, 야담집이라 해도 되겠다. 꽤 옛날이야기라고 생각되겠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 전해 들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게 오래된 편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니고 고속열차가 어느 정도 다니던 40년 전이거나, 불과 몇 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언급될 정도로 가장 최근에 해당되는 경험담도 있다(참고로 원서는 2015년에 출간됐다.). 이런 걸 보면 생각보다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은 오랜 옛날이 아닌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직접 겪은 경험담이나 아는 사람에게 들었던 썰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기묘하고 섬뜩한 것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일상적으로 있을 법한 요상하게 웃긴 경우도 있다. 다만 공포영화나 괴물영화에 나올 법한 엄청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려줄 법한 옛날 이야기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경험자들은 산간지역에 사는 현지인과 산을 잘 타는 전문가, 사냥꾼들이 다수다. 이런 점이 조금 신기해 보이면서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산악 관련 전문가들이 절대 산을 얕보면 안 된다고 매번 말하지만, 그 전문가들 역시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휘말리는 사례들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주된 소재로 많이 나오는 것은 산 짐승(특히 여우, 너구리, 뱀 관련으로 많다.)과 기묘한 빛, 이상한 소리, 환각처럼 나타나는 처음 보는 길, 미스터리한 실종이다. 전부 산에서 목격하거나 경험할만해서 보기에 따라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주된 소재로 나온 것들 전부 서로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상한 소리, 처음 보는 길, 실종 같은 것이 여우나 너구리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원인을 하나로 뭉뚱그려 놓는 경우가 있는 가 하면,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많다. 단순한 착각, 나름의 과학적 근거로 말이다.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은 모순이 남기에 진짜 뭔가가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실종 관련된 내용들은 좋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조금 진지하다 못해 안타까운 사연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전부 현지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실화다.

단순히 괴기한 실화 이야기라는 점 외에도 문화적인 요소를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산간지방의 생활상, 보통 사냥꾼과는 또 다른 일본 전통의 마타기 문화, 각종 법률적 제약이 없던 헤이세이 이전 엽사들의 모습, 야생동물의 분포 및 멸종된 동물에 대한 소문, 특유의 산악 종교 및 수행자, 유명한 절과 사당, 죽음을 알리러 온다는 다마시라는 존재, 간혹 언급되는 요괴 관련 내용. 진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의미와 비유적 표현 모두에 해당되는 것들이 전부 있으니까. 또한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통해 괴이한 이야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나 기원을 추측할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실없어 보이는 옛 이야기들도 충분히 가치 있는 민속자료가 되는 것이다.

산과 관련된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며 옛날이고 지금이고 자연의 경이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걸 느꼈다. 밤에도 빛으로 가득해진 현대에 여전히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공간. 같은 곳이라도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는 장소. 이런 탓에 개개인의 경험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경험한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경험해보고 싶어도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귀중한 자산이다. 옛날에는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귀중함을 몰랐고, 현대에는 접하기 쉽지 않기에 무관심 속에서 귀중함을 모르게 됐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책처럼 작은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모아 남긴다면 후세에도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로 크게 발전해 나가는 초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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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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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보면 불합리해 보이는 것이 꽤 있다천한 계층이나 집안이라고 차별 당한다던가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비상식적인 의례 같은 것 말이다이런 것은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편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실제로 보면 많다환경적인 영향이라든지문화적인 이유라든지 하면서 말이다민속학이나 문화연구로 들어가야 좀 더 자세한 설명이 가능한 분야다옛날 풍습에 관심 없는 경우라면 그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일만하다보기에 따라 이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뭔가에 씌었다.


 소설 소재 조사를 위해 마귀 계통 가문이 있는 소류향의 가가구시 촌으로 향한 도조 겐야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윗집이라 불리는 가가치가에서 발생한 기묘한 살인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마을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허수아비의 삿갓과 도롱이가 걸쳐진 시체이후로도 똑같은 괴사 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하자 마을에서는 염매가 나타났다며 소란스러워 지는데...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는 형태는 상당히 오래됐고 지금도 여전히 쓰이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고는 한다뭐든 자주 접하게 되면 신기하던 것도 시시해지기 마련이니까그럼에도 이런 배경 설정이 언제나 마음에 드는 것은 특유의 괴기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특히 도조 겐야 시리즈 같은 경우는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포 분위기를 제대로 띄우기 때문에 뭐가 나올지 기대하게 한다.


 신령과 마귀라는 개념이 섞여 있는 듯한 기묘한 형태의 민간 신앙과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인한 폐해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어서 꽤 흥미롭다민간 신앙 자체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하고현실적인 문제는 다소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치우칠 분위기에서 합리성을 강조해 중심을 잡아주는 형식이라 그렇다보통 전설이나 괴담 같은 요소는 사건의 배경 요소로만 쓰이는 정도인데 이 작품에서는 마을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민속학적인 고찰을 깊이 있게 다룬다그래서 작중의 사건과 연관성 있는 또 하나의 미스터리 요소로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교고쿠도 시리즈>와 비슷하게 다양한 전문 지식이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았지만이런 부분 때문에 살짝 읽기 힘들 수도 있긴 하겠다.


 메인 괴이로 등장한 염매는 뚜렷한 이미지 없이 뭔가 인식하면 절대 안 되는 불가사의한 존재로 묘사된다절대 보면 안 된다는 점이 여러 무서운 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라 보기에 따라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하지만 허수아비라는 비유 대상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히 모호한 이미지까지는 아니다문제는 그것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는 단순히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불분명한 이미지에 하나의 예시를 만들어 놓음으로서 진짜 모습을 마주쳐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눈속임인 것이다그렇기에 가가구시 촌에서 뒤로 다가오는 누군가 느껴지면 자연스레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될 수밖에 없다한편으로는 이 불가사의한 이미지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전통을 나타낸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원래는 뚜렷한 이미지와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시대의 흐름이나 환경의 변화 같은 이유로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기괴한 이미지만 남은 식으로 말이다.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시점이 나뉜다고 하는데직접 읽어보면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느껴지긴 한다서로 다른 장소에서 개개인의 인물이 겪은 사건을 시점 하나로 정리하기 어렵고 난잡해지기 쉽다또한 이 시점이 나누어진 것이 작중 미스터리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단순히 번거롭게 서술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사실상의 밀실로 규명되는 여러 기괴한 사건 현장과 알리바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이렇다보니 이 작품에서 쓰인 트릭을 약간 예상하기 쉬울 수도 있다좀 반칙 같이 보이는 면이 있지만 찬찬히 보면 제법 눈에 띄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잘못된 인습으로 인해 언젠가는 반드시 발생했을 재앙이라고 생각한다허례허식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득이 되고 다수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특권을 독차지 한다고 할 수 있다이렇게 한 번 맛본 특권을 스스로 내려 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대체로 놓치지 않기 위해 악독한 짓을 하는 일이 더 많아서 그렇다웃기는 건 그런 식으로 지켜봐야 고립되고 추해지는 건 특권을 누린 자들이라는 것이다그야말로 신들리는 것처럼 흥해서진짜로 신들린 것처럼 망가져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정확히는 뭔가에 씌여서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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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람의 거리 Mystr 컬렉션 99
로버트 W. 챔버스/박종 / 위즈덤커넥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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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빈민가인 네 바람의 거리에 거주 중인 화가 세번.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온 처음 보는 고양이와 자연스럽게 친해져 살펴보던 중, 주인의 흔적을 발견하고 누구인지 추측해 보게 되는데...

 

 간단한 괴담 이야기 구성이면서 음울하고 환상적인 묘사가 짙은 고딕 분위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가난한 예술가의 소소한 일상과 나름대로 낭만을 나타낸 것처럼 보이다가 점차 어두운 분위기가 강해진다. 세번의 경제 상황을 비롯해 네 바람의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 낡고 오래된 거주지에 대한 묘사. 점점 어두운 심연으로 향하는 전개.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뒤틀린 낭만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퇴폐적으로 변한 예술이라 해야할지 모를 섬뜩함이다.

 

 앞에서 세번이 말하던 낭만은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허상의 그림자 같은 것에 가깝다고 본다. 현실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환상으로 인해 생긴 병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것은 내면을 갉아먹으며 결국에는 비슷한 것을 찾아내게 한다. 문제는 보통 사람이라면 들여다보지 않을 아주 어두운 어둠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번과 고양이가 같이 있는 시점으로 한정되고 주변에 대한 묘사 역시 세번의 대화문으로만 나타나 있음에도 제법 흥미진진하다는 점이 대단하다. 특히 고양이의 주인에 대해 추측하는 부분은 살짝 탐정 소설 같은 느낌이 있기도 하다. 다만 논리적이기 보다는 그저 추상적인 예측에 가깝기에 흔히 생각하는 탐정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추리적 요소가 있어 보이는 흔적 정도라고 알아두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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