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괴 1 - 산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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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늦은 밤 들려주던 무서운 이야기가 가끔씩 떠오르고는 한다. 짤막하고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상당히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는 언제나 산이었다. 늦은 밤, 산길을 걷다가 무언가와 마주쳤다. 산에 올랐다가 무언가를 봤다. 산에 무언가를 하러 갔다가 이상한 걸 보았다. 이야기 속에서의 산은 언제나 괴이한 것들이 넘쳐나는 미지의 장소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단순히 개발이 많이 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명맥이 끊겼다고 해도 될 정도로 들을 곳이 없거나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추억의 한 장면으로 잊혀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었던 감성과 생활환경 분위기 같은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는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창작물 쪽에 해당되는 책이 아니다. 일본 산간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민속자료, 또는 각색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산속 괴이 체험담을 모아 놓은 실화 괴담집에 가깝다. 일종의 현대에 기록된 설화, 야담집이라 해도 되겠다. 꽤 옛날이야기라고 생각되겠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 전해 들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게 오래된 편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니고 고속열차가 어느 정도 다니던 40년 전이거나, 불과 몇 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언급될 정도로 가장 최근에 해당되는 경험담도 있다(참고로 원서는 2015년에 출간됐다.). 이런 걸 보면 생각보다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은 오랜 옛날이 아닌 지금도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대체로 직접 겪은 경험담이나 아는 사람에게 들었던 썰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기묘하고 섬뜩한 것이 있는가 하면 그냥 일상적으로 있을 법한 요상하게 웃긴 경우도 있다. 다만 공포영화나 괴물영화에 나올 법한 엄청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려줄 법한 옛날 이야기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경험자들은 산간지역에 사는 현지인과 산을 잘 타는 전문가, 사냥꾼들이 다수다. 이런 점이 조금 신기해 보이면서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든다. 산악 관련 전문가들이 절대 산을 얕보면 안 된다고 매번 말하지만, 그 전문가들 역시 예측 불가능한 사태에 휘말리는 사례들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주된 소재로 많이 나오는 것은 산 짐승(특히 여우, 너구리, 뱀 관련으로 많다.)과 기묘한 빛, 이상한 소리, 환각처럼 나타나는 처음 보는 길, 미스터리한 실종이다. 전부 산에서 목격하거나 경험할만해서 보기에 따라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주된 소재로 나온 것들 전부 서로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상한 소리, 처음 보는 길, 실종 같은 것이 여우나 너구리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형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원인을 하나로 뭉뚱그려 놓는 경우가 있는 가 하면,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많다. 단순한 착각, 나름의 과학적 근거로 말이다. 그럼에도 설명되지 않은 모순이 남기에 진짜 뭔가가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실종 관련된 내용들은 좋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조금 진지하다 못해 안타까운 사연이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전부 현지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실화다.

단순히 괴기한 실화 이야기라는 점 외에도 문화적인 요소를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산간지방의 생활상, 보통 사냥꾼과는 또 다른 일본 전통의 마타기 문화, 각종 법률적 제약이 없던 헤이세이 이전 엽사들의 모습, 야생동물의 분포 및 멸종된 동물에 대한 소문, 특유의 산악 종교 및 수행자, 유명한 절과 사당, 죽음을 알리러 온다는 다마시라는 존재, 간혹 언급되는 요괴 관련 내용. 진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의미와 비유적 표현 모두에 해당되는 것들이 전부 있으니까. 또한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통해 괴이한 이야기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나 기원을 추측할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실없어 보이는 옛 이야기들도 충분히 가치 있는 민속자료가 되는 것이다.

산과 관련된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며 옛날이고 지금이고 자연의 경이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걸 느꼈다. 밤에도 빛으로 가득해진 현대에 여전히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 공간. 같은 곳이라도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는 장소. 이런 탓에 개개인의 경험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경험한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경험해보고 싶어도 이제는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귀중한 자산이다. 옛날에는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귀중함을 몰랐고, 현대에는 접하기 쉽지 않기에 무관심 속에서 귀중함을 모르게 됐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책처럼 작은 이야기들 하나하나를 모아 남긴다면 후세에도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또 다른 이야기로 크게 발전해 나가는 초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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