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도연대 雨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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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괴하면서 무거운 느낌이 특색인 교고쿠도 시리즈의 외전 치고는 상당히 유쾌한 내용이었다. 요괴를 빙자한 범인을 잡는 게 본편의 매력이라면, 백기도연대는 도리어 본인들이 요괴와 관련시켜서 사기를 치는 과정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본편 주요 인물의 시점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탓인지, 그 동안 본편 주요인물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였는지 알 수 있기도 했다.

 본편에 대한 스포일러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세한 내막은 나타나 있지 않아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껏 해야 어디에서 무슨 사건이 있었다, 누가 그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됐다, 정도라서 궁금증만 생길 것 같다.

 내용은 재미있었지만, 그 동안 교고쿠도 시리즈를 번역하던 분이 아니라서 읽는 내내 번역 때문에 이래저래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본어 표준법을 사용해서 생긴 어색함과 어투에서 오는 이질감은 둘째치고, 아무리봐도 나오키 상을 받은 인기작가의 작품이라고 팔릴 것만 염두해 번역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하다. 일본어에서 が와 の가 들어간 문장을 직역한 부분이 보이고, 대화문에서 작은 따옴표를 빼먹은 게 눈에 띄일 정도로 심했다. 역자를 바꿔서 다시 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리가마

 

 

 전기배선 공사일을 하는 화자는 어느 날, 관방차관의 저택에서 시중을 들던 조카가 강간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의 소개로 탐정에게 의뢰를 하기로 결정한다. 의뢰를 하고 탐정 에노키즈와 조수 마스다를 따라 도착한 교고쿠도라는 고서점에서 주인인 추젠지와 이런저런 논의가 이루어지던 중, 추젠지는 씻어 놓은 가마를 보며 좋은 계획을 떠올리게 된다...

 고서점상이자 점포이름인 교고쿠도로 불리는 추젠지와 친구들? 이외의 타인이 이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해도 될 정도로 화자가 극도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본편에서도 등장 했다하면 이름 바꿔부르기라던가, 대화를 공중분해 시키는 등의 개그를 남발한 에노키즈가 주연을 맡아서, 심각한 사건이 있고 교고쿠도의 박식함이 있다하더라도 결국에는 개그가 되버리는 어이없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철서의 우리에서 첫 등장했던 마스다가 에노키즈를 따라가면서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나고, 에노키즈의 가장 가까운 지인인 도라카치 마저 기묘하게 보이는 등, 지금까지 본편에서 보아왔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현대에 와서 여성이 받는 차별과 그것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것은 이 당시 일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여성인권 문제라든가, 사회제도 등등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든 사건의 모든 것은 공개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보여주기 싫은 부분까지 공개되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남자 답다는 것도 고려해 볼 점이었다. 여기저기서 남자답다, 남자답다라는데 도대체 뭐가 어떠면 남자답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나오는 화자의 말이 나의 생각과 비슷하고, 동감하기 때문에 인용한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술자리에서 마실 줄 모른다고 하면 그게 어디 남자냐는 비웃음을 당했다. 체력에도 자신이 없어 비실거리면 무슨 남자가 이러냐고 핀잔을 들었다. 매를 맞고도 반격하지 않으면 여자 같다는 조롱을 받았다.

 

 고집을 부리거나 허세를 부린다, 억지를 쓰거나 폭력을 휘두른다. 여자를 폭행하거나 잘난 체하고 남을 경멸한다...이런 것을 남자답다고 예찬한다면 나는 남자이기를 그만두고 싶다.-172p

 

 

 가마에 대한 옛 전설로 시작된 사기극은 이런저런 일을 다겪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항설백물어와 비교할 수도 있지만, 권선징악이라는 건 같아도 결국은 난장판을 만들고야 마는 에노키즈 때문에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단 에노키즈가 하고자 하는 일의 취지는 뭔지 알겠지만, 그 과정이 문제라서 교고쿠도가 경계하는 것 같다.

 

 

가메오사

 

 

 가마 사건 이후, 웬지 모르게 에노키즈를 찾아가 보고 싶어진 화자는 장미십자탐정사무소를 방문한다. 거기서 에노키즈는 거북과 해깔리게 하는 가메 얘기만 늘어 놓다가 아버지로 부터 도자기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골동품상 이마가와를 불렀다며 한바탕 소란이었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운 화자는 결국 교고쿠도를 방문하게 되고, 추젠지에게 항아리 수집광 저택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본격적으로 화자가 에노키즈에게 점점 말려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나리가마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세키구치와 비슷하게 되버려서 적지 않은 파장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에게 에노키즈가 본편에서 사건의 상징이 되는 요괴로 취급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꽃미남이자 자칭 신이라 하는 탐정 요괴.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그나마 정상적이고, 화자 또한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생각하던 추젠지도 모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보니 에노키즈 만큼이나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면 교고쿠도는 평균을 넘어서는 상식인에, 예의를 알고 나름대로 관대해서 그렇지 이 사람도 에노키즈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빛과 어둠의 양대산맥이라 해도 되겠다.

 철서의 우리와 아직 국내에 미발매된 무당거미의 이치에서 나름대로 활약을 하는 이마가와가 주연급으로 나와서 골동품이라던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그리고 도자기와 독, 항아리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본편에서 특이한 용모로 인상 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사람의 시선으로는 정말 괴상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일본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이고, 독과 항아리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가메라는 명칭이었다.

 물건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진귀한 물건이라도 낮은 가격을 매기면 쓰레기가 되고, 땅에 굴러다니는 흙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고 모사품임에도 불구한데도 가격이 높으면 진귀한 물건이 된다고 한다. 또한 가격은 일종의 한계점을 만드는 주술 작용도 한다고 나온다. 한 번 가격이 정해지면 아무리 가치 있던 것이라도 영원히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가치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런 주술은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을 거슬러 진행한 대대적인 사기와 죄책감이라는 벌을 받으며 살아온 여자 사이에 항아리를 통해 끼어든 에노키즈는 어김없이 대대적인 계획을 통해 진상을 밝혀내고, 전작보다도 더한 난장판을 만들었다. 아마 이번 작품은 에노키즈의 기물파손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내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야마오로시

 

 

 그림연극을 하는 곤도는 화자에게 탐정물을 쓰기 위해 탐정 에노키즈 취재를 부탁한다. 최근 사건이라면 추젠지에게 듣는 편이 더 현명할 것으로 판단한 화자는 나가노로 갔다가, 역에서 소설가 세키구치를 함께 만난다. 그들은 하코네에서 신세를 진 승려에게 오래전 인연을 맺은 승려에 대한 기묘한 일을 의뢰받게 된다.

 설명에서는 야마오로시가 가시두더지, 즉 호저라고는 하지만, 일본 사이트에서 부엌을 배경으로 그려 놓았다고 해서 일각에서는 강판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가마에 항아리까지 나왔으니 이쯤되면 백기도연대 雨를 주방 3종 세트라 해도 될 듯하다. 요괴 전문가인 작가도 이 점을 염두해 둔 것인지 작중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강판이 등장했다.

 철서의 우리 관계자가 등장하고, 배경 역시 사찰이었던 곳이기 때문에 철서의 우리 외전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선종 관련이기는 하나, 요리와 관련되어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다는 것 말고는 잘 알지 못했던 요리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나타나 있었다. 그 밖에도 요리 관련 고서적이라던가, 에도 초기의 음식 문화 같은 것도 나와서 에노키즈가 미식가 탐정 같이 되는 줄 알았다. 에노키즈 성격이라면 미식이고 고급이고 뭐고,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겠지만.

 가시두더지에 대한 얘기는 큰 분량은 아니지만 약간은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학적인 면도 그렇지만, 옛날 사람 눈에 보여진 특이한 생물이 요괴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도 그럴 사 하게 느껴졌다. 일단은 그 당시에 설명 불가능한 것들은 모두 괴(怪)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번역에 대해 지적을 하자면 에노키즈가 세키구치를 부를 때의 호칭을 반영하지 않은 점이다. 본편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은 걸 나타내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에노키즈와 관련 인물(정확하게 얘기하면 본편 관련인물이다.)이 꽤 많이 나오는 편이라서 화자가 세키구치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심지어 세키구치와 점점 비슷해지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화자 말고는 전부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어딘가 특이한 사람이라도, 그나마 평범해 보여도, 멀쩡하게 생겼어도 결국에는 에노키즈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물파손에 이은 에노키즈의 활극이 잘 나타나 있었다. 흉기를 든 적과 대치하고 쫓고, 멱살을 잡는 등, 에노키즈의 폭력성이 들어나는 것 같았으나 절반 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야 될 것이다. 어쨌거나 활극은 활극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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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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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은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보고서였다.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단편이 들어있는 이 책을 골랐다. 대체로 상상이 실제처럼 보이게 상상과 실제를 섞은 구성이라서 내용이 어렵게 보였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부터 칸트, 쇼펜하우너, 사무엘 존슨 등등에 이르는 철학에 대한 거라던가, 저자가 달아 놓은 것과 역자가 달아 놓은 방대한 양의 주석은 단편소설이라 해도 장편소설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자 주석은 해석을 중점으로 했지만 저자인 보르헤스가 달아놓은 주석을 보면 거의 주석에도 소설의 한 부분을 써놨다는 느낌이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 취향인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다.

 책은 1부 픽션들과 2부 기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픽션들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 되어 있다. 페이지 수로 보면 분량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각각의 내용이 굵직굵직 해서 빨리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주로 존재하지 않는 책이 사건의 중심이 되거나 주제가 되는 내용이 많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알모따심에로의 접근》,《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바벨의 도서관》,《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 그러하다. 가상의 책이지만, 작중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신문, 잡지에 실렸었다던가 실존작가가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을 썼다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사실이 아니며 작가가 실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다.

 내용은 대체로 환상적이고, 실존하는 책처럼 비평하는 것도 있으며 때로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심지어 우주와 시간적 개념의 내용도 보인다. 틀뢴의 언어가 지구를 휩쓴다는 음모론을 다룬《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리태거 백과사전이 1달러 지폐에 숨겨진 프리메이슨의 삼각형이나 전시안 같은 상징이 숨어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한 작가의 시간적으로 거꾸로 된 소설을 분석한 것을 다룬《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복잡한 시공간 개념을 나타낸 것처럼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고, 세상은 무한하다는 느낌이다.

 인도 최초의 탐정소설에 대한 비평을 담은《알모따심에로의 접근》과 현대에 다시 쓰인 돈키호테를 다룬《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전적으로 가상의 책을 존재하고 읽었던 것처럼 쓰여있다.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글쓴이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있어서 문학이론처럼 보였다.

 꿈을 통한 신전의 탄생과 멸망이 반복되는 《원형의 폐허들》과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성행한 추첨권을 다룬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약간 고대문명 분위기였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원형의 폐허들》은 창조신화 같은 분위기라면,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먼 옛날에도 존재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읽을 수없는 언어로 된 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을 다룬 《바벨의 도서관》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관을 보는 것 같아서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공간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도서관의 모양과 구성도 멋졌지만, 실제로 이런 도서관이 있다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에서 탐정소설이라 밝혔으나 우주와 시간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생각할 거리와 함께 충격적인 반전의 재미를 준다.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지만, 전쟁과 관련없는 내용이 나오다가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시원하게 뒤통수를 치는 맛이 정말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기교들

 

 

 총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픽션들에서 주제가 책이었다면, 기교들은 주로 인물로 유대인이 많았고 대체로 종교와 차별받은 민족에 관한 관련된 내용이었다.

 브라질에 사는 칼에 베인 상처 자국이 있는 영국인의 사연을 다룬《칼의 형상》, 19세기 중엽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유명 저작을 따라해서 영웅인 된 자의 이야기를 쓸 과정을 다룬《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2차세계대전 당시 프라하에서 처형 대상이 된 유대인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다룬《비밀의 기적》, 게르만혈통의 피를 가진 아르헨티나인이 겪는 불행을 다룬《남부》같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 전부를 기억할 수 있는 소년을 다룬《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소재부터가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쓴 글이라는 걸 생각하면 할 수록, 얼마나 심각한 불면증이었는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유대인 연쇄 살인사건에 나타난 기묘한 상징을 통해 범인을 추격하는 탐정을 다룬《죽음의 나침반》은 추리소설 구성이라서 약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만큼 충격적인 반전이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면으로도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숨겨진 의도를 다룬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아르헨티나의 유명 서사시를 패러디한《끝》,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신비로운 종교를 다룬《불사조 교파》는 종교적인 면이 강했다. 고대 이집트 종교를 다룬 《불사조 교파》는 픽션들에 있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와 비슷한 비밀결사가 나오지만, 음모론에 나올 법한 사악한 집단이 아니라서, 종교의 자율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이 들게 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는 성경에 대해 전무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다와 예수의 관계를 다룬 내용이라서, 어디까지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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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양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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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귀야행 음에 이은 교고쿠도 시리즈에 나온 주변인물들을 다룬 사이드 스토리다. 표지가 흰색으로 밝고 한자도 양(陽)이 쓰여 있지만, 밝은 내용은 없다. 하기야 이 제목은 밝다는 느낌으로 쓰인 게 아니라, 토리야마 세키엔의 요괴 화집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백귀야행 음은 주로 외부에서 오는 공포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느낌이었는데, 백귀야행 양은 대체로 자신의 내면 속에서 하는 갈등과 고민이 점점 두려워지면서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디로 피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이라면 그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오안도

 

 있을리 없는 여동생에 집착하는 자산관리인의 이야기다. 주연인물이 본편에서 어떤 역할이었고,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와 있어서 내용상 백귀야행 음의 엔엔라처럼 에필로그 같은 분위기였다.

 책의 수요와 가격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가치의 유무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독서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주장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개인적인 기록은 아는 사람에게 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 있어 보였다. 아무리 옛 사람들의 개인적 문헌을 보아도, 글쓴이가 쓴 글의 느낌을 알 뿐이지 기록 속의 글쓴이의 감정이 어땠는지 독자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기록과 기억의 차이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책에 관한 어려운 부분 말고도 이 작품은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삶은 어제가 축척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이야기고, 오늘에 실체가 불문명한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일종의 주마등과 비슷한 것 같지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축척된 어제 속에서 나는 귀신 같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싹하다.

 

오쿠비

 

 성욕에 얽힌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주로 성욕의 본질과 사회에서 취급 받는 위치의 모순 아닌 모순에서 느끼는 갈등이 나타나 있었다.

 애정과 관능 사이에서 뭐가 진짜인지, 관념에서 분리된 성욕의 본질은 무엇일지 엄청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의 몸을 탐하는 것의 차이. 감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자체는 감정이 있어서 어리석지는 않지만, 각 신체의 부분은 감정이 없어서 어리석다는 것일까. 아니면 성욕이 사람의 몸에서 오고, 그걸 사회에서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신체부분이 어리석고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일지.

 어쩌면 사람자체는 어리석지 않으나, 사람의 신체부분라는 것이 어리석어서 사람자체를 어리석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걸지도 모른다.

 

뵤부노조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로 인해 괴로워하는 창녀 출신의 노파 이야기다. 주로 뭔가를 감춘다던가, 숨어서 하는 행위를 누군가 엿본다는 꺼림직한 느낌이 많았다.

 지금은 병풍이 흔치 않다보니 단순히 뒤에 세워 놓는 물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은근히 무언가를 가리는 용도로 많이 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사람의 키를 넘어서는 병풍 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구성이라 어딘가 짠하게 느껴졌다. 어린시절과 삶이 힘겨워지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엿본다는 행위를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훔쳐보는 것을 자각한다는 걸 넘어서, 내면에 남아있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나온 죄책감이 기괴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엿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에는 자기를 엿보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도

 

 너무 좋아하는 엄마가 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죽일 놈의 아들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분위기를 감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든 눈치가 없어서 분위기를 파악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눈치없는 척을 한다던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도 아니게 보일 것이다.

 편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는 생활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듯한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의 심리 같지만, 그저 영원한 평온을 원하는 교활한 심리라는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평온은 언제나 끝이 나기 마련이라 대부분 본인이 직접 대안을 마련할테지만, 그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끔 하기도 했다. 다수의 감정을 소수의 다른 감정을 가진 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 지, 또는 다수의 감정과 다르면 사람이 아닌 것인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리에 맞지 않은 감정을 지닌 것은 소수의 다른 감정이 아닌,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라고.

 

아오사기노히

 

 빛나는 왜가리를 본 시골에 숨어든 소설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교고쿠도 시리즈상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인물이 등장해서 좀 기대한 내용이었다.

 대중소설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글에 대한 신념이라던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제한된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유를 원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 하는 의문이 새로 이어져서 흥미로웠다. 하늘을 나는 동물에 불과한 새가 사후세계와 관련 있고, 밤에 날아다는 새가 죽은 사람의 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에 매혹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환상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감정을 뒤쫓는 모습을 보며, 본편에서 이 인물이 보인 행동이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카노히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은 사인을 찾아 나서는 아들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발간 예정이라고 몇 년째 고지하고 있는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의 프롤로그인 듯 하다.

 아직 미발매인 본편의 일화를 다룬 내용이라서 곳곳에서 배경이 어디고, 큰 사건과 연관성을 갖게 되는 작은 사건의 관계자들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작중 인물들은 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크게 망가지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산 자체를 숭배하는 산 신앙과 그 산에 들어온 각종 종교에 대해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종교라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으나 그 숭배의 대상은 사람이 만든 만들어진 신이라고 해서 상당히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산에 대한 것을 다루며 산 속에 있는 것은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산의 일부라는 말이 나와서 어딘지 모르게 살아있는 자연의 거대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사건 뒤에 펼쳐질 본편의 사건이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산처럼 거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오뇨보

 

 지옥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자 제작 장인의 이야기다. 한 가지에 병적으로 집중한다는 것과 대인기피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사람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서평을 쓰는 본인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서 이 분위기에 대해서 약간은 공감이 가는 편이다.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하고 싶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결국 단념하면서, 생각대로 되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두루뭉실한 사람의 감정에 혼란스러워져서 상자에 집착하게 됐지만, 결국에는 그 집착 때문에 해어나오지 못하는 게 된 것이다.

 사람의 무관심이 주변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느껴졌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나는 나대로, 주변은 주변대로 분리되어서 알아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면 모를까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한 명이라도 충실하지 않으면 제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메온나

 

 갓난아기 때 액땜에 실패해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는 건달의 이야기다. 어딘지 모르게 미신으로 인한 주변의 태도 때문에 한 개인이 피해를 입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부터 불길한 아이였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은 탄생이라면 몰라도, 액땜에 실패했다고 불길한 취급을 받는 다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사람은 듣는 말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불길하다고 취급을 하니까, 불길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대하는 관점이 문제로 보였다. 한 사람을 미신 같은 근거도 없는 이유로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나쁜 짓으로 보이고 결국에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쁜 일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자타이

 

 뱀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호텔 메이드의 이야기다. 이 역시 아직 미발매 중인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에 나오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배경은 하카노히에 나온 지역과 같은 곳이나, 시점과 배경이 다르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면서 미발매 신작에는 본편 주연 인물의 가족 중 한 명이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광지에 대한 생각지 못한 견해가 있었다. 관광객의 입장이 아니라 현지인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약간은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본인들에게는 누추한 곳을 멀리서 보러 온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호텔 같은 서양식 관습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시대적 상황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처럼 갑작스럽게 외래문화가 밀려들어온 곳에서는 한 번쯤 다시 돌아봐야할 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알고 있다는 것을 막상 잘 생각해보면 애매해지고, 어떨 때는 아예 잘못 알고 있었거나 왜곡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게 있다면 그 비슷한 것에도 기억의 한 장면이 각인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곡된 기억일지라도.

 

메쿠라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남자가 탐정이 된 이야기다. 교고쿠도 시리즈 상 탐정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분이라는 걸 알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탐정이 되기 전의 생활까지 나타나 있어서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선에 대해서 다루어서 '백귀야행 음'의 모쿠모쿠렌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느낌이다.

 물고기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지 않아서, 물고기의 시선을 다룬 부분을 보며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여도 남들이 그렇지 않으면 순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니까 남들의 판단을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이 분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탐정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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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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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전승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존재들이 등장하는 내용이 많다. 대체로 전국적인 것부터 특정 지방에 한정된 것까지 다양하다. 이게 단순한 소문일지, 아니면 진짜 목격담인지, 또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사람이 인위적으로 일으켰다면, 도대체 왜 그런 기묘한 짓을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기록한 사람이라면 진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어행사 마타이치와 인형사 오닌, 괴담 수집가 모모이치, 그리고 변장술사 지헤이가 돌아다니는 곳에서는 기묘한 일이 발생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리 이상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나쁜 짓을 하고 눈치를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피하려 하면서 보게 되는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귀신이니 요괴니 하는 초현상적인 존재들에 의해 벌을 받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아즈키아라이

 

 한밤중 절에 돌아가는 길이던 승려 엔카이는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기위해 한 오두막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오두막 주인 외에도 비를 피하려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어행사 마타이치가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제안하고, 얘기가 계속 될수록 빗속에서 팥을 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엔카이는 불안에 떨기 시작한다...

 비오는 날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사람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구성은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에서 파는 괴담집에서 이미 본적이 있었다. 그 내용과 구성은 비슷하게 보였지만 이 내용은 기현상을 빙자한 권선징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성격이 확실히 다르다. 보통 외딴 오두막이라는 배경에서는 내부에서 공포가 일어나는 내용이 많다. 그 내용에서는 도망칠 곳이라도 있지, 아즈키아라이에서는 외부에서 들리는 팥을 이는 소리와 내부에서 우연히 모인 사람들이 하는 얘기까지 더해 고립된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죄가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하쿠조스

 

 여우사냥꾼 야사쿠는 유메마야산의 여우숲에 있는 한 사당과 무덤 앞에서 잠시 쉬던 중, 여우탈을 쓴 여인을 만나게 된다. 야사쿠는 여자가 준 약을 먹고 정신을 잃은 뒤, 젊은 글쟁이와 노인이 사는 집에서 깨어난다. 젊은 글쟁이는 야사쿠가 있던 사당과 무덤이 하쿠조즈라는 오래묵은 암여우를 모신 곳이라고 말한다. 그 얘기를 들은 야사쿠는 자신이 여우에게 홀렸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는 여우에 관한 여러 설화가 있지만, 대중매체에서 다루는 것은 매번 구미호라서 그런지 그 밖에 있을 지도 모르는 다른 설화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쿠조스는 흔하다 할 수 있는 여우요괴가 나오는 내용임에도 흥미로웠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들 간의 혼선을 이용해 한 사람을 속이는 것을 보면서, 현실에서 서술트릭을 실제로 하면 이런 형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이런 일을 당하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약점을 잡혀서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배경이 옛날인 만큼 사람이 사람으로 둔갑한 사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쿠비

 

 도모에가후치라는 깊은 못 기슭에는 마을사람들을 위협하며 사는 귀호 아쿠고로라는 망나니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박장 주인인 고산타는 아쿠고로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참수인 마타시게는 한 노인에게 자신의 딸을 잡아간 아쿠고로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도코로 주나이는 아쿠고로의 노름 친구인 어행사에게 아쿠고로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쿠고로의 오두막 앞에서 목이 잘린 세 구의 시체가 발견 된다...

 읽고나서 회본백물어에 기록된 마이쿠비 전설 속에 등장하는 목이 잘린 3인의 이름이 작중에 그대로 사용된 것을 알게 되서 작가의 치밀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얼핏보면 최악의 악인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나섰다가 처참하게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권선징악 속에 숨겨진 권선징악이라는 느낌이었다. 하는 짓이 진정한 악인으로 보이더라도, 이용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느낌을 처음 알았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다는 것도 눈여겨 봐야할 것 같다.

 

 

시바에몬 너구리

 

 아와지 지방에는 시바에몬이라는 존경받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던 노인은 마을 외곽에 인형극단이 오던 날, 손녀딸 하나가 살해당하는 일을 겪게 된다. 손녀딸을 살해한 범인은 잡히지 않은채 몇날 몇칠이 흘러가던 중, 시바에몬 노인의 집에 한 너구리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너구리를 반갑게 맞이하던 시바에몬 노인은 그 너구리로 부터 자신도 시바에몬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 다음 날 자신이 그 너구리라고 주장하는 노인이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민간전승에서 사람으로 둔갑하는 짐승으로 여우 외에도 호랑이가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는 여우 외의 대표적인 것이 너구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바에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과 너구리의 대화는 분위가 무거운 작중에 잠시나마 유쾌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확실치 않은 조상내력을 들먹이며 현실의 책임을 묻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뒤틀린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를 부정하고 있기에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조상이 누린 권세에 눈이 먼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너구리였을지도 모른다.

 

 

시오노 초지

 

 오시오가우라 해변에 말장수 부자로 유명한 우마카이 초자는 인심이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매월 열엿샛날 마다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배푸는 것은 먼 지방에 까지 소문이 날 정도다. 이 얘기를 들은 마타이치는 지헤이와 함께 과거 우마카이 초자의 가족이 도적을 만난 참극의 현장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다...

 앞서 나온 패턴과는 약간 다르게 마타이치 일행이 사건에 관한 조사를 하는 것이 먼저 나와서, 그 동안 마타이치 일행이 사전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없지만, 옛날에는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운송수단으로 많이 이용되는 말은 그만큼 함부로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먹는 다는 행위로 인해 기이한 일이 발생한다는 전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야나기온나

 

 야나기아라는 숙소에는 여관 건물보다 큰 버드나무가 정원에 있다. 그 버드나무는 예부터 저주받은 나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고 한다. 저주에 대한 소문 때문인지 숙소 창업자인 소에몬은 버드나무 앞에 작은 사당을 만들었으나, 현주인인 기치베는 저주고 부처님이고 믿지 않는다면서 사당을 없애버린다. 그 후, 기치베의 아내와 자손들이 연이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지금이야 나무는 자연에서 나오는 한정된 자원이자, 지구의 대기와 환경에 큰 역할을 하는 식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옛날에는 우리나라 무속의 서낭당 나무처럼 신성시여겼거나 보통 나무가 아니라서 베면 저주를 받는다는 둥의 얘기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성하거나, 불길한 나무에게 사람의 죄를 뒤집어 씌운다면 얼마나 큰벌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자각을 하지만,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거기에 걸맞는 이유를 찾는 것만큼 비겁한 짓은 없을 것이다. 자각만 있다고, 곧 양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타비라가쓰지

 

 

 가타바라가쓰지라는 갈림길에는 단림황후의 시신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야무네 린조는 한 사당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을 그린 구상시 그림족자를 보고 있는 마타이치를 찾아와 그 갈림길에서 일어난 일의 해결을 부탁하게 된다. 사건은 작년 여름부터 가타바라가쓰지에서 나타난 여자의 시체로 시작된다. 여자의 시체는 썩은 상태로 버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시체를 치운 후, 다음 날이 되면 또 다시 여자의 시체가 나타나고 갈수록 부패 상태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시체와 관련된 기이한 일이라는 점과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어서 다른 내용들에 비해서 약간 더 섬뜩한 내용이기도 했다. 일본에 시체 그림부터 썩어가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전설이 있다는 것은 처음들어 보았다.

 보통 살아있는 사람이 죽으면 몸과 영혼이 분리 된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이 관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살아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죽어서까지 사랑하게 된다면 과연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살아있을 적에 나누던 기억일지, 아니면 생명은 멈추었으나 이승에 남겨진 몸일지. 그리고 과연 그게 거짓없는 진정한 사랑일지, 아니면 욕망으로 가득 찬 집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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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2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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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든 소설이든 속편이 나오는 일이 많다. 주인공 캐릭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과 또 다른 사건에서의 활약을 기대하는 편이지만, 전편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견습의사는 전편인 외과의사와 연결된 속편이지만, 속편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애매한 것이 느껴진다. 시리즈 상의 주인공인 제인 리졸리 형사에게는 사건의 악몽이 연결된 속편이었지만,외과의사에게는 전작에서 밝혀지지 않은 과거를 말하는 프리퀄과 리졸리와의 끝판을 보려는 속편이라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 사건이 벌어진지 1년 후, 보스턴에서 부부를 상대로한 살인극이 벌어진다. 코삭 형사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리졸리는 부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외과의사를 모방했다는 점을 알아낸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아직 외과의사에 대한 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갑작스럽게 사건에 개입한 FBI 요원 게이브런 딘 때문에 불편함은 늘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2차 살인극이 벌어지고, 외과의사가 탈옥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제인 리졸리의 비중이 높아지고, 파트너격인 검시관 마우라 아일스 박사의 등장이 눈여겨 볼 점이었다. 마우라 아일스는 검시관인 만큼 검시하는 부분에서 큰비중으로 등장한다. 전작에서 작가만의 의학 지식을 범인과 관련인물에게 거의 투자를 했다면, 이번에는 전작에서 역할을 다하고 빠진 코델 박사를 대신해 비중있게 의학 지식을 다룰 주연급 역할과 제인 리졸리의 조력자 역할을 하게금 마우라 아일스를 넣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보면 전작에 비해서 의학 지식은 마우라 아일스가 담당하고, 정작 범인이었던 외과의사는 기상천외한 탈옥방법을 제외하면 의학에 대한 비중이 확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전작에서 뼈속까지 경찰이던 리졸리가 사건에 시달리는 피해자이자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안타까운 모습이 자주보였다. 경찰과 범인의 관계로 대결해야하는 동시에, 피해자와 범인 관계로 대치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런지 생각 해보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경솔한 행동을 보였다. 그래서 얼핏보면 옆에서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는 코삭 형사나 게이브런 딘도 리졸리의 시선에서는 자신을 깔본다던가, 방해한다는 느낌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아쉬운게 있다면 이번 사건의 범인이 말그대로 외과의사 모방범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부를 대상으로한 범행과 소름끼칠 정도의 재현실력에 외과의사에 맞먹는 범죄동기를 보이면서 은근히 외과의사보다 더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결말에 가서는 너무 싱겁게 다루어져서 리졸리와 외과의사를 연결시키는, 작품 내에서 치고 빠지는 조연에 지나지 않게 보였다. 견습의사의 범인이 온갖 사건이라던가, 강렬하고 잔인한 분위기를 깔며 식탁 한가득 차려놨는데 마지막에 외과의사가 전부 독식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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