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양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백귀야행 음에 이은 교고쿠도 시리즈에 나온 주변인물들을 다룬 사이드 스토리다. 표지가 흰색으로 밝고 한자도 양(陽)이 쓰여 있지만, 밝은 내용은 없다. 하기야 이 제목은 밝다는 느낌으로 쓰인 게 아니라, 토리야마 세키엔의 요괴 화집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백귀야행 음은 주로 외부에서 오는 공포나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느낌이었는데, 백귀야행 양은 대체로 자신의 내면 속에서 하는 갈등과 고민이 점점 두려워지면서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디로 피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이라면 그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오안도

 

 있을리 없는 여동생에 집착하는 자산관리인의 이야기다. 주연인물이 본편에서 어떤 역할이었고,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와 있어서 내용상 백귀야행 음의 엔엔라처럼 에필로그 같은 분위기였다.

 책의 수요와 가격을 나누는 기준, 그리고 가치의 유무는 생각보다 복잡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독서의 현실은 열악하다는 주장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개인적인 기록은 아는 사람에게 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 있어 보였다. 아무리 옛 사람들의 개인적 문헌을 보아도, 글쓴이가 쓴 글의 느낌을 알 뿐이지 기록 속의 글쓴이의 감정이 어땠는지 독자가 알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기록과 기억의 차이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책에 관한 어려운 부분 말고도 이 작품은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삶은 어제가 축척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이야기고, 오늘에 실체가 불문명한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일종의 주마등과 비슷한 것 같지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은 어제가 되면 실체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축척된 어제 속에서 나는 귀신 같은 존재하지 않은 것들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얘기가 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싹하다.

 

오쿠비

 

 성욕에 얽힌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주로 성욕의 본질과 사회에서 취급 받는 위치의 모순 아닌 모순에서 느끼는 갈등이 나타나 있었다.

 애정과 관능 사이에서 뭐가 진짜인지, 관념에서 분리된 성욕의 본질은 무엇일지 엄청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의 몸을 탐하는 것의 차이. 감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자체는 감정이 있어서 어리석지는 않지만, 각 신체의 부분은 감정이 없어서 어리석다는 것일까. 아니면 성욕이 사람의 몸에서 오고, 그걸 사회에서 좋지 않게 보기 때문에 신체부분이 어리석고 성욕을 느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일지.

 어쩌면 사람자체는 어리석지 않으나, 사람의 신체부분라는 것이 어리석어서 사람자체를 어리석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걸지도 모른다.

 

뵤부노조키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로 인해 괴로워하는 창녀 출신의 노파 이야기다. 주로 뭔가를 감춘다던가, 숨어서 하는 행위를 누군가 엿본다는 꺼림직한 느낌이 많았다.

 지금은 병풍이 흔치 않다보니 단순히 뒤에 세워 놓는 물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은근히 무언가를 가리는 용도로 많이 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사람의 키를 넘어서는 병풍 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니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구성이라 어딘가 짠하게 느껴졌다. 어린시절과 삶이 힘겨워지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덧없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엿본다는 행위를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훔쳐보는 것을 자각한다는 걸 넘어서, 내면에 남아있는 최소한의 양심에서 나온 죄책감이 기괴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엿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에는 자기를 엿보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도

 

 너무 좋아하는 엄마가 죽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죽일 놈의 아들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분위기를 감지 못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든 눈치가 없어서 분위기를 파악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눈치없는 척을 한다던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람도 아니게 보일 것이다.

 편안하고 아무 걱정도 없는 생활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듯한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겁쟁이의 심리 같지만, 그저 영원한 평온을 원하는 교활한 심리라는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평온은 언제나 끝이 나기 마련이라 대부분 본인이 직접 대안을 마련할테지만, 그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끔 하기도 했다. 다수의 감정을 소수의 다른 감정을 가진 자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 지, 또는 다수의 감정과 다르면 사람이 아닌 것인지.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도리에 맞지 않은 감정을 지닌 것은 소수의 다른 감정이 아닌,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이라고.

 

아오사기노히

 

 빛나는 왜가리를 본 시골에 숨어든 소설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교고쿠도 시리즈상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인물이 등장해서 좀 기대한 내용이었다.

 대중소설 작가가 생각하는 자신의 글에 대한 신념이라던가,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제한된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유를 원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람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 가, 하는 의문이 새로 이어져서 흥미로웠다. 하늘을 나는 동물에 불과한 새가 사후세계와 관련 있고, 밤에 날아다는 새가 죽은 사람의 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에 매혹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환상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깊은 연민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감정을 뒤쫓는 모습을 보며, 본편에서 이 인물이 보인 행동이 단순히 사람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카노히

 

 식물학자였던 아버지의 수수께끼 같은 사인을 찾아 나서는 아들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발간 예정이라고 몇 년째 고지하고 있는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의 프롤로그인 듯 하다.

 아직 미발매인 본편의 일화를 다룬 내용이라서 곳곳에서 배경이 어디고, 큰 사건과 연관성을 갖게 되는 작은 사건의 관계자들이 나온 것처럼 보였다. 작중 인물들은 한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크게 망가지거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산 자체를 숭배하는 산 신앙과 그 산에 들어온 각종 종교에 대해서 만들어진 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며, 종교라는 것은 원래부터 있었으나 그 숭배의 대상은 사람이 만든 만들어진 신이라고 해서 상당히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산에 대한 것을 다루며 산 속에 있는 것은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산의 일부라는 말이 나와서 어딘지 모르게 살아있는 자연의 거대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사건 뒤에 펼쳐질 본편의 사건이 어떤 것일지 모르지만, 산처럼 거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오뇨보

 

 지옥의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자 제작 장인의 이야기다. 한 가지에 병적으로 집중한다는 것과 대인기피 느낌을 주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툰 사람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서평을 쓰는 본인도 약간 그런 기질이 있어서 이 분위기에 대해서 약간은 공감이 가는 편이다. 생각으로는 어떻게든 하고 싶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은 현실에 결국 단념하면서, 생각대로 되는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두루뭉실한 사람의 감정에 혼란스러워져서 상자에 집착하게 됐지만, 결국에는 그 집착 때문에 해어나오지 못하는 게 된 것이다.

 사람의 무관심이 주변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느껴졌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나는 나대로, 주변은 주변대로 분리되어서 알아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라면 모를까 가족이라는 구성원은 한 명이라도 충실하지 않으면 제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아메온나

 

 갓난아기 때 액땜에 실패해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는 건달의 이야기다. 어딘지 모르게 미신으로 인한 주변의 태도 때문에 한 개인이 피해를 입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부터 불길한 아이였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은 탄생이라면 몰라도, 액땜에 실패했다고 불길한 취급을 받는 다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사람은 듣는 말에 따라 그렇게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불길하다고 취급을 하니까, 불길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사람을 대하는 관점이 문제로 보였다. 한 사람을 미신 같은 근거도 없는 이유로 나쁜 놈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나쁜 짓으로 보이고 결국에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쁜 일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자타이

 

 뱀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호텔 메이드의 이야기다. 이 역시 아직 미발매 중인 교고쿠도 시리즈 신작에 나오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 배경은 하카노히에 나온 지역과 같은 곳이나, 시점과 배경이 다르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면서 미발매 신작에는 본편 주연 인물의 가족 중 한 명이 등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광지에 대한 생각지 못한 견해가 있었다. 관광객의 입장이 아니라 현지인의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이라 약간은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본인들에게는 누추한 곳을 멀리서 보러 온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호텔 같은 서양식 관습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는 감정이 있었다. 시대적 상황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우리나라처럼 갑작스럽게 외래문화가 밀려들어온 곳에서는 한 번쯤 다시 돌아봐야할 점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알고 있다는 것을 막상 잘 생각해보면 애매해지고, 어떨 때는 아예 잘못 알고 있었거나 왜곡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비슷비슷한 게 있다면 그 비슷한 것에도 기억의 한 장면이 각인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곡된 기억일지라도.

 

메쿠라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만 보이는 남자가 탐정이 된 이야기다. 교고쿠도 시리즈 상 탐정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그 분이라는 걸 알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탐정이 되기 전의 생활까지 나타나 있어서 충분히 기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시선에 대해서 다루어서 '백귀야행 음'의 모쿠모쿠렌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건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닌,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느낌이다.

 물고기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지 않아서, 물고기의 시선을 다룬 부분을 보며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 이상하게 보여도 남들이 그렇지 않으면 순응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세상이니까 남들의 판단을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이 분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탐정이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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