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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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헤스라는 이름을 들어본 것은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보고서였다.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단편이 들어있는 이 책을 골랐다. 대체로 상상이 실제처럼 보이게 상상과 실제를 섞은 구성이라서 내용이 어렵게 보였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부터 칸트, 쇼펜하우너, 사무엘 존슨 등등에 이르는 철학에 대한 거라던가, 저자가 달아 놓은 것과 역자가 달아 놓은 방대한 양의 주석은 단편소설이라 해도 장편소설에 버금가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자 주석은 해석을 중점으로 했지만 저자인 보르헤스가 달아놓은 주석을 보면 거의 주석에도 소설의 한 부분을 써놨다는 느낌이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개인적 취향인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다.

 책은 1부 픽션들과 2부 기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픽션들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 되어 있다. 페이지 수로 보면 분량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각각의 내용이 굵직굵직 해서 빨리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주로 존재하지 않는 책이 사건의 중심이 되거나 주제가 되는 내용이 많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알모따심에로의 접근》,《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바벨의 도서관》,《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이 그러하다. 가상의 책이지만, 작중에서는 실제로 있었던 신문, 잡지에 실렸었다던가 실존작가가 그 작품에 대한 해설을 썼다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사실이 아니며 작가가 실제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였다.

 내용은 대체로 환상적이고, 실존하는 책처럼 비평하는 것도 있으며 때로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고 심지어 우주와 시간적 개념의 내용도 보인다. 틀뢴의 언어가 지구를 휩쓴다는 음모론을 다룬《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리태거 백과사전이 1달러 지폐에 숨겨진 프리메이슨의 삼각형이나 전시안 같은 상징이 숨어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한 작가의 시간적으로 거꾸로 된 소설을 분석한 것을 다룬《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 복잡한 시공간 개념을 나타낸 것처럼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서는 안 되는 것이 없고, 세상은 무한하다는 느낌이다.

 인도 최초의 탐정소설에 대한 비평을 담은《알모따심에로의 접근》과 현대에 다시 쓰인 돈키호테를 다룬《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는 전적으로 가상의 책을 존재하고 읽었던 것처럼 쓰여있다.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글쓴이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있어서 문학이론처럼 보였다.

 꿈을 통한 신전의 탄생과 멸망이 반복되는 《원형의 폐허들》과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성행한 추첨권을 다룬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약간 고대문명 분위기였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원형의 폐허들》은 창조신화 같은 분위기라면,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먼 옛날에도 존재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읽을 수없는 언어로 된 책으로 구성된 도서관을 다룬 《바벨의 도서관》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관을 보는 것 같아서 상상도 못할 정도의 공간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도서관의 모양과 구성도 멋졌지만, 실제로 이런 도서관이 있다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에서 탐정소설이라 밝혔으나 우주와 시간의 세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생각할 거리와 함께 충격적인 반전의 재미를 준다.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지만, 전쟁과 관련없는 내용이 나오다가 본분을 잊지 않았다는 듯이 시원하게 뒤통수를 치는 맛이 정말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기교들

 

 

 총 9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픽션들에서 주제가 책이었다면, 기교들은 주로 인물로 유대인이 많았고 대체로 종교와 차별받은 민족에 관한 관련된 내용이었다.

 브라질에 사는 칼에 베인 상처 자국이 있는 영국인의 사연을 다룬《칼의 형상》, 19세기 중엽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유명 저작을 따라해서 영웅인 된 자의 이야기를 쓸 과정을 다룬《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 2차세계대전 당시 프라하에서 처형 대상이 된 유대인 극작가의 마지막 작품을 다룬《비밀의 기적》, 게르만혈통의 피를 가진 아르헨티나인이 겪는 불행을 다룬《남부》같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상 전부를 기억할 수 있는 소년을 다룬《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소재부터가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쓴 글이라는 걸 생각하면 할 수록, 얼마나 심각한 불면증이었는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유대인 연쇄 살인사건에 나타난 기묘한 상징을 통해 범인을 추격하는 탐정을 다룬《죽음의 나침반》은 추리소설 구성이라서 약간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만큼 충격적인 반전이 있어서 나름대로 재미면으로도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숨겨진 의도를 다룬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 아르헨티나의 유명 서사시를 패러디한《끝》,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한 신비로운 종교를 다룬《불사조 교파》는 종교적인 면이 강했다. 고대 이집트 종교를 다룬 《불사조 교파》는 픽션들에 있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와 비슷한 비밀결사가 나오지만, 음모론에 나올 법한 사악한 집단이 아니라서, 종교의 자율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이 들게 했다. 성경을 기반으로 한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는 성경에 대해 전무해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다와 예수의 관계를 다룬 내용이라서, 어디까지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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