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매그레 시리즈 21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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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할 사정을 가진 이들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돈다. 사실을 밝히면 몰려올 눈치와 비난 때문에 평소의 일상을 가장해서 만들어낸 또 다른 일상인 셈이다. 이런 이들이 그나마 안식처로 삼는 곳이 바로 벤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멈춰 있을 곳이자,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교류의 장소다.

마냥 외롭고 쓸쓸한 세계로 보일 수 있지만 이건 생각 해봐야 한다. 이 벤치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 그 다른 관점을 통해 어떤 기회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지만 괜찮겠다 싶으면 무작정 붙잡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어디로 향하고, 어떤 결말로 막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채로.

파리 생마르탱 대로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칼에 찔린 시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매그레 반장. 피해자는 루이 투레라는 창고 관리인. 구두와 넥타이는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와 다른 것이었고, 한창 회사에 있을 시간에 외진 골목에서 발견됐다는 점, 여기에 가족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에서 반장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회사를 찾아가 보니 이미 폐업 한지 3년이나 지난 후였고,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루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듣게 되는데...

실직한 사실을 숨기고 평소처럼 출근해 시간을 보내는 가장. 너무나 익숙한 광경인 한편으로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결국은 무시 당하는 가장의 비애라는 흔해 빠진 이야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끝까지 보고서 판단해야 한다. 이게 단순 실직자에 대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다루는 것인지 말이다.

루이 투레라는 가장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와 밖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평가가 상반되는 부분은 참 마음 아픈 부분이다. 사회에서는 하나의 사람으로서 대접 받지만, 집에 가면 그저 남들과 비교 당하며 무시 받는 게 전부인 공처가. 여기에 실직까지 겹친 상황이니 안타깝다는 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그에게 숨겨진 이면이 있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여기게 된다. 중요 단서로 구두가 언급되기에 더 그렇다. 구두란 직장인과 가장을 상징하는 물건에 해당된다고 본다. 바쁜 하루를 함께 하며 힘겹고 고된 나날을 상징하는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반자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와 장소에 따라 구두가 바뀐다는 점은 이런 의미로 볼 수가 있다. 서로 다른 세계를 나누는 경계선. 이게 어떤 세계로 향하는 구두인지 알아내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사건의 결말이 다소 급하게 처리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동안 여러 사람을 불러다 조사했는데도 별거 나오지 않았다가 갑자기 범인을 특정해서 끝내버리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그레 반장과 함께 살펴본 주요 인물들을 중에서 이것만 확인하면 가장 의심스러운 게 누구인지 금방 나오긴 한다. 루이 투레가 살아가던 두 세계 중간의 회색 지대가 어디고, 누가 제일 사적인 곳에 가까이에 근접해 있는지. 그럼 지금까지 해온 조사들은 전부 무엇이었나. 그건 사람의 이면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피해자인 루이 투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건 관계자들에게는 평소의 모습과 다른 그림자가 존재했다. 실패라는 현실을 가리고자 만든 환상과도 같은 평온한 일상. 작중에서 매그레 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실패하고 절망한 자들이 눈에 먼저 띄었지만 차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인상 깊어졌다고. 이런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저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 안에서 진짜 삶을 사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어떻게든 실패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매일 매일 환상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될까.

환상이라는 이름을 보면 현실적인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정당하지 못한 방법 밖에 없다. 절박함 속에서 여유와 행복을 얻기 위해 반드시 남에게 피해를 줘야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식으로 돌고 돌다가 이번 사건처럼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엮일 수도 있다고 하니 참 웃기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를 탓하기도 참 그렇다. 더 이상 다른 선택 없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현실이었을 테고. 각자가 원하는 행복과 요구 받는 행복이 다르기에 생겨난 비극이나 다름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한 시대를 거슬러 내려와도 여전히 변함 없는 벤치란 공간은 셀 수 없을 많은 드라마와 함께한 산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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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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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핵전쟁의 여파로 인한 전염병으로 흡혈귀가 창궐해 멸망한 세상.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로 믿고 살아가는 로버트 네빌은 밤마다 들려오는 흡혈귀들의 소음과 끔찍함 그 자체인 외로움을 버티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흡혈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데...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원작 소설은 처음이다. 듣기로는 영화로 제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탓에 많이 알고 있는 2007년에 나온 영화가 나오기 까지 2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한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을까 했는데, 원작을 읽어보니 그 이유가 대충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음울함. 이 둘이 공존하는 모양새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잘못하면 재미없게 현실적이거나, 재미없게 비현실적일 수도 있으니까.

멸망한 세상에서 살아남은 혼자. 간혹 상상하게 되는 상황인데, 이걸 실제로 겪으면 얼마나 끔찍한지 로버트 네빌을 통해 깊이 있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과거로 인해 몰려오는 슬픔. 대화 상대 없이 계속되는 생활. 밤마다 들려오는 흡혈귀 무리들의 소란 속에서 더욱 체감 되는 외로움과 욕구 불만. 이 때문에 로버트 네빌은 감정적 동요가 너무 심해 쉽게 욱하며 돌발 행동이 잦다. 아무리 신체적으로는 건강해도 정신적으로 망가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흡혈귀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과거로부터 전해져 오는 전설과 미신에 대한 면이 아니라 현대적 해석을 하는 부분은 꽤 흥미롭다. 하나하나 뜯어보며 의학적인 분석을 통해 여러 현상들에 설명함으로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게 지금의 좀비 바이러스의 현실성을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흡혈귀에 대한 고찰은 병리학에 가까운 해석에 문화적인 영향까지 더해져 상당히 세세하게 다룬다. 이게 단순 설정으로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나중에 밝혀지는 중요 복선까지 이어지기에 작가가 상당히 공들인 부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2007년의 영화가 원작 내용에 있던 요소를 어떤 식으로 반영해서 각색했는지 보여서 대단했다. 분명 동일하게 등장하는 요소가 있으나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로버트 네빌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과 좌절, 분노는 거의 비슷한 분위기라 그렇다. 흡혈귀에 대한 설정 역시 겉으로는 완전히 달라 보여도 결말에 밝혀지는 진실은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라 원작 고증이 잘 된 편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보통 전설이라 하면 멋지고 위대한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칭송 받아 마땅한 영웅 전설이 있는 가하면, 괴물 같은 존재가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 역시 전설이다. 빛과 어둠의 차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사소한 차이로 상식과 정상인의 개념이 뒤집어지기에 언제나 확증 편향에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누가 알겠는가. 자신이 믿던 사실이 실제로는 정신병이나 다름 없는 망상이고, 진짜 현실은 완전히 다르게 돌아가고 있을지.

던지기 놀이

어느 유원지의 게임 부스에 들어간 양복 차림의 남자. 거기서는 탁구공 3개를 던져서 어항에 집어 넣으면 상품을 주는 게임이 진행 중이다. 아무도 어항에 공 넣기를 성공하지 못하던 중, 양복을 입은 남자는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어항에 공 3개를 전부 집어 넣는다. 하지만 양복 입은 남자는 상품에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돈을 내고 공 던지기 게임을 하는데...

별거 아닌 상황이 계속되는데도 뭔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늘어나는 묘한 내용이다. 놀라운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우연이겠지만, 그게 계속된다면 무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재능이 뛰어난 경우? 아니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라고 봐야 할까?

결말이 허무하고 어이없을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양복 입은 남자가 마지막에 얻은 상품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어쩐지 결말의 마지막 장면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여서 그렇다. 한 가지 더, 이 마지막에 얻은 상품 이후에도 아직 남은 상품은 더 있었다. 그렇다면 양복 입은 남자가 마지막에 얻은 상품이 다른 거였다면 어떤 결말이 나왔을까? 또, 남은 상품마저 다 얻고도 공 던지기를 계속했다면?

이런 여러 가정을 하다 보면 이 던지기 놀이가 어디로 향했을지 더욱 더 무서워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눈에 보여지는 공포보다 이러한 가정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공포를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장례식

장의사를 찾아온 어느 50대 남자. 아내의 장례식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면서 무뚝뚝하게 서류에 사인을 하는데...

간단한 내용 안에서 마지막에 반전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내용이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한 형식의 괴담, 무서운 이야기가 꽤 있다 보니 지금에 와서 보면 크게 신선하지 않을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작중의 남자가 어떤 심리 상태로 장의사를 찾아왔던 건지 궁금하긴 하다. 그냥 모든 걸 준비하고 냉정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갈등 하며 초조하게 있던걸까.

죽음의 사냥꾼

아멜리아는 희귀품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죽음의 사냥꾼이라는 이름이 붙은 흉측한 인형을 구매한다. 그 인형은 어느 부족에서 만든 것으로 황금 사슬로 사냥꾼의 영령을 봉인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아멜리아가 엄마와 전화로 말다툼을 하고서 인형을 무심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봉인이 풀려버리게 되는데...

수상쩍은 인형이 나온다는 점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일지 금방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처럼 사냥꾼 답게 매서운 방식으로 압박해오기에 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처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작품 속의 인형은 아무 말 없이 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하다고 본다. 원래 사냥꾼이란 조용하고 신속하게 사냥감을 노린다고 하니 말이다.

결말에서 나타나는 반전은 원시적인 주술에서 나온 부산물을 함부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초자연적인 영역은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는 또 다른 공포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녀의 전쟁

어느 전쟁터 한복판. 적군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장교는 일곱 명의 소녀들을 전장에 투입 시킨다. 그 소녀들은 마법을 쓸 줄 아는 마녀들이었는데...

어린 마녀. 마법을 쓰는 소녀. 현대에는 이런 단어들이 귀여운 캐릭터로서 각종 애니메이션에 등장한다. 꿈과 희망을 담은 아름다운 스토리를 보여주며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분위기와 정반대다. 서양 전설에서 나오는 사악한 마녀의 어린 시절 같은 분위기라 마법을 이용해 잔혹한 학살을 벌인다. 마치 어린 아이의 놀이 같은 분위기를 보여서 순수악 그 자체나 다름 없다.

어린 마녀들이 벌이는 마법 묘사도 압권이지만, 무엇보다 섬뜩하게 보였던 것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전쟁터의 모습이다. 공허함으로 가득 찬 잿빛 세상.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죽어가며 껍데기 밖에 안 남은 병사들. 처절한 죽음의 공포. 작가가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큰 고난과 역경을 겪었을지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다.

루피 댄스

3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간 세상. 페기는 어쩌다 사귀게 된 질 나쁜 친구들과 함께 루피 댄스를 보러 세인트루이스의 클럽을 찾는다. 그 루피 댄스란 시체를 이용한 기괴한 쇼였는데...

세기말 분위기에 젖은 방탕한 젊은이들의 삶과 퇴폐적인 즐길 거리에 대한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배경 설정부터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엄청난 재앙이 휩쓸고 간 세상이라고 계속 강조하기에 암울한 분위기가 크다. 이런 세상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과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좋은 건지 충분히 고민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단순한 도덕과 비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에 대한 방황 끝에 도달하게 된 허무함과 불안에 대한 도피다.

루피 댄스는 퇴폐의 정점이나 다름 없기에 그걸 보고서 받을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일 것이다. 생각보다 단순하면서 너무나 잘 이해가 되는 움직임 묘사에, 이게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지 밝혀지는 점까지 해서 복잡한 생각이 들게 한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는 죽음마저 유희 거리가 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게 가장 현실적인 좀비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흔히 아는 좀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긴 하나 오컬트니, 바이러스니 하는 것보다는 가장 단순하게 설명되는 방식이긴 하니까.

엄마의 방

할머니에게 혼나고 방에 가둬진 나.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방에 들어가 하얀 실크 드레스를 꺼내 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옆집의 메리 제인이라는 친구랑 같이...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번 읽어봤던 내용이다. 이 작품 속의 핵심 공포는 엄마의 방, 특히 그 안에 있는 하얀 실크 드레스다. 이게 대체 뭐가 문제인지 살펴보다가 작중 아이의 시점이 너무나 순수함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주목하게 됐다.

아이의 순수함이란 때로는 본질을 왜곡해서 볼 때가 있다.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자신에게는 이렇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 속의 아이가 말하는 엄마와 실크 드레스란 대체 무엇일까. 이 부분이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결말이 나타내는 의미와 할머니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역시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일 수록 나쁜 것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매드 하우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는 문학 강사 크리스. 하지만 그는 글 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라 여겼고, 이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방해한 탓이라며 매일매일 분노를 쏟아낸다. 이런 성격으로 인해 결국 아내와 별거까지 하게 되지만, 오히려 글 쓸 시간이 많아졌다며 좋아한다. 그런데 집안의 물건들이 자신을 적대하며 자꾸만 어딘가 다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작가를 목표로 한 이들에게 스스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면이 많아 보였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 썼다. 얼마나 흔하게 많이 쓰는 핑계 거리인가. 지나치게 남 탓만 하기 쉬운 걸 넘어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갉아먹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남 탓이 과도하게 지나치면 사람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나타낸 것 같다. 아니, 주변에 끼칠 영향에 대한 문제라고 해야겠다. 부정적인 감정은 다른 곳에 퍼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사람 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해당될지 모른다. 온갖 나쁜 마음과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구 쌓여 점차 구체화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변한 사물은 사람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별거 아닌 물건 때문에 다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걸 떠올리면 꽤 끔찍하지 않을까 한다. 한편으로는 작중에서 벌어진 일이 마냥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작중 내내 보여진 크리스의 상태를 보면 비현실을 가장한 현실로서 스스로를 갉아먹었다고 볼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니 말이다.

장례식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을 찾아온 애스퍼라는 사내. 에스퍼는 장례식에 쓸 관으로 가장 커다랗고 최고급인 관을 요구한다. 순조롭게 계약서 작성에 들어가고 돌아가신 이의 이름을 듣게 되자 실크라인은 당황하게 된다. 다름 아닌 자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애스퍼 본인이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장례식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반전이 있을까 했다. 이번에도 역시 장례를 치르는 대상으로부터 발생한 일인데,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 그 자체나 다름 없다. 생각해 보면 다소 의아해 보이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죽은 존재나 다름 없는 이들의 장례식이라니. 뭔가 특별한 이벤트 같아 보이면서도 보통 사람의 장례식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 묘하게 보인다. 이 작가만의 스타일인 현실과 비현실의 결합을 여기서 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나 상황이 재미있어 보이겠지, 장의사 실크라인에게는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온갖 괴물들로 가득한 장례식을 준비해야 된다고 하는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맨정신으로 버티겠는가. 하지만 역시 돈이 걸린 문제라면 어떤 공포라도 이겨낼 수 있는 모양이다. 결말은 그걸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어서 일종의 블랙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둠의 주술

딸 페트리시아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을 나선 제닝스 박사. 약혼자인 피터 랭의 상태가 설명할 수 없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제닝스 박사와 마주한 랭은 석 달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하고,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마주친 줄루족 주술사가 내린 저주라고 한다. 의학적인 조치가 통하지 않자 결국 인류학자인 하월 박사를 부르게 되는데...

의학적으로 규명 불가능한 병. 예로부터 이런 부분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기괴함을 동반하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 작품은 그러한 본능적인 공포에 대해 다룬다고 본다.

현대 도시에서 벌어지는 원시적인 주술 의식은 그 분위기 만으로도 공포를 일으킨다. 분명 도움을 주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성적으로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작중 인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부분이다. 당혹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분야가 다른 전문가라고 여기며 이해하려는 제닝스 박사. 분명 도움을 청한 건 자신임에도 점차 악의적인 시선으로 보고야 마는 페트리시아. 스스로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광경을 통해 표출되는 생리적 혐오감이란 바로 이런 거다.

확실하게 말해두겠지만 이 작품은 문화적 차별을 공포로서 정당화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이로운 일이라 해도 막상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되는 경우가 존재하고. 이걸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지우기 힘든 본능이라는 이름의 공포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이걸 감내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길을 건네는 이가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화벨소리

밀만은 밤 중에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고통 받고 있다. 분명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만 그건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것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명 소리라 생각해 다양한 치료를 받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던 중, 팔머 박사로부터 현실의 전화기가 아닌 머릿속에 존재하는 전화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밀만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로 시도해봤다가 어떤 남자의 목소리와 연결되는데...

존재하지 않는 전화벨 소리의 정체에 대한 탐구로 진행되며 점차 산으로 가는 듯하게 나타나다 보니 뭔가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너무 흔해 빠진 망상에 지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럼에도 밀만이 이 상황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진심이다. 그가 처한 환경과 과거를 보면 전화벨 소리 너머에서 이런 게 나타날 만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상당하다. 마냥 황당무계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진짜 무언가와 연결된 전화벨 소리일까. 아니면 내면에서 서서히 올라오는 무의식일까. 이 전화벨 소리의 정체가 확실히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현실적으로 보나, 비현실적으로 보나 전부 맞는 말이라 그렇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가진 이성의 끈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전화벨이 울린다는 건 이성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위험 신호고, 그걸 받는 순간 이성 너머의 무언가와 연결됐다는 의미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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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일럼 호러 - 크툴루 신화 연대기 | 러브크래프트 서클 5 러브크래프트 서클 5
헨리 커트너 / 바톤핑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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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 있는 더비 가의 어느 낡은 박공 집. 그 곳은 17세기 세일럼 마녀 재판 당시에 사형 당한 기괴한 노파, 애비게일 프린이 살았던 집이다. 이미 300년이나 흐른 이후인데도 이런저런 악명이 퍼져 있던 이런 집에서 조용히 소설을 쓰기 위해 살던 카슨. 집안을 돌아다니는 쥐 때문에 신경 쓰여 쫓다가 지하실로 향하게 되고 거기서 숨겨져 있던 통로를 발견한다. 그 누구도 존재를 모르고 있던 마녀의 방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세일럼 마녀 재판과 크툴루 신화가 섞인 내용으로 300년의 세월을 넘어온 마녀의 공포를 보여준다. 이전부터 많이 느꼈던 것이지만, 마녀는 서양권에서 쥐와 함께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고전적인 공포 요소 중 하나다. 순화된 이미지로 익살스럽게 묘사된 경우를 많이 접하긴 했지만, 마녀를 소재로 한 유명 공포 작품을 보면 어떤 부분에서 무서운 건지 느껴지긴 한다. 언제 어떻게 말려들었는지 알 수 없는 주술. 무엇을 불러 들일지 알 수 없을 초월적인 세계를 자유 자재로 다룬다는 증거들. 이런 걸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그 분위기가 얼마나 기괴하고 꺼림직한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보통 지하의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은 고딕소설에서 많이 나오고, 대개 이 부분에서 결말이 나곤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오히려 무언가에 해당되는 마녀의 방을 발견하고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서 발표된 당시에는 다소 특이하게 보였을 법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거다. 이미 숨겨진 것이 전부 밝혀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의 메인 공포 요소 중 하나가 마녀다. 즉 초반부터 주인공인 카슨은 물론이고 독자마저 마녀의 주술에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웬 불청객이 나타나 자꾸 이상한 말만 늘어 놓으며 카슨을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암시와 흔적을 계속 보여주며 불길함을 더욱 커지게 만든다. 오직 상식만 통용되는 현실적인 세상에 점차 환상이 침범하며 과거의 전설로 치부 되던 마녀가 점차 실존하는 공포로서 다가오는 것이다. 심지어 카슨이 가지고 있던 회의론적 관점마저 스스로의 믿음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누군가 시키는 대로 내뱉는 건지 알 수 없어질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 설마 하던 마녀의 실체와 함께 모습을 들어낸 우주적 존재는 너무 짧게 모습을 들어내고 퇴장하긴 했지만, 이 소설에 진짜 숨겨져 있던 실체로서의 강렬함은 충분하다. 오히려 이것이 제대로 밖으로 나와서 현실이 됐을 세일럼 호러가 어떤 광경일지 상상하는 게 더 무서울 정도다. 게다가 결말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카슨이 이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마녀의 진정한 공포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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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매그레 시리즈 20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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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습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존재한다.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쉴 세 없이 발을 움직이는 걸 떠올릴 수 있지만, 이건 개인의 노력에 해당된다. 하나의 사회로 간다면 그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조금의 실수 없는 완벽을 위해 계속 움직이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 알더라도 감사가 아닌 무시와 멸시로 돌아올 수 있을 지하 세계다. 이 화려한 조명이 밝히는 무대 위와 어두컴컴한 무대 뒤편 사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는 다는 법은 없다.

유명 고급 호텔인 마제스틱 호텔의 직원들이 요리를 비롯한 업무 준비를 하는 곳인 지하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일주일 전부터 투숙 중인 유명 미국인 사업가 오스월드 클라크의 아내였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호텔 커피 준비 실장인 프로스페르 동주가 유력 용의자나 다름 없는 가운데, 매그레 반장은 그에게서 뭔가 호감을 느끼고 일상 속으로 접근해 간다. 그렇게 프로스페르와 그의 동거녀인 샤를로트가 클라크의 아내와 함께 했던 과거가 밝혀지는데...

19권을 끝으로 은퇴하고 경찰을 떠났던 매그레 반장이 다시 돌아왔다. 파리 경찰청 사무실, 리샤르르누아르 가의 자택 같은 익숙한 장소들. 다양한 사건을 함께 했던 눈에 익은 형사들. 모든 게 이전과 그대로라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정확히는 은퇴했다가 복귀했다는 설정은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 반장 시절의 일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걸 보면, 은퇴 이전 시간대에 있었던 사건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은퇴했다는 결말은 그대로 남는 동시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매그레 반장을 봐도 어색하지 않으니 꽤 나쁘지 않다.

상류층과 서민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흔하고 흔한 드라마가 떠오를 것이다. 부자 재벌과 결혼해 도망간 여자. 그 여자에게 버림 받은 남자.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재회해 벌어진 사건. 뻔한 결과가 보이는 듯하고, 작중 인물 대부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은 단순하게 결론 짓지 않는다. 주요 인물 하나하나의 삶을 들여다 보며 겉으로 보이는 연결 고리 이외의 다른 관점을 찾아내려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했던 사건인지 알게 된다.

프로스페르 동주는 일상에서 흔히 볼 법한 소시민 그 자체다. 살기 위해 별 수 없이 하게 된 여러 일들을 전전하는 삶에, 결혼해서 아이 하나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한편으로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크면서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지내는 순수함이 강하다. 이러한 면을 가진 동주이기에 매그레 반장이 관심을 가지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소처럼 어떤 인물이 살아온 드라마를 살펴보는 것이면서도 이번에는 다소 특별하다. 과연 이 사건에서 동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면 그건 어디까지인가. 이건 다른 이들처럼 범행을 단정 짓는 게 아니라, 동주의 삶과 행적을 비롯한 존재 그 자체를 단서로서 조사하는 것에 가깝다.

상류층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며 움직이는 매그레 반장의 행보는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든다. 뭔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옆에 누가 있어도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하고, 별거 아닌 일상 풍경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며 관찰하는 모습 역시 여전하나 묘사에 진지함이 한층 더해져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능청 떠는 유쾌함도 더욱 강해진 느낌이라 몇몇 장면에서는 정말 웃기게 보였다. 이렇듯 이전보다 한층 다채로워진 묘사 때문인지 드라마 부분 역시 내용 자체는 단순하면서 깊이가 느껴진다. 동주와 샤를로트의 비슷하면서 다른 사랑의 아픔. 의외인 면이 많은 미국인 갑부 클라크. 생각 이상으로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주요 마제스틱 호텔 직원들. 누구나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걸로 멋진 드라마 한 편이 나와서 참 대단하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을 보면 이런 생각이 확 든다. 세세한 조사로 밖에 알 수 없던 사실이 꽤 있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봤을 때 진짜 범인으로 보일 사람은 딱 봐도 코앞에 있지 않던가. 또한 각종 조사 자료가 나오는 부분을 다시 돌아 보면 이 사람이 범인이겠구나 하는 게 확 들어온다. 물론 이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긴 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대충은 짐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일부러 중간 쯤부터 알아볼 만한 복선을 미리 던져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과연 상류층과 서민이 엮인 사건이라는 자극성 속에서 이걸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잘 사는 사람이라 거만하다. 못 사는 사람이라 손버릇이 나쁘다. 논점 파악부터 잘못된 이 사건의 흐름을 보면 이런 걸로는 사람을 판단할 근거가 못 된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존재하긴 한다. 그걸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겉만 보고서 판단하고자 하는 건 엄청난 편견이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을 모독하는 거다. 모두가 부러워할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말이다. 이러한 무대를 평생 노력한다 해도 가지지 못한다면 다 그럴 이유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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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빵나무 열매 한바구니 아라한 호러 서클 154
조지 루이스 베케 / 바톤핑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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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제도의 가장 큰 섬인 사바이 섬의 서쪽 끝에 살고 있던 어느 상인이 수도로 가던 중, 썰물로 인해 수도 인근에 위치한 뮐리니에 정박하게 된다. 거기서 토착민들과 담소를 나누던 상인은 자신이 좋지 못한 곳에 산다며 놀림을 당하자 신붓감을 소개해 주면 땅을 사둔 사푸네로 가서 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느 애꾸눈의 노파가 자신의 딸을 소개해준다고 하는데...

1894년에 출간된 단편집 <암초와 야자수 By Reef and Palm>에 수록된 작품으로 얼핏보면 간단한 반전이 공포 요소의 전부라 시시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찾아보면 작중의 빵나무 열매 바구니가 얼마나 큰 비극을 상징하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에 왕국이 형성되어 있던 사모아 제도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부추김으로 인해 내전을 겪었다고 한다. 모래톱 가까이에 있으면 총에 맞을지 모른다는 부분이나 말리에토아 군대가 언급된다는 점에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생각하면 1886년부터 1894년까지 벌어진 1차 사모아 내전 시기가 배경이라고 본다. 특히 그 시기 중에서 1889년에 몰아친 태풍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망명을 떠났던 사모아의 국왕인 말리에토아 라우페파가 다시 돌아온 이후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보면 주인공인 상인은 사모아의 서쪽에 있는 섬인 사바이 섬에 거주하고, 수도가 위치한 곳은 동쪽에 위치한 우폴루 섬이다. 또, 마누누라는 지명이 언급되는데 이곳은 사바이 섬과 우폴루 섬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내전 당시에는 온갖 이권이 우폴루 섬에 모여 있었기에 대체로 수도인 아피아와 주변 외곽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기에 사바이 섬에서는 무슨 상황인지 몰랐거나 아니면 여파를 피해갔을 수도 있겠다. 또, 마누누섬은 내전의 패자인 마타아파 이오세포와 그의 지지자들이 도망친 섬이라 하니 당시 사모아 내에서 어떻게 보였을지 대충은 예상이 될 것 같다.

워낙 짧은 내용이다 보니 이러한 배경 설정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에 지금에와서 보면 이해 못할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 살았던 다른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내전과 관련해서 상세히 남긴 글이 있을 정도로 꽤 참혹했을 것으로 보이긴 하다. 이 소설의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해 들었는지, 아니면 직접 목격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작중의 빵나무 열매 바구니나 손녀딸 같은 일이 그저 창작물에만 나올 법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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