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매그레 시리즈 20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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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모습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존재한다. 백조가 물 위에 떠 있기 위해 쉴 세 없이 발을 움직이는 걸 떠올릴 수 있지만, 이건 개인의 노력에 해당된다. 하나의 사회로 간다면 그 뒤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한다. 조금의 실수 없는 완벽을 위해 계속 움직이지만,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군가 알더라도 감사가 아닌 무시와 멸시로 돌아올 수 있을 지하 세계다. 이 화려한 조명이 밝히는 무대 위와 어두컴컴한 무대 뒤편 사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는 다는 법은 없다.

유명 고급 호텔인 마제스틱 호텔의 직원들이 요리를 비롯한 업무 준비를 하는 곳인 지하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일주일 전부터 투숙 중인 유명 미국인 사업가 오스월드 클라크의 아내였다. 시체를 처음 발견한 호텔 커피 준비 실장인 프로스페르 동주가 유력 용의자나 다름 없는 가운데, 매그레 반장은 그에게서 뭔가 호감을 느끼고 일상 속으로 접근해 간다. 그렇게 프로스페르와 그의 동거녀인 샤를로트가 클라크의 아내와 함께 했던 과거가 밝혀지는데...

19권을 끝으로 은퇴하고 경찰을 떠났던 매그레 반장이 다시 돌아왔다. 파리 경찰청 사무실, 리샤르르누아르 가의 자택 같은 익숙한 장소들. 다양한 사건을 함께 했던 눈에 익은 형사들. 모든 게 이전과 그대로라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정확히는 은퇴했다가 복귀했다는 설정은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평소 반장 시절의 일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걸 보면, 은퇴 이전 시간대에 있었던 사건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고 보면 된다. 은퇴했다는 결말은 그대로 남는 동시에,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매그레 반장을 봐도 어색하지 않으니 꽤 나쁘지 않다.

상류층과 서민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흔하고 흔한 드라마가 떠오를 것이다. 부자 재벌과 결혼해 도망간 여자. 그 여자에게 버림 받은 남자.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재회해 벌어진 사건. 뻔한 결과가 보이는 듯하고, 작중 인물 대부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은 단순하게 결론 짓지 않는다. 주요 인물 하나하나의 삶을 들여다 보며 겉으로 보이는 연결 고리 이외의 다른 관점을 찾아내려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했던 사건인지 알게 된다.

프로스페르 동주는 일상에서 흔히 볼 법한 소시민 그 자체다. 살기 위해 별 수 없이 하게 된 여러 일들을 전전하는 삶에, 결혼해서 아이 하나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다. 한편으로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크면서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지내는 순수함이 강하다. 이러한 면을 가진 동주이기에 매그레 반장이 관심을 가지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소처럼 어떤 인물이 살아온 드라마를 살펴보는 것이면서도 이번에는 다소 특별하다. 과연 이 사건에서 동주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나.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면 그건 어디까지인가. 이건 다른 이들처럼 범행을 단정 짓는 게 아니라, 동주의 삶과 행적을 비롯한 존재 그 자체를 단서로서 조사하는 것에 가깝다.

상류층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며 움직이는 매그레 반장의 행보는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든다. 뭔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옆에 누가 있어도 잊어버릴 정도로 집중하고, 별거 아닌 일상 풍경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며 관찰하는 모습 역시 여전하나 묘사에 진지함이 한층 더해져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능청 떠는 유쾌함도 더욱 강해진 느낌이라 몇몇 장면에서는 정말 웃기게 보였다. 이렇듯 이전보다 한층 다채로워진 묘사 때문인지 드라마 부분 역시 내용 자체는 단순하면서 깊이가 느껴진다. 동주와 샤를로트의 비슷하면서 다른 사랑의 아픔. 의외인 면이 많은 미국인 갑부 클라크. 생각 이상으로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주요 마제스틱 호텔 직원들. 누구나 열심히 살아가며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걸로 멋진 드라마 한 편이 나와서 참 대단하다.

이번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을 보면 이런 생각이 확 든다. 세세한 조사로 밖에 알 수 없던 사실이 꽤 있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봤을 때 진짜 범인으로 보일 사람은 딱 봐도 코앞에 있지 않던가. 또한 각종 조사 자료가 나오는 부분을 다시 돌아 보면 이 사람이 범인이겠구나 하는 게 확 들어온다. 물론 이 당시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 있긴 하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대충은 짐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일부러 중간 쯤부터 알아볼 만한 복선을 미리 던져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과연 상류층과 서민이 엮인 사건이라는 자극성 속에서 이걸 알아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잘 사는 사람이라 거만하다. 못 사는 사람이라 손버릇이 나쁘다. 논점 파악부터 잘못된 이 사건의 흐름을 보면 이런 걸로는 사람을 판단할 근거가 못 된다는 걸 제대로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존재하긴 한다. 그걸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그걸 겉만 보고서 판단하고자 하는 건 엄청난 편견이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을 모독하는 거다. 모두가 부러워할 수준까지는 못 되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만한 무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말이다. 이러한 무대를 평생 노력한다 해도 가지지 못한다면 다 그럴 이유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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