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불의 연회 : 연회의 준비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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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아는 세계가 과연 진짜일까. 보통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눈 앞의 세상은 아무 문제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생겨도 그건 삶에 대한 문제지, 눈 앞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물도 뿌리가 망가지면 전체가 말라죽듯이, 사람도 근간이 흔들리면 현재 살아가는 세계관이 무너져 결국에는 죽고 말 것이다.

 이게 막상보기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람을 가장 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눈 앞에 무서운 게 있다면 아예보지 않거나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그것도 심리적으로 몰아붙여 생기는 공포가 그렇다.

 자기가 알고 당연시 여기던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현재의 자신이 알지못해 소멸된 과거. 사실상 과거와 단절된 현재. 이러한 분위기의 도불의 연회는 그 동안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보여준 심리적 압박이 최고조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잡지사의 요청으로 주민을 비롯한 모든 게 사라진 헤비토 마을 조사에 나선 세키구치에게 다가온 위기... 즈시 사건 이후 누마즈에 정착한 아케미의 앞에 나타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남자와 동네를 뒤흔드는 성선도... 교고쿠도를 방문한 고서점 군시테이 주인 미야무라가 말하는 효스베를 본 여자와 신흥종교에 빠진 그녀의 할아버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영매사 가센토를 노리는 한류기도회... 스토킹을 당한다며 기바 슈타로에게 상담을 요청한 여인이 말하는 신통력 있는 아이... 눈알 살인마 사건 이후, 오리사쿠 아카네 앞에 나타난 하타라는 노인의 제안과 이즈의 땅과 관련된 사건... 이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거대한 집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번 도불의 연회 1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 에피소드별로 파트를 나눈 것이다. 보통 교고쿠도 시리즈는 제목에 언급된 요괴가 내용 전반에서 영향을 주는데, 도불의 연회의 1부인 <연회의 준비>에서 도불(누리보토케)은 중요한 것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고 각 파트별 제목으로 쓰인 요괴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잘 보면 생김새나 유래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파트별 요괴들과 도불에게 뜻밖의 공통점이 보였다.

 저 요괴들 모두 토리야마 세키엔의 첫 화집인 <화도 백귀야행>에 실린 것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목의 도불을 포함한 작중 언급된 요괴 전부 세키엔의 화집에 설명없이 그림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각 파트별로 그림 밑에 쓰인 설명도 보면 전부 화집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 언급된 내용이며, 심지어 와이라 같은 경우는 그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아서 더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번 도불의 연회 1부는 도불이라는 존재를 언급하기 이전에 설명없이 그림으로만 언급된 요괴를 먼저 늘어놓으며, 이전에 나온 다른 시리즈와 달리 도불은 그 어떤 사전정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체에 대해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미리 설명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용상에서도 그 이전 작품들과 달리 뭔가 사건의 이미지는 확실히 있지만, 설명이나 뒷받침 되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어서 도불의 연회에서의 도불은 바로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설명없이 그림만 있는 요괴들 중 도불(누리보토케)이 제목 전면에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 동안 종교적 분위기가 강한 교고쿠도 시리즈에 설명없는 요괴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요괴여서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불은 작중에 언급된 다른 요괴들에 비해서 유독 종교적 느낌이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도불은 눈알이 튀어나온 검은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화도 백귀야행>의 그림을 보면 불단에서 나타난 모습이라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에도 어렵다. 불상이라는 확고한 종교적인 이미지에 눈알이 튀어나오게 해서 만들어진 기괴한 이미지. 딱 교고쿠도 시리즈 다운 느낌에 적합해 보인다.

 각 파트 별로 벌어지는 사건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그 동안 아무리 사건의 크기가 크고 복잡하더라도 개인 대 개인으로만 벌어지는 정도였는데, 도불은 거의 개인 대 집단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 집단이라는 존재가 엄청 많이 나오고 다 종교 비스무리한 이미지에 전부 나쁜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거기에 교고쿠도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소름끼치고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길에서 도을 아십니까, 하고 묻는 부류의 집단이 있다. 본인도 어쩌다 만나봐서 아는데 다짜고짜 말을 걸며 뭐라뭐라 하는 형식의 래퍼토리다. 관상이다, 기운을 느낀다, 신기가 있다, 같은 말을 아무런 근거 없이 하는게 대부분이라 대부분 믿지 않을 법하다. 그런데 도불에서 나온 종교단체의 언변과 연출을 보면 앞서말한 부류와 비슷한 것도 모자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걸 보며 아무리 비상식적인 종교라도 작정하고 달려들면 개인을 쉽게 휘어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케미가 나오는 <우완> 파트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 잘 나타나 있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개인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유독 도불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이나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 동안 전후라는 정도나, 세키구치나 기바가 동남아 지역 전쟁에 참여한 일 정도로 그리 자세하게 표현되지 않던 것에 비하면 엄청 많이 나와 보였다. 특히 전쟁과 무관하고, 전쟁을 원치 않던 이들이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물론 일본이 2차세계대전 전범이라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국가지도자들이 일으킨 건 맞지만, 앞서 말한 평범한 사람에게는 원치 않게 하루 아침에 전세계가 적이 되버린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는 걸.

 개인의 주위에 형성된 분위기가 핵심인 내용이다 보니, 작중 인물들도 그 만큼 더 심도 있게 표현된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기바 슈타로 형사였다.

 아츠코의 경우에는 그 동안 밝은 모습만 나와서 어딘가 한 군데 씩 문제 있어 보이는 주연 인물들에 비해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에 결점이 있어서 측은하게 보일 정도였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자신 주위의 분위기에 대한 결점이 도드라진 부분은 현대의 가족문제와 여러모로 흡사해 보였다. 그래서 아츠코를 보며 성장과정에서 가족이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하면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이루는 세계관이 안정되지 못해 결국에는 본인의 자아까지 확실해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불확실. 그것은 나란 도대체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나는 어떤 스타일일까인데 이게 확고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끌려다닌다면 결국에는 진짜 내가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기바 슈타로의 경우는 무당거미 이후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번 편에 들어 본격적으로 이 형사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고찰이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냥 생각없이 감으로 수사하다 결국 폭주하고 마는 형사. 그 동안 기바 슈타로란 인물의 정의는 딱 이정도였다. 그런데 도불에서는 기바의 의외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이 형사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으로 수사한다는 이미지만 보면 기바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편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 해버리는 걸 보면서, 이 형사는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기바가 교고쿠도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단독으로 문답을 주고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이들의 문답을 듣는 것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자신이 제시한 문답이었으니 더욱 잘 이해한게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작중에 개인의 세계관이 파괴되어 혼란에 빠진 내용이 많은데, 그저 자아 상실이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하려해도 혼란의 원인과 과정이 매우 세세하게 달라서 보기에 따라 엄청 해깔리기도 한다. 전부 하나 같이 무언가 빠져 있다며 공허해 하는데, 그 원인과 거기에 이르게 된 흔적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억과 실제 세상 기록과의 괴리, 과거와 현재의 단절 속에서 피어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미지의 공포, 과거의 한 부분이 들썩이며 현재에 영향을 끼치며 발생하는 혼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전무해 껍데기만 가진 현재, 미래가 현재를 침식하여 세계관의 중심이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 현재. 거기에 개개의 사건을 관통하는 몇몇 동일 인물이 더해지면 그야 말로 혼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분명 분위기는 심리적으로 엄청 무겁게 압박하는 느낌이지만 작중 분위기의 구조나 매개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면서 읽는 다면 모를까, 사건 전개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진행될지에 초점을 맞춘 독자라면 이번 도불은 정말 읽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사건 초입에서 진행되려는 순간에 끊기거나, 중간 과정은 없이 결과만 덩그러니 놓인 경우도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사건의 모습이 들어나지 않는 이 시점이 엄청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전개로만 집중해서 본다면 거의 오프닝에서 사건전개 초입까지만, 6번이나 반복되는 구조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1부라는 특성상 본격적인 사건이라던가, 제목의 도불(누리보토케)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인 것과 관련 인물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만 있을 뿐이다. 예상이지만, 무당거미를 뛰어넘어 교고쿠도 시리즈 사상 역대급 피해자 수를 기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연회의 시말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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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백범일지 - 백범 김구 자서전, 1947년 국사원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김구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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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아이디어 베낀 출판사에서 만든 초판본은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잘 기억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양심없는 출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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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글라스 아티초크 픽션 1
얄마르 쇠데르베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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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하면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개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만물박사는 아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점인데, 의사는 의학적 지식으로 병을 알아내서 진료를 하는 건 자기가 할 수 있고 아는 분야니까 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내 몸의 이상을 해결할 수 있다해서 개인적인 일까지 해결해줄 수 있다고 여기는 건 그 의사에게도 실례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의사 닥터 글라스는 병이 아닌 환자의 개인적인 일에 끼어든다.

 스톡홀름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닥터 글라스. 그의 병원에는 아픈 게 아닌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달라 오는 손님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의사의 원칙을 들먹이며 돌려보내는 게 전부다. 그런데, 단 하나. 그레고리우스 목사의 부인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에는 자신도 모르게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닥터 글라스는 그레고리우스 목사에게 부인에게 병이 있다는 둥, 하면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닥터 글라스는 그레고리우스 목사를 죽이는 방법까지 고민하게 되는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닥터 글라스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의사임에도 의사를 왜 했냐고 한탄하는 건 물론, 매사의 모든 게 불평인 까칠한 사람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대단히 감상적인 사람이다.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아픈 것도 아니면서 왜 의사한테 오냐고 따지면서도, 정말 어이없게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데 그냥 도와줄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정말 웃긴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저 한 여자를 도와주기 위한 계획 과정이 나타나지만, 한편으로는 닥터 글라스라는 인물이 대단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게 들어나 보였다. 주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하고, 자기의 이상과는 다른 현실에 거리를 두는데, 이게 욕구불만으로 까칠한 생각이 표출되는 것 같아 보였다. 또, 어떻게 보면 글라스는 대단한 순정파이기도 한다. 욕구를 위한 사랑이 아닌 그저 감정만으로의 사랑만 추구하고, 욕구에 대한 이미지가 다가오면 거리를 두는 걸보면 오히려 그레고리우스 목사와 위치가 바뀐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작중 나타나는 20세기 초 유럽의 종교와 의학에 대한 이미지를 보면 주요인물 구도에서 닥터 글라스와 그레고리우스 목사가 대립관계인 것과 비슷한데, 아마 작가가 당시의 시대적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나타냄과 동시에 비판하려한 의도로 보였다. 그것도 단순히 구시대적인 사고가 현시대에 맞지 않다, 신시대적인 사고가 오히려 전통을 무시한다는 둥, 하는 고리타분한 문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종교의 입지가 작아진 것에 대한 묘사였는데, 과거 유럽이 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대체로 자기가 알고 있던 세계가 더 넓다는 것에 대한 초라함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과거에는 어디든 의지할 곳이 있었지만, 모든 것의 진실이 밝혀진 현재에는 의지할 곳을 찾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닥터 글라스는 질병이 아닌 개인적 문제까지 해결에 나섰다. 하지만 그의 외로움은 어떤 의사가 해결해 줄지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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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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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헬조선 시대.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파국. 거기에 서로가 정의라며 떠드는 형세에 누가 정의고 누가 사기꾼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연 정의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정해연 작가의 악의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영인시의 주상복합건물에서 투신사건이 발생한다. 투신장소는 다름아닌 시장 선거후보인 강호성의 자택이었다. 투신에 이어 집 안에서는 강호성의 노모가 살해당한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투신한 강호성의 부인이 저지른 범죄로 넘어가려 하지만 서동현 팀장은 강호성에게 의심의 눈길을 돌리는데...

 보통 추리소설에서 범죄자와 수사관이 쫓고 쫓는 구도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긴박감이 넘치지만 전혀 시원스럽지가 않다. 오히려 답답한 상황이 더 답답해지고 마는 첩첩산중이다. 수사관이 무능하면 욕이라도 하겠지만, 서동현 형사는 그런 이미지와 완전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적으로 멋진 형사의 이미지 그 자체다. 그럼에도 상황이 답답한데 도대체 누구한테 따져야할까.

 탐정이나 형사가 실수를 하거나, 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수사에 난항을 겪는 건 다른 작품에서도 꽤 있었다. 하지만 악의는 정말 지나치다. 유능한 캐릭터가 아무 것도 못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 제발 좀 이겨라라고 바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 바로 현실에서의 사건과 추리라 느꼈다. 아무리 괴짜스럽고 유능한 인물이라도 현실 환경이라면 여러모로 제약을 받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정말 대단하다 느끼는 건, 사람이 얼마나 위선적인 괴물이 될 수가 있고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점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곳곳에 뿌려진 예상치 못한 복선까지 연결되면서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상당했다.

 서동현 형사가 난항을 겪는 이런 사건을 다른 탐정이나 형사가 맡는다면 단번에 해결할까? 나는 그 어떤 천재적인 인물이나 하드보일드한 인물이 맡아도 결국에는 공권력으로 전부 밟아 버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게 바로 헬(hell)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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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0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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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뫼비우스_도진기

 

 서울행 고속열차 안에서 민경은 마약을 가진 누추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판사라 소개하면서 자신이 겪은 시간여행에 대해 늘어 놓는데... 

 작가가 판사인 만큼, 법조인으로서의 경험담이 반영되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추문에 휩싸이고, 심지어는 그 일에 직접 대응할 수도 없는 처지라 법조인이라는 위치가 정말 힘들 게 보였다.
 누구나 다 생각할 법한 시간여행과 차이가 많아서 놀라웠다. 일종의 시간여행이라는 것의 편견을 깼다고 하는 게 더 좋을듯 하다. 시간여행하면 과거가 바뀌는 타임패러독스니 뭐니 여러 가설이 나오는데, 도진기 작가의 시간여행에서 나오는 문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본다.

 
 네일리스트_이경민

 오피스텔에서 네일아트 영업을 하는 나. 어느 날, 704호에 살던 매춘부 여자가 살해당한 일이 일어나 경찰이 찾아오는 등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던 중, 살해된 여자와 친했다던 손님이 찾아오는데... 
  한 마디로 짧고 굵은 내용이었다. 얼핏보면 별 토대 없이 빨리 끝난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큰 장식 없이 핵심만 늘어놓고 깔끔하게 끝내서 더 느낌있게 완성되었다고 본다. 군거더기를 더 넣었다면 쓸 때 없이 질질 끌다가 끝날 뻔 한 걸, 제목과 어울리게 네일아트에 관한 비중과 본질인 스릴러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나온 결과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_송시우

  한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실종된다. 아이의 엄마는 높은 집에사는 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색하지 않은 곳이 젓갈 파는 노모의 아들이 있는 방 밖에 없다며 소란을 피운다. 이윽고 마을사람들 역시 아들을 의심하고 방문을 열기로 하는데...
 제목 그대로 구연동화 투로 서술되어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가벼운 말투 속에 숨은, 제목 그대로 잔혹한 진실을 강하게 어필해서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얼마나 치졸하고, 위선적인지 너무나 잘 나타나 있었다. 얼핏보면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이는 전개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만만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밖에 안 됐다

 사건 해결과 책임 떠넘기기가 얼마나 비슷하면서 다른지 잘 알 수 있었다. 범인을 잡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물증으로 잡힌 것이라면 몰라도, 그저 심증으로만 몰아 붙여서 범인이라 한다면 그게 과연 사건 해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책임 떠넘기기 인가. 또, 설사 진짜 범인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범인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까지 따질 수 있을까?

 아마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건의 본질을 깨닫지 않는 이상, 잃어버린 아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_정해연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강 씨. 오물테러, 주민의 말도 안 되는 요구, 거기에 우울증 걸린 여자의 투정까지. 하루하루가 이렇게 요란스러운 와중에 투신사건까지 벌어지는데...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전개가 돋보였다. 아파트가 배경인데다 주인공이 경비쪽 인물이라 현대, 특히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많이 나와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은 다소 현실적인 사건이지만, 거기에 걸맞는 추리가 더해져 리얼일상?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 언급되는 사건이 있는 만큼 후에 다른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까지 해 본다.
 

 해무_전건우

 

 오래전 방문했던 산골 오지의 마을 해무.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해무에 둘러싸여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곳에서 오래전 함께 동거한 순자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해무 마을로 향해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마을 자체의 숨겨진 비밀이 공포로 다가오는 구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을 자체의 기묘함도 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개인적인 심리에서 오는 압박감이 더 강하다던가, 민간신앙적 색깔이 짙다는 점이다. 거기에 주인공이 어쩌다 마을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도, 마을이 공포의 본질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도사린 공포가 본질로 보인다.

 해무 마을에서는 안개에 휘말리면 영원히 길을 잃는다고 했다. 하지만 안개에 휘말리는 것과 직접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휘말리는 건 말 그대로 내 잘못이 아니지만, 직접 들어가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 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 _신원섭

 집에서 일을 하는 연정은 옆집의 게임만 하며 사는 남자 때문에 신경 쓰인다. 한편, 그 게임광 남자를 노리는 두 명의 청부업자가 있는데...
 평범한 일상과 그 뒤에 숨은 세계의 이원 중계를 보여주는 구성인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두 세계가 완전 따로 놀고 있고, 접점이라고는 그냥 집이 가깝다는 것 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 뒤에는 이런 스릴 넘치는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 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스릴 넘치는 부분도 영 별로였다. 쫓고 쫓기는 긴박감 같은 건 없고 그냥 싸움질 한 번, 과거회상 한 번, 다시 싸움질 하고 끝이다. 평범한 일상을 통과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나을 법한데, 이것도 아예 직접적인 접점없이 완전히 분리시켜 놓아서 총체적으로 두 이야기가 따로 노는 지경이 됐다고 본다. 차라리 연애면 연애, 스릴러면 스릴러처럼 하나만 파고 썼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죽음의 신부_박하익

 수환은 접촉사고로 인해 검진을 받던 중, 암을 진단받고 거기에 말기라는 판정까지 나와 절망에 빠진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결혼식 당일 종적을 감췄던 하정에게 있다면서 괴로워하며 친구 진태에게 하소연한다. 그러자 진태는 오래 전 동창이 목격했다던 하정의 대한 얘기를 꺼내는데...

  큰 범죄나 사건 없이 그저 한 사람에 대한 걸 파해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 치고는 흥미진진했다. 사실 특별한 것 없이 내 주위의 아는 사람에게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스릴넘치는 일일 것이다.

 제목을 보면 섬뜩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읽다보면 제목의 죽음은 그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하면 다들 삶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삶이 계속되면서 죽는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살아있지만 내가 아는 세계는 계속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이라면 비록 실질적인 죽음에서는 멀어질 수 있겠지만, 기억의 죽음은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영원한 공포라고 본다.

 이렇게 스릴과 감동이 함께 뭍어나는 내용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밤은 온다_김주동

 

 면사무소에서 귀농 관련 민원을 받는 혜정은 전기울타리 설치 건으로 방문한 주름진 한 민원인과 대면한다. 민원인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혜정은 그에게서 꺼림직함을 느낀다. 이후, 혜정은 뒤를 쫓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를 느끼는데...
 농촌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치고는 약간 모자란 부분이 보였다. 아니, 단점으로 치면 그렇고 장점으로 치자면 너무나 직설적인 스릴러라 할 수도 있겠다. 배배 꼬지 않고 숨김 없이 바로 진행하는 구성은 막힘이 없었지만, 너무 뻔히 예상 할 수 있던 부분이 다소 있어서 김이 빠졌다. 영화나 소설은 스포일러가 치명적인데, 아예 대놓고 스토리를 너무 예상하기 쉽게 해놓으면 긴박감 같은 부분이 없어지지 않나 싶다.

 거기에 시점이 정리되지 않고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에 정신이 없었다. 한 인물의 시점이 쭉 나오다가 중간에 다른 인물의 시점이 나오고, 또 다른 시점이 나오는 게 1인칭스러우면서 분산되어 있는 3인칭 같다 하고 싶다. 그나마 문단을 나눠서 했다면 모를까, 후반에 가서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의 긴 문단 안에서 시점이 바뀌는 경향까지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다.

 
 

 검은 학 날아오르다_조동신

 

 한산도 대첩이 일어난지 1년. 이순신 휘하의 첩보병 만호눈 군관 정평구로 부터 전라도 지방의 의병대장이 왜군에게 생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평구는 관아에 잡혀있는 의병대장 구출작전을 설명하며 기발한 발명품을 보여주는데...

 임진왜란하면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소재긴 하지만, 첩보전과 인질구출 같은 부분은 본 적이 없어서 참신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차(비거)와 실존인물인 정평구까지 등장시켜 만든 역사스릴러라 정말 흥미진진했다.

  비록 임진왜란을 주배경으로 해 전쟁이 주요 내용이지 않나 싶지만, 주요핵심은 아마 비차로 보인다. 실제 기록에서도 임진왜란 중에 비차가 있었다, 어떻게 생겼다, 그리고 정평구가 고안했다 말고는 아무런 기록도, 설계도도 없는 실정이다. 작가는 이 사료를 보고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아마 이랬을 것이다 하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역사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닌 그 시대적 상황에서 인물들이 할 법한 심리상태까지 나타낸 것도 포인트였다.
 
 

 충분히 예뻐_장유남

 오래 전 알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대가로 하게 된 범죄. 조건은 납치한 여자와 모텔에서 3일 동안 있는 것. 그런데 납치한 여자를 향한 의문의 쪽지가 자꾸만 오는데...

 허술한 납치범과 대범한 피해자 같은 뻔한듯한 구성으로 보였는데, 의외의 반전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줬다. 납치범과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는 주객전도 상황은 코미디나 범죄물에서도 나오는 상황인데, 거기에 기타 다른 변수까지 동원되서 이게 납치극인지 아니면 납치극을 빙자한 제 2의 범죄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돋보이는데, 단순히 외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하며 진부하게 하지 않고 스릴러 형식으로 나타내니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았다.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섬뜩하게 나타낸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저 외모 때문에 싸움박질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에만 몰두하면 사람이 얼마나 괴물이 되고, 아무리 겉모습이 미인이라 할지라도 당장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무서워지는지 그건 직접 느껴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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