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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불의 연회 : 연회의 준비 - 상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11월
평점 :
내가 아는 세계가 과연 진짜일까. 보통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눈 앞의 세상은 아무 문제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생겨도 그건 삶에 대한 문제지, 눈 앞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물도 뿌리가 망가지면 전체가 말라죽듯이, 사람도 근간이 흔들리면 현재 살아가는 세계관이 무너져 결국에는 죽고 말 것이다.
이게 막상보기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람을 가장 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눈 앞에 무서운 게 있다면 아예보지 않거나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그것도 심리적으로 몰아붙여 생기는 공포가 그렇다.
자기가 알고 당연시 여기던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현재의 자신이 알지못해 소멸된 과거. 사실상 과거와 단절된 현재. 이러한 분위기의 도불의 연회는 그 동안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보여준 심리적 압박이 최고조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잡지사의 요청으로 주민을 비롯한 모든 게 사라진 헤비토 마을 조사에 나선 세키구치에게 다가온 위기... 즈시 사건 이후 누마즈에 정착한 아케미의 앞에 나타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남자와 동네를 뒤흔드는 성선도... 교고쿠도를 방문한 고서점 군시테이 주인 미야무라가 말하는 효스베를 본 여자와 신흥종교에 빠진 그녀의 할아버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영매사 가센토를 노리는 한류기도회... 스토킹을 당한다며 기바 슈타로에게 상담을 요청한 여인이 말하는 신통력 있는 아이... 눈알 살인마 사건 이후, 오리사쿠 아카네 앞에 나타난 하타라는 노인의 제안과 이즈의 땅과 관련된 사건... 이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거대한 집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번 도불의 연회 1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 에피소드별로 파트를 나눈 것이다. 보통 교고쿠도 시리즈는 제목에 언급된 요괴가 내용 전반에서 영향을 주는데, 도불의 연회의 1부인 <연회의 준비>에서 도불(누리보토케)은 중요한 것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고 각 파트별 제목으로 쓰인 요괴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잘 보면 생김새나 유래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파트별 요괴들과 도불에게 뜻밖의 공통점이 보였다.
저 요괴들 모두 토리야마 세키엔의 첫 화집인 <화도 백귀야행>에 실린 것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목의 도불을 포함한 작중 언급된 요괴 전부 세키엔의 화집에 설명없이 그림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각 파트별로 그림 밑에 쓰인 설명도 보면 전부 화집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 언급된 내용이며, 심지어 와이라 같은 경우는 그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아서 더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번 도불의 연회 1부는 도불이라는 존재를 언급하기 이전에 설명없이 그림으로만 언급된 요괴를 먼저 늘어놓으며, 이전에 나온 다른 시리즈와 달리 도불은 그 어떤 사전정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체에 대해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미리 설명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용상에서도 그 이전 작품들과 달리 뭔가 사건의 이미지는 확실히 있지만, 설명이나 뒷받침 되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어서 도불의 연회에서의 도불은 바로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설명없이 그림만 있는 요괴들 중 도불(누리보토케)이 제목 전면에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 동안 종교적 분위기가 강한 교고쿠도 시리즈에 설명없는 요괴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요괴여서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불은 작중에 언급된 다른 요괴들에 비해서 유독 종교적 느낌이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도불은 눈알이 튀어나온 검은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화도 백귀야행>의 그림을 보면 불단에서 나타난 모습이라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에도 어렵다. 불상이라는 확고한 종교적인 이미지에 눈알이 튀어나오게 해서 만들어진 기괴한 이미지. 딱 교고쿠도 시리즈 다운 느낌에 적합해 보인다.
각 파트 별로 벌어지는 사건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그 동안 아무리 사건의 크기가 크고 복잡하더라도 개인 대 개인으로만 벌어지는 정도였는데, 도불은 거의 개인 대 집단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 집단이라는 존재가 엄청 많이 나오고 다 종교 비스무리한 이미지에 전부 나쁜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거기에 교고쿠도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소름끼치고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길에서 도을 아십니까, 하고 묻는 부류의 집단이 있다. 본인도 어쩌다 만나봐서 아는데 다짜고짜 말을 걸며 뭐라뭐라 하는 형식의 래퍼토리다. 관상이다, 기운을 느낀다, 신기가 있다, 같은 말을 아무런 근거 없이 하는게 대부분이라 대부분 믿지 않을 법하다. 그런데 도불에서 나온 종교단체의 언변과 연출을 보면 앞서말한 부류와 비슷한 것도 모자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걸 보며 아무리 비상식적인 종교라도 작정하고 달려들면 개인을 쉽게 휘어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케미가 나오는 <우완> 파트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 잘 나타나 있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개인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유독 도불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이나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 동안 전후라는 정도나, 세키구치나 기바가 동남아 지역 전쟁에 참여한 일 정도로 그리 자세하게 표현되지 않던 것에 비하면 엄청 많이 나와 보였다. 특히 전쟁과 무관하고, 전쟁을 원치 않던 이들이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물론 일본이 2차세계대전 전범이라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국가지도자들이 일으킨 건 맞지만, 앞서 말한 평범한 사람에게는 원치 않게 하루 아침에 전세계가 적이 되버린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는 걸.
개인의 주위에 형성된 분위기가 핵심인 내용이다 보니, 작중 인물들도 그 만큼 더 심도 있게 표현된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기바 슈타로 형사였다.
아츠코의 경우에는 그 동안 밝은 모습만 나와서 어딘가 한 군데 씩 문제 있어 보이는 주연 인물들에 비해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에 결점이 있어서 측은하게 보일 정도였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자신 주위의 분위기에 대한 결점이 도드라진 부분은 현대의 가족문제와 여러모로 흡사해 보였다. 그래서 아츠코를 보며 성장과정에서 가족이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하면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이루는 세계관이 안정되지 못해 결국에는 본인의 자아까지 확실해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불확실. 그것은 나란 도대체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나는 어떤 스타일일까인데 이게 확고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끌려다닌다면 결국에는 진짜 내가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기바 슈타로의 경우는 무당거미 이후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번 편에 들어 본격적으로 이 형사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고찰이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냥 생각없이 감으로 수사하다 결국 폭주하고 마는 형사. 그 동안 기바 슈타로란 인물의 정의는 딱 이정도였다. 그런데 도불에서는 기바의 의외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이 형사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으로 수사한다는 이미지만 보면 기바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편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 해버리는 걸 보면서, 이 형사는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기바가 교고쿠도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단독으로 문답을 주고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이들의 문답을 듣는 것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자신이 제시한 문답이었으니 더욱 잘 이해한게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작중에 개인의 세계관이 파괴되어 혼란에 빠진 내용이 많은데, 그저 자아 상실이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하려해도 혼란의 원인과 과정이 매우 세세하게 달라서 보기에 따라 엄청 해깔리기도 한다. 전부 하나 같이 무언가 빠져 있다며 공허해 하는데, 그 원인과 거기에 이르게 된 흔적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억과 실제 세상 기록과의 괴리, 과거와 현재의 단절 속에서 피어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미지의 공포, 과거의 한 부분이 들썩이며 현재에 영향을 끼치며 발생하는 혼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전무해 껍데기만 가진 현재, 미래가 현재를 침식하여 세계관의 중심이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 현재. 거기에 개개의 사건을 관통하는 몇몇 동일 인물이 더해지면 그야 말로 혼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분명 분위기는 심리적으로 엄청 무겁게 압박하는 느낌이지만 작중 분위기의 구조나 매개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면서 읽는 다면 모를까, 사건 전개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진행될지에 초점을 맞춘 독자라면 이번 도불은 정말 읽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사건 초입에서 진행되려는 순간에 끊기거나, 중간 과정은 없이 결과만 덩그러니 놓인 경우도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사건의 모습이 들어나지 않는 이 시점이 엄청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전개로만 집중해서 본다면 거의 오프닝에서 사건전개 초입까지만, 6번이나 반복되는 구조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1부라는 특성상 본격적인 사건이라던가, 제목의 도불(누리보토케)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인 것과 관련 인물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만 있을 뿐이다. 예상이지만, 무당거미를 뛰어넘어 교고쿠도 시리즈 사상 역대급 피해자 수를 기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연회의 시말을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