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 개정판 미쓰다 신조의 집 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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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禍)를 자초하게 되는 건 어디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놓고 불길한 곳에 들어가 무언가를 자극했거나 조심하지 않은 결과라 생각하면 편하긴 하다. 남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조심해야겠다고 여기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화(禍)에서 말하는 재앙이나 액(厄)_'불행한일'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닥쳐오기도 해서 원인을 따져봤자 의미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무런 전조 없이 다가오니 대비가 불가능하고, 이미 벌어진 일을 돌아봤자 애초에 그게 조심해서 피할 수 있던 일인지 조차 알 수 없게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화란 의지와 집념을 가지고 무차별로 해를 끼치는 괴물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함께 도쿄 외곽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된 무나카타 코타로. 처음오게 된 동네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인상이라 불안을 느끼던 와중에 수상쩍은 장소를 발견한다. 하나는 어느 가문의 사유지였다가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게 된 숲. 그리고 밤만 되면 정체불명의 인기척을 느끼게 되는 자신의 집. 이사온 첫 날부터 알게 된 소녀인 레나의 도움을 받으며 이사 온 집에 대해 조사하던 코타로는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전작이 외딴 곳에 있는 흉흉한 집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주택가 한가운데의 소문이 좋지 않은 집이다. 조금 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도심 쪽이라 안심될 것처럼 보일 만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흉흉한 집이란 것은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흔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동네 이미지를 생각해 자세한 내력을 숨기거나 모른채 해버려서 잘 알려지지 않게 되버리는 것이다. 이번 작품의 집이 딱 그런 경우다.

국내 출간 순서상 2번째지만, 실제로는 집 시리즈 1권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그런지 <흉가> 때보다는 다소 아쉬운 면이 느껴지긴 한다. 다소 정석적인 전개 방식으로 공포의 실체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구성면에서 뻔하다면 뻔하다 할 수 있고. 아무리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를 나타낸 것이라 해도 장황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 심리적 두려움으로 인해 위축된 게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자체가 벽창호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답답하게 나타나는 편이라 그렇다. 이런 탓에 각 장의 수는 적어도 분량이 어느 정도 되다 보니 전개가 시원하지 못하다고 느껴질 만하다.

아쉬운 것과 별개로 흥미롭다고 여긴 부분은 이 작품에서 다루는 공포 스타일이다. 대체로 공포란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하나는 귀신이나 괴물 같은 초현실적인 공포. 다른 하나는 살인마, 범죄 같은 현실적인 공포. 물론 이 둘이 섞여 나오는 경우도 자주 있어서 구분의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몰입하게 되는 포인트가 있기 마련이라 이걸 소홀히 했다가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가 자주있다. 예시를 들자면 귀신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갑자기 현실 범죄사건으로 결론나는 경우 말이다.

이 작품은 초현실적인 공포와 현실적인 공포를 적절하게 섞은 동시에, 이렇게 흘러 갈 수밖에 없는 충분한 개연성을 제시해서 뜬금없다는 인상은 아니다. 조금만 관찰력이 좋으면 공포의 실체를 알아볼 단서를 금방 발견하기 쉬운 편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결론이 나는 것도 아니라서 마지막까지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로 친다면 누가 범인인지 대충 짐작이가도 동기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가지 않는다면 추리가 완성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화(禍)란 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공포 스타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보통 재앙과 불행이라고 하면 현실적인 사건을 자연스레 언급하게 되고. 원인이 저주라고 한들, 현실적인 해악을 끼치는 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화(禍)는 시작이 뭐였든 간에 현실에서 멀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효과적으로 노릴 수 있는 부분이란 이거다. 화(禍)의 시작점. 즉, 와이더닛(Why done it)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자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공포 미스터리에서 와이더닛을 아주 잘 활용한 경우라 생각한다. 이 와이더닛이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반전까지 남길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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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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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뻔히 보이는 답을 두고도 헤매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단순히 시야가 좁다, 세심하지 못하다, 같은 평범한 이유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도 무의식적으로 걸려들고 마는 덫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마냥 개인적 부주의로 여기기는 힘들다. 이런 부분은 한 눈에 알아보기 쉽지 않아서 다시 되짚어 보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을 어디에서 놓친건지.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며 넘긴 건지.

사건에 대한 자문을 받기 위해 아는 지인이 근무하는 네덜란드 기념병원을 방문한 엘러리 퀸. 의료 과장인 닥터 민첸은 오랜만에 만난 엘러리에게 이 병원의 설립자인 백만장자 노부인 에비게일 도른이 사고를 당해 수술 일정이 생겼다고 알린다. 그런데 수술이 시작되려던 상황에서 도른 부인이 누군가에게 교살당해 이미 죽어 있던 사실이 밝혀진다. 범행은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에 벌어진 걸로 추정되던 중, 그때 도른 부인과 같이 있었던 간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집도의인 닥터 재니를 모방한 누군가가 들어왔었다고 하는데...

처음부터 범인의 흔적과 명확한 단서가 제공되는 상황임에도 사건 자체가 쉽지 않게 흘러가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건 관계자 대부분이 명확한 진술을 피하는 면이 많고. 기본적으로 주어진 단서 그 이상을 제시해 주지 않아서 그렇다. 추가로 단서를 제시해주나 싶으면 그 만큼 의문도 늘어나서 대체 실마리를 잡기 쉽지 않다.

재력가이자 유명인사나 다름없던 인물의 죽음이라 그런지 관련자들을 통해 어두운 뒷사정이 많이 나타난다. 뻔하다면 뻔한 설정이긴 하지만, 이렇게 됨으로서 추리소설 구조상 쉽지 않게 된다. 사실상 가장 가까운 관련자 모두에게 혐의를 두게 되고, 여기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게 되면 더더욱 꼬여버리기 쉬워서 그렇다. 무엇을 가정하든 전혀 맞지 않게 되고. 그렇다고 전혀 맞지 않는 경우만 골라내려 해도 남는 것이 전혀 없게 되니 말이다.

모든 부분에서 철저한 벽을 세워 놓은 인상이지만 추리소설인 이상 답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국명 시리즈를 어느 정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언제나 독자와의 공정성을 따지는 특성상 반칙 같은 것 역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단서를 눈앞에 보여주고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이 소설은 그걸 제대로 실험하기 위해 나온 결과물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이렇게 대놓고 확실한 증거를 처음부터 보여주는데 알아보는 독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고.

사건 자체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를 하자면 그야말로 최소한 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윤리를 저버린 추악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범인에 해당되지 않는 사건 관계자 대다수가 가진 윤리적 문제와 비교해도 최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라든지, 직업 정신이라든지, 가족으로서 지켜야할 연이라던지. 범죄를 저지르려면 무언가를 버리게 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된 경우는 현실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뻔히 보이는 답을 두고 멀리서 헤맨 끝에 벌어진 일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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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대한 앙케트
세스지 지음, 오삭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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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방정이란 말이 있다. 함부로 말을 늘어놓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각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무의식적으로 뱉고 보는 게 말이고, 특히 감정에 치우치면 무슨 생각으로 나온 것인지 후회할 정도로 막나오는 것이라 그렇다. 예로부터 말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결국 벌어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문득 여기까지 오다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결국은 입이 잘못이고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대학생 5명이 장난삼아 심령 스폿으로 유명한 공동묘지로 담력 시험을 하러 가게 된다. 이들은 공동묘지 정문으로 들어가 저주받았다고 알려진 나무 밑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기로 정했다. 문제의 나무는 한밤중에 밑을 지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력시럼을 다녀온지 한 달 후에 일행 중 한명인 안(杏)이 그 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남은 대학생들은 담력시험을 했던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게 되고 문제의 나무 밑을 지났던 부분에서만 제각각으로 달랐는데...

초반만 봐서는 흔한 괴담 같은 인상이긴 했다. 산속 공동묘지란 익숙한 배경. 담력 테스트를 하러간 일행 중 하나에게 변사가 일어난 고전적인 래퍼토리. 정석 중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스토리 진행방식과 시점 문제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뭔가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이 진술하는 듯한 대화형으로 진행되는 구조다. 장소는 동일하지만 심리적 상황과 목격한 것이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에서 뭔가 무서운 요소가 있지 않을까 했다. 확실히 착각을 유도하고, 진술 간에 어긋난 부분이 발견되면서 묘한 느낌이 생기게 한다. 대체 무슨 의도인가, 어째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가. 먼저 생긴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문이 바로 생겨난다. 왜 이 소설은 각 인물들이 진술하는 형태로 진행되게 했을까.

마지막 진술부터 맨 끝장에 있는 앙케트까지 이어진 대단원은 꽤 신선한 공포긴 했다. 문제의 나무와 관련된 진실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서 꽤 강렬한 의미를 남기고. 제목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입을 강조하는 부분에다가. 이런 식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참신함이 돋보인 앙케트까지. 생각보다 단순한 부분에서 헛점을 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공개해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지 고심한 결과물이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앙케트란 부분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독자에게 후기 형식으로 작품 속에서 다룬 주제에 대한 질문을 묻는 것처럼 유도하며, 입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지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서 소설 속의 공포가 마치 현실에 침투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며 입으로 인해 간과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만드는 장치다. 앙케트란 것은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다 보니 어느 정도 유도당했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게 되고. 유도당한 방향의 끝에 존재하는 진실이, 사실상 정해진 답을 말하고 있는 질문이 무섭게 느껴지게 된다고 본다. 저 질문을 하고 있는 입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분량이 짧은 단편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전부인 내용으로 보일만 해서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앙케트로 이어지는 부분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스토리가 평범한 편이라 더 그럴만 하다고 본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글을 읽는다는 부분에서 발생할 감각적인 포인트를 제법 잘 짚어서 공포 소재로 활용한 부분 만큼은 좋게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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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 개정판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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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일종의 첫 인상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거주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가까이 하고 싶어지거나, 때로는 보기 싫은 꺼림직한 것이 되기도 해서 그렇다. 첫인상이란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듯이 거주하는 사람이 떠나도 집의 이미지가 바뀌지 않기에 흉흉한 이름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와 반대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거주하는 집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인상이 정해진다고 말이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도쿄에 살던 히비노 쇼타는 나라 현에 위치한 안라 시로 이사가게 된다. 쇼타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면 종종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이사갈 집으로 가는 내내 그게 찾아온 것이다. 집은 주택단지를 조성하려다가 방치된 산 속에서 유일하게 완공된 곳이었고, 구조 역시 용도를 알 수 없는 곳이 상당수 있다보니 쇼타의 불안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던 중, 산 아래 맨션에 사는 코헤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도도산과 뱀신에 얽힌 저주를 알게 되는데...

개인적인 고민을 가진 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일가족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계속 맴돌며 긴장감을 준다. 이 긴장감 있는 흐름은 완급 조절에 상당히 신경쓴다는 느낌이다. 과한 무게감을 주지 않으려 중간마다 분위기를 풀어주면서도, 완전히 안심하지 못하게 불길한 뒤끝을 남겨두는 스타일이라 그렇다. 전반적인 공포 테마가 뱀과 관련 있다고 알게 되니 이러한 완급 조절 방식이 이렇게 보이기도 하다. 어디에 숨어있는지 모를 뱀에게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공포의 실체를 밝혀내는 미스터리 형태를 가진 내용인데도, 주인공이 어린아이라 그런지 상당한 제한이 걸린 채로 진행된다. 그래서 조사할 수 있는 범위나 생각의 발상이 좁은 편이고, 전문적인 분야에 접근하기 어렵게 나타난다. 호러미스터리에서 공포 비중을 더 높게 나타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스터리 쪽을 선호하는 편이라면 다소 호불호가 있을만 하다. 단서가 있어도 조사가 시원치 않거나 더디게 진행되서 답답하게 보이고, 뭔가가 진행되도 즉흥적으로 일이 풀린 것 같다는 인상을 줘서 그렇다. 그래도 공포영화에서 간혹 나오는 추리를 표방하다가 흐지부지 끝난 경우처럼 실망할 일이 없다는 건 확실하다.

도도 산과 뱀신에 얽힌 저주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섬뜩하게 잘 나타냈다. 민속학적인 분석은 앞에서 간략하게 다루고. 대체로 저주에 영향을 받은 이들로 인해 벌어지는 무서운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낯선 집에 이끌려 들어간 상황이 두 번 나오는데, 비슷해 보여도 서늘한 공포와 뜨거운 공포의 차이를 준 묘사는 여러모로 주목할 부분이다. 뱀은 파충류에 해당되고,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라 온도에 민감하다는 부분을 공포 요소로서 반영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늘함은 낮은 온도에서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처럼 감각을 차단하는 암흑 속의 공포라면. 뜨거움은 마치 적정 온도로 체내가 따뜻해져 활발해진 것처럼 불쾌함이 가득하게 직접적으로 덮쳐오는 경우라고 말이다. 공포 소재로서의 뱀은 다소 뻔하게 사용되기 쉬운 면이 있다고 여긴 편인데, 작가는 그런 단점이 부각되지 않게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걸로 보인다.

마지막에 밝혀진 집에 숨겨진 공포의 실체는 상당한 충격을 준다. 어떻게보면 흔히 생각하는 흉가 공포의 틀을 깬 것에 해당된다. 집에서 무언가 나온다. 집 그 자체가 흉흉하게 변모해 덮칠 것이다. 많이 봤던 형태가 오히려 편견으로 작용해 생각지도 못한 헛점을 노린거나 마찬가지다. 스타일이 다른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지만 작가는 공포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 만큼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 활용하는 면이 뛰어나다는 걸 느낀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이런 걸 느끼고는 한다. 눈 앞에 뻔히 보이는 걸 너무 어렵게 받아들였다. 이 소설도 그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미스터리 소설과 공포소설의 차이점 때문에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통 미스터리 소설에서 이걸 깨닫는 순간은 해결에 해당되서 마무리 짓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면 공포소설은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인상을 주며 결말이 났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꺼림직함을 길게 남긴다. 이 소설은 그런 마지막의 꺼림직함을 폭발하듯이 극대화 시키는 걸 노렸다고 할 수 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탐정의 추리와 반전이 핵심이라면, 공포소설은 이렇게 짙게 배어나며 오래남는 꺼림직함인 것이다. 그렇기에 공포 장르란 마지막 핵심을 보여줄 때까지 분위기가 끊기지 않게 끌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걸 제대로 못하면 사이드에 해당되는 곳에서 전부 보여주고, 결말이 흐지부지 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본다.

여기서 언급된 타츠미 가와 햐쿠미 가의 자세한 부분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 메인으로 다루어졌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읽어볼 생각이다. 이 소설에서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은 뱀신의 정체란 무엇이고, 어떤 연결성을 가지는지 상당히 궁금하다. 어쩌면 이 소설은 뱀의 꼬리에 해당되고, 그 다른 소설은 머리에 해당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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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제중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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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이란 본질을 알아볼 수 없게 흐리는 대표적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은 사회적 편견으로서 해석되며 확실한 맥락 없이 만들어진 결론으로 이어지고. 상세한 정보들은 뭔가 연결이 안 된다는 인상을 주며 혼란만 남겨서 그렇다. 그렇기에 무엇이 본질에 해당되고, 확실한 답으로 이어지는지 구분할줄 아는 것이 바로 탐정에 해당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선입견을 들먹이며 단정지을 때, 침착하게 곁가지가 무엇인지 골라낼 준비를 하니까.

뉴욕 프렌치 백화점의 신상품을 소개하던 쇼윈도룸에 전시된 접이식 침대 안에서 백화점 사장의 부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퀸 경감은 백화점 관계자들의 행적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엘러리는 프렌치 부인의 소지품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립스틱을 발견한다. 여러 의문점이 있지만 엘러리는 사건의 동기에 대한 부분을 주목하던 중, 문제의 립스틱 안에서 마약을 발견하게 되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프랑스라는 국명을 테마로 잡은 것과 어울리게 지금으로 치면 재벌가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다. 보통 재벌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하면 벌써 많은 것들이 나오고는 한다. 집안 싸움. 재산 문제. 경영권 다툼. 부도덕한 사생활 문제. 초반에 주어진 단서들 역시 겉으로만 봐서는 너무 뻔하게 범인이라 유도하는 듯한 흔적이나 다름없기에 선입견 문제를 대놓고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흉기부터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까지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주다보니 제법 긴장감을 조성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이런 단서가 나오는 걸까. 이렇게까지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할 정도면 범인은 어떤 사람인가. 사건 현장인 백화점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선입견에,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까지 더해지니 사건이 굉장히 복잡하게 보일 정도다. 그렇다보니 탐정인 엘러리 퀸은 여기서도 매순간마다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기에따라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 만큼 정리를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선입견에 갇히기 쉽다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이 인상적인 소거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 언급되는데 확실히 그렇다.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는 엘러리 퀸의 시도를 보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초에 가능성이 없다 싶으면 과감하게 제외하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억지에 가까운 가정을 만들기까지 한다. 이걸 보며 진정한 편견 없는 잣대란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요즘에 쓰이는 표현으로 치면 모두 고려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무작정 전부 의심하는 방식은 아니다. 주어진 단서 안에서 범인에 해당되는 조건을 만들어 놓고, 모든 가능성을 여기에 맞춰보는 형식이라 소거법이란 어떻게 쓰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예상치 못한 범인이 밝혀지는 놀라움과 사건의 규모에 비해 보기에 따라 마지막 엔딩이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다. 강렬한 인상과 별개로 확실한 처벌과 다소 거리가 멀게 보이는 마무리라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살인사건 부분으로만 끝내고 싶은데, 사건 규모 자체가 너무 커져버린 인상이라 적절하게 끊기 위해서는 이러한 엔딩을 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한다. 잘못하면 메인으로 제시된 살인사건이 맥거핀으로 전략하고 전혀 다른 방향의 사건으로 전개될 위험도 없잖아 있고. 그렇게 되면 독자와의 대결을 추구하는 탐정소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실책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이건 작가의 사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제목에 나온 파우더란 부분이 사실상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금 놀랍기도 하다. 하나는 진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인 파우더. 다른 하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다름없는 파우더. 이러한 이중적인 상징을 부여한 것이 작가의 의도였다고 한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여긴다. 두 파우더 모두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는 단서인 동시에 선입견을 가지게 하는 키워드에 해당되서 그렇다. 이전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가 단순한 증거물에 대한 부분을 나타내는 제목이었던 것에 비해 발전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을지도 모를 독자적인 해석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진실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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