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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대한 앙케트
세스지 지음, 오삭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평점 :
입방정이란 말이 있다. 함부로 말을 늘어놓는 것을 의미하는데, 생각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무의식적으로 뱉고 보는 게 말이고, 특히 감정에 치우치면 무슨 생각으로 나온 것인지 후회할 정도로 막나오는 것이라 그렇다. 예로부터 말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결국 벌어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일으킨다고 말이다. 문득 여기까지 오다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결국은 입이 잘못이고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대학생 5명이 장난삼아 심령 스폿으로 유명한 공동묘지로 담력 시험을 하러 가게 된다. 이들은 공동묘지 정문으로 들어가 저주받았다고 알려진 나무 밑을 지나 뒷문으로 나가기로 정했다. 문제의 나무는 한밤중에 밑을 지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력시럼을 다녀온지 한 달 후에 일행 중 한명인 안(杏)이 그 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한다. 남은 대학생들은 담력시험을 했던 당시의 상황을 진술하게 되고 문제의 나무 밑을 지났던 부분에서만 제각각으로 달랐는데...
초반만 봐서는 흔한 괴담 같은 인상이긴 했다. 산속 공동묘지란 익숙한 배경. 담력 테스트를 하러간 일행 중 하나에게 변사가 일어난 고전적인 래퍼토리. 정석 중의 정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스토리 진행방식과 시점 문제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뭔가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나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이 진술하는 듯한 대화형으로 진행되는 구조다. 장소는 동일하지만 심리적 상황과 목격한 것이 다르게 나타나는 부분에서 뭔가 무서운 요소가 있지 않을까 했다. 확실히 착각을 유도하고, 진술 간에 어긋난 부분이 발견되면서 묘한 느낌이 생기게 한다. 대체 무슨 의도인가, 어째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가. 먼저 생긴 의문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의문이 바로 생겨난다. 왜 이 소설은 각 인물들이 진술하는 형태로 진행되게 했을까.
마지막 진술부터 맨 끝장에 있는 앙케트까지 이어진 대단원은 꽤 신선한 공포긴 했다. 문제의 나무와 관련된 진실은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서 꽤 강렬한 의미를 남기고. 제목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입을 강조하는 부분에다가. 이런 식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참신함이 돋보인 앙케트까지. 생각보다 단순한 부분에서 헛점을 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공개해야 더 충격적으로 느껴질지 고심한 결과물이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앙케트란 부분이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독자에게 후기 형식으로 작품 속에서 다룬 주제에 대한 질문을 묻는 것처럼 유도하며, 입이란 것이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지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서 소설 속의 공포가 마치 현실에 침투한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하며 입으로 인해 간과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만드는 장치다. 앙케트란 것은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다 보니 어느 정도 유도당했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놀랄 수밖에 없게 되고. 유도당한 방향의 끝에 존재하는 진실이, 사실상 정해진 답을 말하고 있는 질문이 무섭게 느껴지게 된다고 본다. 저 질문을 하고 있는 입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분량이 짧은 단편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전부인 내용으로 보일만 해서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앙케트로 이어지는 부분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스토리가 평범한 편이라 더 그럴만 하다고 본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글을 읽는다는 부분에서 발생할 감각적인 포인트를 제법 잘 짚어서 공포 소재로 활용한 부분 만큼은 좋게 볼만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