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거미의 이치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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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서 이후로 오랜만에 접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라 정말 반가웠다. 이번 편은 우부메부터 철서까지의 사건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어서 거의 교고쿠도 시리즈 1분기 정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면이 빠지지 않고 있으나, 주로 보면 제목 그대로 이치. 즉, 행위에 대한 정당한 흐름이 많이 다루어지고 언급된다. 이치라는 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일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으냐에 따라 이치가 결정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추리소설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인 논리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를 다룬다는 건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는 것일테다.
 작년부터 시작된 금속공 히라노 유키치의 눈찌르기 연쇄살인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쿄도에서 일어난 네 번째 현장에서 기바는 생각지도 못한 증거품을 발견하면서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이윽고, 그게 현실로 일어나게 되자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는 가운데 거미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하코네 사건 이후, 탐정이 되기 위해 에노키즈의 사무실을 찾은 마스다는 조수가 되기 위해 스기우라라는 남자를 찾는 의뢰를 떠맡게 된다. 그런데, 스기우라 실종 의뢰와 보소 반도 쪽에서 일어난 성 베르나르 여학교의 검은 성모 사건, 오리사쿠 저택의 교살마, 그리고 최근의 눈알 살인마가 기괴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거대한 무언가, 즉 거미가 개입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전개 중, 유독 눈에 띄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던 것은 바로 기바의 수사와 추리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기바 형사는 경찰이라 하는 것도 무색하게 세키구치 만큼이나 별역할 없었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되집어 보자면 우부메에서는 중간의 사건 연결고리 및 후반 보조 역할로서 이 인물이 작중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정도였고, 망량에서는 사건 관계자로서 내용을 이끌어가기는 했으나 경찰로서가 아닌 단순히 직업이 경찰인 한 남자였을 뿐이며, 결국에는 마지막에 최대 피해자 중 하나로 전략했고, 광골에서는 그나마 경찰로서의 면모는 있었으나 사건 개입의 위치라던가, 대부분 나카토 형사가 이끌어간 관계로 단순한 조연 경찰이었을 뿐이었고, 철서에서는 아예 관할이 다른 관계로 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무당거미에서는 그 동안의 처우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그가 무조건 감과 힘으로 만 밀어 붙치지 않고(물론 아예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교고쿠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본인만의 논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사건의 한부분을 이끌어간다. 작가가 그 동안 레귤러 4인방(교고쿠도, 세키구치, 에노키즈, 기바) 중에서 가장 입지가 작았던 기바 형사를 띄워주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바와 더불어 작중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긴 건 놀랍게도 에노키즈였다. 그 동안 시답지 않은 말을 지껄이는 괴짜에 불과했던 미남이 여기서는 말그대로 구원자, 즉 광골에서 발언한 에노신의 면모와 침착하고 냉정한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두명의 친구 아닌 친구의 활약을 보다보니 전작에서 약간 편견아닌 편견이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바는 대체적으로 무지막지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에노키즈는 거만하고 제멋대로며 그 때문에 사람, 그 중에서 여성을 깔보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번 작품에서 그게 단순히 표면적으로 들어나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편견이었다고 말하듯이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기바는 여자가 불편하다고는 하나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류의 여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여자들을 안타까워하는 등의 자상한 면모가 돋보였다.
 에노키즈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인 발언과 특유의 오만함으로 혼란을 야기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옳고 그름을 잘가리고 편견, 특히나 어른들의 선입견으로 고통받는 소녀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사건에서의 돌발적인 진행을 미리 방지하는 등의 진정한 에노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성 베르나르 여학교 부분에서는 전작인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요리코와 가나코의  흔적이 보였다. 망량 초반에  흔히 아가씨라고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나오는데, 기독교 계열이라는 점을 빼면 성 베르나르 여학교도 마찬가지다. 다만 망량은 시대적 분위기와 어른들의 논리에 치우친 10대들의 방황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무당거미에서는 비뚤어진 학교의 실태를 다룬 것처럼 보였다. 사건의 해결보다는 본인들의 명예를 중시하고, 역시 어른들의 논리라는 선입견에서 나오는 수많은 차별, 그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교의 어리석음. 딱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현대의 학교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명예와 이미지 그리고 이익만 중시하고, 학생과 학교에 대해 무지한 관계자들이 교육의 장을 처참히 망가뜨리리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등장인물에서도 공통사항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주요인물 중, 구레 미유키는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을 받는 요리코와 처지가 비슷하고, 그 밖의 사건과 연관된 오리사쿠 미도리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으나 본의아니게 사건의 희생양이 된 가나코와 비슷했다. 특히 오리사쿠 미도리는 쓸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풍기며 강한 이미지를 남겼으나 작중에서 금방 퇴장해서 자취를 감춰버린 가나코의 연장선상, 더 자세히 말하면 망량에서 못다보여준 가나코의 이미지와 속마음에서 나오는 뒤틀림을 대신해서 보여준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이렇듯 가나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보여준 만큼 미도리는 어떻게 보면 가나코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소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 베르나르 여학교에서 이어진 오리사쿠 저택 역시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시바타 그룹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망량에서는 전적으로 남성들이 강하게 나선 시바타와는 반대로 오리사쿠는 강하게 나오는 여성들이 많았고, 느낌은 다르지만 망량 같은 사건들 간의 연계성이 있었다. 망량 같은 경우는 서로 다른 사건의 실체를 찾다보니 상자, 즉 각각의 사건들이 접점을 이루면서 결국에는 거대한 육면체 공간에서 놀아났다는 충격을 느끼게 한다. 반면, 무당거미는 오히려 사건들 간의 연계점을 빠르게 부각시키면서, 실체를 먼저 인식하게 만들어 오히려 누군가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경우로 보였다. 무엇보다 연관성을 따지자면 첫 작품인 우부메부터 내려가기 때문에 전편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것이다.

 오리사쿠와 시바타를 비교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부재 문제였다. 오리사쿠 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건 어머니와 딸 셋. 그러나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작중에서 오리사쿠 가문이 저주 받았다고 하는 건 이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지 않았을 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이 다루어져 있어서 남성에 대한 내용은 없을 것 같지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 안의 여성성을 부정하라고 강요당하는 남자의 얘기다. 이건 성별문제를 넘어선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교고쿠도는 말한다. 애초에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은 없다. 그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니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지 성별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남자와 여성에 대한 교고쿠도의 발언은 많았지만, 이게 그 발언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차별 문제에 있어서 남자, 여자 구분된 건 없다.

그걸 굳이 구분해서 나누는 것이야 말로 차별이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마 망량과 비슷한 이유와 석연치 않게 퇴장한 인물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석연치 않다는 점은 메인 사건인 눈알 살인마와 교살마 사이의 격차일 것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는 선에서 다루자면 교살마는 직접적인 언급과 교고쿠도의 제령이 있었던 반면, 눈알 살인마는 기바의 시점에서만 다루어지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심지어 관련자까지 이유 없이 퇴장한다. 더불어 철서처럼 레귤러 중, 한 명의 부재도 원인일지도 모른다.

  여성 권리와 일본 패전 당시 발생한 매매춘. 과거에서 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모계사회의 붕괴. 그리고 탄압 속에서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 위에 또 숨겨져 있었던 거미의 존재는 사건의 스케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과 마주하고 나서 느낀 건 교고쿠도의 말대로 정말 이렇게 해야 했었나,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깊은 허탈감이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발언권이 없을 정도로 남성의 차별도 모자라 같은 여성의 차별까지 심했다면, 같은 가족이라도 여자라고 차별을 받는다면, 또 애초에 남자든 여자든 이치에 맞지 않는 차별을 받는 다면, 소중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지라도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차별이란 결국은 엄청난 파국을 남기는 것일 테다.

 마지막 권을 읽고 반드시 첫 권의 맨 앞 페이지로 꼭 돌아가 보기를 바란다.

 처참한 사건 뒤에 숨겨진 서글프면서 나름 최선이었던 무당거미의 이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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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전 - 역사상 중요한 탐정의 목록과 해설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 / 프로파간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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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이 있으면 탐정이 있고, 탐정이 있으면 사건있고, 사건이 있으면 추리가 있다. 이게 뭔 말인지 저도 써놓고도 모르겠지만, 설명하자면 추리는 돌고 돈다? 이 정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추리소설이 늘어날 수록 탐정도 늘어나고, 또 사건도 늘어나고, 추리도 늘어난다가 되겠습니다.(그만해...)

 해외에도 이런 책이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에서 탐정에 대한 사전이 나온 것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셜록 홈즈 정도로 시작했다가 점차 넓어져서 영미권 탐정들 대다수를 접하고, 일본 미스터리까지 가다보면 탐정만 사는 나라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많아질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전으로 한 번 쯤은 정리를 해줘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탐정사전은 말 그대로 사전처럼 가나다 순으로 추리소설에 나오는 유명 탐정들에 대해서 나와 있다. 국내에 정발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대다수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고, 고전 추리의 유명 탐정, 추리 만화 탐정, 미드에 나오는 탐정, 그리고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매력적인 탐정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알고 있는 탐정이 나왔을 때는 반갑기도 하지만, 자기가 원하던 탐정이 없을 때는 약간 아쉽기도 할 것이다.
 주로 기제된 것은 탐정에 대한 이력과 작중에서 나오는 스타일, 국내나 해외에서의 인지도와 대체적인 평가, 매력적인 이유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작가에 대한 분량이 약간 더 많은 게 사실이긴 하다. 그래도 탐정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추리소설 입문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 책에서 본인도 모르던 탐정을 꽤 찾았고, 그 탐정이 나오는 책을 찾아보니 '아, 이게 추리소설이었어?'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약간 문제점으로 보인게 있다면 바로 관 시리즈 탐정인 시마다 기요시 항목이다. 안 그래도 추리소설은 스포일러 되면 재미를 잃게 되기 마련인데, 시마다 기요시 항목에는 관 시리즈 3번째 작품인 미로관의 살인의 반전요소(살인사건 자체에 대한 건 아니다.)를 그대로 기제해서 탐정에 대해서 알다가 약간의 스포일러를 보게 되는 격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 장정을 너무 고급스럽게 해서 가격을 올린 것도 좀 그렇게 보였다. 배송받고 보니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표지가 껍데기로 있는 고급 양장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좀 황당한 기분이었다고 알린다. 뭐, 개인적으로 나쁜 건 아니다만 탐정 사전을 내서 잘 모르던 탐정에 대해 알리려고 했다면, 고급스럽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가격부담 없게 반양장본 정도에 제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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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 1 유다의 별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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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볼 때 눈여겨 보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참신한 트릭이라던가, 특이한 소재 같은 것 말이다. 그 중 특히 눈여겨 보게 되는 건 셜록 홈즈처럼 시리즈로 연이어 나오는 인물이다. 국내 추리소설에서도 시리즈로 나오는 인물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던 참이었는데,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시리즈가 있다는걸 알아서 기대를 많이 하였다.

이번에 나온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유다의 별은 일제시대 성행했던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하고 상상을 초월한 스케일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변호사 고진의 첫 느낌은 법조인 이미지를 가진 홈즈에다가 어딘지 모를 박학다식한 다크히어로 느낌이 들었다.곶고진이 대부분 추리에 역할을 다한다면 광역수사대 경감 이유현은 단순히 범인체포를 넘어서 구속하기 위한 절차나 조건이라든가, 추리로만 범인을 굴복시키는 추리소설 속의 만능적인 부분을 배제한 상당히 현실적인 경찰 수사 측면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보통은 한 개의 사건에서 알리바이 트릭이나 밀실 같은 기발한 요소 한 개가 사건 전체를 이끌어가는 편이라면, 유다의 별은 거의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느낌이다. 밀실, 알리바이 트릭, 암호 해독, 약물을 사용한 살인, 증명할 수 없는 살인 등등, 거의 한 편에 한 두개 쓸법한 여러요소들을 작가가 한 곳에 쏟아넣으니 커도 이렇게 큰 건 처음 느낀다고 해야겠다. 특히나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범인간의 대결구도가 아니었나 싶다. 마치 김전일과 타카토 요이치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건 탓인지 단점도 꽤 있어 보였다. 밀실트릭이나 암호문 같이 흥미로운 요소는 그렇다해도 그 외 나머지 살인에 대해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으로 다 때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김샌다고 해야겠다. 아무리 사이비 종교의 극단성을 나타냈다고 해도 추측만 난무하면 주인공이 하는 말일지 라도 신빙성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살인의 무대가 국내를 넘어선 것에 비해서 약간 흐지부지 된 것과 상당히 영향력있고 기대되던 인물이 후반에 가서 제 역할을 많이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결론을 말하자면 캐릭터와 추리적 요소, 그리고 범인과의 대결하는 듯한 흐름은 몰입감이 정말 좋았지만 마무리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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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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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로 봐서는 보통 일본 기담처럼 보여도 '기담 수집가의 환상노트'라는 부제에 걸맞게 내용에 걸맞거나 아니면 주인공들 끼리 만담용 장광설이 많이 나와서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내용을 유도한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약간 지적인 대화를 주절주절하는 느낌이라 약간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도시괴담 같은 느낌에 옛스럽고 요괴나 마을단위의 민간신앙이라던가 지방 풍습이 주로 나타나는 일본 기담적인 내용이 있긴 하나, 곳곳에 서양적인 느낌이 도사리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서양분위기나는 일본 기담 같다고 해야겠다.

 한 가지 알려두자면, 주인공 이름이 사루와타리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사루=원숭이) 작중에서 대부분 일을 안 좋게 만들어버려서 원숭이 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반곡터널

 드라큘라 백작 같은 포스를 가진 괴기작가와 함께 이번에 마련한 중고차로 길을 나선 사루와타리는 어느 터널에 대한 괴소문을 접하는데...
 본격 프롤로그 겸해서 나오는 짤막한 괴담 같은 내용이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사루와타리가 가면 갈수록 원숭이가 된다는 암시가 깔린 것처럼 보인다.

아시야 가의 몰락

 백작과 함께 각 지방의 두부음식을 먹으러다니던 사루와타리는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대학지절 사귀던 유리코를 떠올린다. 그러다 백작도 유리코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같이 유리코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한다. 유리코의 고향에 도착한 사루와타리와 백작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라고 하는데, 가문이 나온다는 점 외에는 완전히 새롭게 느껴져서 오마주로서의 본보기로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유명한 음양사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전설과 연관 있는 음양사 가문은 음울한 느낌의 어셔 가와는 달리 뭔가 비밀사교 집단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크게 언급되거나 묘사된 점은 없었어도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말을 보고서는 어셔 가의 몰락 보다는 러브크래프트의 벽속의 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등 여자

 사루와타리는 공연을 보러갔다가 어떤 여자에게 자리를 내준 답례로 영화를 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기괴한 고양이등이었고, 꺼림직한 기분에 사루와타리는 다음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한다. 그 후, 고향에 갔다온 사루와타리는 하숙집 현관에 불이 난 걸 시작으로 섬뜩한 일을 겪는데...
 여자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내용은 약간 흔할 수도 있지만, 이 여자는 생김새부터 이상한 여자다. 하지만 사이코페스러던가 정신이상자가 아닌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신이상자에 의한 스릴러라기 보다는 약간 스토킹 당하는 사람이 느낄 법한 공포다. 문제는 이 여자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면서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요괴나 다름없는 취급을 하게 된다.
 공포의 주체가 되는 존재가 실존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외모에 출처불명의 정체, 그리고 동기를 알 수 없는 잔혹한 스토킹으로 인해 요물이 등장하는 기담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카르키노스

 백작과 통화를 하던 사루와타리는 백작의 부탁으로 영화 시사회에 갔다올 겸해서 같이 시즈오카로 게를 먹으러 간다. 그곳에서 시사회 주최자이자 붉은 게 요리를 소개 시켜 줄 혼고를 만난 백작 일행은 식사초대를 받아 저택에 도착하게 되고, 식탁에서 기괴한 게를 보게 되는데...
 기괴한 바다생물이 나오고 그에 관한 금기, 그리고 바다생물에 대한 혐오(약간 특정 생물에 한정 되기는 하지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약간 크툴루 신화 느낌이 들었다. 제목의 카르키노스는 게자리 별자리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게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 싸울때 나타났다가 별다른 영향력 없이 짓밟힌 기구한 존재다. 신화에서의 모습은 이렇지만 본작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초서기

 대학을 갓 졸업했을 당시, 사루와타리는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언처 살던 중, 주인인 니나가와의 부탁으로 방역업체에 쥐 방역을 요청하게 된다. 방역업체 사람들이 다녀간 후, 사방에 널린 끈끈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사루와타리는 비상계단 쪽에서 이상한 소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걸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 '철야 근무'(스티븐 킹 걸작선의 스티븐 킹 단편집 '옥수수 밭의 아이들' 수록)가 생각났다. 똑같이 쥐가 주재고 내용이고 쥐를 잡는 것이 나오긴 했지만, 여기서는 도시 빌딩 천장에 사는 쥐의 영악함을 조심하라는 느낌이다.
 사실 여기서 쥐도 중요하지만 이 쥐를 잡는 방역업체도 상당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 마치 한밤 중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빈 도심에서 쥐들과 진짜 죽자살자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인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도시에 사는 쥐들이 진짜 영악하다면 한밤 중 건물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을 일단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케르베로스

 백작과 사루와타리는 어떤 여배우의 부탁으로 군마현의 외진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지벌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로 여배우의 쌍둥이 동생이 원인으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방법을 모색하던 백작은 마을 신사에 있는 고마이누 상을 눈여겨 보게 되는데...
 일본의 신토와 서양 저승관이 혼합되어 나와서 상당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 신사의 수호신인 고마이누와 케르베로스를 연관시키고 거기에 서양인의 흔적을 혼합시켜서 진정한 서양풍의 일본 기담 같았다. 그 외에는 전형적인 일본의 외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담 같은 내용이지만 마지막 반전이 상당히 소름끼친다.
 참고로 여기서 사루와타리는 다른 에피소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원숭이가 된다.

송장벌레

 학창시절 때 알고 지내던 이요다와 만난 사루와타리는 할아버지가 수집하던 카메라를 회상하다가 사진을 찍고 싶어져서 구식 카메라를 빌리기로 한다. 이요다의 집에는 같이 마다가스카르로 여행을 갔다가 이상한 벌레를 먹고 죽어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요다는 카메라를 빌려주는 대신 원하는 사진 여러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루와타리는 카메라 렌즈 안에 있는 요상한 벌레를 발견하게 되는데...
 앞서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에 이어 이번에는 황금 벌레를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리소설인 황금 벌레와는 다르게 이건 진짜 벌레가 잔뜩 나오는 내용이다. 곤충의 종에 대한 고찰과 함께 벌레에 대한 공포와 미지의 공포가 공존하는 구석이 있어서 현실적인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사루와타라가 의도를 모르고 한 원숭이 짓이 한목 더해서 그렇다.
 결론은 아무리 벌레가 단백질 덩어리라도 모르는 벌레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소 떼

2년 동안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영문을 모른채 해고를 당한 사루와타리는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사루와타리를 딱하게 여긴 백작은 취재장소로 같이 데려가기로 한다. 백작과 함께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호텔에 도착한 사루와타리는 한눈을 파는 사이 백작을 놓치는 바람에 한 식당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식당 주방장이 안색이 좋지 않다면서 특제 물소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동안 온갖 고초를 겪은 사루와타리가 갱생하게 되는 내용겸 에필로그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내용에서 사루와타리는 주변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결국 결말에 가서 원숭이 짓을 하고, 사건을 파고드는 건 백작이다. 그러나 이번 내용에서 백작은 사건에 개입은 커녕 아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루와타리가 모든 걸 다 떠맡는다. 
 문제의 물소라는 존재가 주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마치 괴물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 수준이다. 하지만 단순히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를 통해 삶의 기력을 되찾아주는 기이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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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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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렇고 옛날도 그렇고, 무서운 이야기는 존재해 왔다. 특히나 옛날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괴하고 묘한 얘기가 많았다.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는 주로 다른 지방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듣고 널리 알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작중의 주요 인물인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바로 그런 인물로 보였다.

 기담하면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엠브리오 기담을 읽어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하면 무조건 자극적이고 징그러운 것밖에 떠올리는 요즘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귀신이나 사후세계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엠브리오 기담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짐꾼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미미히코는 로안의 길 잃는 여행에 힘들어 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를 발견한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에 미미히코는 태아를 주워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생명의 경이와 그걸 이용하려는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 그리고 기묘한 인연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작중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가 살아있다는 것말고는 크게 기묘한 것이 없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에게서 나온 부성애라던가, 탯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님에도 어렴풋이 남는 기억 같이 애처로운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아이를 가진 부모와 그 부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의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어릴 적, 부모님을 모두 잃고 도매 서점 주인의 집에 살던 린은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여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길을 잃고 해매다가 도착한 어느 외진 마을에서 린은 촌장 노파에게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뒤, 환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미미히코가 아닌 인물이 주요 인물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일종의 인생이 반복되는 윤회 같지만, 자신의 삶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루프 같은 느낌이라 해야겠다. 한 사람이 같은 인생을 반복해서 살면서 겪는 갈등과 자신에게 만 존재하는 이전 인생의 추억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 거기에 아무리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던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아련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윤회를 한 사람을 위해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인생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자체와 기억을 애초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가.

 수증기 사변

 의뢰처에서 알려준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온천이 있는 산 속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전부 음침한 인상의 주민들과 폐가나 다름없는 집으로 인해 기묘함이 더해가던 중, 여관 주인이 이즈미 로안 일행에게 밤에는 온천에 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는데...
 엠브리오 기담 이후로 또 다시 미미히코가 기묘한 일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주로 미미히코의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어서 엠브리오 기담에서 살짝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나타나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 동안 나온 미미히코의 행적이나 이번 화에서 나타난 절망감을 보면 당장 죽으려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미히코를 돌려보낸 건 아늑한 기억 속에 있었던 죽은 친구였다. 이걸 보면서 고의로 죽든, 사고로 죽든,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저승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맺음

 어느 여관마을 주막에서 만난 닭과 함께 여행 중이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비내리는 산길을 오르던 중, 외딴 어촌에 도착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은 로안에 비해 미미히코는 어촌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그 동안 훈훈하고 안타까운 인물로 나온 미미히코가 정말 나쁜사람으로 몰려도 할말 없어 보였다. 어촌에 있는 내내 미미히코는 심각할 정도로 주변의 모든 것이 공포스럽게 느끼는데, 정작 이즈미 로안과 마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서 읽는 내내 미미히코가 비정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눈치채지 못하던 일행이 나중에 가서 충격적인 것을 발견하고 동조하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즈미 로안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결국에는 미미히코만 이상한 놈이 되어버리고 만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어느 낭떠리지와 맞다은 마을에 도착한 이즈미 로안 일행은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구름다리가 이미 무너지고 없는 다리이며, 가끔씩 유령처럼 안개 속에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날 밤, 잠결에 밖으로 나온 미미히코에게 한 노파가 오래 전, 그 다리에서 죽은 아들에게 사죄하고 싶어서 구름다리에 같이 가달라고 청하는데...
 본격적으로 작가가 독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내용이다. 이전에 나온 엠브리오 기담이나, 라피스 라줄리 환상, 수증기 사변처럼 훈훈한 내용으로 보였으나 결국에는 충격과 공포로 이어진다. 작중에서도 말하지만, 해피엔딩은 우리가 바라는 엔딩일 뿐,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물체가 유령으로 나타났다는 점부터 신비롭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게 물체 그 자체의 영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다리를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없는 산마루

 산 속을 헤매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어느 남자를 만나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만난 남자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미미히코를 보고 '얼굴 없는 산마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모키치가 돌아왔다며 기겁을 한다. 미미히코는 계속해서 부정하지만 가면 갈수록 모키치가 자신과 닮은 것을 넘어 거의 일치하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겪는데...
 마치 도플갱어가 연상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키치와 미미히코는 그런 초자연적 현상과는 다르게 그저 다른 곳에 살고 있었던 똑같은 인생을 살고, 똑같이 생겼으며, 똑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을 뿐이다. 일종의 평행이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엠브리오 기담처럼 초반에만 기묘하고, 대체로 미미히코와 빼닮은 남자의 가족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손해보지 않는 정체성 혼란이라는 걸 두고 고민해보는 걸 여기서 처음 느껴봤다. 원래의 나 자신의 불행한 삶을 버리고 이름만 다르고 나와 닮은 인물이 남긴 것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행복할지, 아니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이 앞으로 행복할지.

 지옥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다리를 다친 어떤 여자로부터 길을 안내받으나 산적에게 습격을 받게 된다. 기절한 미미히코가 깨어난 곳은 산적의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 안이었고, 그곳에서 지옥을 맛보게 되는데...
 지금까지 나온 내용 중에서 가장 섬뜩하고, 아무런 사연이 없고, 사후세계 같은 것도 없이 오직 현실 공포 그 자체에 충실했다. 지금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 벌어지는데, 옛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벌이는 이들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더 설명할 필요없이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 빼고는 전부 베드엔딩, 즉 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빗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산적에게 습격당한 이후, 이즈미 로안은 요양 중인 미미히코 대신에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년을 짐꾼으로 고용해 여행길에 나선다. 청년과 함께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목적지로 가던 중, 이즈미 로안은 청년에게 일어나는 기묘한 일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동안 여행다니면서 이상한 일이 생겨도 항상 미미히코를 바보취급하던 이즈미 로안이 처음으로 식겁한 내용이다.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를 비롯한 일본 괴담이 주로 다루어져서 그 동안 나온 기묘한 여행길 분위기 보다는 여행길에서 일어난 괴담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약간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무서운 이야기처럼 보였다.
 지금도 곳곳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돌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무서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서 입소문을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한 소작농의 여자가 지주의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지만, 모진 대우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찾지 않는 커다란 곳간에 있던 중 구석에서 책을 읽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이 말하기를, 자신은 길을 해매다가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소작농 여자의 사연은 보면 볼수록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면과 시집살이가 생각났다. 그래서였는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약간 뻔한 설정 느낌이 들었다. 이 점만 빼면 대체로 소년이 길을 잃게 되는 경위와 의도치 않게 길을 잃는 기묘함이 주를 이룬다.
 일본의 텐구와 함께 다루어져서 이 길을 잃는 소년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다니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길을 잃는 소년과 인생에서 길을 잃은 여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막다른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걸 보며 길을 잃어도 누군가와 같이 잃는다면 적어도 각자에게 원하는 길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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