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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거미의 이치 - 상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4년 8월
평점 :
철서 이후로 오랜만에 접하는 교고쿠도 시리즈라 정말 반가웠다. 이번 편은 우부메부터 철서까지의 사건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어서 거의 교고쿠도 시리즈 1분기 정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면이 빠지지 않고 있으나, 주로 보면 제목 그대로 이치. 즉, 행위에 대한 정당한 흐름이 많이 다루어지고 언급된다. 이치라는 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일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으냐에 따라 이치가 결정된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추리소설에서 중요시하는 요소인 논리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를 다룬다는 건 그만큼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는 것일테다.
작년부터 시작된 금속공 히라노 유키치의 눈찌르기 연쇄살인이 계속되는 가운데, 도쿄도에서 일어난 네 번째 현장에서 기바는 생각지도 못한 증거품을 발견하면서 불길한 느낌을 받는다. 이윽고, 그게 현실로 일어나게 되자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되는 가운데 거미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하코네 사건 이후, 탐정이 되기 위해 에노키즈의 사무실을 찾은 마스다는 조수가 되기 위해 스기우라라는 남자를 찾는 의뢰를 떠맡게 된다. 그런데, 스기우라 실종 의뢰와 보소 반도 쪽에서 일어난 성 베르나르 여학교의 검은 성모 사건, 오리사쿠 저택의 교살마, 그리고 최근의 눈알 살인마가 기괴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거대한 무언가, 즉 거미가 개입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전개 중, 유독 눈에 띄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던 것은 바로 기바의 수사와 추리 장면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기바 형사는 경찰이라 하는 것도 무색하게 세키구치 만큼이나 별역할 없었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되집어 보자면 우부메에서는 중간의 사건 연결고리 및 후반 보조 역할로서 이 인물이 작중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정도였고, 망량에서는 사건 관계자로서 내용을 이끌어가기는 했으나 경찰로서가 아닌 단순히 직업이 경찰인 한 남자였을 뿐이며, 결국에는 마지막에 최대 피해자 중 하나로 전략했고, 광골에서는 그나마 경찰로서의 면모는 있었으나 사건 개입의 위치라던가, 대부분 나카토 형사가 이끌어간 관계로 단순한 조연 경찰이었을 뿐이었고, 철서에서는 아예 관할이 다른 관계로 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의 무당거미에서는 그 동안의 처우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그가 무조건 감과 힘으로 만 밀어 붙치지 않고(물론 아예 쓰이지 않은 건 아니다.), 많이 생각하고 교고쿠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본인만의 논리를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사건의 한부분을 이끌어간다. 작가가 그 동안 레귤러 4인방(교고쿠도, 세키구치, 에노키즈, 기바) 중에서 가장 입지가 작았던 기바 형사를 띄워주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바와 더불어 작중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긴 건 놀랍게도 에노키즈였다. 그 동안 시답지 않은 말을 지껄이는 괴짜에 불과했던 미남이 여기서는 말그대로 구원자, 즉 광골에서 발언한 에노신의 면모와 침착하고 냉정한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두명의 친구 아닌 친구의 활약을 보다보니 전작에서 약간 편견아닌 편견이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바는 대체적으로 무지막지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에노키즈는 거만하고 제멋대로며 그 때문에 사람, 그 중에서 여성을 깔보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둘은 이번 작품에서 그게 단순히 표면적으로 들어나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편견이었다고 말하듯이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기바는 여자가 불편하다고는 하나 세상 사람들이 경멸하는 부류의 여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여자들을 안타까워하는 등의 자상한 면모가 돋보였다.
에노키즈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적인 발언과 특유의 오만함으로 혼란을 야기하지만, 이번에는 유독 옳고 그름을 잘가리고 편견, 특히나 어른들의 선입견으로 고통받는 소녀의 입장을 대변해주고, 사건에서의 돌발적인 진행을 미리 방지하는 등의 진정한 에노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성 베르나르 여학교 부분에서는 전작인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요리코와 가나코의 흔적이 보였다. 망량 초반에 흔히 아가씨라고 불리는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가 나오는데, 기독교 계열이라는 점을 빼면 성 베르나르 여학교도 마찬가지다. 다만 망량은 시대적 분위기와 어른들의 논리에 치우친 10대들의 방황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무당거미에서는 비뚤어진 학교의 실태를 다룬 것처럼 보였다. 사건의 해결보다는 본인들의 명예를 중시하고, 역시 어른들의 논리라는 선입견에서 나오는 수많은 차별, 그리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학교의 어리석음. 딱 학교폭력을 방관하는 현대의 학교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결국 명예와 이미지 그리고 이익만 중시하고, 학생과 학교에 대해 무지한 관계자들이 교육의 장을 처참히 망가뜨리리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등장인물에서도 공통사항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주요인물 중, 구레 미유키는 상대적 박탈감과 차별을 받는 요리코와 처지가 비슷하고, 그 밖의 사건과 연관된 오리사쿠 미도리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으나 본의아니게 사건의 희생양이 된 가나코와 비슷했다. 특히 오리사쿠 미도리는 쓸쓸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풍기며 강한 이미지를 남겼으나 작중에서 금방 퇴장해서 자취를 감춰버린 가나코의 연장선상, 더 자세히 말하면 망량에서 못다보여준 가나코의 이미지와 속마음에서 나오는 뒤틀림을 대신해서 보여준 인물이었던 것 같았다. 이렇듯 가나코보다 더 큰 영향력을 보여준 만큼 미도리는 어떻게 보면 가나코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소녀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성 베르나르 여학교에서 이어진 오리사쿠 저택 역시 망량의 상자에서 나온 시바타 그룹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망량에서는 전적으로 남성들이 강하게 나선 시바타와는 반대로 오리사쿠는 강하게 나오는 여성들이 많았고, 느낌은 다르지만 망량 같은 사건들 간의 연계성이 있었다. 망량 같은 경우는 서로 다른 사건의 실체를 찾다보니 상자, 즉 각각의 사건들이 접점을 이루면서 결국에는 거대한 육면체 공간에서 놀아났다는 충격을 느끼게 한다. 반면, 무당거미는 오히려 사건들 간의 연계점을 빠르게 부각시키면서, 실체를 먼저 인식하게 만들어 오히려 누군가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경우로 보였다. 무엇보다 연관성을 따지자면 첫 작품인 우부메부터 내려가기 때문에 전편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못해 소름이 돋을 것이다.
오리사쿠와 시바타를 비교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가족 구성원 간의 소통부재 문제였다. 오리사쿠 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건 어머니와 딸 셋. 그러나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서로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작중에서 오리사쿠 가문이 저주 받았다고 하는 건 이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지 않았을 가 하는 느낌이 든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이 다루어져 있어서 남성에 대한 내용은 없을 것 같지만 주목할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 안의 여성성을 부정하라고 강요당하는 남자의 얘기다. 이건 성별문제를 넘어선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교고쿠도는 말한다. 애초에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것은 없다. 그건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니 남자다운 것, 여자다운 건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지 성별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른 작품에서도 남자와 여성에 대한 교고쿠도의 발언은 많았지만, 이게 그 발언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차별 문제에 있어서 남자, 여자 구분된 건 없다.
그걸 굳이 구분해서 나누는 것이야 말로 차별이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상당히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마 망량과 비슷한 이유와 석연치 않게 퇴장한 인물이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석연치 않다는 점은 메인 사건인 눈알 살인마와 교살마 사이의 격차일 것이다. 스포일러를 방지하는 선에서 다루자면 교살마는 직접적인 언급과 교고쿠도의 제령이 있었던 반면, 눈알 살인마는 기바의 시점에서만 다루어지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오고 심지어 관련자까지 이유 없이 퇴장한다. 더불어 철서처럼 레귤러 중, 한 명의 부재도 원인일지도 모른다.
여성 권리와 일본 패전 당시 발생한 매매춘. 과거에서 부터 형성되어 있었던 모계사회의 붕괴. 그리고 탄압 속에서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 위에 또 숨겨져 있었던 거미의 존재는 사건의 스케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진실과 마주하고 나서 느낀 건 교고쿠도의 말대로 정말 이렇게 해야 했었나, 이게 최선이었나 하는 깊은 허탈감이었다. 허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것조차 발언권이 없을 정도로 남성의 차별도 모자라 같은 여성의 차별까지 심했다면, 같은 가족이라도 여자라고 차별을 받는다면, 또 애초에 남자든 여자든 이치에 맞지 않는 차별을 받는 다면, 소중하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지라도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차별이란 결국은 엄청난 파국을 남기는 것일 테다.
마지막 권을 읽고 반드시 첫 권의 맨 앞 페이지로 꼭 돌아가 보기를 바란다.
처참한 사건 뒤에 숨겨진 서글프면서 나름 최선이었던 무당거미의 이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