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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성 - <드래곤마스터> 포함 옴니버스 작품집 ㅣ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8
잭 밴스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최후의 성
그 동안 SF를 보면 먼 우주를 개발하려고 탐험하는 내용을 흔하게 보았다. 낯선 행성에 갔다가 정체모를 원주민들에게 습격당하거나, 반대로 원주민들을 정복하거나, 또는 그 밖의 여러 상황이 벌어지는 래퍼토리지만, 개발을 진행하는 내용이 전부고 그 이후의 생활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최후의 성은 우주를 개발하고 난 이후의 인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내용이다. 그래서 먼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외계인들과 자원과 영토를 다룬 전투보다는, 문명의 발전 끝에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과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는 관점이 많았다.
먼 우주로 나갔던 인류는 외계인 노예들을 이끌고 지구로 돌아와, 성을 쌓고 토착지구인들을 경멸하며 귀족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외계인 노예 중 '멕'이라는 종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성들이 일일이 함락되면서 위기감을 느끼는데...
내용을 보면 성에 사는 이들이 정말 꼴불견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잘난 맛에 살고, 온갖 화려한 것에 둘러 싸여 살고, 다른 외계인 노예들이 하던 일이지만 사람으로서 할 수도 있는 일을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이라며 기피하는 모습은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부유층, 귀족, 기득권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보면 볼수록 답답한게, 반란이 일어나고 대부분의 기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성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는 것이라고는 지금의 화려한 생활을 이어나갈 궁리나, 직접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내놓는 탁상공론식 이론에, 자신들은 하등한 외계인들에게 패배할리가 없다는 허세에 빠져 자만하는 것뿐이다.
성에 사는 귀족들이 부리는 외계인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지금도 존재하는 인간군상이 보였다. 멕, 페인, 괴조, 노예, 짐승차량이라는 외계인이 있는데 이 중 몇몇을 보면 이렇다. 반란을 주도하는 멕은 외계 생명체이긴 하나, 더듬이로 모두가 하나의 정신을 공유한다는 점을 보면 컴퓨터 네트워크처럼 보보이면서, 부당한 대우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군중심리 같기도 했다. 페인은 요정 같다던가, 연약하고 저항을 못한다는 부분을 보면 마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많은 이들이 욕망으로 만들어진 이상 속에서 원하는 순종적 여성을 나타낸 것 같았다. 괴조의 경우는 화려하며 수다스럽고, 무례하지만 정작하는 건 도박 밖에 없는 걸보면 말만 번지르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허세 많은 인간상의 모습이었다.
이 최후의 성에서 문명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과연 이게 문명의 쇠퇴인가, 또 다른 발전인가, 생각해보게 됐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눈부실 정도의 기술력으로 발전했지만, 인간성은 최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전혀 발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문명의 폐허에서 생존한 자들의 모습은 잃어버린 영광을 그리워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이 더 값지다고 여기는 모습이었다. 문명의 발전이란, 외견상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내면이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드래곤 마스터
최후의 성 만큼 특이한 배경이라 순간 이게 SF인지, 중세물인지, 중세 판타지에 스페이스 오페라가 가미 된 건지 해깔릴 정도였다. 우주선이 나오고 외계인도 나오는데, 중세시대 같은 분위기에 드래곤을 기르고 병력으로 이용하는데다 전지지능하다고 여겨지는 사제라는 또 다른 존재가 있는 걸 보면 이게 뭐냐는 감상이 나오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런 설정에 비해 내용은 지극히 혼돈의 연속이었던 중세 분위기에 갈등과 참극의 연속이었다.
에얼리언스라고 불리는 행성. 이곳에는 먼 옛날 어떠한 이유로 숨어살게 된 인류가 살고 있었다. 영토와 드래곤을 가지고 경쟁하는 행복계곡의 어비스 카콜로는 오랜 숙적인 벤백계곡의 조이스 벤백에게 오래 전부터 에얼리언스에 살아온 사제단에 대해 파해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이스 벤벡은 오래 전, 에얼리언스를 침공해 다수의 인간을 납치하고 공격해온 베이직들이 다시 침공할 것이라고 하며 철처히 대비한 뒤 같이 몰아내야한다고 주장한다. 어비스 카콜로는 조이스 벤벡과의 타협 끝에 벤벡들이 침공할 시에는 협력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돌아가지만, 자신의 원래 목적대로 벤벡계곡을 연이어 공격한다. 그러던 중, 베이직들이 침공해 행복계곡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지상에서는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외계인 침공까지 겹쳐서 말 그대로 혼란 그 자체였다. 험난한 산지형과 계곡, 봉우리를 넘나들며 펼치는 전술과 계략, 드래곤으로 불리는 존재들이 전장에서 펼치는 엄청난 살육전, 베이직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들의 충격적인 실태와 학살에 덤으로 있는 장황함은 중세극 분위기와 맞먹었다.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나면, 사지절단은 물론이고 참수, 화형 등등.. 이 만큼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러한 중세극 분위기에서 나온건 서로가 서로를 지배해야 해야한다는 지배자적 논리였다. 특히나 사육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병기들은 상상을 초월한 혐오가 느껴질정도로 끔찍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람으로서 에얼리언스의 사람들을 편들어주고 싶어도, 끝에 밝혀지는 드래곤의 진실을 보면 그들, 아니 진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베이직들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족과 인간이라서 다행이지 인간과 인간끼리 이런 짓을 벌였다면...2차세계대전 당시 행해진 생체실험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제단들의 모습을 보며 그 동안 그들이 기피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이 바로 이러한 지배자적 논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들은 작중에서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에얼리런스에 사는 인류나 베이직들과는 달리 전혀 긴장감이 없었고 위아래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걸보면서, 모든 번뇌를 떨쳐낸 도인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숨어사는 형식으로 기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위치는 바로 사제단들과 같은 위치가 아닐까 싶었다.
끝으로 불새 2기를 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불새 출판사 대표님에게 SF를 많이 접하지 못한 독자로서 신세계를 보여주신 것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SF 불모지에서 한줌의 희망을 바라는 노력과 바람을 잊지 않겠습니다. 표지의 붉은 선이 한 줄기의 직선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