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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ㅣ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일본 추리 3대기서라 해서 상당히 긴장하면서 봤다. 책을 읽으면서 긴장할게 뭐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서문에서부터 수학, 천문학, 중세시대 건축법, 화학, 유대교 신비학, 오컬트, 악마학, 거기에 인물들의 별칭, 율법서, 종교분쟁, 의학, 심리학, 최면술, 음향학, 조로아스터교 등등... 소름돋을 정도의 방대한 지식에 오구리 무시타로 넌 누구냐, 가 절로 나올 정도다. 역시 기서라는 말이 그냥 붙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3대기서는 시리즈마냥 한 번에 몰아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흑사관만 해도 머리가 터질 정도니까...
노리미즈 린타로는 하제쿠라 검사로부터 후리야기 가문의 흑사관에서 일어난 사건을 의뢰받는다. 하지만 수사 초기부터 온갖 기이한 사실과 맞딱뜨린다. 피해자인 그레테 단네베르크 부인의 시체에서는 빛이나고, 흑사관의 성주가 만들었다던 그레테 인형이 용의선상에 올라가는데...
일단 본론적인 걸 말하자면...이 책은 굉장히 이상하다...온갖 학문적인 게 쏟아지고 현실적이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다보니 이렇게 끔찍한 건(재미없다는 게 아니니, 오해마시길...) 없다는 생각이든다. 장광설로 유명한 교고쿠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역사와 문화적인 것만 다루고, 한 번에 길게 말하하고 중간에 텀을 주는 차라리 교고쿠도가 낫다. 흑사관은 말그대로 백과사전이다.
오컬트 현상을 설명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나오고, 자살을 타살이라고 증명하는 부분에서 행성 궤도 이론이 나오고, 거기에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근대 조각품의 한 부분이 상징하는 의미로 분석하는 마당에 더 설명할 것이 없다. 거기에 이 노리미즈라는 녀석은 한 얘기를 다하고 이제 넘어가나 싶다가도 또 다른 분야를 들고 나와 정말 힘겹게 만든다. 예를 들면 토속인종학을 근거로한 분석을 하고 끝내나 싶다가 갑자기 묵시록을 근거로 한 새로운 가설이 나타나는 형식이다. 정말 피곤한 인물이다. 보통 추리에서는 요점만 말하는 걸 노리미즈는 범인의 심리를 온갖 학문으로 해석하려고 해서 읽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각종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트릭이 넘쳐나는데 건물 전체 도안이 있다면 모를까, 부분 그림이 있어도 이해할까 말까 하다. 거기에 트릭보다 더 많이 나오는 암호는 아예 어떻게 해독되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이중 삼중 암호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읽을 때 가장 힘든 점을 말하자면 현기증이 난다는 것이다...노리미즈의 말을 따라가다보면이해의 범주를 넘어 머리가 어지러워질 지경이다. 특히 그게 가장 심하게 느껴지는 건 제 1장부터 제 3장 부분과 노리미즈와 피해자들 간의 말싸움하는 부분이다. 교교쿠도의 철서의 우리에 맞먹는 각주 홍수에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한다... 더 웃기는 건 노리미즈에게 농락당하는 하제쿠라 검사라던가, 구마시로 수사국장을 보면 꼭 책을 읽고 있는 나 같다는 것이다. 뭐, 노리미즈의 현악적인 말 솜씨에 맞서 빌헬름 제후의 대한 구절로 응수하는 하제쿠라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
더 혼란으로 휩싸이게 하는 건, 그 엄청난 노리미즈의 분석과 현악적인 추리가 완성되어도 범인이 그걸 순식간에 불태워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몇 번이나. 노리미즈의 엄청난 분석력을 지켜본 입장으로서 그 순간이 얼마나 기가차고, 허탈한지...도서관 수십채가 불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이 작품이 안티 미스터리라고 불린다는데, 확실히 그렇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인형이 살인을 저지른다던가 하는 섬뜩한 전제나옴메도 불구하고 노리미즈는 그걸 전부 미스터리(오컬트)가 아닌 미스터리(트릭)라고 증명한다. 문제는 그걸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다.
이 엄청난 현악과 계속되는 피살, 그리고 계속해서 무너지는 노리미즈의 추리 끝에 존재하는 흑사관의 진실은 실로 충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사관 만으로도 엄청 지쳐서 기서를 읽을 때는 정말 날을 잡아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