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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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표지를 보고서 확 느낌을 받았다. 추리의 대표적인 무대인 저택에, 인형 중의 섬뜩하기로 가장 좋은 피에로라니.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잘 짜여진 추리와 섬뜩할 정도의 반전이 있을 뿐 호러는 없었다.

 미즈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학하던 중, 고향으로 돌아와 사촌동생인 가오리가 있는 십자 저택으로 향한다. 마침 그 날은 가오리의 엄마이자 미즈호 엄마의 동생인 요리코가 발코니에서 자살한지 49재 되던 날이었다. 49재를 지내는 중 곳곳에서 가족들 간의 트러블을 보면서 미즈호는 자신이 없는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던 중, 가오리의 아버지 무네히코와 비서 리에코가 지하의 오디오룸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되는데...

 재벌에 특이한 저택이라는 점을 보면 당연하게도 전형적인 저택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택물은 가족들간의 불화, 아니면 아야츠지 유키토 식의 비밀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예상을 하고만다. 그래서 흔하게 널린 저택물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히가시노 게이고 답다고 해야할까, 전형적인 구조와 거기에서 오는 진부함을 타파하기 위해 여러 요소들이 있었다.(일본에서 출간 시점을 보면 아마 저택물이 범람하던 시기가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제목에도 언급되어 있는 피에로 인형이다. 특이하게도 작중에는 피에로 인형의 시점이 있다. 그 인형은 수시로 작중 인물들에 의해서 이곳저곳 옮겨다니고 그에 따라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물론, 자신의 시선에서 보이는 한도에서 말이다. 이러한 점을 보면 마치 인형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 피에로 인형은 정말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추리하면 전지전능한 명탐정이 필수겠지만, 여기 십자 저택에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물이 있을 뿐, 그런 인물이 전혀 없다. 그럴싸한 추리를 늘어놓는 인물이 있어도 명탐정마냥 풀리는 듯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구석을 보이는 건 물론, 범인인데 추리를 늘어놓는 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뭔가 해결사가 없는 추리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저택물과는 달리 십자 저택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미스터리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명탐정이 있다면 어떻게든 뒷끝없이 시원하게 끝났을텐데, 십자 저택은 아직도 뭔가 남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후속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십자 저택은 후속이 나오지 않고 이대로 영원한 미스터리로 뭍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탐정이 없는 세계, 즉 현실에서는 증명이 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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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알렉세이 성당의 참극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현진 옮김 / 추리와트릭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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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대기서인 흑사관 살인사건, 다들 기억할 것이다. 기괴한 충격을 선사한 작가 오구리 무시타로도 경이롭지만, 무엇보다 내용전반을 들쑤시는 건 바로 노리미즈 린타로이다.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앞뒤가 맞는 이론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정말 신에 가까운 탐정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흑사관에서 나온 그의 엄청난 추리 역량을 보면 보통 사람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라고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사관은 장편. 여기에 실린 건 단편이다.
 흑사관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장담하지만, 여기에 있는 단편은 흑사관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미치지 않으니 편히 읽어도 될 것이다. 단지, 정말 보통사람의 상상으로 할 수 없고, 이해하기 다소 난해한 살인의 향연일 뿐이다. 물론 그걸 풀어내는 노리미즈의 기교도 한목 하고.

 곳곳에 약간의 오타나 문맥상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좀 있어서 출판사 측에서 앞으로 신경써야 할듯 합니다.

후광 살인사건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절 코라쿠사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으로 인해 구마시로는 노리미즈를 호출한다. 현장은 이렇다. 시체 사이를 왕복한 두 종류의 신발자국, 그리고 불상을 바라보며 반듯이 편안한 자세로 정좌한채 정수리가 뚫려 죽은 시체...
 첫 단편부터 오구리 무시타로 다운 상당히 기상천외하고 난해한 사건이었다. 얼핏보면 간단해보이지만, 정수리가 뚫리는데도 가만히 있던 피해자의 상황을 보면 정말 기괴하기 짝이없다.

 배경도 그렇고 살해당한 인물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보니 트릭에서도 종교적인 면이 있었다. 다만, 종교에 가깝다기 보다는 정신의학적 이론에 가까웠다. 노리미즈가 어떻게 증명은 했지만, 다른 단편들과 달리 이것만은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가능한지 아직도 의문스럽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알리바이 트릭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진짜 오구리 무시타로가 작중에 나오는 시계를 정말 구해서 실험해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성 알렉세이 성당의 참극

 한겨울 자택에 있던 노리미즈는 가까운 곳에 있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알렉세이 성당에서 들려온 종소리를 듣고 어떤 발상이 떠오른다. 이윽고 하제쿠라 검사에게 연락을 해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성당입구에서 만난 성당 관계자 루킨에게 종소리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서둘러 종루로 달려간다. 하지만 종루에는 이미 피범벅이 된 성당지기가 있었는데...
 흑사관에서도 언급된 사건이라 특히 관심히 갔던 단편이었다. 후광 살인사건에 이은 난해한 요소들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후광보다 더하다는 생각이다. 성당 종에 관한 미스터리라던가, 역시 시체의 기묘한 상태가 그에 해당한다. 대체로 러시아와 근대 유렵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많았다. 안 그대로 오구리 무시타로의 작품 속에서 외국인이 많이 등장하는 구석이 있는데, 아마 역사적인 문헌을 이용한 추리 고려해서 그런 것 같다. 후광에서도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인물이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더 한정되는 바람에 도무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후광에서는 다소 정신의학적인 트릭이었다면 알렉세이 성당은 상당히 과학적인 트릭이었다. 겨울이라는 날씨조건에서 나온 종소리의 기교와 현장에서 흉기를 없애버린 트릭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과학적 원리가 있었다. 또한 실을 이용한 밖의 문을 걸어 잠그는 기술도 현란하다 못해 거의 묘기나 다름없을 정도다.

 유메도노 살인사건

 노리미즈는 한 밀교 암자인 유메도노에서 일어난 괴이한 사건을 의뢰받는다. 현장에는 기적의 수도승이라 불린 추마거사가 거의 찢기다싶이한 상태로, 비구니 한 명은 기괴한 상태로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문제는 사건 발생장소가 밀실이고, 추마거사의 현상태로 나올만한 혈은이 발견되지 않았고, 살해당한 비구니를 공포에 질리게 한 것의 정체, 그리고 괴이한 새 발자국이였다. 이윽고 노리미즈는 흉기로 보이는 걸 가진 유력 용의자를 찾아낸다. 그건 바로 유메도노 3층에 위치한 공작을 탄 여신불 모습의 그림인 공작명왕이었는데...
 단편 중 난해한 걸로 최고를 선정한다면 바로 이 유메도노 살인사건이 아닐까 싶다. 흉기로 마구 도려냈지만 전혀 피가 남아있지 않은 살해현장이라던가, 기묘한 교살, 거기에 유력 용의자가 공작명왕 그림이라니...문제는 공작명왕에게서 보이는 특징이 사건현장에 남겨져 있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노리미즈와 하제쿠라까지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할말 다한 거다.
 이런 사건현장에는 거기에 걸맞는 트릭이 존재하는데 정말 기가막힌다. 몸을 마구 난자한 트릭은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치더라도, 대량의 피를 순식간에 없애고 거기에 덤으로 교살까지 하게 만든 트릭은 이해하기가 쉬워서 더욱 기가막히게 보인다.
 거기에 살해동기마저 기이한건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원한이라던가, 그런 것과 상관 없는 무차별 살인도 있겠지만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살인이란...도대체 무엇일지...

실낙원 살인사건

 육지와 그리 멀지 않은 외딴섬에 위치한 연구소 실낙원. 그곳에서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노리미즈는 연구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의뢰받는다. 실낙원 원장은 막낭에 둘러싸인채로 의문의 질식사, 그리고 조수 한 명은 원장이 발견된 시점에 밀실에서 등뒤로 심장을 찔려 살해당하는데...
 그 동안 종교적인면이 짙은 다른 단편들과 달리 약간은 과학적인면의 기괴함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인체를 밀랍화해서 보관한다던가, 보관된 시체가 발광을 한다던가. 트릭에서도 과학실험에서 쓰이는 도구가 쓰이고, 청산가리 같이 추리에서 익숙하게 자주 보는 것이 아닌 화학약품이 많이 쓰였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상당히 분량이 적은 편인데, 참고로 여기서는 그 동안 자주 같이 나오던 하제쿠라 검사라던가, 구마시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 둘이 노리미즈에게 농락당하는 것만 없으면 분량이 늘어나지 않는 건 아닐지...
 오해로 인해 벌어진 사건치고는 상당히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화려한 단어로 별의미 없게 붙인 상징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엄청나게 큰 의미로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의미를 주고 싶어도 너무 그럴싸하게 의미를 주면 되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도 남는 듯하다.

 오필리아 살인

 자신이 만든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형시킨 희곡으로 공연에 나선 노리미즈. 셰익스피어 기념 극장에 소속된 극단과 공연을 이어가던 중, 노리미즈는 오필리아 역의 하타에가 오래전 사라진 셰익스피어 전문가이가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쿠쥬로를 보았다며 혼란에 빠진다. 여차해서 다음 막을 이어갈 무렵,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는 장면에서 하타에가 살해당하는데...
 극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유형은 과거 고전 추리소설에서도 간간히 있었다. 하지만 오구리 무시타로 답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트릭이 기상천외해도 전개방식은 그렇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되려 전개방식이 독특하다. 탐정인 노리미즈가 연극배우를 겸하는 상황이라,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공연이 끝난 뒤고 대부분의 상황은 공연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래서 무대공연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희곡적인 면이 많아서 이 단편은 트릭보다는 전개방식 때문에 읽기 힘들다 해야겠다.
 트릭에 대한 평은 흑사관 이후의 시점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기발하나 기계장치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이해하지 못할 트릭은 아니었다. 사건동기 또한 그 동안 나온 단편에 비하면 상당히 평범한 편이다. 아마도 흑사관 집필에 모든걸 쏟아부은 탓에 힘이 빠졌던게 아닌가 싶다.
 연극과 사건의 중심에서 펼치는 노리미즈의 기교에는 역시 문헌적인 요소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약간 연극적인 낭만적인 부분이 있었다. 셰익스피어라던가, 꽃에 대한 의미를 다룬다건가.

 잠수함 [매의성]

 1차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속의 잠수함 한 대가 탈영하고, 태평양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심해에 고립된 상황에서 사망한 함장의 시체가 사라져버린다. 그 이후, 일본에서 관광용으로 개조된 잠수함 매의 성. 첫 시범으로 동승하게 된 사람들은 과거 매의성에 어쩌다가 탑승하게 됐던 무로토마루 선박 소속 일본인 3명과 외국인 1명으로 구성된 맹인. 그리고 과거에 사망한 함장 관계자들이다. 심해로 잠수해 들어간지 얼마지나지 않은 시점에 맹인들 사이에서 무로토마루 선장이었던 야즈미 코키치가 살해당하는데... 
 단편들 중 가장 특이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데, 바로 사건 현장이 잠수함, 그것도 심해에 잠수한 상태라는 것이다. 노리미즈는 이걸 유래없는 삼중 밀실이라 지칭한다. 심해. 잠수함. 잠긴 방. 거기에 주변인물이 맹인이라는 점까지.
 이 역시 흑사관 이후 나온 단편인데, 오필리아 살인과 비교하면 약간 흑사관과 비슷한 기교가 많다. 문헌을 이용한 사건의 연관성을 짚어가는 것이 그렇다. 다행인 건 여기서는 1개로만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만, 앞에서 1차 세계대전에 관한 부분이 좀 많이 다루어져서 읽기 힘든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흑사관에서도 문헌의 내용과 현재 시점의 인물과의 접점을 이루는 식으로 전개되는 형식이었는데 매의 성도 그런 형식이었다. 니벨룽의 반지라는 고대 문헌으로 풀어내는 사건의 전말은 잠수함이란 배경만큼 상상도 못할 정도였고,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오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헌적인 요소는 대단했지 트릭은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필리아 살인사건 만큼 이해하기 쉽다고 해야겠다.(트릭만이다,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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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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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날 때부터 많은 이들이 듣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재능, 혹은 능력이 아닐까 싶다. 특출나게 할 줄아는 것 하나만 있어도 주목을 받는데, 막상 당사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질 것이다. 원래 잘하던 것이라 당연한 것이다. 또는 잘한다고 주목을 받지만 이게 진짜 내 재능일까. 이러한 문제는 학교를 다니고 있을 시절 가장 많이 고민이 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여름방학 후반이 다 되어갈 즘, 카미야마 고등학교의 고전부에서는 문집 빙과 원고를 정리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치탄다 에루가 지인이 있는 2학년 F반에서 촬영한 비디오카메라 영화 시사회에 가자고 제안한다. 시사회장에는 여제라 불리는 이리스 후유미가 있었고, 미완성된 영화를 보여주며 결말을 맞춰달라고 하는데...
 에니메이션과 비교해보았을 때는 소설 상에서의 시간흐름을 간소화하기 위해서였는지 전개상의 차이와 현대적인 요소를 넣은 부분이 다르게 보였다.

 미완성 영화의 결말이라는 점과 밀실살인이라는 요소가 결합되면서 묘하게 일상과 본격이 교차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영화 속에서 일어난 살인이고, 가상 속의 트릭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마냥 건물 평면도까지 나와서 왠지 모르게 몰입이 되는 묘한 느낌이다.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 같은 느낌일지라도 일상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하나의 토론 주제로 떠오르는 정도에 그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결론이라는 일직선 상의 전개라기 보다는 여러 갈래 중의 가장 그럴사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객관적인 전개라 할 수 있겠다.
 앞서 재능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전작 빙과에서는 학창 시절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다룬 것 같다면 이번 '바보의 엔드크레디드'는 미완성 영화와 밀실살인을 통해서 재능에 대한 문제를 다뤘다는 생각이 든다. 2학년 F반의 비디오카메라 영화 부분을 보면 자기 자신이 자각하는 재능과 남들이 눈에 평가되는 재능의 충돌로 인한 문제가 보였고, 그 해결과정에서는 자신의 재능이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 보였다.
 재능의 충돌에 관해서 말하자면 지나친 보편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엄연히 서로 다른 분야를 싸잡아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비슷하면서 그 계통에 속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미술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에게 미술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의뢰인이 동양화를 요구하는데, 서양화 전공자는 동양화는 못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의뢰인은 서양화 전공자가 미술을 잘한다고 거짓말했다고 취급하는 경우다. 재능의 의심이란, 요컨대 이런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재능이 있다고 확신감 있는 말을 들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그냥 더 열심히해서 최선의 결과를 내라는 뜻에서 한 거짓말인 경우다. 그러면 원래 재능이 있어도 그게 자신의 진짜 능력인지, 남의 평가로부터 얻은 자신감을 통해 나온 그 순간만의 결과물일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다. 학창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재능이란 건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끝으로 결말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본격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가 나도 이건 치탄타 에루와 오레키 호타로를 비롯한 고전부가 겪는 일상 미스터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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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터규 로즈 제임스 -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 외 3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3
몬터규 로즈 제임스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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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내가 처음 공포소설을 접했던 것이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러브크래프트, 스티븐 킹 등, 숱한 공포소설들을 보아왔다. 그런데 몬터규 로즈 제임스라는 이름은 처음보았다. 다른 공포 단편모음집에는 실려 있었는데, 모음집을 그닥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서 보지 못한 모양이다.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공포 소설은 대체로 옛스러운 분위기와 흔히 잘아는 서양풍의 유령이나 악마가 등장하고, 마무리로 러브크래프트가 즐겨쓰는 미지의 공포로 마무리 된다. 배경은 전부 빅토리아 시대라서 그런지 아무리 옛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해도 중세 고딕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중세 시대의 잔재(종교적 권위가 높다던가, 장원, 영주 등)와 근대 사회가 공존하는 분위기라던가, 근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과거의 망령이 주는 태고적 공포, 종교적인 성역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코스믹적 공포는 고딕에서 발전된 현대 공포소설의 기초라 해도 될듯 하다.
 작가 분이 심한 보수주의자라 불릴 정도로 옛스러운 걸 고집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클리셰가 흔한 편이다. 예를 들면 각 단편마다 주요인물에 목사가 꼭 나온다던가(이들은 대체로 해결사 또는 조력자 역할이다.), 주요장면으로 영국 국교회 성당이 자주 나온다던가(이런 경우 100% 그 성당과 관련된 흑막이 있다.), 고문서나 유물이 인물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면 네크로노미콘 급의 마도서나 주술도구였다던가(이런 경우 소유자가 공포스러운 일은 겪어도 공정하게도? 죽는 건 나쁜 놈들 밖에 없다.), 마지막 흑막으로 털이 북슬북슬한 붉은 눈의 악마가 자주나온다던가(묘사가 조금조금씩 다르지만 종합해보면 전부 이런 모습이다.).
 총 4개의 단편집을 한 권에 묶은 것이라 상당한 분량을 자랑한다. 거기에 각 단편마다 분량 차가 심하게 차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웃긴 것은 중요한 얘기만 한다면서 한 두페이지 넘게 엄청 질질 끈다는 것이다...), 다른 단편집에 비해서 읽다가 지루함을 많이 느낄만도 한다. 전부 소개할 수는 없고,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것만 꼽는다.
 '호각을 불면 내가 찾아가겠네, 그대여'는 전형적인 하얀 천 형태의 유령이 나오는데, 요즘에는 흔해빠진데다 귀요미로도 취급받고 심지어는 개그소재로 뒹구는 그런 녀석이 여기서는 진짜 무섭게 나와서 아, 이 녀석이 원래 이런 녀석이었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역시 그 시대에 유명했던 것은 그 시대 사람 손에서 나와야 진짜 무서운 것 같다.
 '대성당의 옛이야기'는 분량이 약간 많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옛 우주의 신이 강림하는 듯한 코스믹적 공포가 일품이다. 단지, 그 공포스러운 존재가 악마처럼 종교적인 존재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다른 단편인 '바체스터 대성당의 성가대석'을 같이 놓고 보면 M. R. 제임스의 소설 속 오래된 성당은 마치 크툴루가 잠들어 있는 르 뤼예에 있는 건축물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옛것이 없어져가는 것에 반발심을 가지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울부짖는 우물'은 저주받은 땅을 중심으로 마치 좀비물을 연상시키는 공포요소(실제로는 저주받은 망령이지만, 묘사가 마치 좀비 같다.)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역시 어른들이 가지말라는 곳은 가지 말자.
 '소품'은 특정 지역에 대한 공포심을 다루는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계의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라는 듯이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묘사가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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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의 살인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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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육에 이르는 병으로 왠만한 추리 독자들을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은 이분. 아비코 다케마루하면 다들 아실 겁니다(이러면서 정작 저는 그 유명한 살육을 아직 못 읽었지만;;). 제목 그대로 0을 나타내며 흩뿌린 피자국을 보면 또 한바탕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내려놓아야 덜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0의 살인은 살육에 이르는 병이 나오기 전에 나온 책이기도 하고, 이 시리즈인 하야미 삼 남매는 전혀 그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호 노파인 후지타 가쓰의 생신을 맞아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녀의 변호사, 전담 의사, 조카인 구지타 다쓰오와 히로코, 남동생인 미우라 겐지. 생신잔치는 막바지에 이르러 가족 간의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다가, 티타임에 커피를 마시던 구지타 히로코는 누군가 넣은 청산가리로 인해 독살당하는데...

 전반적으로 본격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는 흐르지만, 대체로 등장인물들이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인물들 마냥 하나같이 나사 빠져 보이거나 개그스럽다. 비슷하다고는 했지만, 도쿠야는 과장스러운 개그라던가 약간 비현실적인 요소(예를 들면, 수수께끼 시리즈의 부잣집 아가씨 경찰인 효쇼 레이코라던가, 마법사는 완전범죄를 꿈꾸는가의 마법적인 요소 등등.)까지 넣어서 개그스럽게 만드는 반면, 다케마루는 진짜 있을 법한 사례들을 넣어서 개그스럽게 한다. 그래서 개그인데 개그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주연인 하야미 삼남매는 각각 포지션이 나누어져 있다. 전반적으로 사건해설역이자, 의뢰인 역할 격에, 동생들에게 봉취급을 당하는데다, 지지리 복도 없는 장남 하야미 교조. 탐정 역이자, 커피 중독자인 미남 카페 점장인 둘째 차남 하야미 신지. 온갖 의견과 가설을 내놓으며 막무가내 추리를 하는 미스터리 마니아 막내 여동생 하야미 이치오. 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에서 천재적인 아마추어 탐정의 현란한 말빨 솜씨 같은 걸 기대하지 않기를 바한다. 왜냐하면 다들 그럴 싸하게 말은 하지만, 정말로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같은 분위기보다는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실제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토론하는 분위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온갖 추리소설에서 나오는 밀실이나 살해방식 등을 들먹이며 추리를 하는 이치오 같은 경우는 진짜 미스터리 소설 독자나 다름없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아마추어 탐정의 진정한 모습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아마추어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기발한 추리라던가 트릭 없이 우연을 가정으로한 전개가 많다. 이전에도 우연을 가장한 추리를 본 적이 있어서 말하지만 상당히 김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랑 이번 건 다르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명탐정스러운 아마추어 탐정이 나오면서 상당한 트릭이 나오다가 중간에 이런 전개를 내놓으면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추리를 하는 건 일개 미스터리 마니아일 뿐인 보통 사람인데다, 지극히 현실스러운 배경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열에 아홉은 일어날 법한 우연이 일어나도 조금은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여담이지만, 0의 살인의 살해현장 중 하나를 보면, 아비코 다케마루가 살육에 이르는 병에 나오는 고어틱한 걸 표현하기위해 시범적으로 넣었을 법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있어서 조금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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