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렉세이 성당의 참극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현진 옮김 / 추리와트릭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3대기서인 흑사관 살인사건, 다들 기억할 것이다. 기괴한 충격을 선사한 작가 오구리 무시타로도 경이롭지만, 무엇보다 내용전반을 들쑤시는 건 바로 노리미즈 린타로이다. 온갖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앞뒤가 맞는 이론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정말 신에 가까운 탐정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흑사관에서 나온 그의 엄청난 추리 역량을 보면 보통 사람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라고 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사관은 장편. 여기에 실린 건 단편이다.
 흑사관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장담하지만, 여기에 있는 단편은 흑사관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미치지 않으니 편히 읽어도 될 것이다. 단지, 정말 보통사람의 상상으로 할 수 없고, 이해하기 다소 난해한 살인의 향연일 뿐이다. 물론 그걸 풀어내는 노리미즈의 기교도 한목 하고.

 곳곳에 약간의 오타나 문맥상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좀 있어서 출판사 측에서 앞으로 신경써야 할듯 합니다.

후광 살인사건

 깊은 산 속에 위치한 절 코라쿠사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으로 인해 구마시로는 노리미즈를 호출한다. 현장은 이렇다. 시체 사이를 왕복한 두 종류의 신발자국, 그리고 불상을 바라보며 반듯이 편안한 자세로 정좌한채 정수리가 뚫려 죽은 시체...
 첫 단편부터 오구리 무시타로 다운 상당히 기상천외하고 난해한 사건이었다. 얼핏보면 간단해보이지만, 정수리가 뚫리는데도 가만히 있던 피해자의 상황을 보면 정말 기괴하기 짝이없다.

 배경도 그렇고 살해당한 인물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보니 트릭에서도 종교적인 면이 있었다. 다만, 종교에 가깝다기 보다는 정신의학적 이론에 가까웠다. 노리미즈가 어떻게 증명은 했지만, 다른 단편들과 달리 이것만은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가능한지 아직도 의문스럽다. 이것을 제외한 나머지 알리바이 트릭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다. 진짜 오구리 무시타로가 작중에 나오는 시계를 정말 구해서 실험해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성 알렉세이 성당의 참극

 한겨울 자택에 있던 노리미즈는 가까운 곳에 있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인 성 알렉세이 성당에서 들려온 종소리를 듣고 어떤 발상이 떠오른다. 이윽고 하제쿠라 검사에게 연락을 해 성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성당입구에서 만난 성당 관계자 루킨에게 종소리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서둘러 종루로 달려간다. 하지만 종루에는 이미 피범벅이 된 성당지기가 있었는데...
 흑사관에서도 언급된 사건이라 특히 관심히 갔던 단편이었다. 후광 살인사건에 이은 난해한 요소들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후광보다 더하다는 생각이다. 성당 종에 관한 미스터리라던가, 역시 시체의 기묘한 상태가 그에 해당한다. 대체로 러시아와 근대 유렵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많았다. 안 그대로 오구리 무시타로의 작품 속에서 외국인이 많이 등장하는 구석이 있는데, 아마 역사적인 문헌을 이용한 추리 고려해서 그런 것 같다. 후광에서도 한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인물이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게 더 한정되는 바람에 도무지 감을 잡기 힘들었다.
 후광에서는 다소 정신의학적인 트릭이었다면 알렉세이 성당은 상당히 과학적인 트릭이었다. 겨울이라는 날씨조건에서 나온 종소리의 기교와 현장에서 흉기를 없애버린 트릭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과학적 원리가 있었다. 또한 실을 이용한 밖의 문을 걸어 잠그는 기술도 현란하다 못해 거의 묘기나 다름없을 정도다.

 유메도노 살인사건

 노리미즈는 한 밀교 암자인 유메도노에서 일어난 괴이한 사건을 의뢰받는다. 현장에는 기적의 수도승이라 불린 추마거사가 거의 찢기다싶이한 상태로, 비구니 한 명은 기괴한 상태로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문제는 사건 발생장소가 밀실이고, 추마거사의 현상태로 나올만한 혈은이 발견되지 않았고, 살해당한 비구니를 공포에 질리게 한 것의 정체, 그리고 괴이한 새 발자국이였다. 이윽고 노리미즈는 흉기로 보이는 걸 가진 유력 용의자를 찾아낸다. 그건 바로 유메도노 3층에 위치한 공작을 탄 여신불 모습의 그림인 공작명왕이었는데...
 단편 중 난해한 걸로 최고를 선정한다면 바로 이 유메도노 살인사건이 아닐까 싶다. 흉기로 마구 도려냈지만 전혀 피가 남아있지 않은 살해현장이라던가, 기묘한 교살, 거기에 유력 용의자가 공작명왕 그림이라니...문제는 공작명왕에게서 보이는 특징이 사건현장에 남겨져 있어서 더욱 충격적이다. 노리미즈와 하제쿠라까지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하니 할말 다한 거다.
 이런 사건현장에는 거기에 걸맞는 트릭이 존재하는데 정말 기가막힌다. 몸을 마구 난자한 트릭은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치더라도, 대량의 피를 순식간에 없애고 거기에 덤으로 교살까지 하게 만든 트릭은 이해하기가 쉬워서 더욱 기가막히게 보인다.
 거기에 살해동기마저 기이한건 처음이지 아닐까 싶다. 원한이라던가, 그런 것과 상관 없는 무차별 살인도 있겠지만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살인이란...도대체 무엇일지...

실낙원 살인사건

 육지와 그리 멀지 않은 외딴섬에 위치한 연구소 실낙원. 그곳에서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노리미즈는 연구소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의뢰받는다. 실낙원 원장은 막낭에 둘러싸인채로 의문의 질식사, 그리고 조수 한 명은 원장이 발견된 시점에 밀실에서 등뒤로 심장을 찔려 살해당하는데...
 그 동안 종교적인면이 짙은 다른 단편들과 달리 약간은 과학적인면의 기괴함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인체를 밀랍화해서 보관한다던가, 보관된 시체가 발광을 한다던가. 트릭에서도 과학실험에서 쓰이는 도구가 쓰이고, 청산가리 같이 추리에서 익숙하게 자주 보는 것이 아닌 화학약품이 많이 쓰였다.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 상당히 분량이 적은 편인데, 참고로 여기서는 그 동안 자주 같이 나오던 하제쿠라 검사라던가, 구마시로는 나오지 않는다. 이 둘이 노리미즈에게 농락당하는 것만 없으면 분량이 늘어나지 않는 건 아닐지...
 오해로 인해 벌어진 사건치고는 상당히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화려한 단어로 별의미 없게 붙인 상징이라도 다른 이에게는 엄청나게 큰 의미로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의미를 주고 싶어도 너무 그럴싸하게 의미를 주면 되려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도 남는 듯하다.

 오필리아 살인

 자신이 만든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변형시킨 희곡으로 공연에 나선 노리미즈. 셰익스피어 기념 극장에 소속된 극단과 공연을 이어가던 중, 노리미즈는 오필리아 역의 하타에가 오래전 사라진 셰익스피어 전문가이가 연극배우였던 아버지 쿠쥬로를 보았다며 혼란에 빠진다. 여차해서 다음 막을 이어갈 무렵,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는 장면에서 하타에가 살해당하는데...
 극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유형은 과거 고전 추리소설에서도 간간히 있었다. 하지만 오구리 무시타로 답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트릭이 기상천외해도 전개방식은 그렇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되려 전개방식이 독특하다. 탐정인 노리미즈가 연극배우를 겸하는 상황이라, 현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공연이 끝난 뒤고 대부분의 상황은 공연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래서 무대공연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희곡적인 면이 많아서 이 단편은 트릭보다는 전개방식 때문에 읽기 힘들다 해야겠다.
 트릭에 대한 평은 흑사관 이후의 시점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기발하나 기계장치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이해하지 못할 트릭은 아니었다. 사건동기 또한 그 동안 나온 단편에 비하면 상당히 평범한 편이다. 아마도 흑사관 집필에 모든걸 쏟아부은 탓에 힘이 빠졌던게 아닌가 싶다.
 연극과 사건의 중심에서 펼치는 노리미즈의 기교에는 역시 문헌적인 요소가 빠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약간 연극적인 낭만적인 부분이 있었다. 셰익스피어라던가, 꽃에 대한 의미를 다룬다건가.

 잠수함 [매의성]

 1차세계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소속의 잠수함 한 대가 탈영하고, 태평양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심해에 고립된 상황에서 사망한 함장의 시체가 사라져버린다. 그 이후, 일본에서 관광용으로 개조된 잠수함 매의 성. 첫 시범으로 동승하게 된 사람들은 과거 매의성에 어쩌다가 탑승하게 됐던 무로토마루 선박 소속 일본인 3명과 외국인 1명으로 구성된 맹인. 그리고 과거에 사망한 함장 관계자들이다. 심해로 잠수해 들어간지 얼마지나지 않은 시점에 맹인들 사이에서 무로토마루 선장이었던 야즈미 코키치가 살해당하는데... 
 단편들 중 가장 특이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데, 바로 사건 현장이 잠수함, 그것도 심해에 잠수한 상태라는 것이다. 노리미즈는 이걸 유래없는 삼중 밀실이라 지칭한다. 심해. 잠수함. 잠긴 방. 거기에 주변인물이 맹인이라는 점까지.
 이 역시 흑사관 이후 나온 단편인데, 오필리아 살인과 비교하면 약간 흑사관과 비슷한 기교가 많다. 문헌을 이용한 사건의 연관성을 짚어가는 것이 그렇다. 다행인 건 여기서는 1개로만 진행된다는 점이다. 다만, 앞에서 1차 세계대전에 관한 부분이 좀 많이 다루어져서 읽기 힘든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흑사관에서도 문헌의 내용과 현재 시점의 인물과의 접점을 이루는 식으로 전개되는 형식이었는데 매의 성도 그런 형식이었다. 니벨룽의 반지라는 고대 문헌으로 풀어내는 사건의 전말은 잠수함이란 배경만큼 상상도 못할 정도였고,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오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헌적인 요소는 대단했지 트릭은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필리아 살인사건 만큼 이해하기 쉽다고 해야겠다.(트릭만이다, 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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