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오래된 것은 손때가 많이 묻는다고 들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걸 사용하던 사람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 일종의 살아있는 추억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이렇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쪽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낡아서 우중충하다, 더럽다, 망가졌다 등등. 그냥 물건이라면 버리든 계속 사용하던 선택할 수 있지만 집이라면 말이 다르다. 사람이 사는 곳인 만큼 웬만하면 고처서라도 오래 쓰려고 하지만, 단순히 집 상태나 구조가 아니라 다른 곳에 문제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얼핏보면 흔히 볼 법한 흉가 괴담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미티빌 호러>나 <폴터가이스트>처럼 끔찍하거나 크게 무서운 느낌은 아니다. 보통 흉가를 소재를 하면 악령과의 대결이나 결국 집이 완전 박살나는 경우가 많은데,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싸우는 것보다는 오히려 타협하고 해결하려는 구성이다. 게다가 귀신을 비롯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주체가 아니라 집이 주체가 되서 소소한 일상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어차피 사람이 사는 집이고, 오래될 수록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기에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거주민 모두가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솔직히 그 동안 집에서 귀신이 나오면 쫓아내려고만 하지, 누가 귀신이 소란피우지 않고 편히 있으라고 집을 고치려 하겠는가.



 뒤뜰에서


 돌아가신 고모의 유산을 상속받고 낡은 집으로 들어온 쇼코. 어린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없던 그 집에는 서랍장으로 막아놓은 방이 있다. 문제는 창문도 없는 그 방의 미닫이 문이 혼자서 자꾸만 열려서 신경이 쓰이는데...

 영선 가루카야가 어떤 작품인지 보여주는 첫 장인 만큼, 기이한 현상과의 타협부터 흔한 흉가 괴담 클리셰 파괴까지 보여줘서 기이현상을 고치는 목수라는 분위기를 잘 나타내었다.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많이 느껴졌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대세라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나이드신 분들이나 아픈 사람에게는 이런 부분이 크게 다가온다. 그것도 다른 가족이 있는데도 혼자 방치되어 있다면. 그런 만큼 혼자사는 집에는 살던 사람의 흔적이나 습관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장에서


 옛 무사집안의 고택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천장에서 이상한 것을 보면서 이 참에 집을 리모델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천장에서 무언가를 보는 건 계속되고, 심지어는 이상한 소리까지 나기 시작하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무사집안, 우리나라로 치면 종갓집 수준의 고택이라 그런지 괴이 현상의 사유가 남다르게 보였다. 거기에 요즘은 보기드문 다락이라는 특수한 구조까지 있어서 오래된 집에서만 느낄 법한 미지의 공포가 나타나 있기도 했다.

 이런 옛 고택에 가면 함부로 건들면 안 되는 물건들이 종종 있고는 한다. 대부분 건들이지 못하게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고는 하지만, 한 번 발견되면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물건이라면 모를까, 오래된 물건이라면 집 안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방울소리


 비오는 날 방울소리와 함깨 검은 상복의 여자를 보게 된 요코.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아 요코는 그저 피하지만, 비오는 날마다 여자는 계속 나타나고 점점 요코의 집 가까이 오기 시작하는데...

 특이하게도 집 안의 문제가 아니라 집 외부에서 문제점이 다가온다는 경우다. 그래서 집 내부라던가 추억, 사연에 관련되기 보다 약간 풍수지리와 터에 대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괴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 더 공포스럽기도 하다.

 대문에 대해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여기서 대문이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보며 사람만 다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집 안에 흉이 든다는 것도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형의 사람


 도시에 살다 시골로 이사온 것때문에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은 여고생 마사카. 무엇보다 신경쓰이는 건 계속 집에 몰래들어오는 기분 나쁜 할아버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사람이 도저히 숨을 수 없는 비좁은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작중 화자가 여고생이라 그런지 도시 아이들이 시골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었다. 노인들에 대한 적대와 불쾌감, 서스럼 없는 정겨운 분위기가 어색하다 못해 기분 나쁜 것을 보며 정이 없어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감정이 이렇다는 걸 알 수 있다. 본인이 어렸을 적에는 소규모 아파트였음에도 시골처럼 이웃 간 잘 지냈던 걸 생각하면 가면 갈수록 삭막함이 더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차이의 문제라 할 수 있지만, 자라온 환경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집도 영향이 클 수 밖에 없고, 또한 충돌이 일어나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다고 전부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연배에 관련된 부분은 타협하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만조의 우물


 남편과 함께 조모가 살던 옛집에 들어온 마리코. 어느 날, 남편이 정원을 꾸미면서 우물 근처에 있던 오래된 사당을 부숴버리고 만다. 그 동안 관리가 안 되던 것이라 마리코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하지만, 마당은 황폐해져가고 무언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정원과 관련된 내용이라 주로 집 내부보다는 정원 위주로 보여주는 게 많다. 상수도가 되어 있는 도시에서는 우물을 볼 수 없지만, 옛날에는 공용우물이나 개인우물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을 쓰는 곳이라는 특성상 중요하면서도, 물이 많이 고여있는 곳이라 음기가 돈다고 조심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나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면 우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얘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만조의 우물도 얼핏보면 흔한 우물 귀신 얘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자연현상을 넣으면서, 단순히 음기가 고여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우물에 사람이 빠져 죽어서 귀신이 나온다고는 들어봤지만, 우물로 들어온다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밖


 이혼하고 딸과 고향으로 돌아온 마미. 친정과도 멀어져 생활을 위해 중고차까지 샀지만, 매번 차고에서 시동을 걸때마다 말썽이다. 결국에는 차 구매를 주선해준 친구에게도 따지지만, 차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차고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고 느끼는데...

 차고나 자동차가 나와서 그냥 시골의 오래된 집 분위기와 약간은 다른 느낌이었다. 거기에 그냥 시골에 사는 가정이 아닌, 이혼가정이라는 구성까지 있어서 앞서나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분위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단란한 시골 분위기 보다는 홀대받는 분위기가 강하고, 새로운 출발보다는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진 과거와 재회하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작중나오는 괴이나 인물들이 느끼는 문제가 전부 과거에 있어 보였다. 누구나 어린 시절이 있고 아픈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까울수록 막대한다고, 특히 가족에게서 상처받는 게 많을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가 가장 아픈 게, 그나마 가깝게 의지할 대상이 상처를 주면 의지와 상처가 충돌해서 심리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상황이 이상해져 버린다. 이게 특히 아이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점이다. 거기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난다 해도 결국은 의지할 대상이 없어진다는 것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운 상대보다 오히려 낯선 이에게 의존할 수도 있다. 입으로는 가족을 말하지만 이미 그 가족이 가지는 의지할 곳은 텅 빈지 오래. 다른 누군가가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에 들어 사제관계라는 건 이미 교육이라는 것과 동떨어져 난장판이 되어 보인다. 교사가 학생을 때려 상해를 입히거나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막말을하고, 반대로 학생이 교사를 공격하고 정당한 교육을 범법행위 취급하는 상황. 음의 방정식은 이러한 아수라장인 현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도쿄의 세이카 중학교에서 체험캠프를 진행하던 중, 한 교사의 폭언이 문제삼아지면서 파문이 일어난다. 교사와 학생들 간의 의견차이 속에서 결국 해당 교사는 퇴직처리까지 되고만다. 결국 교사는 변호사 후지노 료코를 고용하고, 한 학생의 부모는 진상을 알기 위해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에게 의뢰를 하게 되는데... 
 스기무라 사부로와 후지노 료코. 둘 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꽤 남다른 위치로 보였다. 스기무라는 탐정이면서 한편으로는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학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을 보고, 후지노 료코는 변호사이면서 솔로몬의 위증처럼 학생이 연관된 사건이라 그런지 학생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 같았다. 특히 후지노 료코에게는 솔로몬의 위증에서 시간이 흐른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탐정으로서의 스기무라 사부로가 많이 부각되는데, 추리소설 속 명탐정이 아닌 일본에서 직업으로서 받아들여지는 탐정이기 때문에 그닥 좋은 대접은 못받는 듯하다. 하지만 원래 이 분이 워낙 순한 이미지라 그런지 그럭저럭 난관없이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보여서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현실에서도 흔한 학생과 교사 간의 대립이라 여러모로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다. 요즘은 학생들이 선생님을 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이 폭력이나 교육자로서 하면 안 되는 행위를 하는 일도 많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무조건 학생들이 버릇없어서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생겼나 하는 점이다. 오래 전부터 교사가 학생 위에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학생 입장에서 부당하다 생각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게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되물림되다 보니 일종의 혐오증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음의 방정식과 비슷한 상황, 또는 더 심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내용과 별개로 이번 음의 방정식이 나오고서 약간씩 놀란으로 언급되는 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저서처럼 얼마 되지도 않은 분량을 장편소설이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본인도 처음 본 얇은 책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는데, 미야베 미유키를 많이 접하신 분들도 엄청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몇 분은 성급하게 출간했다, 이익을 위해 무리한 시도를 했다는 등, 작가의 잘못으로 보는 시선이 보이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찾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일본 본토 사이트에서는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았다. 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일본 사이트를 보니 음의 방정식은 단독으로 출간된 적이 없었다. 그저 이전에 나온 솔로몬의 위증 문고판 3부 법정편 하권 끝 부분에 특별 중편으로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장편이 아닌 중편으로다. 장편치고는 아쉬운 느낌이나, 빨리 끝났다고 느꼈던 것, 그리고 시시한 느낌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애시당초 음의 방정식은 장편이 아니었고, 거의 솔로몬의 위증 후기이면서 동시에 스기무라 사부로의 근황을 알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일본에서도 그러니 작가가 대충써서 출판시장에 내놨다 보기는 어렵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처음 단행본이 출간되고, 판매가 많이 된 이후에 단행본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문고본이 나오는 형식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내용을 약간 손 보거나, 그 시기에 썼던 중단편을 문고본에 끼워서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문고본 시장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솔로몬의 위증 문고본에 딸려나온 음의 방정식을 내려면 단독으로 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솔로몬의 위증에 음의 방정식을 넣어 개정판 형식으로 낼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애초에 중편으로 나온 소설을 장편이라 내는 건 바람직한 일일까? 그렇다면 성급한 행동을 한 것은 누구였을까? 여러분이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미제사건하면 어떤 이미지인가. 보통 미스터리함을 많이 언급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잡히지 않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 해본 적 있나? 세상에 들어난 미제 사건이 아닌, 존재자체가 들어나지 않은 미제 사건을.

 보통 많은 이들이 아는 미제 사건은 그저 잡히지 않은 범인에 대한 미스터리와 과거시점의 공포가 있다면, 아예 들어나지 않은 미제 사건은 현재에 돌아다니는 공포의 실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도시전설도 이런 미제 사건의 흔적에서 발단이 되어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정말 무서울텐데, 중국에 이런 게 있다면 어떤가? 규모와 인구수를 생각하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지 않을까?

 의문의 사망으로 중국 경찰계의 신화로 알려진 탐정 모삼. 그런 그가 기억을 잃은채 한 클럽의 살인사건 현장에 나타나 사건을 해결한다. 이후 파트너였던 법의관 무즈선과 합류해 기억을 되찾으면서, 이전에 쫓던 연쇄살인마. 일명 L이라 불리는 범인과 대결을 하게 되는데...

 주인공인 탐정 모삼과 법의관 무즈선을 보면 얼핏 셜록 홈즈와 왓슨 구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삼과 무즈선을 보다보면 탐정 셜록과 법의관 셜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둘 다 보통 사람의 상식을 초월하는 행동을 보여준다. 그나마 무즈선은 좀 잘 사는 보통 사람처럼 보이지만, 시체 부검만 들어가면 모삼과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에 정말 비슷한 사람끼리 잘 붙어다닌다고 볼 수도 있다. 오죽하면 이들과 함께 하는 경찰 관계자 오팀장은 범죄수사만 안 했으면 둘 다 미친 놈들이라 할 정도다.

 중국 본토에서의 경찰 수사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현대적인 수사기법 속에서 간간히 나타나는 중국 전통의 동양적 사고론에 입각한 편견과, 대도시와 소도시 사이의 격차, 그리고 명예를 중요시하는 풍조 때문에 겪는 수사상 어려움 같은 부분이 그렇다.

 거기에 중국 본토의 스케일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살인사건까지 있어서 그 동안 보아온 추리소설의 사건과는 뭔가 격이 다를 정도라 하고 싶을 정도다. 사건부터 격이 다를 정도인데, 이런 걸 모삼과 무즈선은 놀라운 실력으로 해결해서 이들도 탐정과 법의관으로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작중 등장하는 사건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토대로 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 실태와 이런 환경에서 나타나는 범죄가 왜 그렇게 상식을 초월할 정도인지 해석까지 있어서, 범죄자가 미친 놈이기 때문에 이렇다라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살아온 환경이 나쁘게 영향을 주면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한테는 상식 밖의 잔인한 행동이 그 살인범한테는 자기만 아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의 기억 속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느끼게 됐다.

 앞서 말한 들어나지 않은 미제사건에 대한 공포와 독특한 범인과 탐정의 구도로 꽤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웠다. 추리물에서 범인이 비중이 높아보이는 경우를 보면 셜록 홈즈의 모리아티 교수나 소년 탐정 김전일의 "지옥의 인형술사" 타카토 요이치 같은 경우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통칭 L은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르다.

 앞서 언급된 이들은 흔히 범죄 코디네이터라고, 다른 사람에게 범죄 계획을 세워주고 본인은 뒤에서 지켜보는 역할 정도인데, L 같은 경우는 정말 특이하다. L은 앞서 말한 들어나지 않은 미제사건의 범인과 관련된 증거를 던저놓고 탐정보고 잡아보라 한다. 그리고 탐정이 제한시간 안에 잡지 못하면 자신과 함께 있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식이다. 참고로 L이 제시한 미제사건은 L과 무관한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이며, L이 사주해서 저지른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독자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사건일 뿐이다. 이런 탐정과 범인의 대결 방식이 정말 독특하고 참신하게 보였다. 그 동안 다른 작품에서 탐정과 범인의 대결이라하면 범죄가 계속 일어나야 실마리를 잡고, 그렇다보니 도리어 탐정이 사신취급(대표적인 예로 김전일과 코난)을 받게 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모삼과 L의 대결을 보면 누군가 분명 죽을 게 뻔하고 거기서 또 증거가 나오겠지, 하는 느낌보다는 빨리 주어진 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누가 곧 죽을 거라는 긴박감이 느껴졌다. 거기에 탐정이 괜히 나서서 사람이 더 죽어나갔다는 인상도 주지 않아서, 이런 게 바로 범인과 탐정 간 대결의 진정한 묘미라 생각한다.

 참신하고 흥미로운데다 범인과 탐정 간의 긴박감 넘치는 대결까지해서 놀라운데, 아직 소설 전체의 초반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모삼과 무즈선, 그리고 L이 벌이는 대결이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새로운 느낌의 신선한 작품을 접한 만큼 다음 대결을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불의 연회 : 연회의 준비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는 세계가 과연 진짜일까. 보통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눈 앞의 세상은 아무 문제없고 생활하는데 지장이 생겨도 그건 삶에 대한 문제지, 눈 앞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식물도 뿌리가 망가지면 전체가 말라죽듯이, 사람도 근간이 흔들리면 현재 살아가는 세계관이 무너져 결국에는 죽고 말 것이다.

 이게 막상보기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람을 가장 공포로 몰아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눈 앞에 무서운 게 있다면 아예보지 않거나 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그것도 심리적으로 몰아붙여 생기는 공포가 그렇다.

 자기가 알고 당연시 여기던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누가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현재의 자신이 알지못해 소멸된 과거. 사실상 과거와 단절된 현재. 이러한 분위기의 도불의 연회는 그 동안 교고쿠도 시리즈에서 보여준 심리적 압박이 최고조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잡지사의 요청으로 주민을 비롯한 모든 게 사라진 헤비토 마을 조사에 나선 세키구치에게 다가온 위기... 즈시 사건 이후 누마즈에 정착한 아케미의 앞에 나타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남자와 동네를 뒤흔드는 성선도... 교고쿠도를 방문한 고서점 군시테이 주인 미야무라가 말하는 효스베를 본 여자와 신흥종교에 빠진 그녀의 할아버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영매사 가센토를 노리는 한류기도회... 스토킹을 당한다며 기바 슈타로에게 상담을 요청한 여인이 말하는 신통력 있는 아이... 눈알 살인마 사건 이후, 오리사쿠 아카네 앞에 나타난 하타라는 노인의 제안과 이즈의 땅과 관련된 사건... 이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하는 거대한 집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번 도불의 연회 1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 에피소드별로 파트를 나눈 것이다. 보통 교고쿠도 시리즈는 제목에 언급된 요괴가 내용 전반에서 영향을 주는데, 도불의 연회의 1부인 <연회의 준비>에서 도불(누리보토케)은 중요한 것으로 전혀 언급되지 않고 각 파트별 제목으로 쓰인 요괴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잘 보면 생김새나 유래에서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파트별 요괴들과 도불에게 뜻밖의 공통점이 보였다.

 저 요괴들 모두 토리야마 세키엔의 첫 화집인 <화도 백귀야행>에 실린 것이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목의 도불을 포함한 작중 언급된 요괴 전부 세키엔의 화집에 설명없이 그림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각 파트별로 그림 밑에 쓰인 설명도 보면 전부 화집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다른 책에서 언급된 내용이며, 심지어 와이라 같은 경우는 그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아서 더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그래서 이번 도불의 연회 1부는 도불이라는 존재를 언급하기 이전에 설명없이 그림으로만 언급된 요괴를 먼저 늘어놓으며, 이전에 나온 다른 시리즈와 달리 도불은 그 어떤 사전정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체에 대해 쉽게 파악하기 힘들다고 미리 설명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작품 내용상에서도 그 이전 작품들과 달리 뭔가 사건의 이미지는 확실히 있지만, 설명이나 뒷받침 되는 정보가 아무 것도 없어서 도불의 연회에서의 도불은 바로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설명없이 그림만 있는 요괴들 중 도불(누리보토케)이 제목 전면에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 동안 종교적 분위기가 강한 교고쿠도 시리즈에 설명없는 요괴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요괴여서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도불은 작중에 언급된 다른 요괴들에 비해서 유독 종교적 느낌이 강해보이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도불은 눈알이 튀어나온 검은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화도 백귀야행>의 그림을 보면 불단에서 나타난 모습이라 다른 것이라 생각하기에도 어렵다. 불상이라는 확고한 종교적인 이미지에 눈알이 튀어나오게 해서 만들어진 기괴한 이미지. 딱 교고쿠도 시리즈 다운 느낌에 적합해 보인다.

 각 파트 별로 벌어지는 사건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그 동안 아무리 사건의 크기가 크고 복잡하더라도 개인 대 개인으로만 벌어지는 정도였는데, 도불은 거의 개인 대 집단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 집단이라는 존재가 엄청 많이 나오고 다 종교 비스무리한 이미지에 전부 나쁜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거기에 교고쿠도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 소름끼치고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길에서 도을 아십니까, 하고 묻는 부류의 집단이 있다. 본인도 어쩌다 만나봐서 아는데 다짜고짜 말을 걸며 뭐라뭐라 하는 형식의 래퍼토리다. 관상이다, 기운을 느낀다, 신기가 있다, 같은 말을 아무런 근거 없이 하는게 대부분이라 대부분 믿지 않을 법하다. 그런데 도불에서 나온 종교단체의 언변과 연출을 보면 앞서말한 부류와 비슷한 것도 모자라,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걸 보며 아무리 비상식적인 종교라도 작정하고 달려들면 개인을 쉽게 휘어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케미가 나오는 <우완> 파트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 잘 나타나 있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개인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유독 도불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이나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 동안 전후라는 정도나, 세키구치나 기바가 동남아 지역 전쟁에 참여한 일 정도로 그리 자세하게 표현되지 않던 것에 비하면 엄청 많이 나와 보였다. 특히 전쟁과 무관하고, 전쟁을 원치 않던 이들이 느꼈던 충격과 공포가. 물론 일본이 2차세계대전 전범이라는 것에서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국가지도자들이 일으킨 건 맞지만, 앞서 말한 평범한 사람에게는 원치 않게 하루 아침에 전세계가 적이 되버린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는 걸.

 개인의 주위에 형성된 분위기가 핵심인 내용이다 보니, 작중 인물들도 그 만큼 더 심도 있게 표현된 부분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교고쿠도의 동생 아츠코와 기바 슈타로 형사였다.

 아츠코의 경우에는 그 동안 밝은 모습만 나와서 어딘가 한 군데 씩 문제 있어 보이는 주연 인물들에 비해 별 문제 없을 것으로 보였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에 결점이 있어서 측은하게 보일 정도였다. 특히 가족에 대한 인식과 그로 인한 자신 주위의 분위기에 대한 결점이 도드라진 부분은 현대의 가족문제와 여러모로 흡사해 보였다. 그래서 아츠코를 보며 성장과정에서 가족이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하면 아무리 밝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이루는 세계관이 안정되지 못해 결국에는 본인의 자아까지 확실해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의 불확실. 그것은 나란 도대체 무엇이냐, 쉽게 말하면 나는 어떤 스타일일까인데 이게 확고하지 못하고 타인의 손에 끌려다닌다면 결국에는 진짜 내가 없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기바 슈타로의 경우는 무당거미 이후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번 편에 들어 본격적으로 이 형사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고찰이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냥 생각없이 감으로 수사하다 결국 폭주하고 마는 형사. 그 동안 기바 슈타로란 인물의 정의는 딱 이정도였다. 그런데 도불에서는 기바의 의외의 모습이 많이 나와서 이 형사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으로 수사한다는 이미지만 보면 기바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편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 해버리는 걸 보면서, 이 형사는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면 그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게 보였다. 생각해보면 기바가 교고쿠도를 개인적으로 찾아와 단독으로 문답을 주고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이들의 문답을 듣는 것이었다면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자신이 제시한 문답이었으니 더욱 잘 이해한게 아닐까 싶다.

 여러모로 작중에 개인의 세계관이 파괴되어 혼란에 빠진 내용이 많은데, 그저 자아 상실이라는 간단한 말로 설명하려해도 혼란의 원인과 과정이 매우 세세하게 달라서 보기에 따라 엄청 해깔리기도 한다. 전부 하나 같이 무언가 빠져 있다며 공허해 하는데, 그 원인과 거기에 이르게 된 흔적이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억과 실제 세상 기록과의 괴리, 과거와 현재의 단절 속에서 피어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미지의 공포, 과거의 한 부분이 들썩이며 현재에 영향을 끼치며 발생하는 혼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전무해 껍데기만 가진 현재, 미래가 현재를 침식하여 세계관의 중심이 내가 아니게 되버리는 현재. 거기에 개개의 사건을 관통하는 몇몇 동일 인물이 더해지면 그야 말로 혼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분명 분위기는 심리적으로 엄청 무겁게 압박하는 느낌이지만 작중 분위기의 구조나 매개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면서 읽는 다면 모를까, 사건 전개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진행될지에 초점을 맞춘 독자라면 이번 도불은 정말 읽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사건 초입에서 진행되려는 순간에 끊기거나, 중간 과정은 없이 결과만 덩그러니 놓인 경우도 있어서, 아직 본격적인 사건의 모습이 들어나지 않는 이 시점이 엄청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본다. 전개로만 집중해서 본다면 거의 오프닝에서 사건전개 초입까지만, 6번이나 반복되는 구조니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1부라는 특성상 본격적인 사건이라던가, 제목의 도불(누리보토케)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그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보인 것과 관련 인물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암시만 있을 뿐이다. 예상이지만, 무당거미를 뛰어넘어 교고쿠도 시리즈 사상 역대급 피해자 수를 기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 연회의 시말을 기다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백범일지 - 백범 김구 자서전, 1947년 국사원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김구 지음 / 지식인하우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 아이디어 베낀 출판사에서 만든 초판본은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잘 기억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양심없는 출판사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